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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대한변리사회 회장 | 전문성 경시하는 문화 뿌리 뽑아야 제2의 ‘세월호’ 人災 막을 수 있어요
입력 : 2014.06.09 15: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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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 간 특허소송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며 특허·디자인·상표·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관련 전문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변리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변리사 업계도 어느 때보다 고무되어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들은 앞 다퉈 변리사 인력충원에 나섰고 대형로펌들 역시 변리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리더의 전문성이 조직의 재앙을 막는다 “예전에는 변리사 하면 병아리 감별사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많이 와전된 정보이긴 하나 최근에는 연봉 6억3500만원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대중의 관심도 면에서는 많이 올라간 셈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올해 3월 대한변리사회 회장에 오른 고영회 전 대한기술사회 회장도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식재산이 중요한 국제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특허분쟁이 점차 늘어나며 변리사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변리사회 회장을 선출하는 선거는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업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난 데다 올해는 특히 소송대리권 문제 등 여러 현안이 첨예하게 걸려 있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세 명의 후보가 출마해 경합을 벌였고 투표율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래서 과반수 지지를 얻은 고영회 회장에 대한 변리사들의 기대는 상당히 높다. 그는 과학기술자가 대접받는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대한기술사회를 창립했으며, 수십 년간 변리사의 권리를 찾기 위해 힘써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수장 자리에 오른 고 회장을 서울 서초동 명달로에 위치한 대한변리사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간단한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이슈의 중심에 있는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사회 안전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전문가가 맡아야 할 자리를 엉뚱한 사람이 차지하면 시민에게 재앙이 돌아갑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 외에 이전에도 우리는 그런 모습을 수차례 보아왔습니다.”
그는 일련의 대형 사고를 예로 들며 리더의 전문성과 판단력, 책임감 부족으로 재앙을 키운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사건 당시 불이 붙은 열차와 반대 방향으로 운행하던 열차에도 불이 옮겨 붙었지만 기관사는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전동차에 대기하라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방송한 후 전동차 문을 잠근 채 자리를 떴습니다. 승객들은 열차 안에 연기가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자리에 앉아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번 세월호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죠. 배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장은 승객의 안전과 관련된 사고가 났을 때에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없는 자가 자리를 차지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재앙을 피하기 힘듭니다.”
시민의 안전은 물론 사회 전반에 중요한 위치일수록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전문가의 힘은 경험을 통한 직관에서 나온다고 강조하며 흥미로운 임상 실험 이야기를 풀어놨다.
“일본에서 바둑기사들을 상대로 뇌파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둑을 둘 때 전문(프로)기사와 취미(아마추어)기사 가운데 누가 더 많이 생각하는가를 측정하는 실험이었죠. 얼핏 생각하면 전문기사가 머리를 더 많이 쓸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험 결과는 달랐습니다. 전문기사는 알고 있는 수가 타당한지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취미기사는 여러 가지 수를 생각해내느라 머릿속이 복잡해 뇌파가 시종일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전문성의 핵심은 직관입니다. 지식이 몸에 밴 전문가는 직관적으로 해결책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반면 비전문가는 시간을 많이 쓰면서도 정답을 제대로 찾지 못합니다.”
지식재산권시대 변리사 역량은 곧 국가경쟁력 고 회장과의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는 바로 ‘전문성’이다. 그는 전문가가 올바로 평가받고 바로 서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요소를 제거할 수 있음은 물론 곧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확고한 신념과 궤를 같이해 고 회장은 평생 자기계발을 통한 전문성을 키우는 데 매진해 왔다. 1958년 경상남도 진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고 회장은 서울대 자연계열에 합격해 건축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업무 강도가 만만치 않았던 회사에 입사했으나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매진한 결과 ‘이공계의 꽃’이라 불리는 기술사 자격증을 2개나 취득했다. 남들은 2~3년 매달려 공부해야하는 자격시험을 일과 병행하며 통과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마저 ‘지독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미륭건설(현 동부건설), 현대알루미늄공업, 중앙건설 등에서 일을 했는데 야근도 많고 술자리도 많아서 공부하기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제 분야에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퇴근하면 그대로 독서실에 틀어박혀 새벽까지 책을 보고 출근했습니다. 당시는 체력이 받쳐줬거든요.(웃음)”
이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마흔 가까운 나이에 변리사 자격시험에도 합격했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기술사 자격과 변리사 자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높은 전문성을 확보한 그였지만 공부를 계속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매달려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았음에도 고 회장은 수차례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고 회고했다.
“기술사 자격증을 두개나 얻었습니다. 그런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다시 변리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습니다. 이제 됐나 싶었더니 이번엔 변리사법에 명시돼 있는 소송대리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처절한 좌절감을 맛봐야 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변리사 역할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데도 처우나 제도적인 측면은 아직까지 미비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회에 점차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변리사들의 능력이 국가경쟁력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하며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1980년대 후반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사에 8000만달러 규모의 특허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그전까지 특허란 지식재산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지만 이후 관심을 가지면서 특허 순위 1~2위를 다툴 정도로 막강해졌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다가 애플이란 복병을 만나 뺨을 맞은 겁니다.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나 배심원 편파성 등 국내에 없는 생소한 제도에 효율적으로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적으로 지식재산권관련 분쟁은 늘어가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의 준비는 미약하다고 지적한 그는 변리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이공계 차별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리사를 비롯한 과학기술분야의 전문가들이 당당하게 인정받고 일할 수 있으면 결국 과학기술에 대한 대우로까지 이어져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에서 경험했듯이 특허 하나로 수조원대의 국부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만큼 변리사를 비롯한 과학기술분야에서 전문가의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암담합니다. 과학고에 진학해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우승한 학생들이 서울대 물리학과에 갑니까? 수학·과학 분야 세계석학이 될 자질을 가진 사람이 모두 의대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아빠 나 괴롭히면 공대 갈거야!’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겠습니까? 이공계가 올바로 대우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우수한 인재가 이공계에 지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고 변리사님의 소송대리 행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원고 불출석입니다.”
2010년 11월 4일 오전 조용했던 서울고등법원 내 한 법정이 시끌시끌해졌다. 재판부가 특허권 침해를 둘러싼 한 민사 소송에서 원고 측 대리인으로 변호사가 아닌 변리사가 출석하자 문제를 삼았고 방청석에서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특허 사건에 대해서는 변리사가 소송을 대리할 수 있도록 변리사법 8조가 규정하고 있는데 왜 대리권을 인정할 수 없습니까?”
비장한 표정으로 소송대리인 자리에 앉은 고 변리사에게 방청객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는 줄기차게 변리사의 특허침해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법부에 ‘법조정의가 숨졌다’는 항거의 의미로 상복까지 갖춰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리사는 소송대리인으로 인정할 수 없으니 대리인이 불출석한 것으로 처리하겠다”고 반복하며 자리를 황급히 빠져나갔다.
변리사 업계에는 오랜 숙원이 하나 있다. 오랜 기간 다투고 있는 특허소송 소송대리권을 찾는 것이다. “명백히 1961년 제정된 변리사법에 변리사가 특허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명시했어요. 중고등학생들도 명백히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을 최고 사법기관에서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리사법 2조를 보면 ‘변리사는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하여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을 대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8조에서도 관련한 사항에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변리사들은 이를 토대로 특허권의 유무효를 판단하는 심결취소소송(특허심판)에서는 소송대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손해배상액 등을 청구하는 특허침해소송에서는 변리사의 소송참여가 제한되고 있다.
고 회장은 현실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이 제한되는 특허침해 소송에서 일은 변리사들이 하고 변호사들은 대리인으로 이름만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변호사는 변리사 못지않게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할 수도 없는 일에 이름만 올려놓은 거죠.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변리사인데 홍길동전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법정에 서고 밖으로 알려지는 사람은 결국 변호사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변리사제도의 근본적인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두 소송의 구분을 두고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제한한 것이 부당하다며 10년 넘게 언론 등을 통해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소송대리인에 본인의 이름을 올리며 권리를 주장하고 헌법소원도 냈지만 패소했다.
“이미 제 이름으로 행정소송 2건에서 소송대리인 자격이 인정된 판결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권리가 갑작스럽게 박탈된 것입니다. 몇몇 법학자들 역시 판결에 비판적인 의견을 취하고 있습니다. 소송대리권에 대해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입니다.”
다음으로 고 회장은 소송대리권 문제와 함께 중요한 현안인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변리사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자동자격제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재 등록된 변리사가 7200여 명인데 이 가운데 자동 자격취득자가 4000여 명이 넘습니다. 지식재산에 대해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고 영업도 하지 않는 ‘변리사’들이 범람하는 것이며 이는 고스란히 고객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변리사 자격을 자동 취득한 변호사 대부분이 사실상 폐업상태라고 밝힌 고 회장은 특히 현실에서 사건수임을 받은 변호사들은 다시 전문적인 변리사에 사건을 맡겨 의뢰인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명이나 기술 개발은 어떤 이가 평생을 바쳐 개발하는 것들인데 대리인들이 잘못하면 평생의 역작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되살릴 방도조차 없습니다. 그만큼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또한 전문성이 부족한 변호사를 찾아가게 되면 변리사를 동시에 고용해야 하는 비용 낭비도 발생하게 됩니다.”
한편 지난해 특허청은 변호사 자동자격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온전히 국회통과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며 일정기간 연수를 통해 취득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 개정을 위해서는 법무부와 법제처, 국회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까지 여러 단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도처에 법조계 출신 인물이 포진해 쳐놓은 울타리가 공고해 힘겨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동의를 통해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반드시 이뤄내고 말 것입니다.”
변리사 특허소송대리권 논란 관련조항 변리사법 제2조 및 제8조
제2조(업무) 변리사는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하여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을 대리하고 그 사항에 관한 감정(鑑定)과 그 밖의 사무를 수행하는 것을 업(業)으로 한다.
제8조(소송대리인이 될 자격)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
고영회 회장 경남 진주시 금산면 태생으로 서울대 건축학과, 서울대 대학원 건축학과(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제32회 변리사시험에 합격해 1997년부터 변리사사무소를 열어 대한변리사회 공보이사 및 부회장을 지냈다. 초대 대한기술사회장(2002~2005년)을 거쳐 올해 3월 대한변리사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5호(2014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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