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 겸 대구은행장 | 위기 아닌 적 있었나 답은 현장에 있다

    입력 : 2014.04.25 1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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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접견실 벽엔 ‘현장(現場)과 실용(實用)’이라는 짤막하고 담백한 문구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그 반대쪽엔 허들을 뛰어넘는 그의 캐리커처가 놓여 있다.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매일 현장경영을 솔선수범하며 마음을 다지는 것들이다. “주 7일이 모자랄 정도다. 어느 날은 하루에 열세 개 지점 돌고 거래처 다섯 곳을 뛴 적도 있다. 며칠 전엔 새벽 6시에 집을 나와 7시 차로 서울 가서 언론사 돌고 인터뷰 하고 거래처 두 곳 다녀서 7시 차로 집에 왔더니 9시가 넘었다.”

    박 회장은 대구에서만도 거의 매일같이 지역 CEO 오찬 간담회 등 수많은 모임에 참석한다. 또 전략적 거점들이 있는 울산과 포항 구미를 중심으로 지역 내 전 영업점을 돌며, 저녁엔 또 이곳저곳 상가를 들른다. 지난 3월 21일 주주총회 이후 정말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고 할 정도다.

    “여기 와서 보니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 비서실장이 가라는 대로 가야 한다. 어느 곳을 가다가 갑자기 돌아오라는 전화에 즉시 차를 돌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야 챙길 곳 제대로 챙길 수 있다. 그래도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 일찍 그의 공장으로 달려간다.”

    박 회장은 캐리커처를 가리키며 “내 별명이 미스터 점프(Mr. Jump)다. 모임에 나가도 미스터 점프 박인규라고 소개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늘 웃는 얼굴이지만 그는 최고경영자가 되고 나서 고민이 많다. 대구은행을 포함한 DGB금융그룹 구성원 모두의 미래가 자신의 어깨에 달렸다는 생각에서다.

    “대구은행은 지난 1967년 오픈한 뒤 47년간 흑자를 냈다. IMF 외환위기 때도 공적자금을 받지 않았다. 국내 은행 중 유일하게 한 번도 적자 내지 않고, 공적자금 지원조차 받지 않았다. 지금 대구의 GRDP(지역내 총생산)가 전국에서 꼴등이라 여건이 좋지 않다. 그렇더라도 11대 은행장이 말아먹었다는 소리가 나와선 안 되지 않겠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게다가 은행업에 부담을 주는 저금리 저성장 기조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 마디로 비상상황이다. 다행히 최근 지역 부도율이 지난 연말에 비해 조금 낮아졌으나 아직 실물경기가 좋아진 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박 회장은 ROTC 출신답게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즐기겠다고 밝혔다.

    “35년 동안 은행 근무하면서 어렵지 않다는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단 한 번의 적자도 내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저성장 저금리가 지금 우리의 허들이다. 이 허들을 뛰어 넘거나 아예 부수고 가자고 하고 있다.”

    그는 무한경쟁 상황에선 자산이 적은 지방은행의 가격 경쟁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직접 창업한 1세 기업인들은 아주 끈끈하다. 그들은 금리 1~2%에 움직이지 않고 대구은행만 찾는다. 그러나 2세, 3세는 다르다. 금리 하나하나를 따진다. 하룻밤 자고나면 이별하고 떠난다. 그걸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지점장들 모아놓고 다섯 개 뺏기는 건 좋은데 그러면 10개를 빼앗아오라고 한다.”

    탁상에 앉아서는 안 되며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가격경쟁력에선 뒤지지만 현장에서 얻는 비가격경쟁력만큼은 얼마든지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정서가 통하는 곳인 만큼 오너를 만나 수시로 그들의 사정을 듣고 필요할 때 신속하게 지원하는 게 대구은행만의 강점이란 얘기다. 그가 발품 팔아가며 현장경쟁을 하라고 솔선수범하는 까닭이다.

    “부지점장 회의 때 내가 수시로 전화할 것이라고 했다. 구내전화 받으면 인사고과에서 감점할 줄 알라고 경고도 했다. 출근해서 필요한 것만 파악한 뒤 바로 나가라는 것이다.” 21년간 서울에서 은행원 생활 하면서 치열한 강남과 여의도 경쟁에서도 살아남은 그는 경쟁이 힘들지만 즐기다보면 길이 열린다고 했다. 다만 간부들이 책임을 갖고 뛰라며 조직도 그런 구조로 바꾸고 있다고 했다.

    사실 지역밀착 영업으로 커온 은행으로선 현장경영은 지역사회와 함께 첩경이다. DGB금융그룹은 최근 3년간 새희망홀씨대출로 1931억원을 지원했고 소상공인들에게 2128억원을 대출하는 등 4261억원의 서민대출을 했다.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자금을 지원하려면 현장을 잘 챙겨야 하며 이렇게 해서 충성고객이 만들어진다. 현재 대구경북 인구의 73%가 대구은행과 거래하고 수신점유율이 35.7%에 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 회장이 ‘꿈과 풍요로움을 지역과 함께하는 대구은행’을 모토로 내건 것도 그래서다.

    3년 뒤 80조 자산 목표 박 회장은 3월 21일 취임 직후 작년 연말 41조7000억원이던 DGB금융지주의 총자산을 3년 뒤인 2017년까지 80조원대로 끌어올린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대구·경북 지역 혁신도시나 경북도청 이전과 관련한 금융수요를 선점하고 동남권 진출을 확대해 주력자회사인 대구은행의 자산을 60조원 규모로 끌어올리고, M&A로 자산운용사나 보험 증권 등 자회사를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단순히 선전용으로 내건 목표가 아니다. 그를 따르는 직원들의 미래가 달린 과제다. DGB금융그룹이 인수하고자 했던 경남은행은 그가 취임하기 전 부산으로 우선권이 넘어갔고, 광주은행도 JB금융이 인수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과거엔 지방은행 부동의 1등이었건만 자칫 경쟁에서 밀려날 위기 상황이다. 게다가 지역경제가 위축돼 성장마저 더디다.

    “해마다 전국 100대 기업이 발표되는데 대구에는 딱 하나밖에 없다. 그게 DGB금융그룹이다.” 비빌 언덕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지역 기업들이 성장하도록 이끌고 지원해야 하는 입장이다. 박 회장은 금융그룹 전체로는 수익원을 다변화하되 주력 자회사인 대구은행에 대해선 ‘선택과 집중’을 하는 전략으로 이 위기를 돌파할 생각이다.

    “자회사로 캐피털 회사가 있는 만큼 그룹 차원에선 자산운용사를 인수하려고 한다. 해볼 만하다. 현재 몇 곳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공개할 입장은 아니지만 잘 되면 올해 안에 인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후 보험사나 증권사를 인수하는 식으로 고객에게 종합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대구은행은 지역밀착 영업의 강점을 인근 지역으로 확대해갈 구상도 갖고 있다.

    “대구경북보다 부산경남 쪽 경제 규모가 더 크다. 그래서 동남권 시장 확대를 목표로 부산 울산 경남 지역 지점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울산과 창원을 주목하고 있다. 울산은 GRDP가 전국 1위다. 창원은 최근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 대구에 지점 한 개 낼 노력이면 창원에 두세 개 낼 수 있다.”

    이들 지역에 집중적으로 점포를 내고 중소기업 영업을 강화해 매년 30% 이상의 성장을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지방은행이 없는 충청권도 세종시를 중심으로 공략해 자연스레 광역권 영업망을 갖춰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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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형보다 내실 다질 것 그렇지만 무조건적 성장은 지양하겠다는 게 그의 의지다. “무리한 자회사 확충이나 자산 성장은 지양하고 있다. 외형을 늘리기보다는 내실을 바탕으로 성장과 수익의 균형을 추구하려고 한다. 자산운용사를 인수해 업무를 다변화하려는 것도 실속을 차리면서 하려는 의도에서다.”

    이런 원칙은 재무안전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 2013년 말 비율이 15.21%나 된다. 감독당국의 경영평가 1등급 기준인 10%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은행 측은 앞으로도 철저한 위험가중자산 관리를 통해 국내은행 평균보다 높은 13% 이상의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해 나갈 방침이다. 한 때 은행권에 열풍처럼 불었던 해외진출을 자제하는 것도 그래서다.

    “대구은행의 해외 점포는 상하이에만 있는데 상하이지점 대출조차 본점에서 모두 스크린하고 있다. 앞으로도 해외점포를 무작정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상하이지점을 둔 것은 그곳에 나가 있는 우리 지역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지금으로선 중국에 베이징 한 곳과 동남아에 한국 기업들이 있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정도만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내실위주의 경영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신뢰를 샀다. 2013년 말 기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SAMA는 7.71% 지분으로 DGB금융지주 최대주주다. 또 집합투자자인 애버딘자산운용은 자기 계산으로 소유한 5.08%를 포함해 총 9.33%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난 2월 4일 신고했다.

    “다수의 외국인 투자가들이 안정성을 보고 DGB금융지주에 투자한 것 같다. 지역 내 확고한 고객 기반과 영업망을 바탕으로 안정적 성장을 하며 수익을 추구하는 게 그들의 니즈에 부합된 것 같다.”

    그러면서 장기투자를 한 주주들에게 보상할 방안도 제시했다.“DGB는 앞으로도 업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ROE와 수익성을 유지해 주주가치를 높여갈 것이다. 또 동남권 공략이나 비은행 자회사 인수 등의 성장전략으로 주주이익을 확대할 방침이다. 2008년 리먼사태와 이후 시행된 바젤Ⅲ 등의 영향으로 그 동안 감소했던 배당도 자본적정성이 일정 수준 확보되면 회복할 필요가 있다.”

    한편 최근 은행권에서 문제가 된 개인정보 유출이나 지배구조 등의 문제는 원칙에 입각한 정도경영으로 풀어갈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에게 원칙에 입각해서 하라고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비윤리, 비양심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윤리경영’ ‘정도경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주에게 배당하고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하며 종업원에게 월급도 줘야 하지만 정도경영을 통해 해야 한다. 내 앞에 열 분 행장님들이 모두 그만큼 노력해서 대구은행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인품 갖춘 인재 원해 박 회장은 외모부터 훈남이다. 20여 년을 만나왔지만 그는 늘 서글서글한 눈매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렇지만 업무만큼은 단호하고 위계를 존중한다. 두 양상이 그의 인사 스타일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우선 조직은 엄격한 위계를 갖추겠다고 했다.

    “부행장들 모아놓고 내 부하는 당신들뿐이라고 했다. 조직을 부행장 체제로 끌고 가려고 한다. 부장들은 내 부하가 아니라 부행장 부하라고 했다. 부행장 중심으로 책임지고 하면 나는 연말에 평가만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위계질서가 잡힌 일사불란한 조직으로 움직이게 할 것이다.”

    대조적으로 조직 구성원 하나하나는 인품을 갖춘 인재들로 채우겠다고 했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많지는 않지만 매년 쉬지 않고 고졸 대졸을 뽑았다. 대구은행은 이 지역 최고의 직장이다. 지금 신입행원을 모집 중인데 대구은행에 입행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인사담당 수석부행장을 할 때나 지금이나 인품을 보고 뽑는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

    ※ 44호에서 계속...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4호(2014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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