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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로 간 ‘황의 법칙’ 황창규 회장| 통신서도 신화 이룰까
입력 : 2014.02.04 17: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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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6일 새로운 사령탑으로 황 회장이 결정된 후 KT 임직원들은 기대감과 동시에 긴장감을 내비치고 있다. 방만하게 경영되던 사업 등을 정리하고 조직을 혁신시켜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사업통폐합 등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특히 황 회장이 단독 후보로 결정된 후 경영·인사를 위한 소수의 태스크포스팀(TF)만을 중심으로 외부와 연락을 끊으면서 KT 내부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지는 모습이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황 회장은 KT 내부 임직원들과 별다른 접촉을 가진 적이 없었다. 서초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오직 TF팀만을 만났을 뿐이다.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을 내세워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전자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던 황창규 회장. 그 앞에 펼쳐진 장애물들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살펴봤다.
두문불출 속 조직변화 예고 황 회장은 지난 2009년 삼성전자 사장으로 재직하다 물러났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책임연구원과 미국 인텔사 자문역을 거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IBM 등 글로벌 전자기업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뿌리치고 삼성전자를 택했다. 1990년대 초 그가 입사한 후 삼성전자는 16메가 D램을 개발하며 일본을 앞서나갔고, 그는 ‘황의 법칙’을 내세우며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삼성전자에 쥐어줬다.
KT CEO추천위원회도 황 회장의 이 같은 추진력과 경험을 높이 사 KT 회장의 단독후보로 추대했다. 위기에 빠진 KT를 정상화시키고, 글로벌 통신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 그리고 글로벌 경험이 풍부한 황 회장이 적임자라는 판단일 것이다.
KT의 이 같은 결정에 이미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황 회장이 회장 단독 후보로 결정된 후 주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어서다. 반면 KT 내부에서는 불안감과 기대감이라는 두 가지 기류가 동시에 흐르고 있다. 이중 KT 직원들은 황 회장이 위기에 빠진 KT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높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일단 황 회장이 KT의 조직변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월 업무보고를 받은 과정에서 ‘6개월 내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을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또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조직을 심플하고 수평적으로 재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보고를 맡았던 각 부문장들 중 일부는 업무현황 외에 혁신 방안을 포함해 재보고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KT 내부에서는 황 회장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깐깐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KT의 한 관계자는 “각 부문장들이 업무보고에 들어갔다가 갖가지 질문과 지적으로 당황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귀띔했다.
반면 황 회장의 깐깐한 모습에 불안감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다. 그가 ‘수평적 조직으로 변화’를 예고하면서 기존 KT 내부 조직 간의 통폐합과 구조조정이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어서다. 통상 구조조정과 조직통폐합 과정에 앞서 희망퇴직이 먼저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임직원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KT의 한 계열사 임원은 “방만한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시 그룹 전체가 어수선해질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KT 임직원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부분은 황 회장이 단독 후보로 결정된 후 KT 임직원들과 스킨십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황 회장은 경영·인사를 담당할 TF팀과 함께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 집무실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수립 중이다. 특히 인사청탁 등을 막기 위해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KT 임직원들과의 만남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황 회장은 취임 직후 곧바로 네트워크 현장을 방문해 최신 기술 이슈를 확인하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레KT’와 ‘원래KT’의 융합이 관건 황 회장의 첫 번째 숙제는 KT의 조직 정상화다. 현재 KT는 이석채 전 회장이 비리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조직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다. 특히 이 전 회장 시절 낙하산 인사들로 인해 내부 직원들 간의 갈등의 골도 깊어 심각한 수준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KT 내부 조직원들이 ‘올레KT’와 ‘원래KT’로 나눠져 있을 정도로 조직원 간의 분열을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올레KT는 이석채 전 회장이 영입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임직원들로, 이 전 회장 체제에서 승승장구했던 사람들이다. 반면 ‘원래KT’는 기존 KT 임직원들로 올레KT 측 인사들에게 상당한 반감과 박탈감을 갖고 있다.
KT의 내부 조직문화가 이처럼 둘로 나뉘게 된 것은 이 전 회장이 영입한 ‘낙하산 인사’가 발단이 됐다.
이 전 회장이 영입한 외부인사들이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며 승진을 거듭하면서 기존 KT 임직원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이 커졌고, 곧바로 KT의 이분화를 가져왔다는 것.
실제 이 전 회장이 영입한 임원들은 여전히 KT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임기만료를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난 정성복 부회장도 있지만, 이 전 회장이 신임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KT에 남아 있다. 김일영 코퍼레이터트센터 사장과 김홍진 G&E부문 사장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모두 영국 브리티시텔레콤 출신으로 이 전 회장이 취임한 후 KT에 합류했다. 특히 이들은 이 전 회장의 비리 혐의와 관련해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주목할 부분은 검찰의 움직임이다. 황 회장은 1월 27일부터 경영활동에 들어갔지만, 검찰은 그 이후에도 계속 KT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그가 선택한 KT 임원들 중 일부가 검찰의 조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로 인해 재계에서는 “황 회장이 이 전 회장의 인맥들을 KT에서 모두 내보낼 가능성도 있다”면서 “검찰의 수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황 회장은 유독 인사 문제에 민감한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19일 임원들과의 만남자리에서 “인사 청탁이 있을 경우 처벌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KT 내부 직원들은 이와 관련해 “올레KT를 포함한 기존 KT 내부 조직 간의 인사를 재조율하는 탕평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황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KT에 정통한 기술자들을 대거 중용하는 인사를 단행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뿐 아니다. 이 전 회장이 추진했던 사업들 역시 원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르완다 프로젝트는 이 전 회장이 르완다 정부에 LTE 구축사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KT가 25년간 LTE망 도매업 독점을 조건으로 총 2700억원의 투자금액 중 1500억원을 투자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이 사업의 수익성이다. 통신업계에서는 KT가 25년이란 독점권을 받아오긴 했지만, 아프리카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업이란 평가를 내린다. 특히 르완다 반군이 현 정부를 전복시킬 경우, KT는 투자만 해놓고 돈을 떼일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 사업에는 2011년에는 KT의 자회사였던 러시아 연해주 통신사업자 NTC를 러시아 빔펠컴에 매각한 대금이 대거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KT 내부에서조차 당장 수익성이 보이지 않는 사업에 이처럼 과감한 투자결정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한 KT 관계자는 “아프리카 LTE 구축사업은 장기적으로 아프리카 시장에서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사업인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장기 투자가 수반되는 사업인데, 굳이 기업이 어려울 때 과감한 투자결정을 내린 것이 적절한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KT와 KTF의 합병에 따른 유무선 전산시스템 개발사업인 BTI프로젝트도 골칫거리다. 전사 IT 플랫폼을 개발하는 사업인 만큼 필요성은 충분하지만, 해외시스템통합업체인 액센츄어가 일감을 독점하면서 고비용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BTI프로젝트는 2011년 이사회에서 관련 예산 3800억원을 예상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미 9000억원의 경비가 투입됐다. 그럼에도 추가로 3000억원의 자금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BTI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한 플랫폼이 아직까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제대로 된 플랫폼 하나 개발하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밖에도 이 전 회장 당시 매각한 무궁화위성 5호의 재매입 건과, 통신사보조금 문제 등 황 회장 앞에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재계 전문가들은 “황 회장이 KT의 현안을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산적한 현안 중 해결 가능한 문제부터 풀어나가는 게 순리”라고 조언했다.
흐트러진 내부조직과 방만해진 사업들을 재조정해야 하는 황 회장은 1월 27일 임시주총 이후 본격적인 경영행보를 시작한다. 아직 그와 함께할 파트너들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마평에 오르는 이들이 몇몇 있다.
황창규의 경영파트너는 누구 업계에서는 일단 황 회장과 함께 할 경영파트너로 최두환 전 KT종합기술원장을 거론하고 있다. 부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 동문으로 학창시절부터 친구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원 출신인 최 전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과제인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출범한 ‘성장사다리펀드’ 투자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홍원표 삼성전자 사장도 황 회장과 친분이 두텁다. 홍 사장은 KT에서 2002년부터 5년간 와이브로사업본부장으로 일했다. 이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로 이동했는데, 이때부터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었던 황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누가 황 회장과 함께 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경영 초기에는 삼성전자와 거리두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홍 사장의 합류도 어려워 보인다. 정보통신 업계의 한 임원은 “황 회장의 경영파트너가 누구일까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면서 “소리 소문 없이 인사를 단행하는 삼성그룹의 스타일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황의 법칙’을 내세워 삼성전자를 글로벌 반도체기업으로 일궈낸 일등공신. 이후 재계를 떠나 4년여간의 야인생활동안 내공을 닦아온 황 회장이 KT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된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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