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드 자카리아 타임지 대기자·CNN 시사프로 GPS 진행자 | 中, 그들 주도 게임 위해 축구 골대 옮기는 중

    입력 : 2014.01.09 17: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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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맨해튼 타임워너 본사 5층에 위치한 CNN 사무실에서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타임지 대기자 겸 CNN 시사프로 GPS 진행자)를 만났다.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이자 경제전문가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국제정치 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스’ 최연소 편집장과 뉴스위크 편집장을 지내며 일찌감치 스타 언론인 반열에 올랐다.

    자카리아 박사가 저술한 ‘흔들리는 세계의 축’은 2008년 미국 대선 때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이 애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자카리아 박사의 칼럼을 찾아서 읽을 정도로 세계 지정학적 이슈와 경제문제를 참신한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자카리아 박사와 2014년 미국경제, 장성택 숙청후 북한 정세, 새로운 항공식별구역을 밀어붙이고 있는 중국의 속내, 대화가 끊긴 한·일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자카리아 편집장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2013년 미국 정치리스크가 미국경제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했다. 2014년에는 다소 개선되기는 하겠지만 초당파적인 대화합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특히 2014년에는 상·하원 중간선거가 있다. 때문에 내년 정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모멘텀은 국가이익보다는 지역구 이익이 우선시될 것이다. 지역구 유권자 표심을 잡는데 정치인들이 올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 구성비율이 85%에 달하는 미국 남부와 남서부지역의 경우 매우 보수적인 공화당 텃밭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초강경 보수적인 유권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민법 등의 분야에서 더 보수적으로 갈 것이다. 다만 예산안을 둘러싼 연방정부 폐쇄나 부채상한선 증액을 놓고 미국 정부를 부도직전으로 몰고 가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2013년에 이 같은 전략을 펼쳤다가 공화당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는 등 타격을 받으면서 이들 이슈를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년 세계경제를 한마디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회복(Recovery)이다. 내년에는 미국, 일본, 유로존이 모두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다. 특히 미국 경제를 다른 어떤 전문가들보다 더 낙관적으로 본다. 정치리스크가 여전하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이자 사회다.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나는 곳이다. 출생률이 다른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높고 100여 만명의 이민자들이 매년 유입되고 있다. 주택시장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고 셰일가스 개발붐 속에 에너지 비용이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기업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유연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4가지 요인이 결합되면서 미국 경제의 업사이드 서프라이즈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김정은이 사실상 북한 내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을 군사재판에 넘겨 곧바로 처형했다. 그 배경은. 북한처럼 폐쇄되고 고립된 사회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숙청바람과 관련해 뚜렷한 배경과 배후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김정은은 매우 젊은 나이에 별다른 정치적 경험과 네트워크 없이 북한 세습권력에 올랐다. 정권을 세습 받은 뒤 북한 내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올인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장성택 숙청은 김정은이 그동안 진행해온 권력 장악 시나리오가 마무리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내 권력 핵심층에게 북한의 유일한 정책결정권자가 김정은 본인이고 김정은이 1인 지도체제 정점에 있다는 점을 확인시키는 잔혹한 신호가 바로 장성택 숙청이다. 고모부인 장성택 처형을 통해 김정은 유일지도체제를 대체하려는 어떤 시도도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공포정치의 시작을 확인시켜줬다고 본다.

    장성택 숙청으로 김정은 유일지배체제가 강화됐다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권력투쟁 신호탄으로 보기도 한다. 북한은 실질적으로 군부독재(Military Dictatorship)체제다. 북한 군부 핵심 장성들이 누구를 지지할 지에 따라 권력이 이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북한 군부 핵심세력들은 백두혈통으로 일컬어지는 김씨 일가가 북한 정권의 합법·정당성을 강화하는 상징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권력을 지켜내려면 북한정권을 탄생시킨 김일성과 피로 연결되는 김씨 일가를 내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70년간 끊기지 않고 이어져온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체제보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더 좋은 대체재는 없다고 믿는 것 같다. 군부에게 김정은이라는 상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때문에 북한 내 김정은 제거를 포함한 권력투쟁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당분간 군부가 득세해 남북 관계가 더 냉각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했던 마오쩌둥은 지난 1960~1970년대 문화대혁명을 시작하면서 전 세계에 혁명가들을 보내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겨루게 만들었다. 그랬다가 갑자기 정책을 바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역사적인 미·중 정상회담을 연 뒤 장막을 걷어내며 서방쪽에 손을 내밀었다.

    이처럼 한명의 지도자에게 힘이 과도하게 집중되면 정책방향이 어떻게 바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김정은의 경우, 성격이 상당히 불안정하고 무모한데다 충분한 상의 없이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외교관행·관습에 따른 제약을 받지 않고 있는 김정은이라는 인물의 유일지배체제가 강화될 경우,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중도파인 장성택 숙청으로 북한 내 군부 목소리도 커질 수 있다. 무자비하고 압제적인 북한 정권 속성으로 볼 때 북한이 개방으로 나아가거나 민주적인 정권으로 변모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최근 이란, 쿠바까지도 서구세계에 조금씩 개방적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현재 북한 정권을 보면 이 같은 신호를 감지하기 힘들다.

    김정은이 없는 북한 정권 붕괴 가능성은. 김정은이 밀려나면 북한 정권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김씨 세습체제라는 상징이 없다면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군부가 김정은을 몰아내고 일시적으로 정권을 잡더라도 무자비하고 억압적인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동독의 경험처럼 미세한 균열의 조짐만 나타나더라도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김정은 정권 자체가 취약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붕괴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정부는 발생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를 이야기했다가 흡수통일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북한을 자극한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갑작스런 붕괴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 서독도 동독과의 점진적인 통일을 원했지만 베를린 장벽붕괴로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을 부담했다. 무방비로 당하기보다는 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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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택 숙청에 따른 북·중관계 냉각 가능성은. 장성택은 상대적인 온건파로 중국에 많은 네트워크를 구축해놓고 중국과의 접점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때문에 중국 지도부도 상당히 걱정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중국 고위층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중국이 북한에 대해 애증이 교차하는 감정(ambivalent feeling)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한쪽으로는 혈맹인 북한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북한이 압제적이고 타락한(Corrupt)정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사전협의 없이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에 나서는 등 예측불허 행동을 하는데 대해서도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다.

    2013년 들어 중국의 대북 대응자세에도 상당히 변화가 나타났다. 북한 3차 핵실험에 대해 2013년 3월 7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만들었을 때 중국이 동참한 것도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북한이 점점 더 무모한 행동에 나서는데 중국이 화가 났다고 본다. 북한이 계속 나쁜 행동을 지속할 경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에너지의 90%, 식량의 50~60%를 의존하고 있다. 과거 중국정부는 대북 에너지 공급을 1~2일간 끊기도 했다.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중국의 지원이 끊기면 북한은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를 지지하면서도 에너지·식량은 정상적으로 북한에 공급하고 있다.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면 가장 원치 않는 2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첫째, 북한이 붕괴되면 수백만명의 북한난민들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올 수밖에 없다. 둘째,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북한 붕괴로 북한이 한국에 흡수통일되는 것이다.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되면 미군이 중국 국경에 배치되고 북한 핵무기가 자연스레 통일한국 수중에 들어오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중국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당분간 중국이 북한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중국 정부가 항공식별구역을 지정해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 시진핑 체제를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시진핑이 전임자인 후진타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파워를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장쩌민이나 덩샤오핑만큼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보통 중국이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현재 중국은 시진핑 1인 유일 지도체제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 지난 11월 말 고든 브라운 전 영국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등이 참여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카운설 회원 자격으로 베이징을 방문, 시진핑 주석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대단히 지적이면서도 겸손하고 따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전 중국 지도자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테크노크래트였지만 시진핑은 대중과의 접촉도 많이 하는 등 정치인에 더 가깝다. 특히 시진핑은 국제무대에서 경제·정치적 덩치에 걸맞은 중국의 이해와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관심이 아주 많다. 덩샤오핑은 도광양회를 내세웠지만 시진핑은 정반대다.

    중국 일각에서는 후진타오가 중국이 더 앞으로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적극성이 부족해 이런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시진핑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감의 발로다. 자신감에 넘치는 중국(confident China)이 새로운 항공식별구역 설정이라는 정책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앞으로 국제사회는 이 같은 컨피던드 차이나에 익숙해져야 하고 힘이 넘치는 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항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해 아시아는 물론 미국이 반대할 것으로 예상했을 텐데. 중국은 롱텀 플레어이다. 항공식별구역을 지키지 않는다고 중국이 전쟁과 같은 도발적인 행위에 나서지는 않는다. 중국은 중장기적으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중국의 힘이 미치는 영역을 꾸준히 확장하는데 매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중국정부는 항공식별구역이 당장은 논란이 되겠지만 앞으로 5년이면 모든 국가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

    대만 이슈도 마찬가지다. 중국정부는 서둘러 대만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꾸준히 한 발씩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대만에 대한 중국 주권을 강제하기보다는 조금씩 중국의 영향력을 늘리면 20~30년 뒤에는 자연스럽게 중국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국은 축구장 골대를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골대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결국은 중국이 원하는 게임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의 맹주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이해관계가 연계된 사안에 대해서는 중국적인 시각이 확산되기를 원한다. 다만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데 서두르지 않을 뿐이다.

    한국정부도 방공식별구역을 확장했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중국이 하나 이해해야 할 것은 중국이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의 이해가 걸려있는 매우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지역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보다 큰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국가들의 권리와 규칙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미국과 새로운 관계정립을 원한다면 한국, 일본, 인도와도 그렇게 해야 한다.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어야 한다.

    과거사 문제로 한·일 정상이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 현재 한·일 관계는 매우 불행한 상황에 있다. 사실 일본 아베 정부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야심과 파워를 견제하는 등 매우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좋은 기회를 맞았었다.

    그런데 이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함으로써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친구로 만들어야 했다. 독일은 과거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하고 책임을 졌다. 독일이 유럽에서 리더십 역할을 하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일본은 과거 역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다.

    물론 30~40년대 일본과 현재 일본은 매우 다른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인 자존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대해 등을 돌리고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자세로는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할 수 없다. 일본은 사과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독일이 한 것만큼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사과를 했다가도 6개월 지나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과를 철회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한국인의 분노를 살 수 있다.

    [박봉권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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