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편적 인문주의 거장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 옆집 벤츠 살 때 안 샀다면 그만큼 번 것 아닌가

    입력 : 2014.01.09 17: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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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정치학과 갔는데 재미가 없어 2학년 올라가며 영문학과로 바꿨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영문학 선택한 데는 고교 때 독서클럽 활동하며 문학이나 철학 책 많이 읽고 더러는 글도 쓴 게 힘이 됐다. 고등학교 때 무엇을 좋아했는가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한국 인문학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시험에 매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던 분위기가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 땐 (입시를 위해)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았다. 3년 내내 보통 때와 똑같이 느긋하게 했다. 요즘(아이들)처럼 쪼들렸다면 아마 (나도) 못했을 거다. 요즘 아이들은 답안지는 잘 쓰지만 그때처럼 (깊고 다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고교 때 경험 한 토막을 보탰다.

    “2~3년 열심히 하니 영어책 보는 데 문제가 없었지. 그 때 영어시간에 영어책 보면 교과서가 아니더라도 교사들이 그냥 내버려뒀다. 그 때는 과외란 게 없었지만 영어 선생님이 H.G. Wells(웰스)의 ‘The Outline of History’라는 책 같은 걸 프린트해 읽으라고 나눠주기도 했다. 영어 하려면 이 정도는 읽는 게 좋다는 것이었지 입시준비는 아니었다. 배고플 때였지만 (공부하는 데엔) 태평성대였다.”

    그러면서 지금은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들도 그전과는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54년에 (대학)들어가 58년에 졸업했는데 휴강을 꽤 많이 했다. 학기 초 강의 계획만 말하고 학기 말에 와서 리포트 내라고 한 교수도 있었다. 한 마디로 만만디였지.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자기 뜻대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 63년부터 서울대서 가르쳤는데 (교수보고) 논문 쓰라는 요구도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 안한 것도 아니다. 지금 평균은 올라갔을지 모르나 공부하는 열정은 올라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서 당시 공부하던 분위기 한 대목을 소개했다.

    “대학 때 철학을 부전공으로 했다. 박홍규 교수가 철학을 가르쳤는데 강의는 거의 안했다.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했나. 그런데 자기 집 서재에 매주 대학원생과 젊은 교수들 모아놓고 책읽기를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한국 희랍·라틴철학의 원류이자 대가가 됐다.”

    (1994년 작고한 고 박홍규 교수는 평생 공부만 했지만 글은 논문 7편 내는 데 그쳤다. 제자들이 안타깝게 생각해 박 교수의 강의 녹음한 것으로 그의 사후에 5권의 ‘박홍규 전집’을 냈다.)

    김 교수가 인간의 자유의지 존중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다.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 악용하는 사람 조여매려고 선용(善用)하는 사람까지 얽매려 해선 곤란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스스로 좋아서 한 인문학 공부 영문학을 전공했고 국내 평론의 새 지평을 연 대가지만 김우창은 철학이며 역사 정치 예술 등 인문학 전반에 관심을 두고 많은 글을 써 왔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이유가 궁금했다.

    “우선 우리 사회가 어지러워 시대적 요구가 있었던 것 같다. 관심이 넓어서도 그랬고, 학생 때나 교수 때나 느슨했던 것도 있지. 그 점에선 요즘 젊은 교수들이 “편할 때 했다”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김우창은 여기서 자발적 의사로 열심히 한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위기가 느슨했지만 오히려 엄청 파고 들었다는 것. 진짜 좋아서 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에게 감명 깊게 읽은 책과 학생들에게 추천할 책 소개를 부탁했다.

    “너무나 많다. 고전은 다 읽어야지. 플라톤이며 논어 맹자 등. 개인적으로 독일어 공부하느라 고교 때 괴테의 파우스트를 봤는데 거기에 감명 깊은 대목이 나왔다. ‘무엇을 찾는 사람은 길을 잘못 들기 쉽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구원받기도 쉽다’는 것이다.”

    그 구절이 자극이 돼 끊임없이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 것 같다는 그는 당시 주위 환경도 책읽기에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50년대 내내 일본 책이 많이 나왔다. 종로나 청계천도 그렇고 광주에도 일본책이 많았다. (김 교수는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뒤 서울대에 진학해 상경했다.) 아마 전쟁 때 내다판 것 같다. 책방주인들이 이러이러한 책 읽으라고 추천을 했지. 책방 주인이 교사노릇 한 거야. 중고교 때는 거의 한 시간씩 걸어 다녔는데 중간에 있던 7~8개 책방을 들렀다 집으로 가곤 했다.”

    느슨해서 오히려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때 쌓은 지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그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을 쏟아냈다. 인터뷰 전날엔 ‘체험의 조형’을 새로 출간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냈는지 궁금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모아놓지 않았으니…. 제자들이 전집 내겠다고 자료 수집하는데 15~20권정도 될 거라고 한다.”

    중복되는 것 빼고 압축해서 그 정도라니 그가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 짐작이 갈 정도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옛날 동네가면 양복 치수 재서 맞춰 입었잖아. 주문 들어와야 생산했지. 김훈 작가의 부친인 김광주 씨가 “주문생산 하다 보니 많이 쓰게 됐다”던데 내가 그런 것 같아.”

    출판사들이 다퉈가며 그에게 책 내자고 요청해 자연스레 많은 책이 나왔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많은 글들이 하나같이 매우 정확하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고르는데 엄청 신중을 기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려운 글이지, 그러다보니 콤플렉스가 생겼어. 내가 이 말 하면 먹히겠나, 이 말 이해하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 내가 우리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지식인 특유의 겸양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보다 생각이 복잡해 글이 어렵게 된다고 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이면의 문제까지 생각하기에 자연히 글이 정확하게 된 게 아니냐고 하자 이 대목에서도 김 교수는 “다른 사람이 생각 못했다는 건 건방진 얘기고, 내 스타일이 그래서 그래”라며 다시 스스로를 낮췄다. 그러면서 진짜 이유를 털어놨다.

    “내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 사는데 ‘모순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야. 모순을 너무 의식해 많은 것을 꼼꼼히 다루다보니 그렇게 됐지.”

    그게 무슨 뜻일까.

    “가령 민주주의 얘기할 때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자유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면 무질서의 극치가 되지. 그래서 민주주의라도 무조건 자유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규범과 규율이 필요하지. 모두가 자유만 얘기하면 자유에 따르는 모순이 있어. 그걸 놓치기 쉽지.”

    작금의 정치상황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민주주의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사람 살아가는 데 민주주의로 해결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지. 민주주의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민주주의도 사람 사는 수단의 하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범죄자에 대해서도 어떻게 징벌할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마음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서 그렇게 이면까지 보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고 하자 김 교수는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헤겔은 “셰익스피어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게 되면 상대를 배려하게 되니 복잡하게 되는 거지.”

    그러면서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사례를 들었다.

    “철학 하려면 독일 철학을 해야 하는데, 메를로 퐁티가 2차 대전에 참전해 전선 나가 보니 좋아하는 철학자들 가운데 독일인이 많고 보편적 이성으로 생각해도 사람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그런 고민을 길게 쓴 에세이들이 많지.”

    인간사는 이처럼 복잡한데 요즘 사람들은 너무 단선적으로 본다고 했다.

    “일본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은 동양평화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일본의 잘못도 의식하고 있는 학자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한국 여론조사에서 일본열도가 바다에 빠지면 좋겠다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한 면밖에 못 보고 있다는 것을 영국과 비교해 설명했다.

    “영국은 기록이 너무 많아 간수하지 못할 정도다. 그런 영국 역사에 대왕은 8세기 알프레드 단 한 명뿐이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대왕이 아주 많은데 대왕에겐 잘못을 지적할 수가 없지 않나. 너무 좋은 것만 보니 단순한 거지. 그런 속에서 여러 가지 근본을 생각하려니 복잡해져. 삶은 모순 천지야.”

    최근 정치 상황은 복잡한 세상을 생각하지 않고 모두가 한쪽만을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혜 있더라도 강요는 말아야 김 교수는 올해 희수(喜壽·77세)를 맞았다. 그에게 인생의 의미를 물었다.

    “토마스 하디는 인생에서 배우는 게 많지만 인생은 너무나 짧아(내가 죽어버리면) 다 배워봤자 쓸데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이 먹는 게 어떤 면에선 좋다. 우선 성질이 덜 급해지고 느긋해진다. 여러 사정을 보니 남을 배려하게 된다.”

    다만 가정이건 사회에서건 나이 많아 얻은 지혜를 억압적으로 강요하지 말라고 칸트의 자유의지로 설명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유를 추구할 권리를 갖고 태어났으나 도덕은 절대적으로 그렇게 이뤄질 수 없다. 이 두 가지 모순을 합친 게 칸트의 도덕률이다. 하고 싶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절대적 자유를 (스스로) 통제해 도덕규범을 지키며 사는 게 보람 있는 길이라는 걸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이 자기각성이 천천히 이뤄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걸 급하게 시키니 문제가 생긴다. 데모 많이 하는 것도 그렇다. 교양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사회에서도 가르치고 …. 학교가 너무 몰아붙이려고 해선 안 된다.”

    그는 우리 사회가 기다리지 않고 또 너무 약게만 한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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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 이념의 가치 강조 “모든 것을 전략적으로 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 대해 용미(用美)를 하라는데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이용하라고 하나.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용한다고 하지 말고 보편적 이념에 호소해 그들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보편적 이념의 중요성은 김우창의 삶을 관통하는 가치이자, 그가 한국의 인문주의를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도구이기도 하다.

    “중국 문명이 세계적인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런 걸 공부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보람 있게 사는 데 중요한데 그런 것이 사라진 게 오늘날이다.”

    너무 전략에만 집착하는데 남북관계에서도 보편적 가치로 대하라고 했다.

    “이북이 도발했을 때 현실적으로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민족의 이름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들에게 무조건 나쁘다고 하지 말고 공동의 이상, 민족의 장래를 얘기하면서 좋은 나라 만들자고 호소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서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그는 일본이나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동양평화 위해 노력하자고 호소하라. 일본과 한국의 평화적 관계를 이어가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얘기하라. 우리가 과거 중국에 형식적으로 종속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이 강요한 게 아니라 보편적 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이 세력 확장하며 미국과 맞선다고 하는데 중국의 전통 이념에 호소하라.”

    패권주의를 비판만 하지 말고 보편적 가치로 설득하라는 것이다. 다만 이런 얘기를 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인간사 이해하려면 희랍비극 읽어야 거장에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을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물었다.

    “보통 사람들은 서 있는 자리에서 방향감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해온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서양과 동양을 비교할 때 서양엔 있는데 동양엔 없는 게 있다. 바로 ‘비극’이다. 비극은 두 개의 정당성이 부딪치기 때문에 생긴다. 가령 충과 효가 부딪칠 수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 상을 당해 관복 벗어놓고 집으로 간 것도 그렇다. 어떤 공무원이 아버지 치료하려고 돈을 훔쳤다면 또 어쩔 것인가. 우리 문학엔 이런 게 없다. 우리의 삶은 서로 다른 가치가 부딪쳐 사건이 일어날 때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사람 사는데 일어나는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선택은 해야 한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희랍비극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 사는데 생길 수 있는 복합적인 것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 다만 적절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진영논리를 떠나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보편성은, 큰 나라가 되는 길이다. 대국은 안 돼도 적어도 모든 나라가 부러워할 나라가 될 수 있다. 돈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으로 내용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갑을 택시에 두고 내렸을 때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돌려주는 나라가 일본이라고 한다. 이런 게 일반화 되어야 한다.”

    그는 보편적인 것을 얘기할 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삶의 현실은 늘 특수하고 그 안에서 문제 해결이 필요하기에 참다운 보편성은 움직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것은 없다. 그걸로 가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이 때 보편적인 것이라고 무조건 따르라면 독재다. 다수가 좋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보편은 아니다. 불교에서 살생하지 말라는데 그러면 굶어죽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생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고기를 먹더라도 소를 학대하지 않는다는 것 같은 거다. 유럽에선 매일 소가 일정시간 이상 자유롭게 돌아다닐 시간을 주도록 했다. ‘살생유택’은 적이면 죽여도 된다는 게 아니라 ‘고민’을 하라는 것이다.”

    진짜 필요하면 강렬히 원하라 그는 고민하는 삶을 실천한다. 맛있고 배부른 것에 연연하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 예전 선비 같은 삶을 산다. 그 설명이 재미있다.

    “옆집에서 벤츠를 사면 나는 돈 벌었다고 한다. 나는 그 돈 쓰지 않으니 번 것 아닌가. (나에겐) 그쪽 필요가 안 생겼다. 내가 관심 갖고 한 게 소유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것이니 이 정도면 만족한다.”

    보통 사람들의 욕심을 비우는 것, 이것이 힐링의 한 방법 같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은 많지 않다. 부자라고 하루에 다섯 여섯 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끼니마다 맛있는 것만 찾으면 얼마 안 가 맛이 없어진다. 김치에 밥 한 공기 먹을 때도 있어야 그게 맛있어진다. 그래서 우리 삶은 균형이 필요하다. 돈보다 진짜 무엇이 좋으냐를 생각하라. 진짜 루이비통이 좋다면 밥을 굶어서라도 사라. 그렇지 않고 남들이 좋다니 그러면 안 된다. 자기 판단이 아니라 동네 사람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70년대 인도의 유명 시인 라자 라오를 하와이의 문학 모임에서 만난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앙드레 지드나 헤르만 헤세 등 유명한 문인들을 모두 만났다며 자기가 원해서 안 된 게 없다고 했다. 그게 말이 되나. 그런데 그는 얼마나 강하게 원했느냐, 얼마나 오랫동안 원했느냐에 따라 그게 된다고 했다.”

    진짜로 남이 아닌 자기가 원한 것이라면 그만큼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남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자기 의지가 아니라 공동체에 기대어 살려는 사람들 천지라서 그렇다.

    “그렇게 공동체에 의존하는데 우리는 정작 큰 공동체를 만들지는 못했다. 공동체가 다 깨졌다. 사람이 유명하다는 게 뭐냐. 자기 동네서 유명할 수도 있고 집안에서 유명할 수도 있고 한국에서 유명할 수도 있다. 유명해지는 터전이 다를 뿐 우리 모두는 다 유명하다. 그 중에서 우선 동네 공동체에서 유명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동네 공동체가 다 깨졌다. 어느 반에서 10년 동안 이사 안한 사람 손들어 보라니 하나도 없었다. 너무 이사를 많이 해 이웃이 없다. 실러(독일 작가이자 철학자)는 밖에 나가면 친구와 공동체가 되고 집에 들어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정치권 새 정당 필요한 상황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정치상황에 대해 그는 “새 정당을 조직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비판적이다.

    “국정원이 잘못한 것을 맞지만 그렇다고 쓰러뜨려서는 곤란하다. 법으로 제한하는 등 구체적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 정치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민주가 무너지고 박정희 독재로 간다는데 지나친 과장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가 아니라 민생이다. 국민이 따뜻하게 쉴 주택, 안정적으로 다닐 직장 등 구체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살만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스위스에서 최고최저 임금격차를 12대 1로 제한하자는 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던 예를 들면서 사회적 안정을 위한 분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가들은 모든 사람이 잘 살게 하자는 구호를 외치기보다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려면 세금을 올려야 하고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모두 경제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한 ‘수단’을 논의해야 한다. 경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몇 년 걸려서 그런 조건을 맞출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고소득층의 일부 양보도 필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고액 연봉자가 그 돈을 가져다 다 쓸 수 없는 게 분명하니 일정 수준 상한을 정하고 적어도 수익의 상당부분을 기업에서 유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려면 완전한 평등은 안 되지만 비교적 평등은 돼야 한다. 십 수 년 전 남아공에 갔을 때 어느 농촌의 좋은 주택에 가서 묵었는데 경비병이 있고 전기철망까지 쳐놨다. 수도 프리토리아에선 시장이 점심을 냈는데 연회장 입구에 총을 차고 지키더라. 만델라 대통령 때다. 버스에서 내리지도 말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면서 정당들이 적당한 타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에선 최근 기민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에 합의했다. 기민당은 중도우파, 사민당은 중도좌파다. 여러 타협안이 나왔는데 사민당의 최소임금제를 받아들여 기만당의 정체성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다. 사민당은 기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세금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아울러 정치인들에 대해선 예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말 갖고 싸운 게 너무 많다. 쓸데없이 싸우지 마라. 이것은 규칙이 되어야 한다. 옛 선조들은 스승에게 배운 사람이 각료가 돼 교자를 타고 가더라도 스승이 지나가면 내려서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그렇게 스승을 높였다. 왕자를 교육시킬 땐 왕자의 권위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행사를 두 번 했다. 왕자가 스승에 예를 취하고 또 스승이 왕자에게 예를 취했다.”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얼마나 부족한지 따져보고 예를 취한다는 게 말이 되나. 설령 부족하더라도 예로 대해야 한다.”

    자기 주관대로 살 사회적 틀 필요 그가 앞으로 어떤 것을 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이제 했던 것을 정리해야지,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주택을 아파트로 옮기고 책도 정리해야 한다. 쿳시의 소설에 한 노인이 나오는데 다 정리하고 가방 하나 들고 화장장 앞에 서 있고 싶다고 했다.”

    (사실 김 교수는 지금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생로병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 깨졌다고 아쉬워한다.

    “몇 년 전 영국의 전 계관시인 앤드류 모션이 왔다. 그가 자신의 가문은 오래도록 케임브리지 대학 북쪽에서 양조장 하며 살았는데 자기가 처음으로 대학에 갔다며 자기 선조들은 모두 교회 마당에 묻혔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가. 결혼식도 어렵고 죽어서 묻히기도 너무 어렵다.”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장소도 없지만 사람들이 허영에 들떠서 그렇다며 “자기 주관으로 사는 사회적 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게 다 정치의 중요한 프로그램이란 설명이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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