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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빈 카이스트 공과대학장 & 김무환 포스텍 기획처장…월드베스트의 덕목은 기술보다 윤리다
입력 : 2013.07.15 09: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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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박승빈 카이스트 공과대학장, (오른쪽)김무환 포스텍 기획처장
세계 톱? MIT나 스탠퍼드의 3분의 1 수준일 뿐이다 한국의 공과대학은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학교를 라이벌로 봐도 무리가 없는 건가 김무환 기획처장(이하 김)-카이스트만 괜찮다면 우리야 고마운 일이다.(웃음) 박승빈 학장(이하 박)-학과장 시절에 교수 임용을 위해서 데이터를 모으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를 뽑기 위해 과연 어떤 분들이 국내외 교수로 임용되셨는지 나름 시스템에 적용해보니 톱에 오른 분이 포스텍 출신이었다. 실제로 기업에서 포스텍 출신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김-고마운 말씀이다. 사실 우린 규모가 굉장히 작다. 어느 학교와도 1:1로 비교한다는 게 어렵지. 여러 랭킹에서 근근이 따라가는 건 교수 1인당 학생 수 정도가 아닐지. 박-분모(교수)와 분자(학생) 게임인데, 카이스트의 규모가 커지면서 서포팅 스태프 수준의 교수들을 많이 임용했다. 그러다 보니 분모가 커졌다. 작게 했다면 업적은 커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좋은 방향이 아니다. 분자를 키워야지. 물론 포스텍이 의도적이라는 건 아니다.(웃음) 김-말씀대로 우린 분자가 작은데 학생 1인당 학교 예산이나 교육비 투자는 MIT, 스탠퍼드와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이다. 카이스트나 포스텍이 세계 톱 수준이라고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 1인당 투자되는 비용이 너무 적다. 과연 MIT나 스탠퍼드 학생들과 비교할 만한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의문이다. 카이스트는 교육부 산하가 아니라 과학기술부(설립 당시 과학기술처) 산하에서 태동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포스텍은 교육부 산하지만 완전히 독립된 특수대학이 됐다. 포스텍은 설립이사장인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칼텍 같은 연구중심대학으로 키우는 게 꿈이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김-칼텍이 포스텍의 롤모델이다. 비교해보면 학생이나 교수의 수, 그 외에 모든 부분의 규모가 비슷하다. 예산 구조도 양쪽이 연구비가 50%, 재단 지원이 20%, 등록금 비율이 10% 미만이다. 벤처의 근간은 신뢰다박승빈 카이스트공대학장
박-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창업하려는 학생들이 많진 않은데 물론 분야마다 다르다. 전산, 전기 분야는 벤처창업에 무게를 두고 있고 전통적인 공학은 벤처보다 기존 산업체에 취직하는 걸 목표로 한다. 일례로 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치고 벤처창업에 성공한 김철환 박사가 최근 100억원을 출연해 대전에 창업관련 재단을 열었다. 어떤 면에선 그런 선배들이 후배들의 좋은 귀감이 되지 않을까. 포스텍은 어떤가. 아무래도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니 벤처창업이 많진 않을 것 같은데 김-기본적으로 수는 적은데 벤처창업으로 성공한, 또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는 졸업생들이 상당수 있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결국 교육 현장에서 벤처창업을 얼마나 강조하느냐의 문제인데,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기획과에선 수업시간에 아예 벤처에 대한 강의를 한다. 선배들이 와서 자기 케이스를 이야기하고 변호사들이 와서 법적인 부분을 서포트 한다. 스스로 토픽을 발굴해서 진행하면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리뷰해서 시상도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외국대학의 벤처강의를 벤치마킹하다보면 그들은 만약 벤처창업이 실패했을 때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를 이야기한다. 특히 윤리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우린 아직 그런 면이 약하다. 학생들 입장에선 졸업 후 안전한 길이 눈에 보이는데, 창업하고 도전하는 건 이들에게 일종의 모험 아닌가. 실패했을 때 인생에 큰 타격이 되지 않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학교 내 기술지주회사와 학생들의 연계가 활발하지 않은가 김-포스텍은 2012년에 기술지주회사인 포스텍 홀딩스를 설립했다. 아직 1년이 채 안됐기 때문에 성과가 구체적이진 않지만 학생들의 아이템으로 진행되는 게 몇 있다. 사실 과거 카이스트 출신 벤처1세대의 공과가 분명히 있다. 실패도 했지만 벤처의 싹을 틔웠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어떤가 박-개인적으로 그분들을 잘 알고 있다. 나보다 1년 선배들인데, 당시는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지. 많은 분들이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하고 미국의 창업, 그런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실제 창업해 회사를 운영하고 키워서 다른 회사에 인수시키는 과정들이 한국에선 전무했었다. 그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주어진 상황에서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 개인적으로 2004년 카이스트에 스탠퍼드 출신 로버트 러플린 총장이 왔을 때 잘한 일 중 하나가 비즈니스 이코미노미스트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대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자는 것인데, 서울에도 카이스트 경영대학이 있지만 이건 대전에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자 학생들이 부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그 과정을 졸업한 학생들 중 벤처에 도전한 학생들이 꽤 있다. 성과는 따져봐야겠지만 최소한 지난 8년간 카이스트 공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창업이란 꿈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김-벤처창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비즈니스 스쿨도 중요하지만 사회활동도 중요하다. 경영, 경제, 법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과 어울리고 토론해야 하는데, 카이스트나 포스텍에 진학하는 친구들은 대부분이 이과다. 더구나 과학고 출신이면 그런 친구들이 전무하지. 이건 심각한 문제다. 벤처창업을 했을 때도 사회적 네트워크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때 문과나 이과를 나누지 말고 수학이나 과학 등의 과목은 시간 배정을 달리해 교육하는 건 어떨까. 스탠퍼드를 예로 들면 비즈니스 스쿨에서 학생들이 조를 편성해 진행한 미션 중 마지막까지 남은 아이템은 바로 시장에 나가 사업으로 연결된다던데 박-외형적으로 보면 우리도 그런 메커니즘이 이어져야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윤활유가 바로 신뢰다. 투자자나 기술을 가진 이, 중간역할을 하는 이들이 신뢰 아래 톱니바퀴를 돌린다. 우린 아직 기술을 가진 이와 투자자 사이에 그런 점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박-과연 우리나라 공과대학들이 어떤 교육을 했고 어떤 학생들을 배출했고 그 학생들이 산업화와 소득 2만달러 시대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고 물으면 정확히 ‘이거다’라고 얘기할 게 없다. 하지만 한 가지, 교육과 정부, 민간(기업)이 서로 합심해 완성한 작품이 공과대학이다. 과거에는 물건을 싸게 만들어 팔면 되는 아주 심플한 게임을 했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지났다. 결국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교육과 정부, 민간이 어떤 메커니즘을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가겠다는 꿈을 꾸는 한 중소기업 활성화는 요원한 얘기다. 엔지니어가 돼 박사학위를 받고 벤처창업에 도전한 후 만약 실패한다면 그때 취직해도 늦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앞서야 한다. 공대와 자연과학대의 명백한 차이는 창업이나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프로세스, 사회 변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게 공대가 가야할 길이다. 한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엔지니어들의 새로운 시도와 기업가 정신 아닌가. 새로운 싹을 만들지 않으면 기존 질서의 고착화가 심화될 것이다. 그러면 저성장이자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고 사회적 갈등은 치유 불가능해질 것이다김무환 포스텍기획처장
공학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구성은 어떤가. 카이스트는 과학고 2년차 학생들이 많이 입학한다고 알고 있다. 때문에 일반고 학생들의 초기 적응이 힘들다고 하던데 박-일반고 학생들이 10~20%,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한 10% 되는데, 서로의 적응을 위해서 1학년 때 클래스를 만들어 섞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들의 고민이 많지.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김-우린 일반고가 75%, 과학고가 25%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입학정원 320명을 모두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데, 지금 얼마나 알고 있느냐보다 배운 걸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느냐를 본다. 100개를 배워서 80개를 알고 있는 것보다 80개를 배워서 70개를 알고 있는 학생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신입생 때는 과학고 학생들의 학부성적이 일반고보다 훨씬 높고 졸업할 시점에는 같거나 오히려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높다. 보통 2000여명의 학생들이 지원해서 900~1000명을 면접하는데, 내 생각엔 학생 선발에 있어 부(富), 지역, 남녀비율을 실제적으로 고려해 학생들이 축소된 한국사회를 그대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박-그 점에 동의한다. 사회와 다를 게 없는 구성 속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서남표 전 총장 시절에 한동안 카이스트가 논란의 대상이었는데, 강성모 총장 부임 이후에 분위기는 어떠한가 박-일단은 힐링의 과정에 있다. 현재 한국의 메이저 대학 중에 외국대학 출신 총장이 부임한 건 우리와 포스텍이 처음 아닌가 싶다. 일례지만 카이스트는 늘 실험학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김-처음엔 굉장히 어려운, 그래서 카이스트가 유탄도 많이 맞았지만 앞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변하지 않을까. 박-그래서 실험학교다.(웃음) 그러고 보니 포스텍은 카이스트가 겪은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에서 비켜 서 있는 것 같다 김-그렇진 않고 사건이 있어 왔지. 하지만 최근 5년간은 그런 일이 없었다. 박-사실 카이스트의 비극적인 일들, 학생들의 자살 문제를 학교가 어떻게 완전히 해결하겠나. 당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더니 자살의 원인은 본인에게 있으나 어느 순간 행동하게 하는 건 주변 상황이라고…. 생각해보면 그 주변인이 학교가 아닐까. 큰 숙제이자 책임이다. 더구나 대전 캠퍼스는 대부분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학교의 책임이 더 크다. 김-그 문제에 대해선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미국이나 일본의 공과대학을 보면 외국인 학생들이 비교적 많다. 생각해보면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공대에 가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학이나 과학이 생각보다 골치 아프거든. 중국이나 인도는 공대에 가려고 아우성이지 않나. 세계적으로 한다하는 소릴 듣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진도가 안 나간다. 비단 카이스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와 교육을 위해 계획한 일본의 도시 쓰쿠바도 자살률이 엄청나다. 어렵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쩌면 공과대학 진학률을 높일 수 있는 무언가가 되겠지. 공대를 선택하는 이들에겐 정부의 지원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박-그런 인센티브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의 몫이 아닐까. 김기업을 위해 공대생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국가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분명 있다. 박-국가가 공학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인센티브를 주기보다 공학하는 사람들에게 수입을 보장하는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김-물론 좋은 말씀인데, 수입은 니즈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 결국 대학에서 어떤 인재를 키우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겠지.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 시스템에 대한 사회의 격려가 필요하다.
국책연구소를 없애는 게 아니라 정부의 역할을 줄이자는 것인데 박-그렇게 되면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이 교수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그게 문화적인 한계인데, 연구원들이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평가가 뒤따를 것이고 일자리를 잃는다는 위기감도 있는 것이지. 김-그런 아이디어가 미국을 보고 나왔던 것 같은데, 결국 화두는 연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느냐다. 그러려면 두 가지 팩트가 중요하다. 우선 조직이 안정돼야지. 우리나라는 참으로 국책연구소를 자주 흔든다. 또 하나는 조직은 놔두면 고착화되고 이익 집단화되기 마련이다. 그걸 막아야지. 미국은 마치 대학이 연구소를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거든. 정부가 각 대학의 제안을 받는다. 대학이 소장을 비롯해 20~30명 정도의 스태프, 철저한 인프라 등 운영방안을 제안하면 정부는 그중에서 선택한다. 5~10년 동안의 계약기간 중 관리가 잘못됐다 싶으면 아예 빼버린다. 이러한 방식을 국내에 적용하려면 대학의 철저한 준비를 체크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면 안 되겠지.
박-우린 대학이 연구소를 관리하는 것처럼 보는 게 문제다. 대학평가에 목매는 건 가치 없는 소모전일 뿐이다
박-어쨌든 QS평가가 나오게 된 계기가 영국의 대학들이 자신들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 만든 건데 모든 평가는 주관적이다. 평가에 반대하진 않는데 대학이 총력전을 펴는 건 분명히 반대한다. 김-동의한다. 연연하고 경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두 대학은 비교적 정책적인 혜택을 받지 않았나. 포스텍도 당시 공기업이던 포스코가 설립 주체인데, 그럼에도 제도 개선 등 앞으로 바람이 있을 것 같다 김-대학의 입장에서 중요한 건 규제보다는 정책의 일관성이다. 박사 한 명을 배출하려면 입학부터 졸업까지 10년이 걸린다. 오래도록 투자해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정책이 일관되지 못하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박-정부의 정책이나 방향에 학교가 어느 정도 맞춰야겠지. 그 부분은 이견이 없는데, 카이스트의 특수성 때문에 불리한 면도 있다. 예를 들어 모든 대학이 카이스트만 제외할 때가 있거든.(웃음) 그런 면에서 카이스트는 달라야 한다는 게 중요한 미션 중 하나다. 카이스트(KAIST;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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