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악인 엄홍길 vs 에두아르도 채드윅 에라주리즈 사장…최고봉 등정과 최고 와인 제조, 도전은 같죠

    입력 : 2013.07.15 09: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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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년보다 일찍 닥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8일, 세계적 산악인인 엄홍길 대장과 칠레의 간판급 와이너리 에라주리즈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사장이 청계산을 올랐다. 2004년 베를린 테스팅으로 세계 와인평론가들을 깜짝 놀라게 한 채드윅 사장은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2m)를 등정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세계의 고봉을 두루 오른 엄 대장과 세계 정상급 와인을 만들어낸 채드윅 사장은 함께 땀을 흘리며 정상을 추구하는 이들 특유의 우정을 나눴다.

    그들에게 정상 도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엄 대장은 산행을 하면서 4전5기 도전 끝에 안나푸르나를 올랐는데 네 번째 시도 때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다가 추락해 다리가 부러졌다. 부목을 대고 동여맨 채 가까스로 내려왔다. 낭가파르바트를 오를 때는 동상에 걸려 발가락 하나를 잘라내야 했다.”

    정상에 도전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채드윅 사장도 아콩카과 등정 경험을 얘기하며 맞장구를 쳤다.

    “아콩카과에 오를 때 영국의 산악인이 사고로 숨진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어코 아콩카과를 올라 세계 정상의 와인으로 인정받은 우리 와인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 다음 아콩카과 정상에서부터 쉬지 않고 와이너리까지 하산해 ‘돈 막시미아노’를 마셨다. 그걸로 고소증을 풀었다.”

    채드윅 사장은 당시 정상에서 꺼낸 돈 막시미아노는 아콩카과 밸리의 가장 높은 포도밭에서 딴 최상의 포도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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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로 가치있는 것을 얻으려면 엄홍길 대장에게 그런 어려움을 견디며 정상에 도전하는 의미를 물었다.

    “나에게 정상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자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 정상은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도전을 위해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정상은 아무나 가는 게 아니다. 정상에 가기 위해선 남들이 하기 어려운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그 정도로 엄청난 각오가 돼 있어야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 잘났다지만, 또 우주선 타고 달나라에 가는 시대라지만 자연 앞에선 아주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자연의 재앙 앞에선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폭염과 폭서, 지진과 해일 등이 닥칠 때를 생각해 봐라. 그 위대한 대자연에 인간이 도전하는 것은 정상에 가는 것 뿐 아니라 어떤 것이든 그 만한 마음의 각오를 해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최근 부산산악연맹의 서성호 대원이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정한 뒤 하산하면서까지 무산소를 고집하다 사망한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성호가 자신을 희생한 것에 대해선 그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도전했는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성호는 무산소 등정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고 최상의 도전을 한 것이다.”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을 얻으려면 그럴 만한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 16좌를 오른 엄 대장은 지금 말 그대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채드윅 사장이 다음 계획을 묻자 그는 “히말라야에 16개의 (초등)학교를 짓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답했다. 자기가 오른 8000m급 봉우리 숫자만큼 히말라야의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게 그의 새로운 목표가 된 셈이다.

    “이미 히말라야에 팡보체 초등학교 등 4개 초등학교를 지었다. 내년 3~4월에 5, 6번째 학교를 준공할 예정이며 내년 하반기에 7, 8번째 학교를 준공할 계획이다.”

    엄 대장이 학교를 오픈할 때 아이들과 함께 가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다고 하자 채드윅 사장도 딸과 함께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 채드윅 사장은 이번 방한에 딸 마리아 마그달레나(22세)를 데리고 와 함께 청계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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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도전은 잠재력 최대한 끌어내는 것 채드윅 사장에게 정상 도전의 의미를 물었다.

    “나에게 있어서 정상 도전은 내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내 열망과 확신을 표출해 평소보다 훨씬 더 잘해서 도전할 목표를 향한 나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평소에 하는 수준이 아니라 잠재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감히 생각도 못했던 성과를 추구하는 게 도전이라는 얘기다. 베를린 테스팅은 그런 맥락에서 최고의 도전이었던 셈이다. 채드윅 사장은 많은 쓴 맛을 본 끝에 그런 생각을 해냈다고 밝혔다.

    “베를린 테스팅은 전적으로 내 아이디어다. 수년 동안 좌절을 겪은 뒤 얻은 결론이다. 세계의 와인 비평가들은 우리 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단지 칠레 와인이기에, 또 보르도 특급 와인이나 슈퍼 투스칸이 갖고 있는 그런 역사적 명망이나 내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라인드 테스팅을 하자 (세계적 평론가들은) 각 와인의 평가나 등급에 영향을 줄 어떤 선입견도 없이 와인을 맞았다. 첫 번째 베를린 테스팅에서 우리가 최고 등급을 받자 그제야 이들은 자신들이 톱 보르도 와인보다 우리 와인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을 인식했고 우리 와인의 완전한 품질과 잠재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과 세계 최고봉에 오르려고 도전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두 가지 도전 모두 여러 가지 유사점이 있다. 두 도전 모두가 스스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명쾌한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굳건한 팀워크를 갖춰야 한다. 팀에 참가하는 구성원 개개인이 세계적 성공을 위한 핵심요원이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세계 최고의 와인을 내기까지는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와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두 최고의 팀워크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을 만들려면 우선 매우 헌신적인 포도 재배자가 있어야 한다. 그가 최상의 포도를 수확할 수 있게 포도원을 잘 돌봐야 한다. 그렇게 생산한 포도를 아름다운 와인으로 만들어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예술적인 와인메이커도 필요하다. 나아가 마케팅과 커머셜팀은 그렇게 생산한 와인을 적합한 시장에 적절한 방법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 팀워크의 모든 단계가 성공에 이르는데 필수적 요소이다.”

    채드윅 사장은 세계 최고봉 도전이나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일이나 오랜 기간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양자 모두 계획을 잘 세워야 하며 인내와 열정을 가지고 긴 여정을 견뎌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거기에 덧붙여 대자연이 하는 위대한 말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와인을 만들려면 (포도를 심을 밭이) 위대한 떼루아인지를 먼저 가릴 수 있어야 한다. 떼루아는 세계 수준의 독특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데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엄 대장이 다리가 부러지고 발가락을 잃으면서 세계 최고봉을 올랐듯 채드윅 사장도 세계 최고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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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족을 떠나 전 세계를 돌면서 끝없이 긴 여행을 하고 있다. (긴 여행을 마친 뒤) 돌아가면 너무나 사랑스런 네 딸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주지 못한 정을 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에게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철학을 물었다.

    “팀워크로 와인을 만들기에 우리는 각 떼루아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와인의 스타일은 우리가 키운 포도의 순수함과 복합적인 맛, 미네랄 특유의 맛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 산도와 과일의 집중도가 최적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면서 동시에 잘 숙성된 비단처럼 매끈한 느낌의 탄닌을 표현하고 그러면서도 최고로 우아하고 섬세한 와인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날 엄 대장과 함께 한 산행에 대해 채드윅 사장은 “(세계적 산악인과) 정상 등정의 기쁨을 공유했기에 산행이 더욱 기뻤다. 날씨는 더웠지만 기분은 아주 좋다”고 흡족해하면서 기회가 되면 엄 대장과 함께 아콩카과를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비추기도 했다. 엄 대장이 10~11월경 촬영 차 안데스를 찾을 예정이라고 하자 채드윅 회장은 파티를 열어주겠다며 꼭 에라주리즈에 들려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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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라주리즈를 세계에 알린 베를린 테스팅 두아르도 채드윅 사장에겐 2004년은 잊을 수 없는 해이다. 그해 1월 ‘파리의 심판’에 버금가는 와인업계 대사건인 ‘베를린 테스팅’으로 무명의 칠레 와인을 일약 세계적 스타 와인 반열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베를린 리츠 칼튼 호텔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스팅에 에라주리즈는 아이콘 와인인 비네도 채드윅과 세냐, 돈 막시미아노 등을 내놓고 샤또 라피트 로칠드와 샤또 마고, 샤또 라투르 등 보르도 특급와인과 슈퍼 투스칸 등 36종의 세계적 와인과 맛을 비교하도록 했다. 세계적 와인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에라주리즈는 1, 2위를 휩쓸었다. 이 사건으로 에라주리즈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물론이고 칠레 와인 전체가 세계적 평론가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그러나 채드윅 사장은 한 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매년 세계를 돌며 같은 형태의 ‘베를린 테스팅’을 계속하고 있다. 에라주리즈의 명성을 확고히 굳히려는 전략이다.

    지난 6월 7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스팅을 통해 에라주리즈는 다시 한 번 세계 최고급 와인임을 입증했다. 60여명의 와인업계 종사자들이 12종의 와인을 대상으로 벌인 이날 시음회에선 돈 막시미아노 2009 빈티지가 최고의 와인으로 꼽혔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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