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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스타 CEO]⑩ 창청(長城)자동차 웨이젠쥔(魏建軍) 회장…픽업트럭·SUV 틈새 집중투자 중국 자동차산업 자존심 지켰죠
입력 : 2013.07.15 09: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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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국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현지 토종 업체가 있다. 바로 창청(長城)자동차다.
SUV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창청자동차는 지난 2011년 중국시장 판매순위 13위로 뛰어오르더니 지난해는 11위, 올해 들어서는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창청자동차보다 순위가 앞서는 기업은 상하이폭스바겐, 이치폭스바겐, 상하이GM, 베이징현대, 둥펑닛산, 창안포드 등 해외 합작사뿐이다. 토종 브랜드로는 창청이 단연 ‘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웨이 회장의 사업은 지난 1990년 26세의 나이에 허베이성 바오딩에 있는 자동차 튜닝 업체를 인수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창청자동차의 직원 수는 60명이었다. 그는 200만위안(1억8000만원)의 부채 때문에 파산 위기에 몰린 회사를 인수한 뒤 본격적으로 자동차 제조를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웨이 회장은 매주 목요일 아침 자동차 기술자들을 전부 모아놓고 자동차를 해체해가면서 내부 구조를 연구했다. 이때 시작된 아침 연구회는 지금도 매주 한 차례씩 회사 간부와 엔지니어들이 참여하는 ‘자동차 품질 평가회’로 이어지고 있다.
창청자동차는 각고의 노력 끝에 첫 제품으로 1995년 픽업트럭 생산에 성공했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승용차 생산에 주력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정이었다. 그는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등으로 시찰을 나갔을 때 픽업트럭이 보편화돼 있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미 수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매달리고 있는 승용차보다는 아직 다른 회사들이 관심을 갖지 못한 픽업트럭을 생산하면 더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선제적인 판단이고 결정이었다.
훗날 웨이 회장은 당시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해외로 시찰을 나갔을 때 미국과 유럽, 동남아 등에서는 픽업트럭이 많이 사용되는 것을 봤습니다. 차 모양도 세련됐고요. 하지만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전부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었죠. 주력이 아닌 주변 제품까지 염두에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저는 픽업 시장이 잠재력이 아주 큰 시장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대당 10만위안(1800만원)대로 품질 좋은 픽업트럭을 생산한다면 중국 시장에서 무조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예컨대 당시 중국 최대 픽업트럭 생산업체로는 톈예자동차가 있었지만 오래된 국유기업이던 탓에 시스템이 낙후됐고 원가도 비쌌다. 다른 생산업체인 칭링자동차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사로 부품이 국산화되지 않아 가격이 비쌌다. 창청은 두 기업들보다 낮은 가격에 품질이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품질대비 가격을 뜻하는 ‘싱자비(性價比)’가 우수한 제품을 공급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웨이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그렇게 해서 출시된 픽업트럭은 1998년 1위를 시작으로 2006년까지 8년 연속으로 줄곧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당시를 두고 웨이 회장은 “중국시장에서 픽업트럭이라는 새로운 수요를 창청자동차가 창출했었다”며 “늘 변화를 추구하는 창청 픽업트럭의 신선함이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잘 나가던 창청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이 시작됐다. 픽업트럭이 주로 농촌지역에서 잘 판매되고 있었지만 대도시에서는 인기가 시들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는 픽업트럭의 주행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가 발달하고 구매력이 강한 도시에서는 창청자동차가 제몫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웨이 회장은 다시 새로운 결단을 내렸다. 픽업트럭만으로는 기업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고 지난 2000년 픽업트럭보다 품질이 좋고 가격이 비싼 SUV를 새로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SUV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던 때였지만 중국시장에서 SUV는 여전히 생소한 차량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비밀리에 준비에 들어간 창청은 2002년 6월 드디어 8만위안대의 SUV ‘사이푸’를 출시했다. 창청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대도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당시는 중국에서 판매되는 SUV의 대부분이 대당 20만위안 이상이던 시절이었다. 10만위안 밑으로는 살 수 있는 SUV가 전혀 없었다. 8만위안대로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SUV가 먹힐 것이라는 웨이 회장의 예상은 또 한 번 적중했다. 첫 SUV로 시장에 진입한 지 1년 만에 3만대 판매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창청은 곧이어 성능과 가격이 각기 다른 다양한 SUV를 시장에 출시하면서 승승장구해 2003년 12월에는 민영 자동차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홍콩 증시에 상장하는 쾌거도 이뤘다. 창청은 이후 3년 연속으로 SUV 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돌풍을 일으켰다.
지금은 다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승용차도 생산하고 있는 창청자동차의 성공은 실적이 그대로 대변해 준다. 창청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도보다 43.4% 증가한 431억6000만위안에 달했다. 순이익은 66.1% 늘어난 56억9200만위안을 기록했다. 지난해 수출 규모는 전년대비 28.3% 증가한 9만6465대였다. 올해는 16만대를 수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적 개선 추세는 올해 들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6% 증가한 18만여대에 달했다. 매출액은 127억5500만위안을 기록해 46.1% 증가했다. 순이익은 73.4% 증가한 19억위안에 달했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무려 14.9%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포인트 더 높아졌다. 자동차 업계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수익성이다.
매출 43%, 순익 66% 성장… 아낌없이 투자 이처럼 창청의 수익성이 좋은 것은 상품구조 때문이다. 주력제품으로 수익성이 가장 좋은 H시리즈 SUV 판매가 회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9%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부터 최신 모델인 H6 SUV에 자체 개발한 1.5T 엔진을 장착해 수익성이 더 좋아졌다. 품질에 자신감이 붙다보니 다른 업체들과 달리 가격 인하 마케팅을 하지 않는 것도 수익성 제고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창청자동차는 해외로 가장 많이 수출하는 중국 토종기업이기도 하다. 현재 전 세계 121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창청의 수출 전략은 접근하기 쉬운 곳부터 시작해 점차 힘든 곳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다. 창청은 초기에 중동지역에서 안정적인 수출 기반을 마련한 뒤 아프리카와 중남미, 중앙아시아로 시장을 넓혀나갔다. 지금은 동유럽을 거쳐 유럽과 북미 시장으로도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다.
이란과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베트남, 튀니지 등 10여 개국에서는 CKD(완전분해 현지조립)나 SKD(중간분해 현지조립) 공장을 운영하면서 현지 생산 판매도 하고 있다. 지난해는 불가리아 리텍스모터스와 합작해 완성차 조립공장을 건설하기로 계약했다. 불가리아 북부 도시 로베츠시에 소재한 이 공장은 총 1억2000만달러를 투자해 2015년 최종 완공될 예정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측면에서도 중국 토종 브랜드 중 최고를 자랑한다. 창청이 새로 개발한 디젤엔진 뤼징 2.0T는 유로5 기준을 통과했다. 출력과 토크면에서도 토종 브랜드 중 단연 최고다. 이 엔진을 장착한 H5 SUV의 실내 소음은 45.3데시벨로 측정돼 가솔린 차량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연비도 1500cc 가솔린 자동차 수준까지 내려왔다.
창청자동차의 자체 엔진 개발도 웨이 회장의 결단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창청은 원래 엔진 기술을 해외에서 도입할 생각이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가 실패하면 회사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진 기술을 들여온다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는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해 계속해서 로열티를 부담해야 하는 조건이 맘에 들지 않았다. 웨이 회장은 자동차의 핵심인 엔진 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해외 업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자체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창청자동차는 해외에서 디젤엔진 40여개를 들여와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면서 복잡한 구조를 익혔다. 100일간 밤낮 없는 연구를 지속한 끝에 가장 적합한 설계 수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3년간의 반복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자체 디젤엔진을 개발할 수 있었다. 초기 성능은 국제 수준에 한참 뒤처지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수준의 뤼징 2.0T를 개발하는 등 엔진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웨이 회장은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기업의 위치를 잘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창청의 기업경영 전략은 ‘집중’으로 요약된다. 한정된 자원을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장 유용하게 집중적으로 써야 하는 이유다.
웨이 회장은 “분야를 세분화한 뒤 자신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하면서 부단하게 공을 들이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창청자동차는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기업이 됐다. 중국 내 수많은 기업들이 ‘창청모델’을 연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전략적으로 생산 제품군을 단순화하면서 대신에 연구개발(R&D)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아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창청의 장점은 많은 중국 기업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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