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셰프가 우리 그릇 마니아죠…

    입력 : 2013.06.07 14:37:10

  • 사진설명
    미슐랭 쓰리스타 셰프인 장-조지 반거리크턴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나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초청을 받을 만큼 손에 꼽히는 뉴욕 최고의 요리사다. 프랑스 알자스 출신인 그는 29세 때 뉴욕타임즈 최고 셰프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솜씨를 자랑했고 지금은 맨해튼 트럼프 호텔 레스토랑을 비롯해 세계 유명 도시에 20여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지난 2011년 인사동의 이도갤러리를 찾아 그릇을 잔뜩 사갔다. 그 그릇들은 그해 방영된 미국 공영방송 PBS의 18부작 한식 프로그램인 <김치 크로니클>에 선보였다. 세계 최고 셰프의 눈에 들었기에 엄청 화려할 것으로 기대했던 이도의 그릇들은 의외로 수수했다. 화사한 서구의 그릇과 거리가 먼 것은 물론이고 빛깔이 선명한 조선백자나 고려청자와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오히려 은은한 분청에 가까웠다. 게다가 정교한 원이나 사각의 매끄러운 모양이 아니라 약간은 일그러진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최고의 셰프는 왜 이 그릇에 한국 음식을 담아 미국 시청자들에게 소개했을까. 의문은 영상을 보니 풀렸다. 이도의 그릇에 담긴 음식들은 생생하게 살아났다. 누가 보더라도 입맛이 돌 것 같았다.

    음식 위한 그릇 만든 고집이 통해 그 그릇을 만든 이윤신 ㈜이윤신의 이도 대표의 그릇 철학이 궁금했다.

    “요리는 요리만으로 충분할 수도 완벽할 수도 없다. 반드시 그릇 위에서만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빛이 난다. 나는 자장면도 피자도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먹는다. 간편하게 조리한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나는 그릇을 만들 때 어떤 음식과 조화를 이룰지 생각하고 디자인한다.”

    그릇 자체를 위한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길 음식을 위한 그릇을 만든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그릇의 생김새가 일그러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 그릇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다. 수작업의 특징은 손맛이다. 흙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성질을 살리고 손맛을 살린 작품들이다. 일그러짐이 여백의 미를 그릇의 형태에 담고 있다. 일부러 일그러뜨린 게 내 그릇의 콘셉이다. 의도된 일그러짐이 여백과 여유를 줬다.”

    그는 그릇은 음식을 빛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자기나 청자 백자는 음식이 담겼을 때 그릇의 모습을 생각하기보다는 그릇 자체가 화려하게 만들었다. 특히 해외 명품 그릇들은 그릇에 화려함을 표현하고 있다. 기하학적 문양을 넣거나 화려한 꽃모양을 그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화려하지만 차가운 느낌을 준다. 반면에 우리 수공예 도자기는 따뜻한 느낌이 든다. 겉보기에는 투박하지만 음식이 담길 때 조화를 이루며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게 우리 수공예 도자기의 매력이다. 나는 음식과 그릇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이 담길 때를 상상하고 디자인하므로 발상부터 다르게 접근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몇 해 전 고려청자를 재현한 해강요와 콜래보레이션한 작품을 내놓은 적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전통 청자를 추구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고려청자를 처음으로 재현하신 분의 빛깔과 흙과 가마소성 기술에 나의 디자인을 접목해 콜래보레이션 했다. 전통 기법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디자인을 가미해 한정본을 만들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는 청자는 진짜 아름답기는 하지만 음식 담기에는 부담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전통 자기를 재현하기보다 오늘날의 그릇을 중시한다.

    “그릇은 음식을 담는 기능이 있다. 그러기에 음식의 패러다임이나 시대 흐름과 같이 해야 한다. 청자는 고려 시대의 그릇이었고 백자는 조선시대의 그릇이었다. 현대에는 현대에 맞는 그릇이 필요하다. 그래서 글로벌 시대엔 맞는 형태와 컬러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정신이 세계적 스타 셰프 장-조지를 끌어들인 매력인지도 모른다. 현대의 그릇을 지향하기에 그는 그릇의 기능과 아름다움뿐 아니라 가격까지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나는 생활도예 1세대다. 생활도예란 도자기를 사람들이 식탁에서 직접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나치게 미적 예술적 가치만을 강조한다면 오브제, 즉 장식용이나 소장품이 될 것이다. 반대로 기능성만 강조할 경우 공장에서 만드는 대량생산 제품이나 다를 바 없다. 수공예 도자기는 기능성과 예술성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한다. 디자인 단계부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손으로 만들더라도 소장용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게 아닌 만큼 가격도 합리적으로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요즘은 예술과 실용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올해의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이토 도요라는 일본 건축가가 대서특필됐다. 그걸 보고 예술과 실용의 경계가 사라져간다고 생각했다. 예전 예술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위주였다면 요즘은 가구나 그릇, 요리, 건축 등 여러 면으로 확산되고 있다. 생활도자기로서 수공예 그릇 역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겐 이정표가 되고 한국 도예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사진설명
    한국 그릇으로 세계 나갈 터 이 대표는 앞으로 해외로 진출할 생각도 하고 있다.

    “수공예 그릇은 일본과 우리에게만 있다. 일본은 그릇과 음식을 매치해 국제화 했다. 반면 우리는 음식에 대해선 한식 세계화를 시작했으나 그릇의 세계화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구체적으로 내년부터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 참가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도예가 발전하기 위해 도자기 비엔날레나 축제를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적 도자기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해 수요가 급증하더라도 수공예 제작 원칙은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수공예의 가치는 세계 어디에 가든, 시간이 아무리 흐를지라도 영원히 지속된다. 빠름 빠름 하는 세상에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잣집 외동딸인 이 대표는 올해 부친이 하던 W몰의 경영까지 맡게 됐다. 그렇지만 자신의 주력은 그릇 디자인이라고 했다.

    “W몰 경영에 참여했으나 전문 경영인이 CEO로서 잘 꾸려가고 있다. 나는 그릇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한 그릇 디자이너다. 오전 결재를 마치면 대부분 시간을 작업에 매달린다.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고 스케치를 하고 견본을 직접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그는 일본으로 그릇 유학까지 다녀온 전문가다. 그렇지만 영감으로 작품을 만드는 대부분의 예술가들과는 달리 생활로서 그릇을 만든다. 아침 9시에 출근해 그릇 만들다 6시에 퇴근하는 식이다. 영감이니 뭐니 따질 필요 없이 그릇 디자인 자체가 그의 삶인 셈이다.

    사실 집안에 여유도 있었기에 그는 편한 마음으로 도예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그게 그의 삶이 됐고 회사로 커졌다.

    “대학엘 갔는데 공예 중에서도 흙이라는 재료가 좋았다. 흙은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으나 또 마음먹은 대로 안되는 특성도 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공부를 마친 뒤 1990년에 1인 공방으로 도자를 시작했다. 그땐 혼자서 실생활에 쓰는 그릇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장식으로 만들었지 특별한 사명감 같은 것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문화로서의 그릇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이 하나의 문화로서 경쟁력도 있고 국제적으로 내놓을 때 우리만의 강점을 갖는 것이란 생각을 하니 사명감도 갖게 됐다. 게다가 규모가 커지면서 힘을 갖는다는 것도 느끼게 됐다.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사람이 늘어났다. 먼저 도와주는 사람이 들어왔고 이어 매장서 물건 파는 사람이 들어오고 하면서 회사가 됐다. 지금은 5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그릇 만드는 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란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지금 아카데미를 열어 본격적으로 그릇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까지 나서고 있다. ㈜이윤신의 이도는 수공예 그릇의 저변 확대를 위한 이도포터리를 운영할 뿐 아니라 문화예술 종합아카데미로서 도예교실과 요리 강좌, 인문학 강좌 등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카데미는 도예 실기 강좌를 넘어서 키친시스템을 도입해 요리 강좌와 푸드스타일링은 물론이고 미술사와 클래식 음악까지 복합적으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도예와 미술사·음악사·요리 등의 강좌를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 여러 분야를 함께 제공하는 통합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술사를 배우다 해당 시대에 유행한 요리를 만들고 그것을 자기가 만든 그릇에 담아보고, 음악사를 배우며 하우스 콘서트를 듣는 식이다.”

    2010년 2월 오픈한 아카데미는 23명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140여명의 회원이 강좌를 받고 있다. 도예 아카데미는 수강하려면 3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이윤신 대표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 일본 교토시립예술대 대학원을 나왔다. 일본에선 기술보다 예술이나 문화에 대한 태도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1984년 일본서 첫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은 그의 작품에 대해 “그의 작품의 멋과 맛은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데서 나왔으며 완벽함을 지향하지 아니한 데서 자유로운 변형이 이루어진다”고 평했다.

    남편(원경환 홍익대 도예유리과 교수)도 함께 도예를 하지만 작품 세계가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작품 활동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한다. 원 교수는 모뉴멘트 위주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