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거부들

    입력 : 2013.06.07 14: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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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기업과 재벌들은 무엇으로 사나.’ 러시아가 석유나 천연가스를 내세워 막대한 ‘오일머니’를 벌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 회사와 기업인들의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기껏해야 전 세계 최대 가스 생산업체가 러시아 국영기업인 가스프롬(Gazprom)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전 세계 부호 명단에 러시아인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사업을 하는지 등은 국내에서는 거의 ‘블랙박스’ 수준이다.

    예컨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클럽 ‘첼시’ 구단주로도 유명한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주된 사업은 철강업이다. 그의 재산은 2013년 포브스 기준으로 102억달러(세계 107위)로 우리나라에서 그보다 돈 많은 부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30억달러, 세계 69위) 한 명뿐이다. 하지만 좀 더 살펴보면 러시아에서 아브라모비치를 뛰어넘는 재력가는 12명이나 되고, 이 중 10명은 이 회장을 앞선다.

    매일경제는 최근 러시아 슈퍼리치 중 한 명인 레오니드 미헬손 노바텍(Novatek) 회장을 모스크바 현지에서 만났다. 그는 러시아 3위, 전 세계 47위 부호로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회사인 노바텍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있다. 노바텍 관계자는 “미헬손 회장이 서방 언론과 만난 적은 있지만 한중일 3국을 통틀어 아시아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에 LUXMEN은 미헬손과의 인터뷰 및 관련 기사 외에도 이번 기회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기업과 재벌들의 실체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러시아 산업 및 시장상황에 대해 궁금했던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가 될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러시아 기업은 무엇이 있는지, 이들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인들은 누구인지 등을 파악함으로써 러시아 산업경제의 실체를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야말 프로젝트, 한국에 북극개발 기회될 겁니다…미헬손 노바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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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포브스 기준 러시아 3위, 전 세계 47위 부호인 레오니드 미헬손 노바텍(Novatek) 회장을 지난 4월 23일 모스크바에서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노바텍은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회사로 국영기업인 가스프롬(Gazprom)에 이어 러시아 내 2위 생산규모를 자랑한다. 모스크바 남쪽 우달초바 거리에 위치한 노바텍 본사 접견실에서 만난 미헬손 회장은 세계 47위 거부답지 않게 수수한 옷차림에 농담을 섞어가며 격의 없이 대화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멀리 한국에서 왔는데 (가스를) ‘절반 가격에 가져가세요’ 같은 파격적인 답변을 못 드려 죄송하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노바텍이 추진 중인 야말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야말 프로젝트는 매장량 1조㎥가 넘는 초대형 가스전을 개발해 LNG 형태로 수출하는 사업으로 오는 2016년 말부터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노바텍이 야말 가스 수출대상지로 한중일 등 아시아를 꼽고 있다는 것. 유럽이 경제위기로 추가적인 가스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거대 소비처는 아시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미헬손 회장은 인터뷰 내내 야말 가스의 강점을 적극 홍보했다. 그는 “야말 가스는 단위당 발열효율이 다른 가스전에 비해 훨씬 높다”면서 “노바텍은 효율적인 가스 추출 기술력을 보유해 채취 원가는 세금을 빼면 Boe(석유환산배럴)당 57센트로 가격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측이 가스 수입 경로를 다변화할 필요성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야말 프로젝트 투자가 한국이 북극 개발에 옵서버로 참여하는 주요 경로가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차제에 야말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의 지분 참여를 종용하기도 했다. 해당 사업은 노바텍과 프랑스 토탈이 각각 80%, 20% 지분을 갖고 있으며, 노바텍은 향후 지분율을 51%까지 낮출 계획이다.

    셰일가스가 러시아 가스 산업을 위협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셰일가스 개발은 다른 에너지 자원에 대한 가스 비중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스 산업 발전에 호재”라며 “노바텍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을 감안하면 셰일가스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일정 재산의 사회 환원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누구나 부의 정도와 관계없이 사회에 환원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난 아이들 교육을 지원하는 펀드를 운영 중인데 이것을 평생 의무로 여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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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말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란 북극 카라해에 접한 야말반도 내 북동쪽 ‘사우스 탐베이’ 가스전에서 추정 매장량 1조2500만㎥에 달하는 천연가스를 추출해 LNG 형태로 해외에 수출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노바텍에 따르면 총투자 규모만 180억~200억달러에 이른다

    야말 프로젝트 의미는 무엇인가 야말 사업은 우리가 추진 중인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극동 지역에 수출하는 사할린 프로젝트(가스프롬 주도)에 뒤이은 거대 가스 수출사업이 될 것이다. 특히 노바텍의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첫 사업이다. 그동안 내수 판매만 했지만 수출 관련 첫 프로젝트라 의미가 크다.

    한중일 3개국에 대한 가스 수출 전망은 어떤가 한중일 3국은 우리에게 언제나 중요한 나라다. 우리 대표단이 지난 2월 말 방한해 야말 가스 공급문제에 대해 협의를 했다. 한국가스공사(KOGAS)는 신정부가 막 출범해 아직 구체적인 에너지전략이 나오지 않아 확실한 답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에너지전략이 연내 결정될 것이라고 들었는데 연말까지 협의를 통해 (한국에서) 우리가 얼마나 공급할 수 있을지 결정되길 기대한다.

    우리가 야말 가스를 사야 할 이유가 있나. 야말 가스 장점을 말해 달라 가스는 가스일 뿐이다. 메탄 덩어리다(웃음). 야말 가스는 광층이 비교적 건조하지 않고 습해 단위당 발열효율이 다른 가스전보다 훨씬 높다. 노바텍은 가스 추출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기술력을 보유해 채취 원가가 세금을 빼면 BOE(석유환산배럴)당 57센트에 불과하다. 북극의 짧은 운송항로도 경쟁력을 갖지만 지형 조건상 수송에 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기술력이 높아 생산단가가 낮더라도 가스를 싸게 팔겠다는 말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웃음).

    야말 프로젝트에 한국 측 지분 투자 전망은 어떤가 (방한 시) LNG 판매뿐만 아니라 한국 측 지분 참여 문제도 논의했다. 지분 투자는 한국의 가스 수입경로를 다변화하는 데도 좋을 것이다. 또 한국이 북극 개발에 있어 옵서버 위상을 갖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야말 프로젝트가 북극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스 구매와 프로젝트 지분 참여를 패키지로 한다면 어떨까 그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그렇다고 가스 판매가격을 낮춰 공급하지는 않겠다. 오히려 올려 받아야 겠다(웃음). 좋은 프로젝트에 투자해 이익이 더 생길 테니까.

    LNG 수송선박에 대한 입찰은 진행 중인가 6개월 전부터 진행 중인데 향후 3~4개월 내에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론 한국 업체는 현대, 대우, 삼성, STX 등 4개 정도였던 것 같다.

    러시아 경제에 대해 ‘자원의 저주’가 많이 거론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왜 ‘저주’라는 나쁜 단어를 쓰는지 모르겠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유독 우리한테만 적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야말 프로젝트만 해도 고도의 기술을 요하고 다른 분야 산업 발전에도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향후 야말 외에도 또 다른 거대 프로젝트들이 더 많이 기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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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일가스가 러시아 가스 산업을 취약하게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특별히 러시아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 세계 가스 산업에서 볼 때 호재다. 왜냐하면 원자력, 화력 등 많은 에너지원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셰일가스와 같은 혁신은 가스 에너지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향후 노바텍의 사업계획은 현재 내수용 가스 공급은 전체 내수 시장의 20%를 맡고 있다. 장기 계약(10~15년)이 많아 지속적인 가스전 개발이 중요하다. 오는 2020년까지 생산량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리는 게 목표다.

    올해 포브스 발표에서 전 세계 47위 부호가 됐는데 만족하나 난 포브스를 읽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웃음) 라디오를 통해 우연히 듣게 돼 알고 있다. 그런데 난 재산을 세는 데 대해 아주 부정적이다. 다른 사람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지 왜 알아야 하나. 그건 다 숫자에 불과하다. 회사 시가총액 같은 것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이런 순위를 매기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다른 올리가르히(과두재벌)들이 돈이 자유를 가져다준다고 얘기했다. 동의하나 돈이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데 대해 수긍하지 않는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난 오히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이 얼마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당신의 삶을 즐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많은 기업인들이 재산의 사회 환원을 얘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부의 정도에 관계없이 누구나 보유한 일정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아이들 교육을 지원하는 펀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노바텍은 자선사업도 활발하다.

    한국 기업과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한국 기업들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2월 말 한국에 간 것이 첫 방한이었다. 당시 서울 근교에서 30분가량 산책을 했는데 매우 깨끗한 거리와 문화적인 분위기, 사람들의 친절함이 인상적이었다.

    레오니드 미헬손 재산 17조원 가스재벌 러시아에서 천연가스하면 가스프롬을 떠올리지만 민간 가스 회사들도 많다. 노바텍은 국영 가스프롬에 이어 러시아 2위 생산규모를 가진 민간 최대 가스업체다. 이 회사 창업주이자 회장 및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사람이 미헬손이다. 1955년생인 그는 체첸과 더불어 테러리스트 근거지로 악명 높은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공화국 출신이다. 이후 중서부 도시인 사마라로 옮겨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 졸업 후 가스관 건설회사 현장감독관, 수석엔지니어 등을 지내며 가스사업에 관여했다. 사마라에서 가스관 건설회사 사장을 지낸 부친이 사망하자 32세에 대표직을 물려받았다.

    1991년 소련 해체로 인해 회사가 민영화되자 SNP-노바(NOVA), 노바핀인베스트 등으로 사명을 바꿔가며 사장직을 유지했다.

    이후 정계 거물들과 친분을 배경으로 석유와 가스자원이 풍부한 야말-네네츠 자치구에서 자원개발권을 확보해 가스 개발 사업을 본격화했다. 노바핀인베스트는 지난 2003년 노바텍으로 사명을 바꿨고 회사 본거지인 사마라 인근 지역 가스 공급을 맡게 됐다.

    미헬손은 한때 가스프롬의 견제를 받아 외국 에너지기업과의 합작이 무산되는 등 사업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가스프롬과의 합병 위협에 시달리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노바텍을 런던 증권거래소(LSE)에 상장시키는 데 성공했고, 가스프롬에 노바텍 지분 19.99%(현재는 9.99%)를 넘겨 가스프롬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업 안정성을 확보했다. 이때부터 가스프롬은 대외 수출을 전담하고, 노바텍은 내수 판매에 나서는 것으로 사업 정리가 이뤄졌다. 미헬손의 노바텍에 대한 개인 지분율은 0.675%에 그친다. 하지만 개인회사인 레빗 등을 통해 그의 지분은 25%에 달해 최대주주로 있다. 그는 또 석유화학 회사인 시부르홀딩스 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지난 3월 포브스에 따르면 미헬손의 재산은 154억달러(약 17조원)로 러시아 3위, 전 세계 47위 부자다. 그는 예술 애호가로 지난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러시아 미술품 전시를 지원하기도 했다.

    노바텍 어떤 회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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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말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는 노바텍이 가장 야심차게 기획하고 있는 초대형 가스 프로젝트다. 러시아 내수시장 위주로 가스를 공급해온 노바텍이 LNG 형태로 수출하게 되는 첫 사업이다. 프랑스 에너지기업인 토탈과 공동개발 협정을 체결하면서 사업에 닻을 올렸다. 노바텍은 조만간 LNG 생산플랜트 건설을 위한 설계·구매·시공(EPC)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며 선박터미널 공사 등을 거쳐 오는 2016년 말부터 LNG 수출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연간 생산량은 1500만t으로 우리나라가 사할린-2 프로젝트에서 들여오는 연평균 LNG 도입량(150만t)의 10배 규모다. 노바텍은 야말 프로젝트에서 생산되는 물량 대다수를 한중일 3국에 판매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미하일 로조보이 노바텍 홍보담당은 “경제위기에 처한 유럽은 신규 가스 수요가 거의 없지만 아시아는 높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수입 여력이 있다”면서 “생산 단가가 낮고 짧은 북극항로를 이용해 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말했다. 야말 프로젝트에 대한 지분 매각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말 일본을 방문한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부장관은 “보유 지분 80%를 51%까지 낮출 용의가 있으며 이를 한국, 중국, 일본 측에 매각할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야말 사업에 얼마나 협력할 수 있을까 하는 점. 사할린-2 프로젝트를 통해 들여오는 러시아 가스는 연간 전체 수입물량의 6%에 그친다. 가스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야말 가스 도입은 검토해볼 만하다. 하지만 오는 2017년 이후 북한 땅을 거쳐 PNG 형태로 들여올 가스 예정 물량이 750만t에 달하는 것이 변수다. 현재로서는 북한 영토를 통과하는 가스관 건설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계획대로 들어온다면 러시아산 물량은 900만t에 달해 수입국 1위인 카타르 다음으로 많다. 이런 와중에 야말 가스까지 들어오면 오히려 가스 수입선 다변화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파는 쪽이 급한 것인 만큼 우리가 서두를 필요가 없다”면서 “정확한 정보와 협상과정에서 도입 조건 등을 저울질하며 신중하게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지분 투자의 경우 사업적 불투명성이 남아 있고 러시아 측도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고 있어 선뜻 나서기가 힘든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LNG 생산공장이 지어지지도 않은 만큼 2016년 말에 수출이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도 야말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피치는 2012년 말 보고서에서 “노바텍이 야말 프로젝트를 통해 LNG 수출에 나서는 것은 회사 등급 상승에 긍정적”이라면서 “그러나 야말 사업에는 시행 리스크가 남아있다”고 평가했다.

    [모스크바 = 김병호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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