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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l Issue]최태원 회장의 항소심 핵심 쟁점은
입력 : 2013.04.08 15: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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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재판에선 1심에서 무죄를 낙관하다 뜻밖의 실형을 언도 받은 최 회장이 대대적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여 검찰과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최 회장은 “(자신은) 이 일에 전혀 인볼브(관여)되지 않았고,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검찰 측 손을 들어줬다. 당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을 주축으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던 최 회장은 이 때문에 2심 재판을 앞두고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들을 대거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등 반론을 펴기 위한 진용을 새로 짰다. 새로 구성한 변호인단엔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이인재(사법연수원 9기) 태평양 대표변호사를 비롯해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인 한위수(사법연수원 12기) 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SK 관계자들은 최태원 회장이 최근에 다소 안정을 되찾기는 했으나 마음의 상처가 깊었기에 긴장을 풀지 않은 채 항소심에서 충분한 소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판결에 영향? 경제계나 법조계에선 최근의 경제민주화 바람이 기업인 재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 회장 외에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 전 상무 등 도주 우려가 없는 인사들을 법정에서 구속한 게 이런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상급심에까지 그대로 반영될지 주시하고 있다.
SK그룹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일부 혐의에 무죄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구형한 징역 4년을 그대로 선고했을 뿐 아니라 법정구속까지 시켰다. 법원이 이런 강한 판결을 내린 데 대해 법조계나 경제계엔 최근의 사회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사실 최 회장에겐 지난 재판 때 적지 않은 악재가 있었다. 법리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담당 검사에게 낮은 형량을 구형토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법조계를 발칵 뒤집은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런 법정 밖의 분위기가 재판부를 자극해 최 회장이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검사가 구형하면 절반 정도에서 선고가 이뤄지다가 최근 70% 수준에서 이뤄지곤 했는데 이번 선고는 상당히 이례적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경제계의 한 인사는 “대기업 회장에 대한 무조건적 관용도 문제지만 경제민주화 여론에 휩쓸려 이른바 유전유죄, 무전무죄식의 판결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조인들은 그러나 재판 결과에 대해 다른 의견을 밝히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떤 경우든 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야 법관의 독립성을 지켜주기 때문이란다. 다른 의견은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도 얼마든지 반영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SK그룹 사건엔 복잡한 개념의 펀드들이 등장해 일반인들에겐 상당히 난해해 보인다. 그러나 사건을 압축하면 내용은 의외로 단순하다. SK 계열사들이 2008년 10월 투자회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자금 중 465억원을 최태원 회장 형제가 한 달여 동안 사용한 뒤 9%의 이자를 붙여 전액 반환한 것이다.
검찰은 1년여 동안 그물망 수사를 한 뒤 이 자금 거래가 비자금 조성을 위한 것이며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과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전 대표가 출자나 자금 유출 등에 직접 관여했다고 결론지었다. 당초 검찰은 최태원 회장이 처음부터 펀드 조성이나 자금 횡령 등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했지만 혐의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출자금을 선급금 명목으로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송금케 한 부분을 물고 늘어져 최 회장이 관여했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공소 내용이 70여 건에 달한 것을 감안할 때 검찰이 최 회장을 기소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양측의 주장과는 다른 뜻밖의 판결을 내렸다. 그룹 내 지배력을 감안할 때 최 회장이 이 모든 과정을 주도했고, 죄 없는 동생에게 책임을 미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전 대표 등의 진술에 신빙성을 두고 최 회장이 의사결정을 주도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항소심의 쟁점 두 가지 1심 판결을 놓고 볼 때 2심의 쟁점은 이번 자금 이동이 횡령이냐는 것과 그것을 최 회장이 지시했느냐는 것 등 두 가지로 보인다.
검찰은 이 사건을 계열사를 동원된 신종 대기업 범죄로 규정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횡령액도 피해자도 없는 사건이라고 맞섰다.
실제 관련 회사들은 이 자금이 밖으로 빼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미 반환됐거나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상태라고 밝혔다. 1심 판결 이후 SK C&S는 “현재 펀드가 정상 운영되고 있어 당사에는 실질적인 손해가 없다”고 했고 SK가스는 “투자금은 기회수돼 실질적인 손해가 없다”고 공시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2008년 하반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최 회장의 자금사정이 매우 열악했으며 당시 비상장이었던 SK C&C 주식을 이용한 담보대출도 쉽지 않았기에 펀드를 조성한 뒤 회사 돈을 빼돌리려 했다고 주장했다.
양측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재계는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이 465억원을 불과 한 달여 가량 쓰려고 복잡한 펀드를 조성해 자금을 빼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 회장은 2008년 당시 비상장이었으나 상장 가능성이 높았던 SK C&C 지분 44.5%를 보유했었다. 현재 SK C&C의 시가총액은 4조7500억원. 최 회장의 지분가치는 2조1137억원이나 된다. 상장 전 이 지분가치는 1조원대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최 회장은 당시 SK C&C 외에도 상장주식인 SK 주식 104만787주(2.22%)도 갖고 있었다. 이 지분은 현재 1800억원, 당시 시세로도 900억원에 달했다. SK그룹은 2007년 7월 1일 지주회사 체제가 됐기에 SK 지분은 언제든 팔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베넥스 펀드에 5개 계열사가 출자를 했다는 점도 횡령으로 보기엔 무리란 게 관련자들의 시각이다. 횡령할 목적이라면 은밀히 해야지 왜 SK텔레콤이나 SK C&C, SK가스, SK E&S, 부산도시가스 등 여러 계열사를 동원했느냐는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 발표를 보면 SK사건에 5개 계열사 재무 담당자와 이사회 멤버까지 동원되는데 횡령하면서 이렇게 많은 임직원과 사외이사까지 동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1월 말 재판부가 최 회장을 구속하자 많은 이들이 소버린 때 이미지를 떠올리며 최 회장이 선물로 불행을 자초했다고 결론짓기도 했다. 경영권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선물투자가 오해를 샀다는 것. 최 회장은 실제로 지속된 경영권 위협과 상속세 납부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 사촌이나 동생들의 상속포기로 그룹 오너가 됐지만 상속세를 낼 돈이 없어 5년간 분납을 했을 만큼 현금 여력이 없었다는 것. 특히 소버린의 집요한 공세에 맞서 자금력을 총동원해 방어는 했지만 경영권 안정을 위한 재원확보의 필요성을 느껴 불가피하게 선물투자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외부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은 2008년부터는 선물투자도 손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1심 공판에서 최 회장은 “선물투자의 위험성과 부적절성 및 실패 가능성을 인지했다”며 2008년 이후에는 선물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이나 법원은 베넥스를 거쳐 SK해운의 전 고문 김원홍에게 건너간 SK 계열사들의 투자금에 대해 최 회장의 선물투자로 판단했다. 그러나 SK 측은 이는 과거 선물투자 이력에서 온 선입견이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최 회장이 동생 최재원 부회장에게 죄를 씌우려 한 게 타당하냐이다. 검찰은 최 부회장이 이번 자금거래를 주도했다고 봤으나 법원은 이런 거래는 그룹 오너만이 할 수 있다며 최 부회장에겐 무죄를 선고하고 대신 형을 법정 구속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300억원 이상의 횡령은 가중처벌 시 최장 11년 징역을 살아야 하는데 형이 동생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 있는지, 또 동생이 자신의 인생이 걸린 일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해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 수사 경험에서 볼 때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쓴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며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을 수밖에 없어 결국 탄로 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무리 형제간 우애가 좋다고 하더라도 50세인 최 부회장이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있겠냐”며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SK그룹처럼 매출 150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에선 회장이라도 계열사의 세세한 일까지 모두 파악하고, 지시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최 회장을 법정 구속시킨 파생상품 거래는 회계학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복잡한 부문”이라며 “담당 임직원으로부터 문제없다는 보고를 받고도 불법성을 가려내 금지시킬 만큼 전문성을 갖춘 경영자는 극소수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국내 3위 그룹의 규모를 감안할 때 “최 회장이 자금 및 회계처리를 직접 실행한 것도 아니고 보고를 받았더라도 담당자가 문제없음을 확인했을 게 분명한 정황이다”고 주장했다.
그 정도 자산을 가진 그룹의 경영자라면 수많은 업무를 처리하면서 5분 정도 보고받았을지 모를 정도이기에 5년이 지난 시점에선 당시에 알았는지조차 모를 것이라고 했다.
한 변호사는 “법원은 최 회장이 관여했다고 본 근거로 2008년 당시 최 회장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점과 계열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점, 재무실에서 작성한 여러 문서를 들었다”며 “그러나 수사 단계나 재판 과정 어디에도 최 회장이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진술이나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견해에 대해 SK 측은 “법정 밖에서 사건을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며 “항소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최 회장은 지난 2003년 SK글로벌 사태 때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며 정면 돌파를 한 바 있다. 당시 분식회계로 법정 다툼을 벌일 때 변호인은 분식은 70~80년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유산이라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최 회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뿐 아니라 부채까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분식회계도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진술한 바 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분식 등 그룹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상당 부분 피고인(최 회장)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투명경영을 다짐한 최 회장의 자세를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이후 이사회와 사외이사 중심의 경영으로 투명경영의 약속을 지켰다. 이런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재계 인사들은 최 회장이 항소심에선 책임 소재를 다투기보다는 당시 자금 거래가 횡령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같은 자금거래가 향후에라도 외부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경영 시스템을 주력할 것을 다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이미 그동안 맡고 있던 그룹 내 최상위 의결기구인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의장직을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300조원 가치의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 위한 대외 활동에만 주력해왔다. 1심 결심을 목전에 두고도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리더들과 유대를 다진 것도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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