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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예술 교육기관 운영 경매사 1호 박혜경 AIT 대표…어떤 작가가 뜰지 한눈에 딱 보이죠
입력 : 2013.03.07 15: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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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당시 서울옥션의 경매는 박혜경 ㈜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가 진행했다. 국내 미술품 경매사 1호로도 잘 알려진 박 대표는 이후에도 ‘백자청화운룡문호’를 18억원에 낙찰시켜 한국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쓰기도 했다. 최초이자 최고의 실력을 가진 미술품 경매사인 그녀는 현재 국내 최초의 민간 미술교육인 에이트 인스튜티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미술품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영·미와 같은 체계화된 미술교육에 필요성을 절감해 직접 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미술품 경매사에서 최고의 아트디렉터로, 그리고 이제는 국내 최초의 민간 미술교육기관의 대표로 변신한 박혜경 대표를 청담동에서 만났다.
열혈직원, 미술과 인연을 맺다 화랑가에서 ‘여걸’로 손꼽히는 박혜경 대표는 사실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한 적이 없다. 단국대 사학과 출신으로 진로그룹 홍보실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미술계의 여걸로 우뚝 서게 된 것은 가나아트갤러리 이호재 대표와의 인연 때문이다.
“원래 진로그룹 홍보실에서 광고 담당업무를 했었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열혈 직원으로 사보에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이호재 대표가 보고 ‘미술시장에도 매스미디어 감각을 가진 마케터가 필요하다’며 지인을 통해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하셨죠.”
박 대표는 그러나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본인이 미술시장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낯선 갤러리로 직장을 옮기는 것도 불안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미술품을 파는 화랑가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공간이었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두려움과 이직에 대한 낯설음 등이 그녀를 머뭇거리게 했다. “고민이 많았어요.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광고를 통해 취급하던 아이템이 단지 미술품으로 바꿨다는 생각을 하니 의외로 편해졌죠. 하지만 실제 업무를 시작하니 막막한 건 사실이었죠.”
“미술품 유통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국 방송을 하는 홈쇼핑 채널과 제휴해 밤 10~12시까지 매일 미술품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죠. 과거 홍보실의 경험도 살릴 수 있었고, 의외로 반응도 굉장히 좋았죠.”
그러나 대성공을 거둔 ‘미술품 홈쇼핑 판매’는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마감됐다. 대기업들이 쓰러지고, 정리해고가 봇물처럼 터지자 인사동 일대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내려졌다. 박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위기였죠. 해결책도, 대안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죠. 뭔가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죠”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이호재 회장이 ‘경매’를 제의했다. 가나아트갤러리 산하에 미술품 전문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을 설립하겠다며 박 대표에게 경매사를 제의한 것이다. 홈쇼핑에서 미술품을 팔던 당시 전화로 경매를 진행해봤으니, 옥션 경매사도 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이 회장의 의도였다.
“첫 경매는 1998년 9월이었어요. 아무런 경험 없이 무작정 진행했죠. 하지만 경매에 앞서 당장 회사부터 세워야 했어요. 후배 2명과 팀을 꾸려 일을 시작했죠. 경매라고 하면 보통 분은 단순히 가격을 정하고 흥정하는 것만 한다고 여기는데, 의외로 할 일이 많아요. 먼저 옥션 주제를 갖고 작품을 수급해야 하고, 작품에 대한 해설과 가치를 책(도록)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작품에 관심을 가질 만한 고객을 선별해 섭외해야 하죠. 그 이후에 경매를 시작하고, 판매된 작품은 고객에게 유찰된 작품은 원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이처럼 많은 일을 그냥 한 거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식하면 용감했다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일 겁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미술품 경매사로 이름을 올린 박 대표는 이후 수많은 경매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의 박수근의 ‘빨래터’를 탄생시켰다. 특히 미술계에서는 서울옥션의 탄생 이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좋은 그림을 사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던 이들에게 또 하나의 유통통로가 열렸기 때문이다.
더 큰 미술시장 만들려면 교육이 절대적 일에 대한 열정 하나로 10년을 일하면서 최고의 미술품 경매사란 찬사를 받은 박 대표는 다시 한 번 변신을 준비했다. 유홍준 교수가 명지대에 개설한 ‘고미술 감정학’이란 수업을 들으면서 미술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미술관마다 큐레이터와 아트디렉터 등 작품에 대한 다양하고 자세한 지식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의외로 미술 공부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다양한 업무를 같이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볼 시간도, 아트페어에 참석할 시간도 없기 때문이죠. 유홍준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박 대표는 2009년 여름, 갑자기 2개월의 휴가를 내고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부터 댈러스를 거쳐 포츠워스까지 미국 9개 도시를 돌며 미술관이란 미술관은 모두 돌아본 것이다.
“정말로 바쁘게 다녔어요. 미술관은 물론 ‘아트’로 시작되는 곳이면 무조건 들어갔죠. 그 결과 왜 새로운 작품들이 주목받게 되는지, 앞으로 어떤 작가들이 뜰 것인지가 보이더군요. 특히 제프 쿤스를 키워낸 뉴욕의 30년 화상(華商) 제프리 다이치가 미국 3대 미술관인 LA현대미술관의 관장이 되는 것을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봤습니다.” 미국 미술 여행을 통해 시야를 넓힌 그녀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소더비 아카데미나 크리스티 아트스쿨 같은 경매사가 운영하는 전문 교육기관이 국내에는 없다는 점에 착안해 지금의 에이트 인스튜티트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과거의 미술작품들이 하루아침에 유명해지는 불확실한 시장이었다면, 미국에서의 아트 투어를 마치고 온 후 충분히 예측하고 내다볼 수 있는 시장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세계 유명 경매회사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의 커리큘럼을 공부했죠. 여기에 명성 높은 미술관들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프로그램도 살펴봤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반년 후인 지난 2010년 5월 지금의 에이트에서 첫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하나의 클래스였지만, 지금은 6개의 클래스에 회원수도 300명이 넘는다.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신예(新藝) 과정은 물론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들을 위한 호예(好藝), 현직에 있는 종사자들을 위한 아트스폐셜리스트 명예(明藝) 과정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 클래스는 오는 3월부터 시작해 총 1년 과정으로 진행된다.
안정적인 대기업 사원으로 지내다 도전정신 하나로 미술계에 뛰어들어 대한민국 최초의 미술품 경매사가 됐고, 국내 최고 경매가의 작품을 만들어낸 박혜경 대표. 이제는 더 큰 미술시장을 만들기 위해 교육자로 변신한 그녀에게서 ‘열정’이란 단어의 참의미가 느껴진다.
[서종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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