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st]김주형 LG경제연구원 원장…현 위기는 만성질환 재정 튼튼한 정부가 살아남는다

    입력 : 2013.02.04 14: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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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스완> 아시죠. 예측하지 않은 상황이 세상을 바꾸는 것 아닙니까. 전망을 물어보시면… 아, 이 양반도 잘 모르고 있구나 싶은데요.” 올 경기 전망에 대한 물음에 대뜸 블랙스완이 등장했다.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을 부연하며 언급한 단어지만 그 만큼 예측이 어렵다는, 위기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민간 싱크탱크라 불리는 LG경제연구원의 수장 김주형 원장을 만났다. 2013년 새 정부의 출발에 앞서 김 원장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수요확장정책은 자칫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 있다”며 경계했다.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33층에서 진행된 대담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위기와 성장이 이어지며 두어 시간을 훌쩍 넘겼다. 창 너머로 유유한 한강의 기적이 찬란했다.

    올해 우리나라 경기성장률 예측이 지난해 2%에서 3%로 수치상으론 올라갔다. 피부에 와 닿는 수치는 아닌데 일반인들이 느낄 수 없는 수준이다. 와 닿진 않겠지. 지난해 4/4분기가 조금 안정됐고 올해 들어서 안정되는 정도다. 안정이 된다는 의미도 전년 동기 대비지. 지난해 3/4분기와 4/4분기가 워낙 좋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정에 집중하고 있다. 돈이 풀리면 나아지지 않을까 지난 3/4분기와 4/4분기에 경기폭락에 두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다. 상반기에 돈이 돈다는 건 그 두려움에 대한 임시대응적인 성격이 강하다. 재정정책으로 경기진작 효과가 그리 크진 않을 것 같다. 다만 걱정 되는 건 재정건전성이 결국에는 한국 경제의 신뢰를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인데, 총수요확장정책을 통해 일시적인 경제회복은 도모할 수 있겠지만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경기가 나빠서 경기확장적 재정정책을 한다 하더라도 그 크기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으니 과감히 적자재정을 편성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역시 재정건전성인가. 경기를 살리는 방향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는 지금도 적자재정이다. 장기적으로 흑자재정이 되려면 목표를 유지해야 한다. 둘 다 중요시 해야지. 어느 것 하나만 중시하고 하나는 잊어버리자 이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고통은 잠시 잊겠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안될 것이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LG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각 계열사 별로 그룹의 올해 경영계획을 모아보니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기업들도 다들 계획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좀 빨리 발표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 같다.(웃음)

    부동산 시장에 턴어라운드 조짐이 보인다 새 정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보자. 가장 심각한 게 부동산이다. 내놔도 안 팔리는 시점에 거래활성화가 문제다. 어떻게 해야 부동산 시장이 돌아갈 수 있을까 큰 흐름은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서 현재의 집 수요가 어떻게 바뀌느냐. 인구문제나 젊은층의 집에 대한 인식 등 여러 문제가 있겠지. 또 하나는 리먼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부동산 거품이 꺼졌다. 2008년 이후 이 두 가지 상황이 겹쳐서 다가왔다. 그중 전자는 우리 경제의 롱텀 트렌드 중 하나이니 상당 기간 진행될 것 같다. 다만 글로벌 시장의 부동산 거품 붕괴는 이제 거의 끝났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다시 상승하는 턴어라운드 조짐이 보인다. 미국, 중국, 일본이 상승했고 유럽도 독일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의 가격 조정은 끝났다. 이제 국내 부동산 가격이 남았지. 과연 앞서 언급한 롱텀 트렌드의 가격 하락 요인이 부동산 가격에 다 반영된 것인지 아직 덜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고, 글로벌 부동산 거품은 꺼졌는데 그 여파가 국내에도 전달됐는지가 또 한 가지 의문이다.

    재미있는 건 과거에는 중고 아파트가 새 아파트에 비해 늘 가격이 높았는데, 최근엔 새 아파트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 재건축까지 가지 않은 중고 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 중고시세가 확실히 반영되는 것 같다 토지가격에 대한 기대가 많이 떨어진 것이지. 사실 아파트를 아무리 잘 지어도 평당 원가가 수천만원이 될 순 없다. 나머지는 땅값 아닌가. 땅값에 대한 기대가 바뀌면 가격변동도 달라지겠지.

    부동산 시장을 전망한다면 그건 글쎄. ‘이 양반 정말 잘 모르고 있다’ 정도 될까.(웃음) 전망이란 게 참 모호하다. 2008년에 월스트리트의 필독서였던 <블랙스완>이란 책을 아실 텐데. 거기 보면 전망에 대한 속성이 나온다. 누군가 세계무역센터 공격을 제대로 전망했다면 엄청나게 훌륭한 사람으로 기록됐을 것 같지만 아니다 이거지. 만약 알카에다의 공격을 사전에 예상했다면 당연히 안보당국에서 저지했을 것이고, 그 전망은 틀린 전망이 됐을 테니까. 전망되지 않고 계획되지 않았던 상황이 세상을 바꾼다. 전망됐던 건 암흑과 같은 것 아닌가. 노련한 답변이다.(웃음) 그럼에도 부동산은 새 정부의 아킬레스건일 수도 있다. 개인의 자산이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 있으니 활성화시킬 방법이 나와야 할 것 같다 부동산과 관련한 염려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개인의 입장에선 뭔가 하고 싶은데 거래 자체가 안 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시장이 죽은 것이지. 이런 상황이 없어져야 하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둘째, 많은 이들이 힘들게 일하고 집 장만해 중산층이 됐다. 그런데 하우스푸어가 된다. 열심히 일해서 벌어들인 자산을 쉽게 잃어버리는 고통, 중산층의 붕괴에 일조한 측면이 크다. 두 가지 중 첫째는 해소돼야 하고 실제로 그러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둘째 요인이 좀 애매하다. 그동안 시장 가격이 과연 적정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고통스럽더라도 과정을 거치는 게 사후에 오히려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셋째는 금융기관이 부동산을 담보로 많은 돈을 빌려주고 있는데, 금융기관은 사회의 시스템이다. 안전성을 유지하는 곳이지.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하락하면 부실 채권이 될 것이고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서 금융시스템까지 망가지지 않을까. 그런 사태가 온다면 정부가 나서야 할텐데라는 불안과 염려. 그런데 이러한 사태까진 오지 않은 것 같다. 우리의 담보비율이나 소득과 연계된 대출한도 등이 아직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역시 선행돼야 할 건 거래활성화를 위해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한국에선 구글과 애플이 나올 수 없다 양극화도 여전한 사회 문제다. 기득권이나 세대 간 갈등도 그렇다. 특히 지난 정부 5년 간 일부 오너 그룹들의 행태 등이 반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는 용어 선택에 있어서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른 것 같다. 난 경제 정책의 목적이 국민 삶의 수준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일 수 있을까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건 궁극적으로 경제적 소득을 높여주는 것이고, 경제소득의 수준을 높여주기 위해선 결국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장은 사회구성원들이 성공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살아있을 때 힘을 받고 성장한다. 우리가 사회의 양극화를 이야기할 땐 그런 희망과 열정에 대한 믿음이 훼손된다. 어떤 이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고 다른 이는 부모 잘 만나서 그러지 않아도 풀리는, 이런 것에 대한 절망감이 있다. 그런 형태의 양극화가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강화됐던 것 같다. 소득불평등을 보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악화를 경험했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경제를 다시 재활시키는 프로세스로서 균형의 조정, 회복 이런 관점에서 봐야할 것 같다. 음… 그리고 또 한 가지, 위법과 탈법에 대한 문제는 법이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이제까지 공정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했음에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알아내야겠지. 양극화의 속도를 늦추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그 무언가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단계다.

    재계에 3세 경영을 넘어 4세 경영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 시대의 젊은 임직원들은 모양새보다 실속이 중요해 보인다. 덕분에 전 세대와 비교해 로열티 면에서 현저히 떨어진다는 평도 들린다. 이런 구조의 기업경영에선 앞으로 대기업그룹의 탄생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의 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상 기존 그룹들은 제도권 하에 있는 재래산업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없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NHN은 10년도 안됐는데 시가 총액이 10조원을 넘지 않았나. 엔씨소프트나 넥슨도 대기업이 됐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 페이스북이나 구글, 애플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기업들은 표준을 만들고 있다. 표준을 만드는 기업은 정해져 있다. 일본도 못 만든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일본에서 태어났으면 애플이 가능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표준을 만드는 건 그 시대의 패권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럼 우리는? 우리가 꼭 표준을 만들 필요가 있나. 그게 아니더라도 우린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기업은 계속 태어날 것이고 대기업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흥망성쇠가 있다. 수명이 있지. 좋은 경제란 새로운 기업이 그 전 기업을 누르고 일어나 많은 이에게 더 나은 가치와 소득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경제 아닌가.

    그런 점에서 LG그룹은 어떤가 아… 그룹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물으면 왜곡된 답변을 듣게 될 수도 있을 텐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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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진타오와 시진핑 시대는 전혀 다르다 LG연구원은 중국에 강하다. 중국이 키워드지만 전망은 엇갈린다. 7~8% 성장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과 시진핑 시대에도 여전히 성장할 것이란 의견이다 깊이 들어가면 끝이 없는 주제다. 후진타오 시대와 시진핑 시대는 완전히 다를 것 같다. 후진타오 시대에는 성장, 세계에서 중국의 위상, G2 등에 집중된 수출지향형이었다. 하지만 후진타오 정책의 결과 중국 내에서 많은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도 과거에 경험했던 모순인데, 사람들이 느끼는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각해졌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로 부가 생긴 것 아니냐는, 여기에 관리들의 부패가 불을 지폈다. 심각하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가난한 사람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성장 정책을 일부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엔 임금을 안정시키는 정책이었다면 최근 1~2년 동안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정부가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을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또 한편으로 서부내륙으로 투자재원을 많이 옮기고 있다.

    이제는 양보다 질인가 그렇지. 시진핑 정부의 과제는 대외지향형 성장일변도의 효율정치를 대내지향적이고 안정지향적인, 또 양보다 질적인 경제성장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관리 부패 등 공정성에 대한 리더십 언급도 점점 늘어날 것 같다. 시진핑 시대는 대외지향적, 확장적, 도전적인 대국으로 힘을 과시하는 것보다 내부 문제 해결에 치중하게 되는 시기가 될 것 같다. 이미 중국은 2~3년 전부터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기업들이 중국 덕을 많이 봤다 그렇지. 한국 경제성장의 중요한 근거지가 됐다. 황해경제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한국의 자본과 기술, 중국의 낮은 임금과 땅이 굉장한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크게 도움이 됐다. 이런 이상적인 분업 구조가 2000년에서 2010년까지 핵심적인 전략이었는데, 이젠 더 이상 안될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이미 생산기지를 동남아시아로 옮기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린 중국의 저임금을 활용하고 중국 지방정부의 외자유치로 생산기지를 만들어 제품을 수출했다. 중국인들의 직접 소비가 늘면 그들에게 직접 팔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을 통한 수출 대신 중국 내수시장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중국도 민족주의나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로컬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겠지. 과거로 거슬러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본의 자본재나 핵심 부품 없이 물건을 만들지 못했듯 중국이 우리에게 의존하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어떻게 추진하느냐는 다른 일이겠지.

    중국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의 시행착오에 대해 일각에선 현지법인에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사람이나 비용을 쓰는 의사 결정이 중국에서 신속하지 않으면 비즈니스가 힘들다는 말도 나온다 우리가 중국기업이 아닌데 중국에 한국의 비즈니스 모델을 심어야 할까. 과연 그것이 우리의 글로벌 경영일까.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란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반대로 중국인으로 구성된 중국사업장이 스스로 돌아가면 그건 중국기업 아닐까.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던데, 글로벌 비즈니스라는 건 전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전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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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이 한국의 핵심 산업이 될 순 없다 다시 국내 문제로 돌아가 보자. 새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됐다 중요한 부분이다. 그동안 과학이나 기술에 대한 국가의 열정과 중요성 부여, 존중이나 격려가 부족했다. 과학 기술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과거엔 과기부나 정통부가 있어서 자신들의 이야기가 쉽게 정부나 대통령에게 전달됐는데, 지난 정부에는 막혀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성장과 미래를 개척함에 있어 과학기술의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대로 둬선 안 된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세계 최초로 가장 훌륭한 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뜻과 과학기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필요성이 담겨있는 것 아닌가. 창조는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션을 어떻게 추진할 것이냐의 문제다. 신설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통섭과 시너지를 가능케 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금융 분야는 어떤가. 한국은 실물에 비해 금융이 낙후돼 있다. 금융 분야 정상화, 선진화, 현대화의 핵심은 무엇인가 5년 전엔 금융을 새로운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자고 했다.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만들고 유니버설 뱅킹, 거대 금융기관을 만들어 글로벌 금융기업과 경쟁하자고 했지. 이를 통해 국부를 키우자는 논의들이 많았다. 돌이켜 보면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한국의 금융이 과연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비즈니스일까. 짧은 경험이지만 금융 분야에 있을 때 한국은 금융을 잘할 수 있는 터전이 아니란 걸 느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도덕에 대한 생각, 공정성에 대한 생각, 현상보다는 운영에 대한 판단을 더 중시하는 생각 등이 그렇다. 예를 들어 금융이 발달한 나라의 문화는 굉장히 실용적이다.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만 잡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다. 우린 검은 고양이가 쥐를 잡으면 나쁜 쥐를 잡은 것이지. 서류를 보면 의심부터 한다. 그런데 홍콩에선 의심이 가더라도 서류가 완벽하면 무조건 돈을 내준다. 그렇지 않으면 은행이 처벌 받거든. 형식적으로 요건을 맞추면 이행돼야 하는 게 계약이다. 계약은 이행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철저하다. 우리는 잘못된 계약이면 안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지. 금융에서 이런 생각은 치명적이다.

    그런 관행 때문에 국내 금융이 외국에서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글로벌 금융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은 금융의 안정성을 위해 금융의 영역을 분해하고 벽을 만들어 다른 쪽으로 위험이 전이되는 걸 막아야 한다. 다시 금융을 통합시킨다는 건 미국의 실패를 따라가는 것이지. 리스크만 키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금융이 미래의 새로운 사업으로 고용을 늘리는 핵심 사업이 될 것 같진 않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신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래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 한국은 대기업이 잘되는데 중소기업은 안되고 대만은 중소기업은 잘되는데 대기업은 안된다고. 이 현상에 대한 분석이 재밌다. 중국은 친족계열이다. 회장이 아버지, 사장이 어머니, 영업부장이 아들 이런 식이다. 그러니 결정이 빠르지. 사촌이 미국에서 공부하는데 시장에 어떤 물건이 유행한다고 알려주면 바로 만들어 한 달만에 수출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중국 사람들이 가족이나 고향사람 외에 사람을 믿지 않거든. 그러다 보니 큰 기업을 만들고 육성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지. 영국과 독일을 비교하면 1차 산업혁명 1기를 영국이 주도했는데 후기 산업사회에선 오히려 독일에 추월당했다. 그러면서 영국은 금융으로 특화됐고 오히려 대기업, 조선이라든지 철강, 화학, 기계 등은 독일에서 다 꽃을 피웠다. 영국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을 믿지 않는거야. 되기 어렵기 때문에 나온 말이 젠틀맨이라고. 그러면서 중국인은 영국인과 비슷하고 독일인은 일본인과 비슷하다는 분석이다.(웃음)

    그럼 한국은 어떤가 우린 중국과 일본의 중간쯤 지점에서 양쪽의 장점을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대기업도 잘되고 바람이라면 중소기업의 다이내믹한 활력, 유연성도 같이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둘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IT와 자동차, 전자 분야가 굉장히 좋았다. 올해에는 어떻게 보고 있나 IT와 자동차의 퍼포먼스가 상당히 좋았다. 올해는 엔저가 얼마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 같다. 현재 일본이 하는 꼴을 보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다. 경제정책도 1960~1970년대 엔저를 유도해 수출을 전개시키고 경제를 일으켰던, 게다가 정부가 기업을 지원해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정관유착까지. 일부이긴 하지만 일본 전자업체가 힘드니 아예 정부자금을 투입하라는,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피해가 오겠지. 사라져야 할 경쟁자가 좀비처럼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엔저유도가 걱정스럽다.

    최근에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부분이라면 앞으로 10년이 우리 경제에 가장 중요한 기회다. 과거 우리에게 닥쳤던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이제까진 사실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는데, 지금은 걷어 찰 사다리조차 없다. 벤치마킹할 곳이 없다. 오히려 중국과 일본기업이 우리 기업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지. 국내에서 퇴직한 핵심인력들이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참으로 많다. 막을 방법도 없이 기술이 다 빠져 나가고 있다. 이런 식이면 최고의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떨어지지 않을까. 이 시기에 일본의 전철을 밟는다면 아마도 현 세대가 우리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결국 혁신이다. 앞으로 10년 간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적자생존이다. 어떤 경제가 살아남고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까. 그 점이 가장 큰 고민이다.

    앞으로 10년이면 새 정부에 대한 바람도 있을텐데 앞서도 언급했지만 최근 총수요확장정책을 통해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자칫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도 있다. 당장 돈을 뿌려서 뭔가 좋아지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착각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게을리 한다던가 등한시하게 될 수도 있는데,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과거도 그렇고 최근까지 정부가 바뀌는 시점은 늘 위기였다. IMF, 카드 사태, 리먼 사태, 그런데 앞선 위기와 현재의 위기는 다르다. 앞선 위기가 유동성 등 외부 위기였다면 현재의 위기는 양적인 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시점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그렇지 않으면 추가적인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시점에 새 정부가 시작된다. 지난 위기가 독감이라면 현재의 위기는 만성질환의 조짐이 보인다. 또 우리의 재정건전성은 어느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다. 한 나라 경제의 건강성과 최후의 보루는 강한 정부, 재정적으로 튼튼한 정부다. 설사 기업이 부도가 나더라도 튼튼한 정부가 있으면 그것을 구제해줄 수 있지만 정부가 부도가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성장과 복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부분이다. 우리가 복지를 늘리는 이유는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지 주어진 것을 똑같이 나누고 모두가 똑같아져야 한다는 게 아니다. 만약 후자가 된다면 경제의 다양성은 떨어지고 악순환에 빠지게 되겠지. 복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김주형 원장 1955년 경남 합천

    1974년 경북고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

    1980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88년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1989년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상무

    2003년 LG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

    2006년 LG 부사장(경영관리담당)

    2007년 LG경제연구원장

    [대담 조경엽 국장 정리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9호(2013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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