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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2015년 승리’ 그녀의 투쟁은 시작됐다
입력 : 2012.05.25 09: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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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여사는 의석수에 개의치 않고 더 큰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미얀마 정가에선 수치 여사와 NLD가 의회 입성 후 우선적으로 개헌 이슈를 제기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행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의회 의석의 4분의 1을 군부가 선거없이 차지하게 돼 있다. 24년을 민주화투쟁에 헌신했고, 궁극적으로 정권 교체를 추구하는 수치 여사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장성들이 주축이 돼 만든 집권여당과 군부도 호락호락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실 지난 4·1 보궐선거는 여당과 군부가 작정하고 져준 것이나 다름없다. 수치 여사의 요구를 수용해 선거법을 개정하고, 국제선거감시단의 활동을 보장하는 등 전에 없는 공정선거를 실시한 것.
물론 수치 여사를 위한 양보는 아니었다. 군부와 여당의 개혁 의지를 대외적으로 과시해 서방의 경제제재를 풀려는 목적이었다. 현재까지는 이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보궐선거가 끝나고 나흘 만에 제재 완화를 발표했고, 유럽연합(EU)도 이에 뒤질세라 제재 완화에 동참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군부가 앞으로도 계속 수치 여사의 요구를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특히 개헌은 곧 정권을 내준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번 선거에서 보듯이 공정선거를 치르면 수치 진영의 백전백승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군부로서는 기득권을 보호할 장치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지난 보궐선거를 앞두고 군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따라서 수치 여사와 군부, 여당은 앞으로 상당 기간 정치적 타협을 시도할 전망이다. 현실적인 접점은 군부와 수치 진영 모두 한발씩 물러서 ‘승자 독식’을 막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군부 의석수를 줄이는 선에서 기득권을 인정해주거나 어느 한 당이 선거에서 싹쓸이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한가지 염려는 20년 넘게 ‘투쟁’만 해온 수치 여사가 제도권 정치에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거센 경제 민주화 요구수치 여사 자택.
보궐선거에서 수치 여사와 NLD를 지지한 유권자들도 사실은 정치적인 요구보다 경제적인 요구가 많았다. 양곤에서 기자가 인터뷰한 유권자들 대부분은 “수치 여사가 우리처럼 못사는 사람들도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치 여사도 이러한 여론을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선거구는 카우무(Kawhmu)로, 양곤시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시내에서 차로 2시간 걸리고 전기도, 전화선도 없다. 민생을 챙기겠다는 상징적인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카우무를 선택한 셈이다.
앞으로 서방이 본격적으로 경제제재를 풀고 외국인 투자가 밀려들어오면 경제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개혁개방의 혜택이 밑바닥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면 집권여당은 물론 수치 여사까지도 성난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뉴 미얀마’ 이끌 후계그룹이 없다 수치 여사가 당면한 또 하나의 과제는 세대교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수치 여사뿐 아니라 집권여당의 과제이기도 하다.
미얀마는 지난 1962년부터 반세기 동안 군부독재가 이어지면서 사회를 이끌어갈 엘리트 계층이 크질 못했다. 인재들은 모두 사관학교로 몰렸고, 대학은 군부의 탄압을 받아 우민화되어 갔다. 테인 세인 정부가 야심차게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믿고 맡길 인재가 부족하다보니 실행단계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1960~70년대 개발독재기에 엘리트 경제관료들이 역할을 했던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외환거래다. 정부는 민간은행들의 외환거래 업무를 허용키로 했지만, 여태껏 이런 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은행원들이 복잡한 국제금융 구조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외국과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이제야 교육을 시작했지만, 당분간 진출 기업들의 금융서비스는 취약할 전망이다.
수치 여사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이끌고 있는 NLD 지도부를 보면 올해 67세인 수치 여사가 가장 젊다. 대부분 70, 80대 원로그룹이다. 차기 총선이 실시되는 3년 뒤에는 수치 여사도 70대로 접어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NLD 내에서 수치 여사 이후를 책임질 후계군은 부상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인재를 흡수해온 군부와 여당이 오히려 세대교체 이슈를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진영 내에서도 ‘세대 차이’가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지난 1988년 ‘양곤의 봄’을 이끌었던 이른바 ‘88세대’는 이번 선거에서 수치 진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이들은 인도·태국 등지에서 여전히 망명생활을 하며 군부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이 수치 진영과 선명성 투쟁을 벌일 경우 NLD는 차기 총선에서 지난 보궐선거와 같은 압승을 거두기 힘들다.
지난달 보궐선거에서 미얀마 유권자들이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에 몰표를 준 것은 민주화에 대한 그녀의 헌신을 평가한 것이지만, 국부(國父) 아웅산 장군에 대한 향수도 큰 영향을 미쳤다.
수치 여사의 부친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1940년대 일본군과 연합해 영국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영국보다 악랄한 일본의 수탈에 반기를 들고 다시 항일투쟁을 벌였다. 일본의 패전 이후 영국군이 돌아오자 장군은 직접 영국에 가서 담판을 짓고 독립을 쟁취해냈다. 하지만 그는 1947년 총선에서 승리한 지 석달 만에 반대파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수치는 10대때부터 30년 가까이 외국 생활에 나서게 된다. 인도 대사로 부임한 어머니를 따라 델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옥스퍼드를 졸업한 뒤 그녀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3년 간 일했다. 남편 마이클 아리스 박사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아들 둘을 낳고 런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등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1988년. 병든 노모를 간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실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군부의 탄압과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목격한 수치 여사는 NLD를 설립해 민주화투쟁에 나선다. 국민들은 ‘장군의 딸’에게 열광했다. 1990년 총선에서 수치 진영은 전체 의석의 80%를 석권했다. 압승은 정치적 박해로 이어졌다. 군부가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에 처한 것. 그녀는 2010년 말까지 21년 중 15년을 인야 호숫가 자택에 갇혀 지내게 된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가족과의 생이별이다. 암으로 투병하던 아리스 박사가 지난 1999년 사망할 때도 그녀는 남편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 군부가 아리스 박사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은 것.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나서 인도적 조치를 요구했지만, 군부는 “수치는 영국으로 떠나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재입국을 허락하지 않는 ‘영원한 추방’이라는 것을 잘 아는 수치 여사는 가족과의 이별을 택했다.
‘진실의 순간’ 2015년 수치 여사의 의회 입성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은 일제히 경제제재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무기와 보석류에 대한 금수조치 정도를 빼면 다 풀었다고 볼 수 있다.
개혁개방의 물결은 2013년 동남아시아경기대회(SEA Game)와 2014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담까지 쭉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애초 군부와 여당이 개혁개방에 나선 목적이 아세안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에 복귀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벤트가 끝나고 2015년이 되면 군부 여당과 수치 여사에게 ‘진실의 순간’이 닥칠 전망이다. 차기 정권을 결정하는 총선이 실시되기 때문이다. 한쪽은 권력을 쟁취하고 한쪽은 권력을 내놓는 제로섬 게임에서 국제사회의 이목과 대의명분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군부는 필사적으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수치 여사는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화를 완성하려 할 것이다. 지난 1990년 총선이 오버랩되는 이유다. 당시 수치 진영이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군부는 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에 처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와 여당이 역사의 시계를 다시 1990년으로 되돌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무엇보다 지난 1년여 동안 시행된 숨가쁜 정치개혁으로 이미 미얀마 국민들의 눈높이가 아주 높아졌다. 수치 진영뿐 아니라 모든 미얀마 사람들이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들은 미얀마를 아세안의 어엿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5년 ‘진실의 순간’에 군부와 수치 여사가 극적인 타협에 성공할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양측 모두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권력 서열 1위 탄 슈웨 장군은 2015년 82세, 수치 여사도 70세가 된다. 25년 간 반목한 두 사람이 결국에는 한발씩 물러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박만원 매일경제 아시아 순회특파원 ]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0호(2012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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