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st] {야성적 충동} 저자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 “유로존 경제 더 어려운 상황 올 수 있다”

    입력 : 2012.01.27 17: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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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경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인 적이 없다.” 미국의 경제 석학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66)는 “최근 호조를 보이는 미국 경제도 안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유로존 경제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유로존이 심각한 침체에 본격 진입하면 미국 경제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지난 1월5일부터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 나온 실러 교수는 매일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올해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유로존의 부채위기를 꼽았다. “당연히 유로존 부채위기와 금융위기가 최근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 경기는 최근 긍정적인 지표를 쏟아내고 있지만 유로존과 미국 경제의 ‘디커플링’은 힘들다고 강조했다. 실러 교수는 “유로존 경제가 침체(recession)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 경제의 거시지표가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라며 “유로존과 미국 경제간 디커플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 경제와 유럽 경제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유로존이 심각한 침체 국면에 본격 진입하면 미국 경제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그는 “미국과 유로존 경제 사이에는 50%의 상호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럽계 은행들은 미국에서 돈을 빌려다가 다시 미국에서 돈을 운용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도 “유럽계 은행들은 미국 은행이나 마찬가지”라며 “유럽 위기는 곧 미국의 위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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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러 교수는 현재 유럽이 안고 있는 부채위기는 미국도 공유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다만 최근 미국 경제가 유로존 위기에도 불구하고 강한 모습에 대해 본인도 의외라고 전했다. 실러 교수는 “사실 나조차도 미국 경제의 회복세 배경을 명확히 꼭 집어내기 힘들 정도로 최근 미국 경제는 놀라울 정도로 강한 복원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 후퇴기(slump)가 4년간 이어졌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경기후퇴가 길게 늘어지다 보니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았는데 최근 경기회복 기대가 겹치면서 다시 소비에 나서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실업률은 8.6%로 9% 밑으로 떨어져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는 것도 과거 수년 동안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다가 경기가 회복기미를 보이자 대기수요를 채우는 양상을 띠고 있다.

    실러 교수는 “소비가 늘어나면서 제조업 경기를 보여주는 미국의 거시지표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신중론을 유지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 만큼 실제로 좋은 것은 아니다”며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업과 소비자들의 신뢰가 소폭 회복되기는 했지만 절대치로 보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도 당분간 급속도로 개선되기는 힘든 만큼 미국 경제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고 (침체의) 숲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보다는 유럽을 더 걱정했다. “유럽 경제는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고 최악의 상황도 맞지 않았다”며 “유로존은 앞으로 좀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로존 체제는 다소 부침을 겪겠지만 체제 자체는 유지될 것으로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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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러 교수는 “일부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존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유로존에 가입하려고 준비했던 유럽 국가들도 일단 가입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룰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러 교수는 “그렇다고 유로존과 유로화 체제가 붕괴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전망했다. 유로화는 유럽인들에게 유대와 통합을 상징한다는 점에서다. 그는 “유로화는 유럽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며 “유로존 회원국이 줄더라도 유로존 체제는 유지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실러 교수는 이번 전미경제학회에서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학회 개막식에서 그는 ‘금융과 선한 사회’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해 인류에 도움이 되는 금융자본주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선한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 ‘B기업(Benefit Corporation)’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B기업은 기업의 목적으로 이윤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을 기업 정관에 명시하는 회사이다. 이 경우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이윤 추구 외에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적 기여를 하더라도 주주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미국에서 주주들은 주주 이익에 반하는 기업 경영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경영자들은 최우선 목표를 주주 이익에 두는 반면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노동자 해고를 가장 많이 한 기업경영자가 가장 많은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최근 금융위기가 주주자본주의의 폐해에서 비롯됐다는 진단도 있다. 주주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이익만 추구한 결과 투자 위험을 간과한 채 ‘무한투자’에 들어갔다는 해석이다. 결국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자 ‘탐욕’을 좇았던 숱한 투자 자금들을 허공으로 날렸다는 것.

    실러 교수는 “경영자들이 사회적 책임은 지지 않고 이윤만 추구하다가 월가 점령 시위가 확산되게 만들었다”며 “이를 해결할 방안 중 하나가 바로 B기업”이라고 말했다. 말로만 사회적 책임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법 제도를 활용해 B기업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금융제도를 잘 다듬고 오히려 더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내놓으면 현재 금융자본주의도 인류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안 중 하나로 파생상품 혁신의 가속화를 제안했다. 그는 “파생상품시장은 상품 투자에 대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만든 시장이지만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파생상품 시장의 혁신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파생상품이 금융위기의 주역으로 비난받고 있지만 오히려 더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는 “미국에서 대공황 이후 30년 만기 모기지 상품이 등장한 것도 만기를 늘리고 이자도 줄여 디폴트를 막아보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요즘도 파생상품을 잘 개발하면 실직이나 경기침체에 따른 소득 감소 여파로 발생하는 연체나 부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내놓은 대안 중 하나가 ‘프리플랜드 워크아웃제(pre-planned workout)’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주택을 매입한 중산층이 경기둔화로 일자리를 잃고 집을 압류당한 채 파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집값이 급락하면 자동적으로 프리플랜드 워크아웃제가 발동돼 정부가 나서서 어려움에 처한 주택소유자의 재산 상태를 파악한 뒤 금융권이 대출 금리를 낮춰주거나 대출 조건을 완화해 주도록 하는 것이다. 주택소유자가 갑작스레 대출 상환 부담에 처해 파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데는 의학의 발전이 있었지만 금융의 힘이 컸다”며 앞으로 금융시스템을 개선한다면 인간 수명은 물론 인류를 위한 제도를 고안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러 교수는 세제 개혁도 주문했다. 특히 부자 증세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월가 점령 시위에서 보여주듯이 소득격차에 대한 불만이 반자본주의 의식을 키우고 있다”며 “소득격차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자 증세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지난 1980년 미국 소득 상위 1%가 벌어들인 연봉이 중간치 연봉의 12.5배였는데 지난 2006년에는 이 같은 격차가 36배로 확대됐다”며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대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공감했다. 그는 “연봉 격차가 40~50배로 벌어져 소득 불평등성이 더욱 커졌을 때 부자 증세를 해야 한다고 하면 누가 반대하겠느냐”고 반문하고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걷는 것이 소득 불균형 심화를 막는 보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금융산업 심장인 월가에서 ‘월가 점령’ 시위가 벌어졌지만 월가 금융 CEO만큼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왜 ‘실리콘밸리 점령’ 시위가 발생하지 않을까.

    실러 교수는 이에 대해 “스티브 잡스 같은 CEO가 얼마만큼 연봉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큰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큰 반발이 없었을 것 같다”며 “금융권 보수에 대한 불만이 유독 큰 것은 아마도 제조업은 손에 잡히는 제품 실물이 있지만 금융거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자유 경쟁 속에서 독창적 기술 개발로 돈을 벌고 있지만 금융산업은 경쟁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선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월가 점령 시위대가 금융산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은 금융위기 때 정부가 지원하고 이익을 내도록 독점적 기회를 줬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 로버트 실러 교수는 지난 2008년 미국 증시 폭락과 이에 앞서 부동산 가격 폭락도 예견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 석학이다. 특히 2000년에도 ‘비이성적 과열’이란 책을 통해 뉴욕 증시의 거품을 지적했다. 곧바로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그의 진가는 일찍부터 인정받았다. 그의 이론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이 시장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명제를 깔고 있다. 수요와 공급 때문에 인간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이에 따라 시장은 균형을 찾아간다는 합리적 기대가설에 반대하는 셈이다.

    2005년엔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30대 인물’ 중 한 명으로 그를 선정했다. 지난해 블룸버그는 ‘세계 금융계에 영향력 있는 50인’ 중 한 명으로도 그를 꼽았다.

    미시간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2년부터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시카고=김명수 / 매일경제 뉴욕 특파원·박봉권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7호(2012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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