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ilosopher] 마이클 샌델, 한국에서 정의 논쟁에 홀리다

    입력 : 2011.11.28 16: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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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 샌델 교수는
    1953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유대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975년 브랜다이스대학을 졸업하고 로즈장학금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발리올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7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강의 ‘정의론(Justice)’은 20여 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해 하버드대 역사상 가장 많은 학생이 들은 강좌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의 강의는 학기마다 하버드대 학생 1000여 명이 듣고 있고 온라인으로도 전 세계에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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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확실히 ‘무대 체질’이다. 결코 쉽지 않은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대박을 기록하고 한국에서 초유의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 지난 10월에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 1000명 가까운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하면서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했다. 더욱이 인터넷 동영상 강의에서 익히 보아 왔던 또박또박 ‘신기하게 잘 들리는 영어’로 말이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샌델 교수는 자신의 원고를 수정하고 검토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 앞서 강연을 했던 그의 친구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그를 가볍게 포옹하고 등을 두드리면서 행운을 빌었다.

    미국과의 시차와 빡빡한 일정 때문에 2시간도 채 자지 못한 상태였지만 샌델 교수는 그를 반기며 사인과 사진촬영을 요청하는 독자 팬들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 인문학 책으로는 이례적으로 10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그가 한국에서 받은 인상은 무엇일까.

    “한국의 무상급식 논란은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경제적 이론과 철학들이 실생활에서 나타나고 적용되는, 흥미로운 대표적 사례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풀어갈 지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

    샌델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 정의, 공정함, 공동선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세계지식포럼이 끝나고 귀국한 후에도 본인과 대담을 가졌던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씨가 무소속 후보로 서울 시장에 당선됐다고 알려주자 기자에게 당선 축하 인사를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담 당시 그는 박 시장이 유력한 후보라는 사실을 알고 나란히 비춰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으나 많은 부분에서 서로 조응하는 편이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 정책을 기획한 임태희 대통령 실장과의 면담에도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무상급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복지를 어떻게 제공하느냐에 대한 두 원칙이 충돌한 것이다. 정의론은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품고 있기 때문에 끝장토론을 하기에 적합한 흥미로운 주제이다.”

    한편에서는 재정을 고려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차별적으로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으로 소외받거나 모욕감을 느끼지 않게 모두에게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공정사회’ 논란 뜨거운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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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델 교수는 한국에서 대기업의 가격파괴 정책이 영세상인들을 위협하는 것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도 흥미를 보였다. 이는 지난 1920~1930년대에 미국에서 한창 뜨거웠던 체인 스토어(chain store) 논쟁과 맞닿아 있다. 저렴한 제품 가격과 영세상인 보호라는 두 가지 원칙의 갈등을 보여준 사례로 간단히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라고 답했다. “대공황으로 어렵던 시절 미국 주정부들이 영세상인 보호를 내걸고 대형 체인점들이 영업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적이 있었다. 대기업 독점에 따른 정치적 영향력이 민주정부와 자치에 해롭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생산자보다는 소비자로서 시민의 입장이 강조되고, 랄프 네이더가 주도하는 소비자운동이 일어나면서 미국에서 이 논쟁 자체는 많이 약화됐다.”

    샌델 교수는 “한국인들은 시장이 경제성장을 위해 가치 있는 수단이지만 시장 그 자체로는 소득과 부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공정한 것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라며 “불평등 문제에 대해 우리가 시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에 따르면 불평등은 경제성장의 부산물로 나타났으며, 사회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도전 과제를 던져줬다. 정의의 의미와 공정함의 의미,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돼 버렸다. 그가 방한할 즈음 폭발해 확산되기 시작한 ‘반월가 시위(Occupy the Wall St)’처럼 말이다.

    그는 2012년 봄 출간될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What money can´t buy)>에서 집중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돈(시장)과 중요 가치들이 언제 갈등을, 충돌을 빚게 되는 지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한국과 관련된 많은 질문들을 받았지만 본인은 ‘방문객’일 뿐이라면서 말을 아끼던 그가 신간에서 이런 얘기들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샌델 교수는 2005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철학 강의를 했을 때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된 후 두 번째 방한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것을 올해 세 번째 방한에서 목격했고 또 흥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동서양 문화의 차이에서 정의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정했다. “유교 전통에서는 개인의 완성과 도덕에 집중하지만, 서양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사회계약을 강조한다”는 그는 다만 “동서양 모두 덕에 기반한 윤리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샌델 교수가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정의’의 개념은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의심받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떠한가. 그는 사실 시장경제의 가치가 사회 곳곳에 침투해 가는 현상에 대해 금융위기 이전부터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 왔다. 그의 지적대로 금융위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탐욕’에 대한 맹신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한국이 이후 다른 가치들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샌델 교수는 “가족과 이웃, 공동체 의식 등 가치는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훼손되기 쉽다”고 말했다. ‘시장경제(Market economy)’와 ‘시장사회(Market Society)’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할 두 가지 개념이지만 어느새 경계가 모호해졌고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시장경제가 생산적인 활동을 조직하고 삶의 질을 끌어 올리는 데 중요한 수단임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시장사회는 인간관계나 사회관계가 시장적 사고방식과 물질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아 훼손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금융 회사들이 무모하게 리스크를 안으면서 위기가 초래됐는데 이와 관련해 미국 정부는 금융 산업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로 변질됐다는 비판에 상당 부분 공감했다. 정부가 공공 목적에 부합될 수 있도록 금융 산업을 규제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선거 캠페인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후보들이 정치헌금에 심각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정치헌금의 주 원천인 금융 산업을 규제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금융 산업을 규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자금 시스템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샌델 교수는 결과적으로 “경제학자들 뿐 아니라 우리 시민 모두와 정치 지도자들이 공동체 가치, 시민 책임,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우리 각자 ‘좋은 시민(Good Citizen)’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의 미덕을 배우고 공공선을 배려할 줄 아는 게 ‘좋은 사회’란 것이다.

    “첫째, 시민들이 책임감을 갖고 공적인 일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신문을 읽고, 뉴스를 따라가고, 주변 세상에 대한 정보로 무장해서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공공선을 향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과 가족의 삶뿐만 아니라 더 큰 공동체에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샌델 교수는 미국 뿐 아니라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창출하고 배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전 세계 민주주의 일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범위한 불만족 현상은 ‘공동체의 도덕적 구조(Moral Fabric of Community)’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공동체의 도덕적 구조란 가족과 이웃, 공동체, 도덕적 의무, 시민 상호 간 의무와 같은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적어도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가 가져온 안타까운 부작용으로 공동체 약화에 기여하고 부분적으로 사회 불평등 심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본인을 일차적으로 소비자로서 인식하고, 이차적으로 시민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다 함께 해롭다.”

    시장경제와 공정성 상충하지 않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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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델 교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지 여부가 건강과 교육, 복지, 경제성장 등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대단히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경제성장과 공정성(형평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좋은 사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종종 이 두 가지는 상충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지지만, 나는 반드시 상충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취약층과 중산층을 모두 포함하는 시민이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경제성장이 특정 단계에 도달했을 때 대도시나 국가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의 능력과 기술이 충분히 발휘되어야 한다. 가난한 경제적 배경 탓에 몇몇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그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이 공정함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 사회 전체로서 가능성을 100% 실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특정 단계에서 혜택을 덜 받은 사람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을 사회 안에서 끌어안는 것이 그들만의 공정성 뿐 아니라 공공선을 위해, 미래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누구 하나를 낙오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하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더 강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경제성장과 공공선, 공정성은 함께 갈 수 있고 모든 시민들의 능력이 이에 함께 기여할 것이다.”

    샌델 교수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무엇보다 구성원들 사이에서 활발한 토론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점점 더 글로벌화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시민들이 서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습관과 능력을 배워야 한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면서, 다른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하더라도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이미 중국과 일본, 미국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온라인 토론 수업을 진행해본 경험이 있다.

    “결론을 내고 정책을 집행하기보다는 공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게 정치철학 교수로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유학을 가기 전 젊은 시절 한때 변호사나 정치 전문 기자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정치철학 교수로서 젊은 엘리트들이 공적인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돕는 것도 보람이 있다.”

    [이한나 / 매일경제 사회부 기자 azur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5호(201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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