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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ian] 박근혜의 경제공부 ‘통섭(通涉)’을 배운다
입력 : 2011.11.28 16: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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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를 한다고 해서 경제학 서적만 파는 식으로 해당 분야에 대해서만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 과거보다 정책적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박 전 대표의 경제교사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히는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방식을 ‘통섭(通涉)’이라고 정의했다.
분야를 넘나드는 정책 내공, 이것이 과거 대선 경선과 이번 대선에서 박 전 대표가 달라진 점이다.
지난 11월1일 고용복지를 화두로 내건 것도 단순히 ‘고용’에만 머무르지 않고 약자를 위한 ‘복지’를 여기에 결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세미나에선 구체적 재원마련 계획 등이 나오진 않았지만, 법안 발의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인덕대학에서 학생들과 대화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를 위해 박 전 대표는 ‘케이스 스터디’를 즐긴다. 어떤 특정 이슈가 사회적으로 부각돼 문제를 일으키거나, 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경우 이를 두고 전문가들과 ‘끝장토론’을 벌이면서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식이다.
과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통큰치킨’이나 ‘이마트피자’ 등도 모두 박 전 대표의 케이스스터디 대상이었다. 이 같은 스터디를 위해선 방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만큼 기본기 닦기에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기본기를 쌓기 위해서 박 전 대표는 전문가 풀도 최대한 넓혀 놓은 상태다.
박 전 대표의 비공개 일정 대부분은 이들 전문가와의 만남으로 채워져 있다는 후문이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한 분야당 수십 개의 정책팀을 만나고 있으며, 이들 팀은 최소 4~5명으로 꾸려져 있다. 얼마나 방대한 인력풀인지 알 수 있다”면서 “특히 경제 분야는 잘게 쪼개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토론한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인력풀은 전문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실질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일반인을 만나는 일도 부쩍 늘었다.
자신이 주최하는 토론회나 세미나에 전문가뿐만 아니라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자신의 사연을 절절하게 호소하는 ‘국민패널’을 초청하는 일은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으로 보인다.
11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대학 강연도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소위 ‘현장실무형 공부’를 통해 완성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박근혜의 브레인들국가미래연구원 출범식 이한구 의원 / 최경환 의원 안종범 교수 / 신세돈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1998년 박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던 당시부터 정책 조언을 아끼지 않은 오랜 인연의 경제학자다. 한국은행과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을 거쳐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국가미래연구원의 이사로서 팀을 꾸리고 있기도 하다.
김영세 연세대 교수는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의 남편이자 그 역시 박 전 대표를 2007년 대선 경선 당시부터 도왔던 경제 브레인이다. 국가미래연구원의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광두 전 서강대 교수는 박 전 대표와 동문으로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 전 대표의 대표적 경제정책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며 법질서는 세우기)’를 만든 핵심 인사다. 서강대 교수를 지내다가 지난 8월 말 예정보다 빨리 서강대를 명예퇴직해 국가미래연구원장으로서의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최외출 영남대 교수는 박 전 대표가 한국미래연합 대표를 지내던 시절부터 정책 자문을 해온 인물로 5인회 멤버 중 유일하게 지방에 머무르며 지방 네트워크를 쌓고 있는 인물이다. 지역 및 복지행정 관련 전문가로 박정희리더십연구원장이라는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내려와 박 전 대표의 경제자문 역할을 하는 이들도 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남 전 국무총리는 박 전 대표의 후원회장을 지냈으며 지난 대선 경선 당시 경제자문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세종시 문제에 있어서는 다소 이견을 보였으나 박 전 대표와 꾸준히 연락하며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김용환 전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 문제가 터졌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박 전 대표를 지지했다. 세종시 수정안에 박 전 대표가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밝힌 배경에 김 전 의원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졌다. 김종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경제통으로 박 전 대표가 기재위 활동을 할 당시 자주 의견교환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인혜 / 매일경제 정치부 기자 inhyeplove@mk.co.kr]
박근혜의 경제 철학, 성장보다 고용 우선 박근혜의 경제정책은 철학
·국민 행복
·원칙이 바로선 자본주의
·성장보다 고용 우선 기업관
·친 대기업 중심 정책 탈피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배려 세제
·소득세 감세 철회해도 법인세 감세는계속돼야
·부자 증세에는 반대 금리·환율정책
·인위적 저금리
·고환율 정책 반대
·가계부채
·물가 선제적 대응 복지정책
·선별적 복지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
·고용과 복지 시스템 연계
·공급자 편의가 아닌 수요자 맞춤형으로
박 전 대표의 경제관의 밑그림은 지난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 초청 연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되던 당시 그는 특강을 통해 ‘국민 행복’과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disciplined capitalism)’라는 양대 화두를 꺼내들었다.
그는 당시 “자본주의의 핵심가치인 ‘자기책임의 원칙’이 지켜질 때, 자본주의도 지켜질 수 있다”며 “경제 발전의 최종 목표는 소외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그가 추구하는 국민행복 개념은 지난 2008년 2월 취임초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주장했던 국민행복지수와 맞닿아 있다. 국가의 진정한 경쟁력은 단순히 국가의 물질적인 부만을 반영하는 국내총생산(GDP) 증진에 머물러선 안되며 보다 평등한 소득분배, 환경, 복지 등을 통해 국민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느냐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란 표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대기업 중심의 고도 압축 성장이란 결과론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대·중소기업 간 관계 재정립, 경제 정의, 부의 편중 구조라는 성장의 그늘도 다시 한번 되짚겠다는 의지 표현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경제 철학은 지난 11월1일 행해진 고용복지 세미나에서 다시 한번 구체화된다.
그는 이날 인사말에서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 핵심 연결고리가 고용 복지”라며 “앞으로 고용률을 우리 경제정책의 중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압축 경제 성장으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면 그의 딸은 이제 성장이 아니라 고용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좌표로 제시한 것이다.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가 재정적자를 이유로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하고 그 여파로 글로벌 경제가 휘청되자 박 전 대표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재정건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면서 “재정건전성이 우리나라 경제의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강조는 이번만이 아니다. 국회상임위를 기획재정위로 옮긴 2010년 6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질의응답에서 박 전 대표는 “우리의 국가부채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면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이 1987년 12.3%에서 2009년 33.8%로 거의 3배나 증가했다”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같은 해 9월 기재위 전체회의에서도 국가부채와 공기업부채로 인해 암묵적 재정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투명한 재정운용과 중기적 시각에 입각한 체계적인 재정관리를 주문했다.
박 전 대표가 추구하는 복지도 그래서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이른바 ‘3무1반’으로 불리는 야당의 보편적 복지 공세와는 궤를 달리한다.
여기에는 소득과 사회 서비스의 균형을 맞춰 선제적 맞춤형 복지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공짜 복지는 아니다. 복지에도 개인 책임을 강조한다.
지난 8월 고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서 그는 “어려운 분들을 단순히 도와주는 것을 넘어 그분들이 꿈을 이루고 행복해질 수 있게 국가가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세심하게 지원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복지”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또 “어머니(육 여사)는 단순히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를 갖게 도와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자립과 자활을 중요하게 생각한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8월에 또 “앞으로 복지를 확충해 가야 하겠지만, 그런 방향은 맞지만 뭐든지 복지는 무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면서 “재정 여건에 따라서 복지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한국형 맞춤 복지도 가능하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는 저금리·고환율 기조를 유지하면서 수출 중심의 ‘친기업정책’을 펼쳤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정책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줬지만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 심화, 물가 급등, 서민생활 불안, 양극화 심화라는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
금리·환율이란 거시 정책 수단을 운용하는 방법론에서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 견해를 달리한다.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거나 논쟁을 하지 않는 박 전 대표는 지난 6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설전(舌戰)’을 벌일 정도로 충돌했다. 그만큼 소신이 강하다는 얘기다. 박 전 대표는 “가계부채 문제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리 정상화 타이밍을 늦추지 말았어야 하는데 한국은행의 뒤늦은 금리정책이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얘기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전문가들은 금융 당국이 작년 초부터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금융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손질했다면 이런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며 “한국은행은 금리인상 시기를 늦춰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고 볼 수도 있다. 뒤늦게 금리를 올리자니 서민가계 파탄과 금융기관 부실이 걱정되고 저금리를 유지하자니 물가가 오르고 가계부채가 더 증가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든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전에도 박 전 대표는 기재위 회의에서 “물가도 가격이 오르고 난 후에 사후적으로 물가대책을 마련하는 ‘물가지수 관리’보다는 선제적 대응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이건희 삼성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비상 상황에서 재계총수들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서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배려 차원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기업관, 특히 재벌 총수들에 대한 입장은 좀 더 원칙론에 가까워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금융위기의 첫째 원인으로 탐욕이란 도전에 직면한 민간 부문을 꼽았다. 이익의 극대화에만 치우쳐 그에 따른 책임과 사회의 공동선을 경시했다는 경고였다. 박 전 대표는 자본주의를 모든 경제철학의 전제로 깔면서도 그 속에서 그 경제주체들의 책임을 강조한다. 경제주체의 궁극적인 목적인 이윤 추구도 중요하시만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소기업 상생, 기업윤리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박 전 대표가 반기업적이란 의미로 해석해선 곤란하다. 세종시 이슈부터 시작해 박 전 대표가 깐깐하게 고집해 온 것은 재벌 회장이나 중소기업 사장이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며 ‘법대로’에 예외가 있어선 안 된다는 박근혜식 원칙주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그는 금융위기 도래 원인을 ‘자본주의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the Undisciplined Capitalism)’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정부 여당은 지난 9월 당정협의를 통해 결국 소득세·법인세 최고구간 세율 인하, 다시 말해 부자감세 철회에 결국 동의했다. 세율을 낮춰 민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던 MB노믹스의 포기였다.
하지만 지난 연말부터 계속된 부자감세 논쟁에서 박 전 대표는 소득세 추가 감세는 철회하되 법인세 감세는 예정대로 계속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했다. 일등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사회구조와 경제 위기에서 가중되는 양극화 속에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위해선 가진 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양보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 일각에서 터져 나온 부자 증세 논란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법인세 문제는 결국 그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박 전 대표는 글로벌 투자 유치 과정에서의 국가 경쟁력 확보나 일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의지를 북돋워주기 위해선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는 당초 방침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이근우·박인혜 매일경제 정치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5호(201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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