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효상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선함과 아름다움 진실함이 곧 디자인이다"

    입력 : 2011.09.15 16: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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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9월2일 네 번째 막을 올린다. 52일간 축제에 내세운 주제는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 풀어 말하면 ‘디자인이라고 일컫는 디자인이 늘 디자인이 아니다’란 역설이자 도발이다. 도덕경의 도경 첫 장에 나오는 구절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을 인용한 것인데, 관람객에게 ‘과연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대놓고 묻고 있다. 질문의 중심에 선 이는 디자인 총감독을 맡은 건축가 승효상이다. 학동 수졸당, 남양주 수백당, 파주출판도시, 웰콤시티, 베이징 장성 호텔, 아부다비 문화지구 전시관, 쿠알라룸푸르 복합빌딩 등 이른바 ‘빈자의 미학’과 ‘반기능적 디자인’을 주창하며 중국과 유럽, 미국 등지에 한국적 기운을 전파하고 있는 건축계의 가장 핫한 인물이다. 그는 돌아가는 수고로움이 불평을 낳더라도 생각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한다. 편하고 기능적인 배치가 환영받는 시대에 언뜻 이해보다 의심이 앞서지만 트렌드를 거부한 그의 역설은 늘 대중의 관심을 벗어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수졸당과 수백당은 지어진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꼭 한번 살고 싶은 집으로 회자되고 있다. 편한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움직임이 다소 불편한 그의 디자인이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디자인이 다 디자인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니, 어딘가 맞닿은 연결선이 연장선을 만든 것 같아 괜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한 달 여 앞둔 시점에 승효상을 만났다. 그를 만나기 위해 들어선 광주행 고속도로는 퍼붓는 물 폭탄에 앞뒤 분간이 힘들만큼 어지러웠다. 그런데 웬걸,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얇아진 빗줄기가 쨍한 기운을 이끈다. 눈앞이 훤해졌다.

    디자인비엔날레 현장이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만들고 있다. 바쁠 수밖에 없지. 총감독을 맡으면서 개막 45일 전에는 광주 현장에 상주하기로 했거든. 그렇다고 서울에서의 일도 놓칠 수 없으니 왔다갔다, 해외에서 일이 생기면 그곳도 왔다갔다한다.

    디자인 총감독의 업무 범위가 상당히 넓다던데. 200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전시기획을 하기도 했는데,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세계적인 행사라 우선 규모부터 엄청나게 크다. 종래의 경험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 특히 수백 명의 작가를 상대하다 보니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큰 스트레스? 그건 역시 사람이다. 이 일이 끝나면 아마 성질이 바뀌지 않을까. 성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거든. 모셔오려면 빌거나 사정도 해야 하고 일이 되려면 머리 나쁜 이들 설득도 해야 하고 관료들 앞에 허리도 굽혀야 하고. 속에 꾹꾹 눌러 참고 있는데, 행사가 끝나고 나면 둘 중 하나겠지. 성격이 바뀌든지 폭발하든지(웃음).

    전시 작품이 꽤 많다. 전 세계 수백 명의 작가를 만났고 그 중 44개국의 내로라하는 150여 명의 작가가 초대됐다.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선 광주시와의 조율도 무시할 수 없는데. 전폭적인 지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충분치 않은 예산은 늘 아쉽지(웃음). 베니스비엔날레 예산이 약 450억원이라는데 10분의 1 정도 수준이다. 물론 그럼에도 준비하는 이들은 최고다. 외국인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대단한 큐레이터들이 개막 채비를 갖추고 있다.

    비엔날레의 경제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플러스 마이너스를 잘 맞춰야겠지(웃음). 전시에서는 남는 게 없다고 해서 디자인을 통해 남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난 건축가이니 광주의 도심에 소규모 기능성 도시 공공건축물을 조성하는 ‘광주폴리’를 기획했다. 건축은 영구적으로 남는 것 아닌가. 광주폴리의 예산은 따로 책정해 작업했다.

    도시 공공건축물? 도시 재생산을 의미하는 건가. 낙후된 도시의 자극제가 아닐까. 그러한 건축물에 자극을 받은 주변 여타 건물이 공공성을 수용해 새로 태어나면 지역 전체가 바뀌게 된다. 그 작업을 십여 군데에서 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인 작업이니 어느 순간이 되면 도시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겠지. 이 작업은 광주시가 향후 10년 동안 지속하기로 했다.

    광주디자인비엔나레 큐레이터 및 스태프들과의 회의
    광주디자인비엔나레 큐레이터 및 스태프들과의 회의
    21세기는 소비자가 디자인을 결정하는 시대 상당히 바쁜 건축가로 꼽히는데, 특별히 총감독직을 수락한 이유가 있나. 재단 이사장과 아주 친하다(웃음). 권유를 이길 수가 없었지. 또 안 해본 일이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음…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디자인이 오용 내지 남용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 주제로 말도 많이 하고 기고도 많이 했었기 때문에 뭔가 실천해야 겠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디자인이 과연 무엇인가를 보여주자는 거창 신념 아래 수락했다.

    주제도 직접 선택했는데, 다분히 승효상스럽다. 황당스럽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웃음). 난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란 주제를 세운 것으로 내 임무의 50%는 이미 마쳤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잘해야 본전이란 소리도 들린다. 올해가 네 번째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인데 이전 비엔날레는 모두 성공을 거뒀다. 또 세 번 모두 시각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총감독을 맡았거든. 건축가로선 처음인데 기대하는 바가 더 클 수도 있고 어쩌면 ‘이놈 어떻게 하나 두고보자’ 할 수도 있으니 나온 말이겠지.

    그래서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럴수록 원래 생각했던 아이디어, 본질에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한다. 섹션마다 각각 뚜렷한 목표가 있다. 관람을 오는 분들이 스스로 디자인이 무엇인가 사유하게 만들 생각이다.

    그렇다면 과연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관람객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야 할 문제다. 뭔 전시가 이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전시가 디자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풀 수 있도록 중간 중간 장치와 요소를 설정했다.

    수만 가지 답을 원한건가. 본질적으로 선함과 아름다움, 진실함을 고양시키는 게 디자인이다. 고양하는 바가 각자 다를 텐데 총체적으로 이게 디자인이다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산업혁명 시대 이후의 디자인은 한 사람이 즐기던 것을 대량을 만들어 공급하는 게 목표였다. 항상 공급자가 디자인을 결정해 왔지. 허나 지금은 소비자가 디자인을 결정하는 시대다. 스마트폰만 보더라도 스스로 필요한 어플을 선택해 원하는 디자인으로 꾸미고 있다. 달라졌지. 공급하는 이의 의사와 전혀 무관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시기에 디자인이란 무엇일까란 문제는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디자인과 더불어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주요 도시 중앙광장은 봉건적 사상 현 시기 디자인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텐데. 사실 가장 꼴불견은 아무 데나 디자인을 갖다 붙이는 일이다. 특히 지자체들이 앞장서서 디자인 거리니 위원회 등을 만들고 무슨 열풍처럼 이야기들 하는데, 생각하는 부분은 그저 립스틱 바르는 정도…. 그것도 두껍게 바르면 디자인을 잘하는 줄 아는 식이니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갑자기 서울이 떠오른다. 여름 폭우에 얘기들이 많았지. 문제가 좀 더 심하게 대두된 것 같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서울이 너무 시각적 효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니 공공디자인이란 본질을 놓치고 보기에 예쁜 것만 탐닉한다. 공공영역에 손을 대지 않으니 더 큰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예컨대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라니. 오페라하우스 하나가 생기면 도시 전체가 바뀐다. 주변에 카페나 상점이 들어서니 당연히 구조가 바뀌겠지. 그런데 노들섬에 들어서면 바뀔 주변이 있나. 도시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 도심에 웬 중앙공원이 그리 많은지. 중앙숲이나 중앙광장을 만드는 건 전형적인 봉건시대의 도시구조다. 중앙이 생기면 변두리가 생기게 마련 아닌가. 그보다 바로 옆에 모든 게 있는 도시가 중요하다. 그게 공공영역인데, 도시 디자인이란 건 공공영역의 디자인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꾸 스펙터클한 이미지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종종 비난하곤 한다(웃음).

    그런 비난이 대중을 움직인건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대중적인 건축가가 됐다. 그게 참 이상하고 부담스럽다. 언론에 다른 분을 소개해도 자꾸 내게 말을 걸어온다. 앞길을 못 가리고 함부로 얘기하다 보니까(웃음).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는 게 흔한 세상이 되긴 했다. 나 또한 외국에 나가 설계를 하니 외국 건축가들의 작품도 당연히 국내에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건 그들이 이 땅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나서 설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기 동네에서 세울 수 없는 건물을 이 땅에서 실험하듯 세우는 건 우리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선 아직 건축이 부동산이다. 고로 건축가를 쇼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건축주를 만나면 건축가들이 함부로 대하지. 절대 그 땅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굉장히 오만하게도 이 건물이 이 땅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으면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다고 대답하는 건축가들도 있다. 그런 건물을 보면 너무 억울하다. 그런 건축가들을 비난하는 것이지 모든 외국 건축가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눈에 거슬리는 건축물을 꼽는다면. 최근 한 언론사에서 워스트 건물을 꼽았는데 1위가 광화문 광장, 2위가 청계천, 3위가 종로타워였다. 광화문 광장과 청계천은 토목 사업이지만 종로타워는 라파엘 비뇰리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거든. 고궁 앞인데 그 땅을 무시하듯 거대하게 세웠다. 그런데 정작 이 건축가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이 건물을 꼽느냐? 전혀, 절대 거론하지 않는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는 또 어떤가. 역사적으로 사연 많은 그 땅에 그 스스로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다니, 이런 오만방자한 소리를 듣고만 있어야겠나.



    이제 이순(耳順), 본격적인 건축은 지금부터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끝나면 다른 계획이 있을텐데. 여기서 얻어 지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다시 건축으로 되돌아가야지. 이제 이순이니 본격적으로 건축을 해야 할 나이다.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꿈은 파장이 긴가보다. 세계 최고령 건축가가 브라질의 오스카 니마이어인데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분이다. 올해 105세가 됐지. 여전히 작품 활동이 활발하다. 작품을 받으려고 줄 서 있다. 그 분이 5년 전에 100세 기념으로 새 장가를 갔다. 건축가의 롤모델이지(웃음).

    [안재형 기자 ssalo@mk.co.kr│사진 =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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