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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캘린더 사진의 大父, 사진작가 이용정
입력 : 2011.05.06 10: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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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사진작가 이용정씨가 빛을 발했다. 서울대 미대 출신인 이 작가의 카메라 앵글엔 신인배우부터 스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배우가 속살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상업 사진작가 1세대인 그는 “1970년대 초반에는 방송 PD보다 내 입김이 더 셌을 것”이라며 당시 캘린더의 인기를 전했다.
서울 정릉에 위치한 작가의 집엔 수많은 여배우들이 쉬어갔다는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40여 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기자와 마주한 작가는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이었다. 지나간 세월동안 캘린더의 인기는 사그라졌지만 작업실 한쪽엔 누드모델의 캘린더가 2011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타의 등용문, 캘린더
잘 풀린 이유가 있었을 텐데. 광고도 별로 없던 시절인데 저절로 일이 들어온 걸 보면 서울대 미대를 나왔다는 학력 때문이 아닐까. 그때만 해도 통하는 시절이었으니까(웃음). 또 스스로 생각해도 사진과 잘 맞더라고. 사진을 하려면 끼가 있고 멋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왔거든. 그렇게 취미로 시작해서 업을 삼았다.
꽤 늦게 사진을 시작했다. 스튜디오를 연 게 마흔이지. 그 전엔 정부기관과 KBS의 청탁으로 간행물의 사진을 담당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프리랜서지. 그러다 스튜디오를 차리고 캘린더 사진을 찍었다.
당시에는 캘린더 산업이 번성했나보다. 번성은 무슨. 힘들었지. 기성 캘린더라고 해서 일단 작업한 캘린더 아랫부분에 주문한 업체명을 찍어 내보내곤 했다. 그렇게 캘린더를 만드는 곳이 열 곳이었는데, 내가 여덟 곳은 독점하다시피 했다. 여러 군데를 맡더라도 작업은 다 다르게 하려고 했지. (자료를 뒤적이며)여기 있는 사진을 보면 조금씩 다 달라. 모델도 그렇고 포즈도 그렇지. 운이 좋았다는 건 아주 열악한 상황에서 잘 풀렸기 때문이다. 한 20명 정도 되는 사진작가 멤버들 중에 잘 된 사람은 서너 명밖에 없거든. 그땐 기업이 많지도 않았고 청탁을 받기도 쉽지 않았으니까.
열악했다? 그런데 반대로 캘린더 모델은 전부 유명배우였다. 그랬지. 서로가 캘린더에 나오려고 했다. 그 당시에 내 앵글에 들지 않은 남녀 배우가 없었으니까. 그만큼 자신을 알릴 수단이 없었거든. 자신을 광고할 매체가 없으니 더 했겠지. 그래서 대중에겐 캘린더가 인기였고.
지금 봐도 캘린더의 비키니 수위가 파격적이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부터 시작했는데, 그땐 서로가 비키니를 입고 찍으려고 했는걸. 지금이라면 그 쟁쟁한 분들이 안한다 했겠지. 그만큼 매체가 없었고, 또 자기들끼리 경쟁심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혜숙, 이효춘이 캘린더 모델로 나섰는데 나도 나가야지 싶은 거야. 마지막으로 비키니 컷을 찍은 게 이혜숙, 최명길이었는데, 그 뒤 등장한 배우들은 안하더라고(웃음).
당시 모델료는 어느 정도였나. 김창숙과 제주도에서 작업할 때 2만~3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여타 다른 비용은 다 지원했지. 그때 남자 배우와도 함께 작업했는데, 볼링내기를 해서 한턱 쏘기로 했거든. 내가 이기는 통에 두 사람이 술값을 계산했는데 7만원이 나오더라고. 돈을 따졌다면 배우들이 그렇게 지냈겠나. 그만큼 캘린더 모델로 나선다는 데 의미를 뒀다.
이른바 스타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나중에는 내가 선택해서 작업한 배우들이 방송에 출연하더라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 배우는 정애리야. 그때 내가 골프에 미쳐있어서 신인이었던 정애리와의 약속을 세 번이나 펑크 냈거든. 그런데 네 번을 찾아오더라고. 그때부터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배우들과의 스캔들도 났을 법한데. 그걸 말이라고 해(웃음). 나쁜 말로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아닌가. 초창기에는 아마도 PD보다 내 입김이 더 셌을 거야.
사진은 인물로 시작해 인물로 끝난다 언제부터 사진을 접한 건가. 중학생 시절부터 카메라가 좋았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운이 좋았다. 이북이 고향인데, 서울에 와서 배재고 뒤를 돌아가다 마침 야구부 애들이 캐치볼을 하고 있기에 같이 했지.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배재고에 야구특기생으로 들어갔다. 북에서도 야구를 했었는데 볼을 잘 잡았거든. 그런데 마침 배재고 1회 졸업생이던 이승만 박사가 학교에 온 거야. 호주머니 넣고 다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당시 경무대 사진사가 실수를 했는지 내 사진을 찾더니 쓰더라고. 경무대에서 칭찬받았다고 학교에 사진부가 들어섰다. 사진하고 더 가까워 졌지.
정작 대학에선 미술을 전공했다. 그것도 운이 좋았는데(웃음). 친구가 대신 원서를 내줘서 어렵게 합격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게 당시 미술대 학장이 책 하나를 찍어 달래서 접사를 했거든. 당시는 접사가 쉽지 않아서 학장이 전문 작가한테 부탁했더니 꽤 많은 비용을 요구했다더라고. 적은 비용으로 찍어다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사진 강의가 선택수업으로 개설됐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사진 강의가 생긴 건 서울대가 최초였지. 그렇게 사진이 늘 취미가 됐고 붙어 다녔다.
사진은 언제 처음 접하게 된 건가. 중학생 때 운동을 좋아해서 시합이 끝나면 기념사진을 찍곤 했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니면 여학생들한테 인기도 좋았고(웃음). 남에게 배운 건 아니고 전부 독학이었지. 그렇게 인물을 찍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러네. 난 사진은 인물로 시작해서 죽을 때도 인물로 죽는다고 생각한다.
인물로 시작해서 인물로 끝난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을 텐데.남정임 / 윤정희 / 김창숙
지금도 여전히 현역인데, 작업은 어디서 하는 건가. 스튜디오를 2개월 전에 닫았다. 안되니 닫을 수밖에(웃음). 그래도 아직 찍어달라는 청탁이 있어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 섭외를 하나. 모델 에이전시에 부탁해서 예쁜 애들을 섭외한다. 프로필 사진 가져오라 하면 산더미처럼 가져와. 그게 직업이니 당연한 일이겠지.
2011년 캘린더는 누드가 많다. 사모님께선 싫어할 것 같은데. 결혼할 땐 싫어하기도 했지. 지금은 그러려니 하더라고(웃음). 우리 와이프는 다르다. 내 생활이 있고 와이프 생활이 있는데 서로 지킬 건 지켜야지.
인물 사진의 노하우를 꼽는다면.장미희 / 한혜숙 / 정윤희
[안재형 기자 ssal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호(201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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