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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ory] 김승유 회장의 금융 인생역정
입력 : 2011.01.17 21: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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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보다 더 뛰어난 인맥은 고려대 경영학과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동기동창이다. 세간에는 ‘속 깊은 얘기를 툭 털어놓고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대통령이 대선주자 시절이던 2007년 2월 김 회장은 이 대통령과 함께 고려대 경영학과 합격생들에게 축하 전화를 돌린 바 있다. 이밖에 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등 쟁쟁한 인사들이 김 회장과 같은 고대 경영학과 61학번이다. 김 회장은 고대 61학번 동기회에도 가입돼 있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유지담 전 대법관, 송정호 전 법무장관 등 40여명이 회원이다. 이 같은 인맥은 김 회장의 든든한 뒷배경이 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현재 경쟁자들도 모두 고대 출신이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각각 고대 경영학과와 법학과 63학번이다. 김 회장의 2년 후배들이다. 여기에 김 회장과 이팔성 회장은 금융 인생의 시작이 한일은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김 회장은 어윤대 회장이 고대 총장을 지내던 시절 고대 경영대 교우회장을 지냈고 금융발전심의위원회 활동을 함께했다는 인연도 있다. 이에 서로를 잘 아는 적수인 만큼 재밌는 승부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김 회장의 고대 사랑은 남다르다. 한국투자금융에서 일하던 1973년부터 1981년까지 고대 경영대학원 강사로 활동했다. 또 2002년부터는 고대 겸임교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가 금융업에 투신하지 않고 공부를 더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면 금융인 김승유가 아닌 교수 김승유로 알려졌을지 모른다.
실제 학창시절 김 회장의 목표는 뱅커가 아니라 학자였다고 한다. 한일은행 입행 후 2년 만에 유학길에 올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도 세미나에 참석하면 학자처럼 메모하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다.
김 회장은 강사 외에도 고대와 인연이 많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고대 경영대 교우회장을 지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 기간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김 회장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 바 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8년 초 ‘고려대 경영대 글로벌 50 출정식’에서 이 대통령에 당선 축하패를 전달하며 남다른 인연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MB정부 초반 김 회장이 금융위원장 등 주요 경제 수장을 맡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항상 공식적으로 선을 그어 왔다. 그는 매일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과 관계에 대한 언급은 부담스럽다”며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만큼 주변에서 조용히 지켜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이 대통령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맡고 있는 자리는 이 대통령의 기부 재산을 관리하는 청계재단이사회 멤버가 현재로선 전부다.
김승유 회장은 유학시절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잠시 직장생활을 한 뒤 유학길에 올랐지만 김 회장의 유학생활은 넉넉지 않았다. 불과 2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가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공부했다. 그가 외국인 노동자들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러한 경험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 회장의 금융 인생
하나은행 설립 후 초대 행장은 윤병철 전 행장이 맡았고, 김 회장은 1997년까지 하나은행 전무를 지냈다. 그리고 1997년 은행장이 됐고 2005년 3월까지 행장직을 수행했다. 윤 전 행장은 물러날 때 “그(김승유)가 있기에 믿고 물러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이런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취임 전(1996년) 총자산이 8조원대에 불과했던 하나은행을 자산 200조원이 넘는 ‘빅4 은행’으로 키워냈다. 김 회장의 성공방정식에서 빠지지 않는 변수는 M&A다.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 2005년 대한투자증권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오늘의 하나금융그룹을 만들었다. 이후 시장은 김 회장을 ‘합병의 귀재’로 평가하고 있다.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03년 SK네트웍스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다. 주채권은행이었던 하나은행은 이 바람에 8291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했다. 당시 총자산의 1%에 해당하는 거대 금액이었다.
김 회장은 이 위기를 뚝심 있는 구조조정으로 돌파했다. 특히 외국 채권단의 무리한 요구를 끝까지 버텨 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그 해에 하나은행은 대규모 충당금에도 불구하고 5000억원대의 순이익을 기록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또 다른 위기는 대규모 과세 논란이었다. 이 논란은 2002년 하나은행이 6조원대 누적 적자를 가지고 있던 서울은행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하나은행은 존속법인을 ‘서울은행’으로 정해 형식상 적자법인(서울은행)이 흑자법인(하나은행)을 인수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로 인해 4000억원이 넘는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정부와 약속이었다. 하지만 5년 후인 2007년 4월 국세청이 적법성을 문제삼으며 과세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큰 위기를 맞았다. 주가도 급락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의제기를 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2005년 3월 행장직을 김종열 현 하나금융지주 사장에게 물려준 김 회장은 하나금융지주가 정식 출범하면서 지주 회장에 올라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2연임을 했으며 임기는 2011년 3월 만료된다. 외환은행 인수 마무리가 남아 있어 3연임이 예상되는 상태다.
김 회장은 하나금융을 경영하면서 외부활동도 활발히 했다. 한국최고경영자(CEO)포럼 회원, 금융발전심의회의 은행분과위원회 위원, 이화여대 겸임교수, 연세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김 회장은 2008년 자립형 사립고인 하나고를 설립하면서 학교법인 하나학원 이사장도 맡고 있으며, 휴면예금관리재단 이사장과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직도 수행 중이다. 김 회장은 하나고와 미소금융중앙재단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일선에서 물러나면 하나고를 세계적 수준의 학교로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으며, 미소금융중앙재단은 외환은행 인수 작업 중에도 세부적인 일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다. 친서민 정책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2009 아시아 소사이어티 어워드(Asia Society Awards)’ 시상식에서 국제 비즈니스 리더십부문 상을 받았다. 김 회장 이전에 아시아소사이어티 상을 받은 한국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일했다.
소탈함과 추진력이 매력
탁구장 주인은 김 회장을 전혀 몰라봤다고 한다. 은퇴 후 운동 삼아 탁구장을 드나드는 노신사로 생각했다는 것이 탁구장 주인의 설명이다. 이에 탁구장 주인은 김 회장이 방문할 때면 녹차나 커피를 대접하면서 인생사를 나눴고, 김 회장이 며칠 나타나지 않으면 안부를 궁금해할 만큼 친해지기까지 했다. 김 회장은 호의에 대한 답례로 와인을 선물하기도 했다.
김 회장이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한 뒤 TV 화면에 나오자 탁구장 주인은 그때서야 김 회장이 누군지 알게 됐다. 탁구장 주인은 글에서 “(나에게) 외로운 퇴역자로 대접받으면서 은은한 미소로만 자중하다니 (놀랐다)”라고 썼다.
이 같은 인연은 김 회장이 평소 격식을 얼마나 따지지 않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김 회장은 또 목표한 일은 거침없이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계속되는 M&A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외환은행 인수 계약에 성공한 뒤 투자자 유치를 위해 12월 4일부터 12일까지 뉴욕, 런던, 홍콩을 숨가쁘게 순회한 것은 그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는 출장기간 지구 한 바퀴를 돌면서 비행기 안에서 사흘 밤을 지내는 강행군을 했다. 하지만 피곤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은 채 계속 일 생각만 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외환은행 인수로 승부수
이 같은 관계는 정부가 주관하는 우리금융 민영화 참여에는 독으로 작용했다. 하나가 우리금융을 품으면 정치적 특혜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세간에는 청문회 사안이라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우리금융과 합병을 계속 추진하려 했다. 하나금융이 4강 경쟁에 밀리면서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지를 전환시킨 것이 실무진의 만류였다. 이때가 10월 초다. 하나금융 고위 관계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다”며 “계열사 CEO 등이 적극 말려 마음을 돌렸다”고 말했다.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외환은행이라는 대안 때문이었다. 외환은행은 당초 호주 ANZ로 인수가 굳어지고 있었다. 10월 중순쯤 금융당국 최고위 관계자가 “협상이 90% 진행됐다”고 말할 만큼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격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김 회장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김 회장은 우리금융이 안 된다면 외환은행을 공략하자고 임원들과 합의했고 본격적인 준비를 지시했다. 이미 2005년 외환은행 인수를 시도한 경험이 있어 많은 자료가 축적돼 있었다.
하나금융 고위 관계자는 “은행 자료를 만들 때 항상 외환은행 수치를 함께 기입하는 등 관심을 계속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준비를 끝낸 김 회장은 바로 매각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를 거쳐 론스타와 접촉했다.
김 회장은 이후 론스타 측과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끌어냈고, G20 서울정상회의로 떠들썩하던 2010년 11월13일 싱가포르로 날아가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을 직접 만나 양해각서를 맺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은행 주가에 10%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은 ANZ 제시안에 불만이 있었던 론스타 마음을 바로 사로잡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후속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김 회장은 결국 11월 25일 최종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하나금융의 미래
하나금융 관계자는 “외한은행 독자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높은 로열티를 고려해 정체성을 유지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외환은행 해외 브랜드 ‘KEB’는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게 하나금융 측 생각이다. 하나금융은 이미 1998년 합병한 충청은행을 내부로 완전히 흡수하지 않고 별도 사업부로 독립 운영하는 등 관련 경험을 축적한 상태다.
하나금융 내부에서는 프라이빗뱅킹 등 개인금융에 강한 하나은행을 소매금융 전문 은행으로 키우고, 외환은행을 기업금융과 외환 전문 은행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기업, 가계 등 부문별로 하나와 외환 조직을 통합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하나은행의 기업금융 인력을 외환은행으로 이동시키고, 외환은행의 소매금융 인력을 하나은행으로 이동시키는 등 여러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하나금융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합병시킬 가능성도 있다. 하나금융 실무진은 이를 위한 청사진을 이미 만들었으며 관련 내용을 이사회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은 해외 진출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인수를 결정할 때 외환은행이 보유한 해외 네트워크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며 “외환은행 해외 지점망을 통해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구체적으로 해외 영업자산 비중을 현재 5.4%에서 이른 시일 안에 20%로 높여 2015년까지 세계 50위 금융그룹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 회장의 남은 과제
지배구조 논란을 조기에 불식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김승유 회장 임기는 내년 3월에 만료된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김 회장이 연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하나금융은 김 회장 역할이 좀 더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하나금융 고위 관계자는 “(김 회장이) 중매를 했으니 결혼도 시키고 잘 살 수 있을지 확인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김 회장 연임 문제를 조기에 매듭지어 조직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게 금융권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회장이 연임한다면 외환은행 인수가 연임에 계기가 됐다는 비판이 분명히 나올 것”이라며 “매를 맞겠다면 미리 맞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하나금융 그릇이 커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나금융은 그간 상대적으로 소규모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톡톡 튀는 전략으로 은행업 트렌드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은 때로는 비주류적 행태로 읽히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금융 고유 DNA와 개성을 잃지는 않되 리딩뱅크 위상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유연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호(2011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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