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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 대한변리사회 회장 “기술패권 시대, 법정엔 변리사가 필요합니다”
입력 : 2025.06.23 16: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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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 대한변리사회 회장 2024년 4월 제41대 회장으로 취임한 국내 최초의 외국계 기업 출신 대한변리사회 회장이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에서 지식재산법학석사(LLM)와 전문박사(JD)를 마치고 미국미주리주 변호사 자격 취득후 현지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는 등 7년을 미국에서 생활했다. 현재는 미국계 글로벌 기업인 HP에서 글로벌 특허 전략을 책임지고 있으며, 기업 내 지식재산 보호와 분쟁 대응을 이끌었다. 현장 중심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허 제도 개선과 변리사의 소송 대리권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며, 기술 기반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제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특허권을 가진 기업이 안심하고 싸울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두규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지난 2024년 4월 제41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국내 특허제도와 변리사 위상 제고를 위한 정책적·입법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그는 외국계 기업 사내 변리사로, 현재도 글로벌 특허 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다. 역대 변리사회 회장으로서 이례적인 이력이다.
김 회장은 “특허 분쟁 시대에 기술 보호는 국가 산업 경쟁력의 본질”이라며, 변리사의 소송 대리권 부여 문제를 한국 기업들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로 강조한다. 특히 한국의 특허침해 소송 현실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2023년 기준, 국내에서 진행된 특허 침해 소송 건수는 고작 59건에 불과했고, 그 중의 원고가 승소한 경우는 11%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특허권을 가진 기업이 특허 침해를 당했어도 소송을 포기했다는 기업이 90%가 넘습니다. 특허권자 열 명 중 아홉 명이 소송을 포기하거나 패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김 회장은 시간, 비용, 전문성 부족이라는 세 가지 장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업들이 권리 행사를 단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할 경우, 1심 판결까지 2년 이상 소요되며, 변호사 중심의 소송 구조로 인해 기술적 전문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독일보다 소송 비용이 높고, 시간도 더 걸립니다. 여기에 특허 기술을 정확히 해석하고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대리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침해당하고도 절대다수는 소송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는 특허권자의 승소율이 67%인 미국, 80~90%에 이르는 중국, 공동소송 대리가 가능한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은 구조적으로 기술 보호가 어려운 나라라고 평가한다.
“변리사 소송 대리권 부여는 세계적 흐름”김 회장은 한국의 특허 소송 제도가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되기 위해선 변리사의 소송 대리권 확대가 필수라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직역 확대 문제가 아니라, 기술 중심 분쟁의 본질에 맞는 소송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변리사가 단독으로 소송 대리를 할 수 있고, 일본은 20여년 전부터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재판에 참여합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은 2023년 설립시 부터 변리사의 단독 소송대리를 허용하면서 특허 소송 접수 건수가 예상치의 세배에 달하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김 회장은 변리사가 재판에 참여하게 되면, 기술 쟁점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재판부에 설명할 수 있어 소송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기업 부담 경감 효과도 크다고 강조한다.
“1심 재판이 단축되면 기업 처지에선 예측할 수 있는 법적 환경에서 연구·개발 전략을 짤 수 있습니다. 이는 기술혁신의 유인과도 직결됩니다.”
한국은 현재 변리사 단독 소송 대리는 불가능하고,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에서 보조인으로서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국회산자위에 계류중이다. 김 회장은 이 제한적 제도 개선조차 21대 국회에서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현재 22대 국회에 다시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국회 내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이 문제는 특정 직역의 이익을 넘는, 국가 기술경쟁력의 문제입니다. 정부도 ‘명품 특허’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런 특허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좋은 특허는 싸지 않습니다”김 회장은 현재 한국 특허 제도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로 ‘저가 위주의 출원 문화’를 꼽는다. R&D 과제에서 특허 건수를 평가 지표로 삼는 관행, 그리고 수수료 단가 경쟁으로 인한 출원 품질 저하가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변리사가 국가R&D 과제 결과물에 대한 대학, 출연 연의 특허 명세서 한건을 작성할 때 받는 수수료는 평균 100만원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반면, 미국은 1500만원, 유럽은 1200만원, 일본도 600만원 수준입니다.”
이는 변리사의 수입의 문제가 아니라, 특허의 질과 직결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수수료 수준에서는 시간 등의 문제로 기술 내용을 충분히 분석하거나 고도화된 특허 설계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 요지다.
“지금처럼 공공기관, 대학, 중소기업이 100만원 이하의 수수료로 특허를 의뢰한다면, 국제 경쟁력이 있는 특허는 나오기 어렵습니다. 정부도 평가 지표를 ‘건수 중심’에서 ‘질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김 회장은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이 스스로 출원 단가를 왜곡시킨 측면이 있다며, 수임료 현실화를 위해 제도적 기준과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변리사의 전문성이 국가 자산이 되는 시대김 회장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직면한 특허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특히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진출 초기에 고품질의 특허를 확보하지 못해 시장을 상실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기 전에 반드시 특허를 확보합니다. 고품질의 특허가 없으면 투자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국 스타트업은 특허 확보를 뒷순위로 미루다 경쟁사에 기술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 진출 후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김 회장은 과거 삼보컴퓨터의 미국 진출 사례를 언급하며, 철저한 특허 준비 없이는 세계 시장에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허는 임대료나 인건비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업확장의 기회는 기술을 보호할 수 있을 때 주어집니다.”
중소기업 지원 방안으로는 지자체의 지식재산(IP)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변리사회도 각 지자체와의 협약을 통해 특허 출원, 기술 이전, 분쟁 자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김 회장은 협회 차원에서 중소기업 지원사업, 실무 교육 프로그램 등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변리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 제고와 장기적인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특허 제도 개혁은 산업 생태계 기반과 직결김두규 회장은 기술 패권 시대에 변리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특허는 단지 기업의 무기가 아니라, 국가 전략 자산이며, 이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 건수 59건은 ‘숨겨진 분쟁’의 숫자입니다. 특허침해를 당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못 한 기업이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이죠. 소송 대리권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서, 우리 기술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그는 내년 협회 창립 80주년과 올해 ‘변리사의 날(6월 26일)’ 선포를 계기로, 지식재산권 제도의 사회적 가치와 공익성을 재조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변리사의 위상은 단지 직역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국가 대한민국이 세계 시장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기초 인프라라고 설명한다.
“기업, 정부, 학계, 법조계가 모두 모여 특허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기술이 무기인 시대, 변리사는 그 무기를 설계하고 지키는 첨병입니다.”
6월 26일 변리사의 날 선포! 기회의 장으로김두규 회장은 변리사의 소송 대리권 문제를 ‘밥그릇 싸움’으로 단순화하는 시선에 대해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 사안을 특정 직역의 이익 문제가 아닌, 기술 중심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재설계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에서 연간 제기되는 특허 침해 소송이 60건도 채 되지 않는 현실은, 시장의 협소함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라 지적했다.
“기술침해를 당하고도 소송을 포기하는 기업이 90%에 이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고, 무엇보다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대리인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 회장은 이처럼 침해에 대한 권리 행사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에서, 변리사의 역할 확대는 생태계 전반의 기능 정상화를 위한 장치라고 본다. 변리사가 재판에 참여하면 기술 쟁점이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분석되고, 법원도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 모두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직역 확대가 아니라, 효율성과 전문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현행 제도는 오히려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대리인의 범위를 불합리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유럽, 중국, 일본, 대만 등 주요경쟁국들은 이미 변리사가 소송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이는 분쟁 대응 속도를 높이고 기술권 보호율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은 누구의 영역이냐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기술 분쟁에 빠르게 대응하고, 피해 기업이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김 회장은 소송 대리권 확대가 곧바로 변호사와의 경쟁으로 이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의 확대, 수요의 증가, 역할의 분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변호사와 변리사가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협업한다면, 수요는 지금보다 최소 열 배 이상 늘어날 수 있으며, 이는 법조시장과 특허시장 모두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을 닫고 지키는 경쟁은 결국 시장을 줄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반면, 문을 열고 협력하는 경쟁은 모두를 살립니다. 기업에도, 변호사에도, 변리사에게도 이익입니다.”
그의 관점은 분명하다. 변리사 소송 대리권은 단지 직역 확대를 넘어서, 우리 기술 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확장시키는 ‘제도적 기반’이다. 직역 간 대립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선 입법자와 정책 담당자들이 이 사안을 ‘기술 보호의 실효성’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술 강국입니다. 하지만 기술을 지킬 수 있는 법적 기반은 아직 약합니다. 그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변리사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7호 (2025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