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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열연 이정재 “병헌이 형이랑 시즌2 작업하고 싶어요”
입력 : 2021.10.26 15: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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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재(49)가 데뷔 28년 만에 글로벌 톱스타로 ‘점프’했다. 전 세계를 달군 글로벌 화제작 <오징어 게임>을 통해서다. 이 작품을 통해 이정재를 비롯해 박해수, 정호연 등 주연 배우들이 세계 미디어 시장에 얼굴을 알렸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키트’ 등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해외 팬들의 폭발적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국형 데스게임 장르의 새 지평을 열며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풍자 및 함축적으로 그려내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오징어 게임>. 게임 참가자만 456명인 만큼 작품 속에선 다양한 인간군상이 저마다의 절박함으로 목숨을 건 서바이벌에 나선다. 이정재가 맡은 성기훈 역시 이 살벌한 게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극 중 기훈은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사채와 도박을 전전하다 이혼, 한심하게 사는 40대 (무늬만) 가장이다. 그는 재혼한 전 부인과 함께 미국행이 결정된 딸과, 당뇨로 입원해야 하는 어머니를 위해 큰돈을 구하던 중 의문의 남자의 제안을 받고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한다.
▶카리스마 빼고 ‘고개 숙인 남자’로 변신 경마장을 전전하며 인생역전, 일확천금을 노리는 기훈을 연기하기 위해, 이정재는 최근 몇 년 새 큰 사랑을 받은 영화 <신세계> <관상> <암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와 악의 기운을 쫙 빼고 꾀죄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개 숙인 남자’로 변신했다. 데뷔 후 근 30년 동안 보여준 다채로운 캐릭터 향연 속에서도 주로 선 굵은 인물을 연기하며 사랑받아온 이정재에게, <오징어 게임>은 그 도전 자체가 흥미로운 게임과도 같았고 여지없이 승자가 됐다. “SNS를 하지는 않지만 눈팅이라 해야 할까. 실감은 하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사진 올려주셔서 보고, 실제 출연했던 배우들이 예전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하더라고요. 오늘도 한 후배가 ‘선배님, 선배님이랑 찍은 사진 인스타에 올려도 되나요?’ 묻더군요(웃음).” (이후 이정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고, 그의 인스타 팔로워는 불과 며칠 만에 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같은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믿어지지 않을 수준이지만, 그 누구라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일. 이 정도로 흥행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으나 이정재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고 말했다. “초반부터 콘셉트가 좋다 생각했어요. 어른들의 서바이벌 게임인데, 어려서 했던 게임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꽤 그로테스크하다 해야 할까요. 독보적으로 느껴졌죠. 그리고 장르는 서바이벌 게임 장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게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애환과 고충들이, 왜 거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시나리오에 꼼꼼하게 해놓았고, 그런 부분들이 과장되지 않게, 기훈을 비롯한 다른 모든 캐릭터들이 하나하나씩 쌓아놓은 것들이 그 캐릭터의 엔딩에서 효과적이고 감정적으로 폭발되는 점이 다른 서바이벌 게임이나 영화와의 차별성이라고 느꼈어요.”
456명이 참가한 ‘오징어 게임’은 게임 스케일 자체가 남달랐다. 특히 극 초반을 장식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보여준 스케일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이정재는 “그 정도 스케일일 줄은 사실 가늠하지 못했다”며 “촬영장에 갈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세트장이 어떻게 구현돼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실제 촬영장에선 사진 찍기 바빴다”고 웃으며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징검다리 유리 건너기가 제일 어려웠어요. 1.5~ 2m 정도 되는 공간에 띄워놓고 강화유리랑 유리를 깔아놨는데, 안전하니까 뛰라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다들 잘 뛰기에 저도 따라 뛰었는데 자꾸 발에 땀이 나서. 징검다리다 보니 간격을 넓게 떨어뜨려놔야 하니까 배열 간격을 여러 번 다시 하면서 촬영했거든요. 그 게임이 가장 어려웠어요.”
<오징어 게임>의 최후의 승자 성기훈을 열연한 이정재에 대해 해외 시청자들은 ‘연기파 배우’라는 반응을 주로 보이고 있다. 이미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경력이 있음에도 국내에선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꽃미남’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에 일각에선 생경한 반응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정재가 생각하는, <오징어 게임>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특한 부분들이 많이 있죠. 한국 콘텐츠를 떠나서도, 굉장히 독특한 콘셉트면서 여러 가지 측면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시나리오·촬영·캐릭터인 점들이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조합이 잘 맞아서 이러한 내용이 공감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이 작품을 거의 10년 가까이 준비하셨다고 했는데,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요. 작품을 만드는 시기도 중요하지만 이걸 봐주시는 분들의 시기도 잘 맞은 것 같아요.”
극 중 이정재의 마지막 모습은 빨간 머리라는 점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 <오징어 게임>에 최초 참여할 당시의 ‘루저’ 성기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에 대해 이정재는 “대본에 있던 설정”이었다며 빨간 머리 설정에 대한 견해를 전했다. “왜 빨간 머리를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를 감독님과 나눈 기억이 있는데, 빨간 머리는 기훈 나이의 일반 남성이 절대 하지 않는 컬러잖아요. 절대 하지 않는 어떤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의지였던 것 같아요.”
황동혁 감독은 이정재에게서 ‘반전’ 매력을 끌어내고자 했고, 이 같은 시도에 이정재는 더할 수 없이 망가진(?) 매력으로 화답했다.
“황 감독님이 생각하셨던 것과 제가 차기작에 대해 고민했던 것 중 비슷한 지점이 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나이를 먹다보니 악역과 센 역할밖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이나 다른 연기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뭔가 새로운 걸 보여드릴 수 있을까 하던 찰나에 황 감독님이 기훈 캐릭터를 제안해주셨어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역할을 오랜만에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감독님 제안도 반가웠지만 그 캐릭터를 보고 더 반가웠어요.”
단 한 번의 순간 생(生)과 사(死)가 결정되는 처절한 생존게임에서도 돋보였던 건 기훈의 인간적인 면모다.
“외국 분들이 보셨을 때 성기훈이 저런 극한 상황에서도 남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생각이나 행동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에 그런 정서가 많이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았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로 읽혔거든요. 이해가 안 돼서 연기를 못 하겠다싶은 건 전혀 없었어요. 성기훈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귀엽기도 하고, 또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잃지 말아야 할 때 잃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용감한 면이 어느 정도 메시지로도 발현된 게 아닌가 해요.”
▶“중년 남성의 고민과 삶에 공감 산 것” 기훈은 대한민국에서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중년 남성의 고민과 삶에 대한 막막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뭇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중년 남성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이 나온 건 아니지만, 초반에 딸을 만났을 때, 아빠로서 충분히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무겁고 딸에게 면목 없어 하는 장면에서 중년 남성의 힘듦이 느껴졌어요. 딸의 생일에 떡볶이를 먹는다거나, 더 많이 해주지 못하고 비 맞고 돌아오는 장면 등을 연기하면서 ‘성공하지 못한’ 중년 남자의 무거운 마음이 느껴졌죠.”
주로 선 굵은 캐릭터를 연기해 온 그에게 성기훈 같은 생활연기 캐릭터는 배우로서 즐거운 변신이자 도전이었다.
“생활연기가 사실 제일 힘들어요. 초반 캐릭터 설정을 잡고 그 캐릭터로 밀고 가면 수월하게 연기가 되는 캐릭터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활연기는 조금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부분이 있죠. 일상 속 사람 같이 보여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은 아니니까, 그 안에서도 극한 상황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연기가 혼재돼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고 연습하는 데 뭔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졌어요. ‘어 이상하다, 이거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데 왜 이게 불편하지?’싶었는데 계속 시간을 갖고 연기하면서 그런 지점은 해소가 됐습니다.”
이정재는 “게임마다 캐릭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극한 상황에서 교감이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 수위가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달고나 뽑기 게임 도중에 혀로 핥는 장면에서 ‘이렇게까지 핥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웃음). 그런데 이게, 목숨을 걸고 하는 거니까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게임마다 시간을 거듭해나가면서 다른 캐릭터를 만나 겪는 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기와 극한의 연기를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고 부연했다.
그런 변신이었기에, 이정재 스스로도 화면 속 자신의 모습에 생경함을 느꼈다고. 그는 “처음 봤을 때 내가 저렇게 연기했나 하고 한참 봤다. 되게 많은 걸 벗어던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평상시 잘 짓지 않는 표정도 나왔고, 평소 잘 쓰지 않는 호흡에 의한 동작도 나오니까. 오래전에 그런 연기를 했던 기억은 나는데 근래에는 없었던 표현들이라 보면서 무서웠다. 내가 저렇게 했었구나 싶더라”라고 미소 지었다.
“진짜, 모자가 너무 안 어울린다는 말도 있고, 왜 하필 저 모자를 썼느냐, 좀 깔끔하게 쓰지 왜 저렇게 썼느냐, 옷은 또 왜~ 등등(웃음) 주변에 말들이 많았어요. <신세계> <사바하> <암살> <헌트> 때부터 늘 같이 하던 실장님과 스타일링을 함께 했는데 이번에 이정재에게 뭘 어떻게 입혀서 진짜 쌍문동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처음 의상 입으러 갔을 때, 사이즈도 안 맞고, 왜 저렇게 위아래를 매치해 입지? 할 정도의 콘셉트였는데, 주는 대로 입겠다고 했죠.” 망가짐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고. 그는 “‘망가진다’라는 표현은, 사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저는 연기자니까 이런 역할도 하고 저런 역할도 하는데, 망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준비할 때나 촬영할 때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다만 우리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생활연기’는 망가져야 하는 거니까, 관찰도 더 많이 하고 밤에 걸으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죠.”
극 중 ‘깐부’(편)로 나선 1번 참가자 오일남 역 오영수와의 남다른 호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저는 오영수 선배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뵀던 적은 없어서 처음엔 약간 어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선생님 자체가 생각이 굉장히 젊으시더군요. 작품을 보시는 시각도 젊으시지만, 촬영 끝나고 혹은 휴식할 때 전반적인 사회 이슈나 그 당시 생기는 뉴스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생각이 젊으시더라고요. 연기적으로 꽤 많은 부분을 함께한 캐릭터이다 보니,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일남 그 자체로 오셨기 때문이죠. 각자 생각해 온 캐릭터를 조율하는 것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고민을 조금 줄이고, 바로 찍어나갈 수 있었어요. 워낙 완벽하게 일남을 만들어 오셔서 호흡이 정말 잘 맞았습니다.”
극 중 기훈이 유독 오일남에게 관심 드러내는 행동들도 시청자들이 눈여겨본 부분이다. 이 같은 기훈의 행동은 어떤 심리의 발로였을까.
“음, 기훈은 아마도 자기가 약자라고 생각하다 보니 누구에게 도움 받고 싶은 심리가 있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본인이 생각하기에 약자인 사람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고요. 기훈도 보잘것없는 약자인데 자기보다도 더 약자인 사람을 봤을 때,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고, 측은지심이 훨씬 더 강하게 발동되면서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심리가 컸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훈에게 <오징어 게임> 속 우승상금 456억원이 돌아간 것처럼 이정재에게 뜻밖의 ‘456억원’이 생긴다면 “그렇게 갑자기 생기는 큰돈이라면 당연히 기부할 것”이라 확언했다. 시즌2에 대한 국내외 시청자들의 기대에 대해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엔딩으로 끝났다”며 그 역시 시즌2에 대한 기대가 강렬함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정재가 기대하는 부분은 기훈의 캐릭터 변화다.
“제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 읽었을 때도 그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힘도 없고, 능력치도 뛰어나지 않은 성기훈이 ‘잘못된 거잖아’ ‘이러면 안 되잖아’라고 하면서 무시무시한 세계로 다시 뛰어 들어가는 성기훈의 용감함? 정의? 그런 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모르죠. 또 2편에서 어떻게 될지.”
시즌2에서 이병헌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시청자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하게 화답했다. 그는 “(이)병헌 형이랑은 내가 막 데뷔했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같은 소속사에도 몇 년간 같이 있기도 해서 친분이 남다르다. 어떻게 하다 보니 같이 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징어 게임>에서 황동혁 감독님과의 연 때문인지 특별출연을 해줬다”면서 “2편이 나온다면 당연히 병헌이 형이랑 작업하고 싶고, 2편에 내가 못 나온다거나(웃음) 하면 다른 작품에서라도 꼭 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넷플릭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4호 (2021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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