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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펜트하우스`서 열연 김소연 “악녀 천서진, 절대 이해 못해… 벌 받길 원했죠”
입력 : 2021.10.07 17: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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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을 각오 단단히 하고 들어갔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1억 배 이상의 관심을 받아 너무 감사해요.”
희대의 악녀 ‘천서진’으로 인생캐릭터를 경신한 배우 김소연(41)이 활짝 웃었다.
김소연은 최근 SBS 금요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3까지 1년 반 여정을 마친 소회를 종영 인터뷰에서 밝혔다. <펜트하우스>(극본 김순옥, 연출 주동민)는 채워질 수 없는 일그러진 욕망으로 집값 1번지, 교육 1번지에서 벌이는 서스펜스 복수극. 김소연은 극 중 청아재단 이사단 천서진 역을 맡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전무후무한 악녀를 탄생시켰다. 김소연은 2000년 방송된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 이후 20년 만에 ‘매운맛’ 악녀 연기를 제대로 선보였다. 극 중 천서진은 일그러진 욕망으로 돌진하다 결국 몰락했지만, 캐릭터의 상황과 정반대로 김소연은 데뷔 이래 최고의 사랑을 받았다. “제가 제작발표회 때 ‘희대의 악녀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는데요. <이브의 모든 것> 때는 제가 21살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족한 게 많고, 모르는 게 많은 상태로 연기를 했는데, 이번엔 마흔 살 넘은 김소연에게 생긴 무언가로 잘 표현해보자는 마음이었죠. <이브의 모든 것>은 주위 도움으로 겨우겨우 했던 것처럼 남은 작품이라, 이번엔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아무리 악인이라도 욕먹거나 그런 걸 한창 겪어봤기 때문에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연기에 임했는데, 천서진으로서의 기대보다 1억 배 이상의 관심을 받아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천서진에 대한 짠한 마음이 있었어요. 시청자들이 그 부분에 공감은 안 돼도 같이 봐주신 것 같아요. 다음 회차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면서 관심 있게 봐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소연은 “사실 이전 작품까지도 ‘이렇게만 연기 생활해도 너무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왕좌의 게임>을 손에 땀 쥐며 보면서 ‘와 저런 연기 해보고 싶다’ 했던 감정을 잊고 있었던 거였다. 처음에는 ‘많은 등장인물의 줄거리 중 나도 하나겠지’라고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손에 땀이 쥐어지고, 욕심이 생기더라. 도전정신이 다시 생겼다. 그런 마음들이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극 중 천서진의 극단적인 행동들과 애정결핍으로 점철된 모난 성품은 제아무리 연기라 해도 온전히 몰입하기 어려웠을 법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김소연은 “결혼 후 연기와 일상의 분리가 잘 돼 몰입이 어렵거나 심적으로 힘든 건 많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지는 연기하면서 분리가 안 됐었어요. 일상과 촬영장이 연동된 기분이었죠. 쉬는 날이 많이 없기도 했고, 시간이 없다고도 생각했고, 그러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어요. 그건 연기에 대한 배반 같고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여겼죠. 그런데 이번에는 시즌도 길고 분량 배분이 되다 보니 쉴 시간이 있어서, 특히 결혼하고 나선 쉬는 동안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하면서 일상을 즐기고 나니 본업에서도 예전보다 오히려 몰입이 잘 되더라고요. 그동안에는 내가 무슨 배우병에 걸려 있었나 싶기도 할 정도로요(웃음). 분배가 잘 돼서, 심적으로는 힘든 게 많지 않았고, 몰입이 잘 됐어요.”
그럼에도 천서진은 도통 몰입하려야 몰입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던 게 사실. 김소연이 천서진을 어떤 인물이라 정의하고 연기에 임했을지도 궁금했다.
“‘천서진은 천서진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의 모성애랄지 그런 부분은 공감이 1도 안 돼요. ‘왜 이 여자는 이런 삶을 살지?’ ‘왜 이 여자는 저럴까’ 싶었죠. 물론 아버지와의 가족사에서 사랑받지 못한 게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비뚤어졌을까 늘 안타까워하면서 촬영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서진을 연기하는 나만큼은 다 맞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이게 모성애가 맞아, 이게 얘에게 도움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죠. ‘다 끝나면 천서진을 내가 1등으로 미워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전에는 늘 맞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그러면서 “천서진이 극악무도한 악행을 이어간 데는 가슴 아픈 가정환경, 아버지의 핍박 등이 있었겠지만,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면서 “천서진을 이해하려 하기보단 ‘그냥 얘는 이런 애야’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천서진이 행한 극악무도한 악행 퍼레이드 중에서도 ‘이것까지 해볼 줄은 몰랐다’ 싶은 악행으로는 오윤희(유진 분)를 절벽에서 미는 장면을 떠올렸다.
“윤희를 절벽에서 미는 장면인데, 대본을 받고 나니 혓바늘이 나더라고요.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고 악몽도 꿨죠. 아빠하고는 느낌이 달랐고, 개인적으로 너무 미안했어요. ‘김소연이 천서진에 이입하지 말자’는 생각을 늘 했는데, 그 부분만큼은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어려운 장면들 다 잘 집중해서 찍었지만, 방송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윤희에게 카톡을 보냈어요. ‘윤희야.’ ‘언니 왜.’ ‘그냥. 좋은 꿈 꿔.’ 짧은 대화를 나눴죠.”
“원래 대본에는 짧은 머리라고 나와 있었고, 많은 분들이 가발을 쓰라고 하셨는데, 저는 대본을 받고나서, 여운이 굉장히 짙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욕심이 났죠. 허리까지 기른 머리라 일주일 동안 잠을 안 자고 고민했어요. ‘내가 과연 가발로 이 여자를 보내도 될까.’ ‘내가 천서진에게 받은 선물이 얼마나 많은데.’ 김소연이 천서진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머리를 자르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감독님께서 무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고마워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머리 자르는 장면이 추가돼 완성했어요.”
김소연은 “한편으론 세 개 신을 위해 자르는 게 아깝기도 했다. 내가 고민하니까 상우오빠가 ‘소연아 되게 멋있는 생각이다’라고 하더라. 엄마 아빠는 아깝다고 하시는데 시부모님들도 너무 멋있다고 하시고. 어머님과 아버님이 큰 용기를 주셔서 머리를 잘랐다”며 빙긋 웃었다.
폭주기관차 같던 천서진이 김소연에게 심리적으로 끼친 영향은, 뜻밖에도 (혹은 예상대로) 긍정적이었다. “천서진이 저에게 준 영향은,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거였어요. 사소한 것마저도 다 쟁취하려 하니까 결말이 이렇구나 싶더군요. 저는 천서진의 결말을 응원한 사람 중 하나고. 천서진이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악행도 많이 저질렀기에 ‘얘는 어떻게 이렇게 살까?’ 말했더니 상우오빠가 ‘내려놓자. 그러지 않아도 우린 행복한 삶이야’라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천서진은 저에게 너무 좋은 영향을 줬어요.”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 천서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묻자 김소연은 “한마디 해주기보다, 천서진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다음 생에 고등학교에 천서진 같은 애가 있다면, 한번쯤 아니라고도 얘기해주고, 너의 성악을 칭찬도 해주고.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안타까운 여자죠.”
<펜트하우스>는 천서진(김소연 분)을 비롯해 심수련(이지아 분), 오윤희(유진 분) 등 여성 캐릭터들의 열연과 서사가 유난히 돋보인 작품이었다. 드라마 속에선 처절하리만큼 지독한 악연이었지만 카메라 밖 이들 사이의 관계는 이와 정반대였다.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가 감독님과 작가님의 매력이었다면, 두 번째는 오윤희와의 서사였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그 오윤희가 유진이라 좋았죠. 작품을 같이 해보진 않았지만 S.E.S 활동할 당시 가수와 MC 관계로 만났었기 때문에 편한 게 있었어요.”
유진의 프로 의식도 극찬했다. 김소연은 “시즌1에서의 유진의 모습이 멋졌다. 우리는 풀세팅하는데 유진은 남루하게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도 거리낌 없이 캐릭터에 몰입하는 부분에서 너무 멋져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절벽에서) 밀어버려서 유진을 몇 달 못 봤는데 쫑파티도 하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지아에 대해서는 “이지아 아닌 심수련은 상상할 수 없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언니에게서 나오는 우아함 같은 부분들이 정말 심수련스러웠고, 연기와 반전되는 매력도 컸어요. 같이 연기하면서도 털털하니 너무 좋았죠. 1년 반 이상을 하면 그래도 한 명 정도는 뭔가 조금이라도 힘든 내색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들 너무 좋은 배우라서 잘 올 수 있었어요. 지아 언니, 유진이랑 너무너무 좋았어요.”
애증의 남편, 윤종훈과의 호흡도 최고였다며 극찬했다. 특히 최종회 직전 죽어가던 하윤철(윤종훈 분)이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마지막에 “사랑해 윤희(전 부인)야”라고 내뱉은 말은 그야말로 천서진 입장에선 청천벽력 반전과도 같았다.
이 장면의 숨은 비하인드도 소개했다. 김소연은 “원래 대본에는 ‘윤희야 금방 갈게 조금만 기다려’라고 써 있었는데, 윤종훈 씨가 ‘윤희야’를 나중에 하겠다고 하더라. 천서진이 하윤철에게 사랑했다는 말을 그렇게 듣고 싶어 했는데, 그 말을 듣는 듯하다가 막판에 ‘윤희야’라는 반전을 준 거다. 그렇게 센스 있게 내 감정을 극대화시켜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펜트하우스>로 데뷔 이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김소연은, 극 중에선 그토록 애정을 갈구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뜨거운 러브신을 수도 없이 연출했다. 이에 대한 남편 이상우의 반응을 묻자 김소연은 멋쩍어하면서 “남편보다 시부모님이…”라고 반응을 전했다. “시즌1에 특히 그런 장면이 많았어요. ‘어머님 아버님, 제가 너무 나쁘게 나와서 죄송해요’라고 했는데 응원해주시면서도 러브신에 대해 은근히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았어요. 너무 죄송하지만, ‘우리 며느리 너무 멋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죠. 상우오빠는 눈을 막았어요. 안 봤죠. 제가 못 보게 했어요. 1, 2편을 보더니 보지 말아야겠다 싶었나보더라고요(웃음). 저도 오빠 작품 보면서 질투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런 걸 느꼈나 봐요. 약간 고개 돌리기도 하고 그랬어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펜트하우스>였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허점이 1도 없던 완벽한 작품으로 기억될 법하다. 지난 연말 연기대상도 <펜트하우스>가 휩쓸었지만 올해 역시 SBS의 최대 흥행작이 <펜트하우스>였던 만큼, 또 한 번의 수상을 예상하게 한다. 특히 천서진을 통해 메소드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 김소연으로서는 대상도 기대해볼 법하다. 이에 대해 김소연은 “대상은 진심으로 전혀 상상 안 하고 있다”고 손사래 쳤다. 그는 “작년에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너무 감사하고, 우리 배우들이 많은 수상을 이뤄내서 정말 기뻤다”면서 “나름대로 강약 조절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방송을 보면 미흡한 부분도 많아서 대상을 거론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겸손해했다.
천서진으로 보여준 아우라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펜트하우스> 이후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을 터. 이에 대해 김소연은 “스태프들이 ‘소연 씨, 나 다음 작품 못 볼 것 같아, 너무 천서진 같아’라고도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살짝 고민했는데, 그래도 나는 도전해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펜트하우스>를 처음 받았을 때도 내가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면 아마 못 했을 거예요. 하지만 도전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도전해보고, 매도 그때 맞고 싶어요. 지금 마음으론, 코미디나 로맨틱코미디 같이 상반된 장르를 해보고 싶습니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제이와이드컴퍼니, SBS]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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