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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 “경제발전의 원천 되는 기업가정신, 기업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발현될 수 있어”
입력 : 2021.09.29 15: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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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달리진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들을 과감히 없애고,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적극 지원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회장은 기업들이 투자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선 규제 완화, 우호적 세제 여건 조성 등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국내 투자환경이 여전히 위축되고 있다”며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법인세나 상속세 같은 세 부담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과도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매경LUXMEN>이 창간 11주년을 맞아 ‘위드 코로나 시대 대한민국과 미래 산업, 기업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손경식 경총회장과 특별인터뷰를 진행했다. 손 회장은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구심점이 돼 국민들이 기업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때보다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시기지만 기업들의 사기가 높지 못한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인터뷰는 서면과 대면으로 진행됐다. 서울 마포에 자리한 경총회관에서 만난 손경식 회장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하고 답했다.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올해 수출이 많이 늘고 있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여러 조치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는 물론 우리 수출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소비, 투자 같은 내수는 아직 뚜렷한 개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도소매, 숙박, 음식 같은 대면서비스업에서 일하고 있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최근 위드 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정부가 방역조치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반가운 소식입니다. 국민의 일상을 회복하고 내수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물가가 많이 올라 걱정스럽습니다. 특히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높아요. 경기 회복 국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기업 입장에선 생산비용이 크게 늘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가격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계부채도 우리 경제의 뇌관이란 지적이 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가 18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한국은행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8월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올렸고, 올해 추가 인상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리 인상이 필요한 측면도 있습니다만 소비가 위축되거나 대출이 많은 중소영세기업, 소상공인들의 이자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대비책을 잘 세워주시길 바랍니다.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OECD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한국의 성장률을 4.0%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해 약 4%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미국의 테이퍼링이나 금리 인상, 중국의 제조업 경기 둔화 같은 변수들도 있기 때문에 잘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여가기 위해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들을 과감하게 없애고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최근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와 같은 미래 전략 기술에 대한 세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도 세제 혜택이 기업의 투자 여력 제고와 직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국내 투자환경은 여전히 위축돼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도 원인이지만, 법인세나 상속세 같은 세 부담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과도한 측면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5%(중앙정부 기준)로 OECD 38개국 중 8번째로 높아요. 상속세 최고세율은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까지 더해 60%로 실질적으로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세제 측면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해외에서 우리나라로 투자한 금액은 지난 20년 동안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같은 기간 국내에서 해외로 투자한 규모는 10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기업들의 투자환경 조성을 위한 해결책이라면.
▷지금의 법인세제나 상속세제로는 앞으로 해외로의 과도한 자본 유출을 억제하거나 국내 투자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협소한 내수 시장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불리한 국내 투자환경을 생각해 본다면 법인세와 상속세 세율을 최소한 OECD 평균 수준(한국 25%, OECD 평균 21.8%)으로 인하하고, R&D와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가업상속공제 같은 세제 혜택들을 더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최근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을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우리 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뛰고 있는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제도와 운영이 중요한데, 이러한 기준에서 기업인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건 없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인들도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겠지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과도한 수준입니다.
▶특히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우리 배임죄는 ‘걸면 걸리는 죄’라고 할 만큼 범죄의 성립 요건이 모호하고 포괄적입니다. 경영상의 판단도 결과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어요. 주의의무를 다한 기업인의 경영 결과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의 원칙’ 같은 면책규정의 명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근로기준법, 노조법 등 노동법도 마찬가지예요. 단순히 형벌규정 숫자만 비교하더라도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상 사업주에 대한 형벌규정이 70여 개에 달합니다. 독일은 10여 개, 일본은 50여 개에 불과하거든요. 근로 시간의 경우는 경미한 위반에도 2년 이하의 징역까지 부과할 수 있습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형벌제재(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를 규정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조속한 개정이 필요합니다. 중대재해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게 중요하지요. 선진국도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산업안전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만 CEO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올바른 접근방식이 아닙니다. 이 법의 모델이 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도 산재감소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현재 전문가들의 일관된 평가예요. 특히 포괄적이고 모호한 경영책임자 책임규정과 과잉형사처벌은 올해 안에 보완입법(재개정)을 통해 반드시 시정돼야 합니다. 경영책임자에 대한 1년 이상 징역형 규정이 너무 가혹한 만큼 몇 년 이하 같은 상한 설정방식으로 개정하고, 고의·중과실이 없는 사고에 대한 면책규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 노동관계법은 사실상 공장에서 집단으로 근로하는 이들을 기준으로 마련됐기 때문에 고도로 디지털화된 현재의 산업 환경에는 맞지 않습니다. 개선돼야죠. 예를 들어 근로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당사자들이 상황에 맞게 근로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유연성을 높여서 균형 잡힌 노동 시장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미래세대 일자리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기업 투자가 확대되려면 노사관계의 힘의 균형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는 노조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법과 제도가 개정되어 왔어요.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일본 같은 주요 경쟁국들은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불법행위로 보고 회사에 손해배상토록 하고 있습니다. 파업으로 업무가 중단되면 대체근로자를 채용해 투입하는 걸 금지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지요. 최저임금은 G7 국가와 비교해도 그 수준이 매우 높아요. 인상 속도도 가장 빠릅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상당기간 최저임금 안정이 필요합니다. 업종별·지역별 구분 적용과 산입 범위 확대 같은 합리적 제도 개선도 추진돼야 합니다.
▶팬데믹 이후 기업들의 생존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들 합니다.
▷팬데믹에도 기술혁신과 신산업의 발전은 가속화되고 있어요. 기업들에게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힘든 생존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가정신의 발휘가 절실하지만, 기업들의 사기가 그다지 높지 못한 상황이지요. 무엇보다 기업과 기업인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올해 경총에서 실시한 ‘반기업정서 기업 인식조사’를 보면 기업 10곳 중 9곳이 반기업정서를 체감하고 있다고 응답했어요. 경제발전의 원천이 되는 기업가정신은 기업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제대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그러한 여건을 조성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업과 기업인들이 체감하는 정책적 불확실성은 정부·국회의 확고하고 일관된 정책 신호(Signal)만으로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습니다.
▶정책적 불확실성이라면.
▷21대 국회에 들어오면서 기업 활동에 큰 제약이 되는 법안들이 한꺼번에 통과됐습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에 관한 상법, 내부거래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공정거래법, 노조 가입 범위를 확대하는 노동조합법, 경영자 처벌을 대폭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이지요. 지난해 팬데믹 이후 매출이 급감하면서 우수한 인재들을 내보내야 하는 기업들이 속출했습니다. 저희 경총은 이 법안들이 기업의 생존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국회에 간곡히 호소했지요. 하지만 경제인들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많은 기업인들의 의견을 모아 다른 경제단체들과 문제점과 개선점을 국회에 보완입법의 형식으로 건의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진척이 없습니다. 국회에는 여전히 많은 기업규제 법안들이 제출돼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예요. 이제는 기업을 규제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국회가 만들어 주십시오. 꼭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건 노동개혁에 관심을 가져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노동개혁은 변화를 수용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후진적이라는 우리 노사관계를 고치지 않고서는 우리 기업들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기술과 2차전지가 접목돼 전기차·자율주행차 같은 미래차 산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도 크게 성장하고 있어요. 친환경 산업도 더 주목받을 겁니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 5G,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기업의 미래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환경문제 역시 위기가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바라봐야지요. 기술혁신을 통해 친환경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선제적으로 구축한 기업이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혁신을 위한 선제조건을 꼽으신다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해야지요. 첨단기술 분야의 인력이 노동 시장에서 상당히 부족할 것이란 예측이 많은데,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많은 애로사항이 있을 겁니다. 교육현장과 연계하거나 기업의 내부 교육훈련을 확대해 인재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현재 경총에서 반기업정서 완화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작정 기업에 대한 반감을 거둬 달라는 ‘떼쓰기’ 식의 호소는 아닙니다. 그보다 국가 경제에서 기업의 역할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자는 취지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우선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충분히 뒷받침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 실천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 주요 회원기업들과 ‘ESG 경영위원회’를 발족해 우수 사례 발굴과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있어요. 전문성을 갖춘 외부인사 참여를 통해 내실을 기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와의 소통 기회를 늘리기 위해 유튜브 콘텐츠 제작이나 영상·아이디어 공모전, 청소년 경제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노사관계를 협력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도 경총은 최고의 전문가, 합리적인 노동세력과 함께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기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겠습니다. 경총의 노력이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선진화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He is…
▲1939년생 ▲서울대 법대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 경영학 석사 ▲1968년 삼성전자공업 ▲1977년 삼성화재 사장 ▲1991년 삼성화재 부회장 ▲1994년 CJ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1995년 CJ그룹 회장 ▲2005~2013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07년 CJ제일제당 회장 ▲2007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 ▲2011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대담 홍기영 국장 정리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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