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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뚫은 ‘래대팰’ 실거주로 50억
입력 : 2021.05.25 17: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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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급등의 진원지인 강남지역의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세금과 대출, 공시가격 인상 등을 총망라한 규제를 꺼내 들었지만 강남 집값은 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재건축 추진 단지를 중심으로 신고가를 잇따라 경신하는 등 불안한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강남불패’를 무너뜨리기 위해 25번이나 쏟아낸 부동산 정책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강남 집값 흐름은 6월 이전 절세 매물 감소와 신고가 거래로 요약된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1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 건수는 4만7686건으로 전년 동기 7만6718건보다 37.9% 급감했다.
강남구(-53.5%), 동작구(-48.0%), 성동구(-47.0%), 송파구(-45.3%), 양천구(-45.2%) 등의 순으로 매물 감소세가 가팔랐다. 이 같은 거래절벽과 매물 잠김 속에서도 최고가 경신은 이어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09% 오르며 전주(0.08%)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래미안대치팰리스
대신 취득, 보유, 매도 단계 전반에 걸쳐 세금 부담이 가중되면서 다주택자들이 매도보다는 버티기를 선택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살펴보면 3월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2019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 933건보다 2.2배 증가한 수치다. 다주택자들이 아파트 매도에 나서는 대신 배우자나 자녀에게 증여로 우회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짙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양도세로 시세차익의 대부분을 뺏기느니 증여세를 내고 자녀에게 물려준 것이다.
▶강남 재건축 중심으로 강세 이렇게 매물이 들어가면서 ‘똘똘한 한 채’ 매물은 더 귀해졌다. 똘똘한 한 채 중에서도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신고가 경신 사례가 잇따라 나왔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4차(전용면적 117.9㎡)는 지난 13일 41억7500만원에 거래됐다. 두 달 전 최고가인 40억3000만원보다 1억4500만원이 상승했다. 또 현대아파트1차(전용면적 196.21㎡)는 지난달 15일 63억원에 거래됐다. 한 달 전 실거래가격 51억5000만원보다 10억원 이상 올랐다. 특히 정부의 잇단 규제 대책으로 재건축·재개발이 사실상 묶이면서 오히려 강남지역 재건축 단지들의 희소성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강남지역의 집값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역설적으로 강남 불패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3기 신도시 사전청약 인천 계양지구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오 시장 당선이 미친 영향은 재건축 가능한 아파트들에게만 해당하지 전반적으로 해당하는 건 아니다”라며 “입주물량이 없는 영향이 더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건축 단지가 아닌 곳에서도 신고가가 쏟아졌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대치동에선 50억원이 넘는 거래가 발생했다. 래미안대치팰리스2단지 전용면적 151㎡는 최근 53억5000만원에 팔렸다. 앞선 최고가 거래는 2019년 8월 37억원이었다. 1년 7개월 만에 16억원 올랐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선 실거주가 아니라면 매수가 불가능하다.
▶토지거래 허가제의 효과는? 최근 집값 상승의 원인이 무엇이든 오 시장이 당초 공약한 빠른 재건축은 어려워지는 흐름이다. 서울시도 재건축발 집값 상승 우려로 속도 조절에 나선 상태다. 압·여·목·성(압구정동, 여의도동, 목동, 성수동) 토지거래허가 구역 신규지정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가격 상승은 억제하지 못하면서 시장 왜곡만 더 크게 일으킬 거라는 의견과, 정치적 명분을 위한 고육지책이란 평가가 상존한다.
기조 선회로 판단하기보다는 재건축 추진에 앞서 정치적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고 보는 이들은 재건축 활성화 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가격 상승의 책임 소재를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해석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기조변화는 아니다”라며 “현재 상태로는 서울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토지거래허가제는 가격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내년이 선거인데,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평이 생기면 아주 어려워진다”며 “재건축을 진척시킨다 해도 올해까진 그동안 전임 시장이 무리하게 막았던 재건축 단지들의 진도를 일부 진척시키는 수준 정도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징성을 고려한 걸로 보이는데 (압구정을 묶은 반면) 노원구나 강북 최대 재건축 단지인 마포구 성산시영아파트는 안 묶인 것도 이런 이유다”라며 “앞으로 1년 더 지나면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 이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은 공급이지만 해법은 요원 공급을 늘리는 건 결국 민간 정비사업 규제를 풀든지 정부의 2·4대책이 제대로 가동되든지 하는 방법밖엔 없다. 정부는 재건축 규제로 민간 재건축을 좌우할 수 있고 서울시는 인·허가로 2·4대책을 좌우할 수 있는 만큼 양측의 협력은 필수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가 협력해 민간·공공 공급을 늘릴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 대부분이 회의적으로 봤다. 정부가 민간 재건축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서울시가 2·4대책 인·허가를 서두르는 식의 ‘빅딜’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
송 부장은 “민간 재건축의 가장 큰 장애물이 안전진단이지만 법률과 관련한 부분이 많아 중앙정부가 쉽게 개정하기 어렵다”며 “이를 풀면 지자체에 완전히 일임하는 것인데, 오세훈 시장이 지금 제시하는 방향으론 정부를 설득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선거 직전이고 이미 2·4대책을 천명한 게 있어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정권 지지율에 달렸다”며 “레임덕이 온다면 완화될 여지도 있겠지만 지지도가 탄탄하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대선 전까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1년 동안 민간과 공공 아무것도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5월 서울 입주 아파트가 단 한 가구도 없다는 점이다. 2분기를 통틀어도 서울에서는 6096가구에 불과하다. 내년엔 올해 입주량의 절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런 ‘공급 가뭄’ 현상이 몇 년 더 지속될 우려가 크다. 아실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만8887가구로 작년 물량(3만9821가구)의 반토막 수준이다. 이어 2022년은 1만2893가구, 2023년은 5772가구로 입주물량이 지속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아실이 인구 변화를 토대로 분석한 서울의 매년 적정 입주물량은 4만8445가구다. 갈수록 아파트 수요와 공급이 크게 벌어지는 것이다. 유거상 아실 대표는 “현재까지 분양한 아파트 물량을 고려하면 내년 입주물량은 사실상 거의 확정됐다”며 “2023년 입주량부터는 유동적이지만 현재 정비사업 진행을 볼 때 예측치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통상 신축 공급은 인근의 전셋값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매매가에도 영향을 준다.
분양가는 착공시점까지 변화가 커서 올해 중에 확정되기 어렵고, 분양가가 확정되지 않으니 도면 등과 같은 주택 건설 계획도 유동적이다. 사전청약 이후부터는 다른 청약 당첨의 기회를 잃게 돼 청약자들은 리스크를 짊어져야만 한다. 사전청약 당첨 후에도 다른 청약에 신청할 수는 있지만, 만약 다른 청약에 당첨되면 사전청약 대상 주택에 입주할 수 없게 된다.
이마저도 3기 신도시가 제대로 진행될 때 얘기다. 당초 목표했던 2025년 입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2년 사전 청약을 받은 하남 감일지구(B1 블록)의 경우, 7년이 지난 2019년에야 본청약이 진행됐다. 입주는 앞으로 2~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현재 3기 신도시의 경우 토지 확보가 50%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이 수준의 토지 확보는 그야말로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초반 50%보다 후반 50%를 수용하는 게 더 어렵다. 주로 토지보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저항하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최근 동탄2신도시에 분양한 ‘동탄역 디에트르 퍼스티지’는 1순위 청약에서 평균 80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분양한 단지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수도권 아파트 청약 경쟁은 대폭 치열해졌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20년 5월~2021년 4월) 서울 아파트 1순위 평균 청약경쟁률은 94.1대 1로 집계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년간(2017년 5월~2018년 4월)의 경쟁률(15.1대 1)과 비교하면 6배가 넘는 수준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재개발·재건축의 추진에 앞서 먼저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부터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사정이 이러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청약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청약저축 가입자는 공공 분양도 매년 몇 개 없는 부동산 시장에서 전전긍긍하면서 민간분양하는 청약예금, 주택종합저축통장, 청약부금 가입자들이 신청하는 모습을 구경한 지 오래다. 중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약저축 가입자도 민간분양 생애 최초 특별공급, 아파트 청약 추첨제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한 40대 무주택자 부부는 문재인 정부를 믿고 지지한 대가로 집 한 채 없이 쫓겨 다닌다며 전세살이의 설움을 토로했다.
이 청원인은 “열심히 세금 내는 40대에게 정부가 고작 해준다는 청약 제도가 신혼희망타운, 공공 분양, 생애 최초냐”며 “집 팔고 청약해보려던 게 후회된다”고 썼다.
[김태준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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