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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규제로 회귀… 얼어붙은 토지시장, 내년부터 양도세 폭등… LH사태 ‘화풀이’ 지적도
입력 : 2021.05.03 15: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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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시장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가뜩이나 아파트시장에 비해 빛을 보지 못했던 토지투자 움직임이 ‘올스톱’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발단은 정부가 최근 토지관련 세금을 잇달아 손봤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3월 29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예전 대비 큰 폭으로 세금을 올리는 내용의 방안을 공개했다.
우선 1년 미만 토지 거래 때 양도소득세율이 기존 50%에서 70%로 20%포인트 크게 오르고 전 금융권의 가계 비주택담보대출에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가 새로 들어간다.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취득하면 자금조달계획서도 제출해야 하며 4급 이상 고위직 중심의 재산등록제는 부동산 관련 모든 공직자로 확대됐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거래했다 적발되면 최대 5배의 벌금을 무는 내용도 담았다.
일정 규모 이상(1000m² 또는 5억원 이상) 토지 취득 시 투기 여부 판단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금조달계획서 제출도 의무화했는데, 투기가 의심되는 토지담보대출의 경우 해당 금융사가 신설 예정인 부동산거래분석 전담조직에 통보해 대출을 통한 무분별한 토지투기를 차단하기로 방안을 정했다.
비농업인의 예외적 농지 소유 인정 사유도 대폭 묶었다. 농업경영계획서 제출 시 영농경력 등 의무기재사항을 추가하는 등 농지취득 심사를 강화한 것이다. 신설되는 부동산거래분석원은 부동산시장의 이상 거래를 모니터링한다는 명분을 담았다. 분석원은 기획부동산, 지분 쪼개기 등의 의혹이 있는 필지를 골라내 국세청·수사기관에 정보를 제공한다. 보상비를 노리고 과도하게 심은 과실수 등의 나무는 보상에서 제외되도록 했다. 투기 혐의가 확인된 경우는 농업손실 보상과 이주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다. 농지투기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처분 의무(강제처분명령)까지 가능하게 했다.
투기를 막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 입장에서는 과도한 조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정부가 ‘세금 만능주의’에 빠져 투기와는 관련 없는 토지거래에도 상당한 재갈을 물린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사업용 토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주말농장도 사업용 토지에서 제외한 점이다. 장기보유특별공제는 땅을 오래 가지고 있을 경우 최대 30%의 한도에서 양도 시 세금을 줄여주는 장치다. 10년 넘게 땅을 오래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투기로 보고 중과세를 매기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제도다.
비사업용 토지는 토지 소유주가 현지에 살면서 직접 농업이나 임업, 축산업을 하지 않는 농지와 임야, 나대지나 잡종지 등을 통칭해서 말한다. 쉽게 말해 본인이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은 거의 비사업용 토지라고 봐야 한다. 투자목적으로 사는 땅은 거의 이 범주에 들어간다. 단순하게 생각해 세금을 높이면 토지로 돈 벌겠다는 생각이 줄어들고 ‘경자유전의 법칙’이 구현될 것 같지만 현실은 꼭 이론처럼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농업 인구가 크게 줄어들어 본인이 가진 토지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아지는데 이런 거래까지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지방에서 밭농사를 짓는 A씨가 자신이 보유한 토지를 처분하려고 해도 변화된 제도하에서는 거래가 쉽지 않다. 왜냐면 도시에 사는 누군가가 이 매물을 받아줘야 하는데 도시에 사는 투자자 입장에서 이 토지는 비사업용 토지가 된다. 예전에는 장기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땅을 오래 들고 있으면 양도세를 깎아주니까 ‘시간에 투자한다’는 마인드로 사놓고 기다릴 수 있었지만,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사라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농어촌 개발사업도 크게 타격을 받을 분위기다. 개발사업을 위해서는 토지 매입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공이나 민간이 부지를 수용해 개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땅이 부재지주 비사업용 토지일 경우 땅을 넘겨주는 대가로 엄청난 세금폭탄을 맞아야 한다. 세금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고 자칫 땅만 날리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따라서 합리적인 토지주라면 훗날을 기약하고 땅을 팔지 않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온다. 이렇게 선택하는 토지주가 많아질수록 토지작업은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개발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현행 법에서 규정한 비사업용 토지가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되어 있다. 해당 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부재지주여서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인데 이런 식의 대책은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개발사업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농촌지역에서도 노는 땅을 효율적으로 개발해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며 “농지 취득에 관한 새 규제가 생기면서 토지의 효율적 사용 측면에서도 많은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 한 토지에 나무 묘목들이 심어진 채 방치되고 있다.
문제의 소지가 큰 일탈행동은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LH 직원의 투기의혹을 빌미로 또 한 번 일반인들 세금 부담만 높이는 행동을 취했다는 게 다수의 불만이다. 세금만 올려놓으면 상황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는 ‘아마추어 행정’이라는 얘기다.
2015년 정부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부활시킨 게 불과 6년 전이다. 정부는 2015년 8월 세법개정안을 통해 개인과 중소기업이 보유한 비사업용 토지 양도세 중과 유예를 2015년 말로 종료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보다 10년 전인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당시 정부는 ‘8·3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비사업용 토지의 양도세 중과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이를 2007년 1월 1일부터 실시했다. 양도소득세율을 최고 60%로 높이고, 보유 기간에 따라 세금을 감면해 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후 기본세율(양도세 기준 6~38%)에 10%포인트만 추가 과세하기로 규정을 완화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추가 과세도 유예해왔다. 그러다가 2015년 정부는 다시 추가과세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토지거래의 지나친 위축을 막기 위해 그때까지 배제했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내놓은 셈이었다.
전북경찰청 반부패범죄수사대가 3월 2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 압수물이 담긴 박스를 차량에 싣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정부가 합리적으로 세법을 개정한 게 불과 6년 전인데 LH 직원의 투기 의혹으로 당근은 뺏어버리고 채찍은 더욱 강화한 ‘일방통행식’ 대책을 내놓은 셈이 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개발사업이 잘 안돼서 주택 공급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꺼낸 개발 카드가 3기 신도시다. 그런데 3기 신도시를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LH 직원 땅 투기 의혹이 불거져 이를 고치겠다고 다시 개발사업을 가로막는 토지 규제를 시도하는 셈이다”라고 평가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토지거래 경색만 불러오는 말도 안 되는 규제라고 지적 받았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법을 바꿔 비사업용 토지에 특별공제를 적용하기로 한 것인데 이걸 이번 정부가 5년여 만에 또다시 뒤집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토지는 모든 산업 활동의 원천으로 공장이나 물류창고 등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땅을 사고 파는 것인데 거래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정이 나왔다는 얘기다.
현장에서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나오고 있다. 단기 목적으로 땅을 구입했던 사람들은 양도세 중과가 되기 전 올해 안에 땅을 팔겠다는 심리가 널리 퍼져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장기보유특별공제 폐지 여파로 땅을 사겠다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어 매매가 잘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호가 대비 확 내린 ‘급매’ 물건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각에서는 ‘역발상 관점’에서 지금이 토지 투자 기회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이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어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몇 년 뒤에는 누적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제도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전은규 대박땅꾼 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이번 대책으로 시장이 급하게 얼어붙고 거래가 잘 안돼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농업인구가 늘어나면 몇 년 뒤에 다시 거래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제도가 바뀔 수 있다”며 “지금을 알짜 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매물을 적극 찾아보겠다는 투자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기회에 헌법이 정한 ‘경자유전의 법칙’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경자유전의 원칙’은 있으나마나 한 원칙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컸다. 농지의 약 60%가 도시민 소유인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앞으로 이 비율은 점점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농민의 자녀가 지방에 남아 농사를 짓지 않는다. 이미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곳이 적지 않다. 농민이 사망해 도시에 있는 자녀에게 토지를 물려주면 땅은 도시민 소유로 넘어간다. 쉽게 말해 비사업용 토지가 되는 것이다.
이미 대법원에서도 비슷한 고민의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지난 2019년 대법원은 상속받은 농지는 상속인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처분할 필요 없이 계속 소유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신 모 씨가 부산시 강서구청장을 상대로 낸 농지처분의무통지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에서는 농지법 6·7조에 따라 상속받은 농지를 소유하게 되는 상황에서 실제 이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다면 농지법 10조에 근거해 1년 이내에 땅을 처분할 의무가 생기는지가 쟁점이었다.
1·2심에서 신 씨는 패소했다. 농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면 처분을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1·2심은 “상속으로 적법하게 취득한 1만㎡ 이하의 농지라도 직접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거나 무단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농지처분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상속으로 취득한 1만㎡ 이하의 토지에 대해서 농사를 직접 짓지 않으면 농지를 1년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는 농지법 10조1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상속받은 땅은 농사를 짓지 않았어도 처분할 의무가 없다고 해석한 것이다. 또 재판부는 ‘농지에 대한 상속이 계속되면 경자유전 원칙에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 문제는 재산권 보장과 경자유전의 원칙이 조화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법원이 고려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한 전문가는 “농촌 인구가 줄어들수록 훨씬 더 많은 비사업용 토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퇴로는 열어놓지 않고 전 국민을 투기꾼으로 간주하고 거래를 꽉 묶는 정부의 정책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8호 (2021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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