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한제 피하고 보자… 강남 재건축 시장에 부는 후분양 열풍, 건설사 자금 부담 커지지만 조합원 선호

    입력 : 2020.05.28 15:58:16

  • 공사비만 8000억원에 달하는 서울 서초구 반포아파트 3주구 재건축 사업 수주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2파전 양상인데, 두 건설사 모두 준공 이후 일반분양을 진행하는 ‘후분양’을 제안해 화제다. 착공 중에 중도금 등이 들어오는 선분양과 달리 준공 이후 수입이 생기는 후분양은 건설사 ‘자금력’이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다.

    최근 삼성물산은 반포아파트 3주구 재건축 사업 조합에 준공 후 분양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후분양에 따르는 사업비 전체를 시공사가 책임지고 조달하겠다는 게 전제 조건이다. 삼성물산은 앞서 지난 4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반포3주구 재건축 사업의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 반포3주구의 경우 재건축 가구수가 총 2091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500가구가 일반분양분이다.

    먼저 건설사가 후분양을 제안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국내 주택 시장은 과거 1970~1980년대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 주택 완공 이전 분양을 진행하는 선분양 방식이 자리를 잡으며,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상한제가 적용될 경우 분양가격이 사업지 인근 시세보다 크게 떨어지게 되고,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어 대안으로 후분양을 모색한 것이다.

    반포주공1단지
    반포주공1단지
    최근 강남 재건축 사업장에서는 후분양으로 전환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정비사업의 최대 걸림돌로 떠오르자 건설사들이 앞다퉈 상한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후분양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한남3구역 검찰 조사 이후 잠잠해진 듯했던 재건축·재개발 수주전도 건설사의 과도한 사업 제안으로 다시 과열되는 양상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홍보 활동인 OS요원(홍보 도우미 직원)이 향응 논란으로 막히면서 조합원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아이디어 싸움이 치열해졌고, 최적의 대안으로 후분양이 도출된 것으로 보인다.

    후분양은 선분양과 달리 건설사의 자금 부담이 크지만 재건축 조합이 후분양을 선호한다. 후분양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만 최근 공시지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준공 이후 분양가를 산정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조합 측은 판단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 분양가는 공시지가에 기본형 건축비와 건축비 가산비용, 택지비 등이 더해져 정해진다.

    강남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최근 공시지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2~3년 후 택지비를 책정하는 것이 선분양보다 유리하다”고 말했다.

    후분양은 공정률이 60% 이상이고 건설사 2곳 이상이 연대보증을 제공할 때는 HUG의 분양보증을 받지 않아도 돼 분양가 심사도 면제된다. 공사를 100% 마친 준공 상태라면 연대보증도 필요 없다. 건설사가 자체 자금으로 공사를 마무리할 경우 준공승인을 받을 때 지자체의 분양가 심사만 통과하면 된다.

    삼성물산은 반포3주구에 공정의 60% 정도를 진행하고 분양하는 일반적인 후분양과 달리 ‘100% 준공 후 분양’을 제안했다. 분양대금 없이 삼성물산 자체적으로 공사비를 조달해 완공까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후분양은 조합 분담금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규모 사업비를 저금리에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재무구조가 건전한 시공사를 선정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며 “건설업계 최고 신용등급(AA+)을 보유한 삼성물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또 삼성물산은 빠른 착공과 공사기간 단축을 약속했다. 사업기간이 단축되는 만큼 금융비용이 감소해 조합원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우건설은 더 낮은 금리를 약속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삼성물산은 사업비 조달 금리를 변동 회사채 금리에 0.25%포인트를 더해 약 1.9%(변동, 현재 기준)를 제안한 반면 대우건설은 고정금리로 0.9%를 제시했다. 대우건설의 신용등급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조달이 불가능한 금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건설은 이에 대해 “해당 금리로 조달이 어려울 경우 회사 측에서 이자율 차액을 보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사업비 조달 금리가 높을수록 조합 측 금융비용이 늘어나 결국 조합원 부담이 높아지게 된다. 금융비용과 직결된 착공 시점과 공사기간을 두고도 두 건설사 간 의견이 달랐다. 대우건설은 착공 시점을 2022년 3월로 봐 삼성물산(2021년 5월)보다 여유 있게 뒀다. 공사기간은 삼성물산이 34개월, 대우건설이 38개월로 예상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사업 진행은 조합이 하는 것인데 공사 도급계약 체결 후 관리처분인가까지 족히 1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착공 시점은 건설사가 제안한 공사비 유효기간으로, 착공이 늦춰지더라도 공사비는 인상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반포3주구에 후분양 외에도 재건축 리츠, 선분양 등 세 가지 분양 방법을 제시했다. 조합에 다양한 선택권을 준 셈이다. 대우건설은 반포3주구에 일반분양분을 리츠 상장 후 임대운영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재건축 리츠는 조합의 일반분양분을 감정평가금액으로 리츠에 현물출자하는 것으로 분양가 규제에서 자유로우며 운영기간 중 발생하는 수익과 운영기간 종료 후 매각에 따른 차익 실현도 가능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일반분양분 리츠 방식은 법령 위반일 뿐만 아니라 현행 주택공급 질서를 무너뜨리는 불공정행위로 판단한다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혀 리츠 방식 추진은 쉽지 않게 됐다.

    앞서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은 일반분양분을 임대사업자에게 통매각해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이때도 관련 법령에 위반되는 만큼 정비계획 변경을 허용키 어렵다며 강경 대응에 나서 결국 통매각을 무력화했다. 결국 조합은 ‘1+1’ 조합원 분양분과 보류지를 최대한 늘려 일반분양분을 줄인 상태로 선분양에 나서기로 했다.

    김형 대우건설 사장(오른쪽)과 백정완 주택건축사업본부장이 5월 13일 서초구 반포3주구 재건축조합사무실을 방문해 조합관계자와 면담한 뒤 나오고 있다.
    김형 대우건설 사장(오른쪽)과 백정완 주택건축사업본부장이 5월 13일 서초구 반포3주구 재건축조합사무실을 방문해 조합관계자와 면담한 뒤 나오고 있다.
    ▶대우건설 지난해 과천푸르지오써밋

    후분양 성공 경험

    한편 대우건설은 지난해 7월 ‘과천푸르지오써밋’ 최초 후분양에 나서 분양 완판에 성공한 바 있다. 후분양대출보증 가입 없이 1조원의 사업비 자체 조달에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1571가구 규모의 ‘과천푸르지오써밋’은 지난 4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과천주공1단지가 과천푸르지오써밋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원래 시공은 포스코건설이 맡았다. 하지만 공사비와 조합 사업비 지급 등을 둘러싸고 조합 측과 갈등을 겪다가 2017년 1월 조합 측이 포스코건설과의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2017년 3월 시공사 재선정에 들어갔고 당시 업계의 예상을 뒤엎고 대우건설이 수주에 성공했다.

    대우건설은 경쟁 건설사보다 공사비를 약간 낮게 제시하는 대신 분양가는 가장 높은 3.3㎡당 3313만원으로 제시했다. 또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3.3㎡당 3147만원에 사들이겠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그 과정에서 허그(HUG)의 분양가 규제가 심해져 약속했던 분양가인 3.3㎡당 3300만원 보장이 어려워지자 조합 요청에 따라 후분양을 시행했다. 시공사 입장에서 자금적 부담이 있었지만 과감하게 조합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3.3㎡당 4000만원에 육박하는 분양가를 기록하며 허그에서 제시했던 분양가인 2955만원 대비 1000만원 이상 높은 금액으로 분양됐다. 조합원 1인당 약 1억7000만원의 프리미엄을 실현했다.

    ▶신반포21차도 후분양 카드 쟁점 부상

    인근 신반포21차 역시 후분양 카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시공능력 4·6위 GS건설과 포스코건설이 맞붙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1차 재건축 사업 수주 결과에 건설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올 들어 두 회사의 정비사업 수주 실적이 저조한 만큼 이번 수주가 남은 올해 정비사업 수주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번 수주전의 포문은 포스코건설이 먼저 열었다. 포스코건설은 신반포21차에 조합원 금융 부담이 없는 후분양을 최초로 제안했다.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과 관련해서 공사비 대출 없는 조건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조합의 이자 부담이 발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출 절차에 소요되는 일정이 생략됨으로써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도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에 맞서는 GS건설은 신반포21차 단지명을 ‘반포 프리빌리지 자이’로 정하고 매머드급 브랜드 타운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프리빌리지란 상류층이 갖는 특권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반포에서 자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완성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GS건설도 후분양 카드를 꺼냈다. 둘 다 사업비를 부담하되 조합 측에 1%대 이자를 청구할 방침이다.

    신반포21차는 반포자이(3410가구)와 GS건설이 2017년 수주한 신반포4지구(3685가구)의 중심에 위치한 단지로 GS건설이 수주하게 되면 7370가구 규모의 대규모 자이 타운이 형성된다. GS건설은 신반포4지구와 연계한 조경으로 약 2.8㎞에 달하는 산책로를 제시했다.

    신반포21차는 재건축을 통해 지하 4층~지상 20층 2개동 275가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시공사 선정 총회는 오는 5월 말 열린다.

    신반포21차 아파트
    신반포21차 아파트
    ▶정책당국 “법적 하자는 없다” 입장

    이 같은 후분양 과열전에 대해 정책당국은 법적 하자는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한남3구역 입찰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사업비, 이주비 등을 무이자로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가 입찰이 무효가 된 적이 있는데, 이와 비교해보면 ‘유이자 지원’이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당국은 정비계약 업무 기준이 다소 추상적이어서 한남3구역 등과 같은 과열현상이 나는 만큼, 해당 기준을 보다 정밀하게 손볼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비계약 관련 기준을 보다 다듬고 있다”고 밝혔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서울 강남권 아파트가 일종의 건설사 브랜드 홍보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건설사마다 출혈을 감수하며 각종 혜택을 제시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만큼 정부가 예의주시하고 있어 규제를 우회하려는 움직임이 실제로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윤예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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