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래소 해킹·코인 상장폐지 우울한 가상화폐 투자자들

    입력 : 2020.01.31 17:26:13

  • 암호화폐 시장이 다시 출렁이고 있다. 지난 1월 17일 비트코인 시세가 1000만원선을 돌파했다. 지난해 11월 1000만원대가 무너진 이후 2개월 만이다. 전체 암호화폐시장의 시가총액 70% 가까이 차지하는 비트코인이 상승하자 주요 암호화폐의 시세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같은 날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ETH)은 14.13%, 리플(XRP)은 10.32% 올랐다. 달러와 연동돼 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는 스테이블코인을 제외하면 사실상 주요 암호화폐 대부분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비트코인의 상승세는 미국·캐나다 등 북미권에서 암호화폐가 금융 제도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제기된 데 대한 기대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금융파생상품 규제기관인 상품거래위원회(CFTC) 히스 타버트 위원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비즈니스 전문매체 ‘체다’와의 인터뷰에서 “암호화폐가 CFTC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암호화폐에 대한 전반적 신뢰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며 ”이러한 움직임이 디지털 자산(암호화폐)을 합법화하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증권법을 적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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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 상승한 비트코인SV

    소외된 국내 토종 암호화폐

    가장 시세변동이 눈에 띄는 암호화폐는 비트코인SV다. 비트코인SV는 스스로를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라 주장하는 크레이그 라이트 엔체인 수석 엔지니어가 이끌고 있는 암호화폐로 1주일간 300% 가까이 올랐다. 상승요인은 다소 황당하다. 지난 1월 15일 한 암호화폐 전문지는 “크레이그 라이트가 비트코인(BTC) 110만 개(약 96억달러 상당)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튤립 트러스트’의 마지막 키를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가 비트코인 창시자일 가능성을 보도한 데 있다. 비트코인이 거래된 이후 줄곧 잠자고 있는 엄청난 양의 물량이 개발자금으로 유입될 것이란 희망고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암호화폐 시세상승은 주로 해외 자금의 주도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암호화폐 통계사이트 코인힐스에 따르면 17일 현재 법정화폐-비트코인 간 거래량의 72.39%를 달러화, 16.97%를 엔화가 차지했다. 원화는 전체 거래량의 1.8%에 불과했다.

    반면에 국내자금 융통이 지지부진하자 글로벌 시장에서 소외된 토종 암호화폐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캐리프로토콜과 무비블록, TTC프로토콜 등 국내 블록체인 개발사가 발행한 암호화폐들은 반년 전과 비교해 반토막 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고점에 물린 일부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사기당했다”며 집단소송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토종 코인의 경우, 국내 거래사이트 위주로 상장돼 유동성이 크지 않은 데다 대부분 실서비스가 자리 잡기 전 급하게 코인 판매가 이뤄진 점을 시세급락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자신을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라 주장하는 크레이그 라이트 엔체인 비트코인SV 수석 엔지니어
    자신을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라 주장하는 크레이그 라이트 엔체인 비트코인SV 수석 엔지니어
    ▶거래소 코인 상장폐지 이어져

    지난 1월 6일 라인이 운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박스(BITBOX)가 시가총액 3위 암호화폐 리플(XRP)을 상장폐지했다. 비트박스는 6일 “리플을 상장폐지한다”며 “비트코인마켓, 이더리움마켓, 테더마켓에서도 리플 거래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상장폐지 이유에 대해서는 비트박스 측은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부족한 거래량이 꼽힌다. 비트박스 내 리플 거래대금은 지난 24시간 기준 0.0839BTC다. 원화 환산 시 약 77만원이다. 빗썸에서 리플 거래대금은 같은 기준으로 33억원 정도다. 영국 암호화폐거래소 코인플로어(CoinFloor)는 1월 3일부터 아예 비트코인 온니(Bitcoin-only) 플랫폼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비트코인캐시(BCH)와 이더리움(ETH) 등을 상장폐지하고 비트코인(BTC)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코인플로어 외에 암호화폐 수탁(커스터디) 업체 빗고는 비트코인캐시에서 갈라져 나온 새 암호화폐인 BSV를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해외 거래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빗썸이 지난해 상장폐지한 암호화폐는 총 10종이다. 빗썸은 지난해 8월 빗썸 상장적격성심의위원회를 발족하면서 매월 빗썸에 상장된 모든 암호화폐에 대한 상장 적격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빗썸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투자 유의종목을 지정하며 상장폐지 절차에 착수한 이후 지난해 말 암호화폐 솔트(SALT)와 큐브(AUTO)의 거래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디에이씨씨(DACC)와 롬(ROM), 프리마스(PST)의 상장폐지를 발표한 이후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총 7종의 암호화폐의 상장폐지를 결정한 것이다. 암호화폐 퇴출은 추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의종목으로 지정된 암호화폐가 5종이며 추가 유의종목지정 가능성도 크다.

    빗썸 측은 “매주 투자유의종목을 지정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한다”며 “특정기간 동안의 유동성과 문제점을 파악한 뒤 문제가 되는 암호화폐에 대해 유의종목을 지정하고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거래지원을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업비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2018년 10월 상장폐지 기준을 처음으로 내놓은 업비트에 현재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암호화폐는 190여 종이며 지난해 약 33종이 상장폐지됐다. 업비트는 지난해 9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내놓은 암호화폐 가이드라인을 반영해 모네로(XMR), 대시(DASH), 지캐시(ZEC), 피벡스(PIVX) 등 프라이버시 코인을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밖에 블록틱스(TIX), 머큐리(MER)가 추가로 원화 마켓에서 제외됐다. 코인원 역시 지난해 어거(AUG), 콘텐츠프로토콜(CPT), 엔진코인(ENJ) 총 3종을 상장폐지했고 코빗도 지난해 비트코인골드(BTG)와 지캐시(ZEC)를 퇴출시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이나 사업 개발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여부와 유동성이 부족한 암호화폐가 우선 폐지대상이 된다”며 “거래소 법제화에 대비해야 하는 올해 상장폐지는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근 거래소들의 움직임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 시행을 대비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은 암호화폐 거래소 인허가제를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시행되면, 암호화폐 거래소 자격을 심사하는 기준이 신설된다. 이에 거래소들이 법 시행에 앞서 부실 암호화폐를 미리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개발자 지미 송이 암호화폐 거래 규모가 줄면서 거래소들은 생존을 위해 보다 많은 코인을 상장폐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미 송은 “거래소들이 알트코인들을 상장폐지하는 흐름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거래 규모가 줄었고 개별 코인들의 리스크는 증가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거래소들은 생존을 위해 보다 많은 상장폐지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 거래소의 퇴출, 해킹, 대표 구속 등 사건사고도 빈번히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2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빈이 파산했다. 3월에는 강서구에 위치한 한 암호화폐 거래소 탑비트에서 대표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와 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자살설 이후 이렇다 할 소식이 없던 대표가 3월 말 멀쩡히 회사에 복귀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9개월이 지난 12월 현재, 탑비트 사이트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로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5월에는 보이스피싱 논란과 잦은 입출금 정지로 논란을 빚어온 트레빗이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당시 트레빗은 “여러 에어드롭 이벤트를 해봤지만 거래소 활성화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내부적인 문제와 경영여건 악화로 파산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트레빗 측이 확보한 재산을 암호화폐를 통해 국외로 빼돌렸다는 ‘기획파산’ 의혹을 제기하며 운영사 노노스 대표와 임원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업무상 배임, 유사수신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6월에는 출금 지연, 아토믹 스왑 문제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암호화폐 거래소 올스타빗이 사이트를 완전 폐쇄하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거래소는 시세조작은 물론 거래량 조작, 정체불명 코인 상장 등의 문제를 일으켰고 투자자들은 해당 거래소를 고소했다. 해당 거래소 대표는 올해 8월 고객 2만6000여 명으로부터 1778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으며 거래소 직원 등 18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해 11월에는 거래소가 자금난에 시달리며 출금을 중단해 투자자들의 분통을 사는 일도 발생했다. 코인제스트 측은 당시 “세급납부 등의 문제로 자금난에 시달렸다”며 “경영진의 개인 출자 등을 통해 약 40억원을 확보해 11월 말이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코인제스트의 출금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11월 말에는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업비트가 해킹 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업비트는 긴급 공지를 통해 “이더리움 34만2000개(약 580억원)가 알 수 없는 지급으로 비정상 출금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공지사항을 통해 이상거래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고 이체된 이더리움은 업비트의 자산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해킹을 인정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보안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거래소들이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 폐쇄로 투자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업계전반의 신뢰성이 훼손돼 신규자금의 유입이 지지부진해 지며 국내 거래소 위주로 거래되는 코인의 시세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토종 코인의 시세하락과 소외는 토종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성장동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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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화폐 투자 세금 물릴까?

    최근에는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과세 논의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암호화폐 과세’ 발언이 나오면서부터다. 홍 부총리는 지난 1월 14일 “내국인도 비트코인 등 거래에 따른 수익이 나고, 이를 포착한다면 과세가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정부는 올해 7월 공개하는 세법개정안에 암호화폐 과세에 관한 법적 근거와 과세 대상을 명시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실질적인 과세가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정부는 2017년 말부터 ‘내국인 가상화폐 소득세 과세’를 내부적으로 검토해 왔다. 국회에서 2~3년간의 국정감사 때마다 ‘암호화폐 과세공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세법개정안이 마련된 이후 입법절차에 있어 차질이 없다면 올해 소득분에 대해 내년부터 과세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쟁점은 암호화폐의 ‘자산’ 인정 여부다. 암호화폐가 자산으로 포함되면 내국인에 대한 소득세 과세도 수월해진다. 국제사회가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소득세를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빗썸은 기존 법인세 외에도 국세청으로부터 800억원대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받았다. 지난해 말 빗썸의 운영사 빗썸홀딩스 관계사인 비덴트는 지난 27일 주요경영사항을 알리는 공시를 통해 “지난 11월 25일 빗썸이 국세청으로부터 외국인 고객의 소득세 원천징수와 관련, 약 803억원(지방세 포함)의 세금을 부과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국세청이 빗썸 내 외국인 투자자의 소득세를 자체 계산해 원천징수한 것이다.

    현행 세법상 외국인 등 국내 비거주자의 경우 회사 등 소득을 지급하는 사람이 소득자에게 원천징수해 대신 신고·납부하도록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국세청은 그동안 빗썸이 원천징수의무자로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이에 대해 빗썸 측은 반발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비덴트 측은 “빗썸이 이번 과세와 관련한 법적 대응을 계획하고 있다”며 “일단 부과된 세금을 납부한 후 행정소송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관련업계에선 이번 빗썸 과세를 계기로 정부가 코인 과세 정책 마련에 팔을 걷고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으며 “투자자에 대한 과세가 본격화되면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 시장이 과거에 비해 침체 중인 상황에서 사실상 규제가 더해진 것”이라며 “과세 여부에 따라 거래 빙하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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