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양가상한제 ① A to Z | 서울·과천 등 수도권 투기과열지구가 대상… 단기효과 있다지만 공급축소 악영향 불가피
입력 : 2019.10.02 11:06:08
-
부동산 규제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확대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가 공공택지에 이어 민간 땅에 짓는 아파트까지 전방위적인 칼날을 들이댄다는 뜻으로 참여정부 때도 마지막 정책수단이었다. 분양가상한제는 주택을 분양할 때 택지비(땅값)와 건축비(공사비)에 건설업체의 적정 이윤을 보탠 분양가격을 산정해 그 가격 이하로 분양하도록 정한 제도다. 노무현정부 당시인 2007년부터 7년간 시행했던 분양가상한제는 공공·민간택지 모두에 적용했다. 이후 2014년부터 민간택지에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고, HUG가 보증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분양가를 간접 통제해 왔다.
재건축 공사가 진행 중인 신반포3차·반포경남 아파트 전경
국토부는 8월 당정협의를 거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 개선 추진안’을 발표했다. 분양가상한제와 관련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은 관계기관 협의,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를 거쳐 이르면 10월 초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개선안의 가장 큰 변화는 민간 분양가상한제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을 완화했다는 점이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민간택지 아파트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려면 일단 직전 3개월간 해당 지역 주택 가격 상승률이 해당 지역이 포함된 시도 물가상승률의 2배를 넘어야 한다. 정부는 이 요건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바꿨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는 서울시 25개 구와 경기 과천시·광명시·성남시 분당구·하남시, 대구 수성구, 세종시다. 나머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의 세 가지 부수 조건(하나만 만족하면 됨)인 ▲최근 1년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 ▲최근 3개월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 ▲직전 2개월 월평균 청약경쟁률이 5대1 초과 또는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 청약경쟁률이 10대1 초과는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해당 시·군·구의 분양 실적이 없는 경우에는 해당 주택 건설 지역(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시·군)의 분양 가격 상승률을 사용하도록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 상태상 서울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 내 상당수 지역이 분양가 상승률과 청약경쟁률, 거래량 등 요건 중 최소 한 가지를 충족할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최근 1년간 서울의 민간 아파트 분양가는 전년 동월 대비 21.01% 올랐는데, 최근 1년간 물가상승률은 0.73%에 불과했다.
원베일리·둔촌주공도 포함
정부는 관련 규정을 개선하면서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도 대거 늘렸다. 현행 규정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상한제 적용대상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한 단지’로 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 조항을 ‘최초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한 단지’로 변경했다. 이럴 경우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재건축 사업이 막바지 단계인 둔촌 주공,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 개포주공 1·4단지 등이 모두 규제 대상에 새롭게 포함된다. 규제 소급적용이 위헌 논란 소지로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서도 유례없이 강한 기준을 들이댔다.
서울 전체 381개 정비사업지 중 관리처분 이후 단계에 있는 단지 151개 13만7000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 폭탄’이 떨어진 셈이다. 후분양을 해도 분양가상한제가 입주자 모집공고 신청분부터 일괄 적용된다. ‘나인원한남’처럼 임대 후 분양을 통해 분양가상한제를 피하려고 하는 고가주택은 HUG의 임대보증 심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민간 분양가상한제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히는 ‘로또 청약’에 대해서도 규제가 준비됐다. 현재 3~4년인 전매제한 기간을 5~10년으로 연장하고, 최대 5년에 이르는 거주의무기간 도입도 추진한다. 시세차익이 수분양자에게 지나치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지만 거주이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점과 결국 10년씩 집을 팔지 않고 살 수 있는 매수자는 현금부자들뿐일 것이란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불가피한 사유로 집을 매각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우선적으로 매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LH가 매입할 경우 입주금에 은행 정기예금 평균 이자율(2019년 5월 기준 연 1.97%)만 더해준다는 입장이라 재산상 손실을 보고 매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정 기간이 지난 경우에는 LH의 매입가격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 검토되지만 정확한 기준은 나오지 않았다.
재건축 사업을 차근차근 준비하던 조합들은 민간 상한제가 발표되자 황망한 표정이다. 민간 상한제가 시행되면 사업성이 크게 떨어져 재건축 조합으로선 손실을 떠안고 사업을 진행할지, 아니면 중단할지 결정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택지비의 적정성을 한국감정원이 검증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택지비 산정 기준도 정부가 정하는 표준지공시지가에 연동하고, 평가 당시 예상되는 개발이익도 반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한 2개 이상의 감정평가법인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택지가격을 평가한다. 하지만 개정된 분양가상한제가 실시되면 이들 감정평가법인이 책정한 가격이 적정한지를 감정원이 다시 심의한다. 만일 감정원이 해당 택지비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정한 감정평가법인은 토지가격 감정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감정원이 정부 통제를 받는 공공기관인 만큼 상한제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인 땅값을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감정평가 당시 미래 개발이익까지 반영하지 못하도록 해 가격 통제 수위를 더 높여 놨다. 감정평가업계에 따르면 지금도 택지비는 실제 거래가격의 70~80%선에서 책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분양가 중 택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선이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방배그랑자이 전용 84㎡는 평균 분양가 17억3000만원 중 택지비가 11억7000만원으로 3분의 2를 차지했다. 한 감정평가사는 “새 기준이 적용되면 택지비가 더 깎일 가능성이 높다”며 “서울 재건축 단지들의 수익성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 모두 민간 분양가상한제가 단기적으로는 분양가격을 안정시켜 부동산 시장 과열을 잠재울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장기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장은 집값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결국 주택 공급을 막아 부작용을 가져올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의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 통계에 따르면, 2007년 9월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고 이듬해 아파트 물량은 ‘반토막’이 났다.
서울과 수도권, 전국의 주택 인허가 실적에서 아파트 물량은 2007년 5만28호, 26만5454호, 47만6562호에서 각각 2만1938호, 13만421호, 26만3153호로 줄었다. 물론 2007년의 수치는 상한제 시행 직전 ‘밀어내기’ 분량이 쏟아진 결과로, 서울과 수도권, 전국이 직전 해보다 각각 1만9857호, 11만5599호, 6만3571호씩 늘어난 상태였다. 이 같이 하락한 수치는 서울의 경우 2010년, 수도권과 전국은 각각 2009년과 2015년에 이르러서야 상한제 시행 전인 2006년 수준을 회복하거나 넘어섰다. 다만 상한제와 물량 공급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다. 금융위기 등 다양한 대내외 경제 여건들이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미쳤고, 당시 미분양 주택들이 급격히 늘어 건설사들이 공급을 쏟아내기 어려웠던 사정도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참여정부 당시 집값 폭등이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가격이 안정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음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이 같은 부담 때문인지 정부는 상한제 필수요건만 완화한 후 구체적인 시기와 지역에 대한 판단은 주거정책심의위원회로 공을 넘겼다. 상한제 적용요건은 주택법 시행령에 정해져 있지만 상위 법령인 주택법 58조 1항에 정부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주거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적용 대상을 선정하도록 돼 있다. 주택법 시행령에 명시된 상한제 요건을 충족한 지역이라도 실제 적용 여부는 주정심위가 결정하는 만큼 판단은 심의위원과 정부의 주관적 결정에 따르는 셈이다. 정부로서는 상한제 적용 조건만 제시하고 지역과 시기에 대한 결정은 미루는 모양새가 된다. 정부의 목적이 실제 분양가 상승 억제보다 ‘강남 재건축 사업 차단’에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주정심위는 상한제뿐만 아니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공공택지개발 등 국가 부동산 정책에서 중요한 결정권을 갖는 의결기구다. 위원장인 국토부 장관을 포함해 위원 24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당연직(위원장 포함) 13명의 자리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차관(9명), 국무조정실2차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 등 정부 관련자로 채워진다.
위촉직 11명은 교수 등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지만 국토부 장관이 위촉권을 쥐고 있다. 개최 시기와 회의 과정 등 핵심 사항은 비공개다. 주정심위 운영세칙에 따르면 심의 방식도 대면의결과 서면의결을 모두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주정심위가 언제 열려서 첫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을 어디로 정하느냐다. 하지만 법 개정이 끝나는 10월에 주정심위가 열릴지 여부부터 불투명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민간 분양가상한제는 10월에 바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부처 간 별도 협의와 판단에 의해 시행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가 독자 판단으로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인가’란 질문이 나오자 홍 부총리는 “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 같은 홍 부총리 발언에 따라 앞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실제 시행하는 과정에서 기재부와 국토부가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손동우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