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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式 재개발 투자 나도 가능할까
입력 : 2019.05.03 10: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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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을 공직에서 물러나게 한 ‘흑석동 재개발 25억원 투자’건은 지난달 가장 핫한 뉴스 중 하나였다. 김 전 대변인의 대범한 투자건을 단독보도한 매일경제신문 취재진은 해당 부동산의 등기부를 떼어보고도 처음엔 이 사실이 오롯이 믿기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 한창 전쟁을 벌이던 그 때, ‘청와대의 입’인 김 전 대변인이 은행대출 10억원을 비롯해, 부인의 퇴직금과 전세금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해서 재개발투자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등기부에 따른 투자개요는 이렇다. 김 전 대변인과 그의 부인은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흑석9구역 내에 있는 지상2층 꼬마빌딩(상가주택)을 지난해 7월 2일 25억원에 매입했다. 부부는 공동 명의로 KB국민은행에서 12억원의 채권최고액을 설정하고 10억2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공동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8월 10일 완료됐다.
김 전 대변인이 사들인 상가주택은 재개발 이후 아파트 2채와 상가 1실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이다. 김 전 대변인은 대형 아파트 한 채와 상가 1실을 받으려 했다고 직접 소명했다.
흑석9구역 재개발 사업은 지난해 서울 정비사업 최대어로 뽑힌 금싸라기 땅이다. 현재 재개발 사업 단계 중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상태로, 롯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준공 시 연면적 18만7958㎡에 지하 7층~지상 28층, 11개 동, 1536가구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단지명은 ‘흑석 시그니처 캐슬’로 예정됐다. 관리처분인가가 이뤄지면 철거·이주에 들어간다. 이 건물의 시가는 현재 35억원에 이른다는 게 주변 부동산중개소들의 평가다.
정치·윤리적 이슈를 차치하고, 김 전 대변인의 흑석동 투자는 부동산에서 대박을 낼 수 있는 고수의 영역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일반인들은 김 전 대변인처럼 대규모 자금을 끌어 모으거나 저평가 급매물의 정보를 취득하기 어렵다. ‘이대로 하라’는 성공스토리라기보다 ‘이렇게도 한다’는 스페셜케이스로 보는 게 낫겠다.
김 전 대변인 부부의 흑석동 투자 결정과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먼저 입지다.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은 지난해 하반기 가장 뜨겁게 부동산시장을 달궜던 동네다. 동작구가 강동구를 제치고 ‘강남4구’ 로 올라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데다, 황금노선이라 불리는 지하철 9호선이 지나가면서 생활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변했다. 과거 노후상가와 다세대 주택이 들어섰던 지역이 고층아파트촌으로 변신하면서 고소득 젊은 층들이 대거 유입됐다.
부동산 전문가 A씨는 “흑석동은 서울에서 가장 핫한 반포와 용산을 이어주는 핵심지로서의 기능을 가진다”며 “최고 아파트부촌으로 자리 잡은 반포와 향후 서울의 50년을 이끌어갈 용산 개발호재 사이에서 양쪽 어디가 올라도 뒤따라갈 수 있는 입지적 특색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 전 대변인은 흑석동 가운데서도 기존 아파트가 아닌 재개발 지역을 노렸다. 그것도 흑석재개발 구역 중 가장 속도가 앞서나간 9구역이었다. 계획대로라면 6년 이후 흑석역 인근에 신축 아파트촌이 자리 잡는다. 9구역은 사업시행인가를 이미 취득한 곳으로 시공사 선정과 설계도까지 나온 상태다. 이미 진행돼왔던 재개발사업이기 때문에 조합원 지위양도 거래도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재개발 투자에 있어 정비구역지정이나 추진위설립 같은 초기 단계는 리스크가 너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재개발은 각양각색의 상가와 다세대 주택 등 이질적인 소유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어, 아파트 재건축보다도 변수가 많다.
특히 김 전 대변인은 노후 상가주택을 25억원의 거금을 주고 매입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재개발은 실거주가 쉽지 않고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반지하 다세대 주택처럼 소규모 자본을 들여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소규모 투자 수요가 많기 때문에 재개발 구역에서는 덩치가 큰 물건일수록 평당 가치가 급격히 체감하는 저평가 현상이 나타난다.
부동산 전문가 B씨는 “재개발 투자에서 대다수 초짜들은 수천만원이나 수억원의 자투리 지분을 찾기 때문에 이런 과정에서 금액이 많이 나가는 무거운 물건이 저평가되기 마련”이라며 “재개발 지역에 25억원을 투자했다는 것은 지역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는 등 상당한 투자적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 C씨는 “지난해 7월은 부동산 상승열기가 주춤하다가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 시기다”라며 “당시 가장 뜨고 있던 반포와 용산을 잇는 동작구는 이후 가장 강한 상승세를 연출했는데 투자로서는 100점짜리 투자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전 대변인이 사들인 이 상가주택은 상가 한 채는 물론 아파트 두 채까지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건물이다. 준공시까지 이자 등을 감안해 현재가치로 환원해도 35억원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견해다.
흑석9구역 조합원인 D공인중개사 대표는 “이 땅의 공시가격이 15억6900만원인데 9구역 감정평가액은 평균 150% 수준으로 결정돼 땅의 감정평가액만 23억5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에 가깝고 도로에 접해있는 상가건물이기 때문에 그 이상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1층이 상가로 쓰이는 272㎡ 연면적의 2층 건물은 감정평가액이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7000만~1억5000만원 사이일 것”이라며 “결국 감정평가액 24억~25억원 정도 부동산을 거의 웃돈을 주지 않고 사들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 건물은 매수인이 개인 사정으로 인해 급매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도인(매도 전 3인 공동 소유자 중 1인) E씨는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졌고, 아버지가 지난해 돌아가시며 불가피하게 급하게 건물을 팔았다”며 “최근 대출이 너무 늘어나 감당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지난해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재개발사업은 재건축과 달리 재건축초과이익환수부담금을 물지 않아 개발이익을 오롯이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흑석동의 재개발9구역, 여기서도 급매로 나온 저평가 매물’에 올인한 것은 최고수의 투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의겸 전 대변인이 매입한 서울 동작구 흑석동 건물
아무리 좋은 물건을 선택해도 총알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일반인들이 부딪히는 현실의 벽도 여기에 있다. 김 전 대변인은 물건을 고르는 눈뿐 아니라 자금동원과 투자 실행력에 있어서도 상당한 전투력을 보여줬다.
먼저 본인의 거처를 따로 마련해 전세금까지 투자금에 포함시켰다. 당시 김 전 대변인은 흑석동 건물을 매입하기 전 자신의 4억8000만원가량 서울 종로구 옥인동 전세를 뺐고, 앞서 청와대 직원들을 위한 청운동 관사(官舍)에 입주했다. 이를 통해 아낀 전세비 4억8000만원을 건물 매입비에 보탠 셈이다. 소위 ‘관사테크’다.
윤리적 문제는 차치하고, 이렇게 자신의 거처를 따로 해결할 수 있을 때가 좋은 투자기회다. 지방으로 출근하면서 관사를 얻을 수 있거나, 해외연수나 파견으로 국내 거처가 필요 없어졌을 때 전세금을 종잣돈으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 집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부동산 재화의 특이성에서 기인한다.
김 전 대변인은 30년 이상 교사생활을 한 부인의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아 2억원을 보탰다. 이 역시도 상당한 결단력 없이는 어려운 시도다. 신문기자였던 김 전 대변인은 미더운 연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생을 받을 수 있는 부인의 교직원연금을 마다하고 일시불로 퇴직금을 받았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고민하고 재는 것만으로는 절대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김 전 대변인은 시중은행에서도 당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금을 대출받은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서는 상가주택자금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유령점포’를 끼워 넣는 등의 대출서류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금융감독원이 김 전 대변인의 특혜대출 의혹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결국 무혐의로 결론냈다.
김 전 대변인은 흑석동 상가주택을 담보로 KB국민은행에 10억2000만원의 상가담보대출을 받았다. 이때 임대 가능한 점포를 10개로 계산해 대출이 집행됐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이자비용 대비 임대소득 비율(RTI)을 맞추기 위해 임대 불가능한 점포를 임대 가능한 것으로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은행 측은 “당시는 RTI 유예기간으로 RTI를 맞추고자 조건을 부풀릴 이유가 없고, 임대 가능한 점포 수는 임의로 지정된 감정평가사 서류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파트 한 채 포기한 이유
김 전 대변인이 매입한 부동산은 거래가격이 25억원에 이르는 만큼 재개발 이후 아파트 2채와 상가 1채를 받을 수 있는 물건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김 전 대변인은 대형 아파트 1채와 상가 1실을 신청했다고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김 전 대변인 발언이 사실인 경우 평가금액에서 남는 액수는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다만 김 전 대변인이 아파트 2채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채만 신청한 이유에 대해선 궁금증이 생긴다. 통상 양도소득세를 내야하는 현금청산보다는 실물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 전 대변인은 “노모를 모시기 위해 대형 아파트 한 채를, 자신의 노후생활을 위해 (임대료가 나오는) 상가를 신청했다”고 해명했다. 다주택자 투기는 아니라는 취지로 들렸다. 하지만 흑석9구역의 내부 상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김 전 대변인의 아파트 1채 포기의 이유를 현실적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해당 재개발 조합 상황에 밝은 전문가는 김 대변인이 상가를 확실히 받기 위해 ‘아파트 1+1’을 포기한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흑석9구역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상가건물을 소유한 조합원은 160여 명인데, 향후 지어질 단지 안팎의 상가 개수는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가건물 소유자 모두가 상가를 받기 원한다면 절반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사업자등록을 가지고 영업을 하고 있는 조합원이 향후 상가배정의 우선순위기 때문에, 직접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김 대변인은 후순위로 밀린다.
흑석뉴타운 9구역 조합 관계자는 “사업자등록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을 제외하면 배정할 수 있는 상가가 많지 않은데 이 경우 신청 아파트를 제외한 본인 부동산의 감정평가액이 클수록 상가를 우선배정한다”며 “아파트 2채와 상가 1실을 신청할 수 있을 정도로 비싼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파트를 한 채만 신청할 경우 상가 배정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희소한 상가물건에 대한 배정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형아파트 입주권을 포기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사업에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물건과 현금청산 여부를 놓고 꼼꼼히 주판알을 튕겨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
마지막으로 ‘김의겸 흑석동 투자’가 일반인의 뇌리에 가장 깊숙이 새겨놓은 투자 철칙은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더욱 그렇다.
이번 정부는 ‘부동산으로 돈버는 시대는 끝났다’는 정책기조를 내세우고 시종일관 밀어붙이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22개월 동안 11차례나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생 자신의 집 한번 사보지 않았던 김 전 대변인이 청와대 재직 중 25억원 투자를 실행했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 이후 지난해 11월부터 드디어 서울아파트 값도 하향세로 돌아섰다. 이제 한국 부동산 시장이 대세적 하락기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 급등한 서울 집값은 아직도 그 상승폭 상당부분을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 정부가 서울 강남 등 핵심지에 재개발 재건축을 막으면서 집값을 방어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부족이 집값 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강하다.
결국 부동산 가격은 그 지역의 인구유출입, 소비력(경제력), 생활 인프라 정도, 상대적 희소성 등 경제적 요인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움직인다. 여기에 투기수요가 붙으면 더 급하게 오르내리고, 정부는 그 진동 폭을 줄이는 역할에 그친다. 정부가 목을 죄어도 자신이 실거주하거나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개발호재가 있는 핵심지 부동산에 중장기 투자를 하는 것은 재테크에서 필수다. 김 전 대변인도 몸 바쳐 이 철칙을 증명해줬다.
[전범주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4호 (2019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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