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춤 집사’ 자처하는 은행 PB 서비스, 돈 굴려주고 강사 모셔 자녀 입시 설명회까지
입력 : 2019.03.05 14:12:10
-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드라마 <스카이캐슬>. 3대째 의사가문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예서엄마’의 고군분투를 그린 이 군상극에서 모든 사건이 시작된 곳은 VVIP고객과 입시코디를 짝지어준 모 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행사장이었다. 연간 수십억원이 드는 코디 서비스를 은행이 해주는 것은 드라마적 과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은행들은 이만큼은 아니지만 단순히 돈을 불려주는 것뿐 아니라 개인 집사 역할까지 마다 않는 최고급 PB서비스를 선보이며 수십억원의 자산을 맡기는 우량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정부 규제와 경기 침체 우려까지 겹친 탓에 예전처럼 대출에서 나오는 이자만으로 경영을 이어가기 힘들어지면서 쏠쏠한 상품 판매 수수료에 안정된 수신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자산관리(WM) 부문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그 핵심인 고액 자산가를 위한 PB서비스 역시 진화하고 있다.
▶미술관·명품매장 안 부럽다… 슈퍼리치의 ‘격’ 높이는 PB센터 줄줄이 오픈
지난 1월 서울 송파구의 우리은행 잠실역금융센터 2층에는 특별한 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 은행의 첫 번째 단독 최고급 PB센터인 ‘투 체어스(Two Chairs) 프리미엄 잠실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전국 700개가 넘는 우리은행 영업점에서 모두 PB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은행 창구 중 1~2개를 할애하는 데 그쳐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 보니 이 은행은 강남구와 여의도, 서초 등 서울 주요 지역과 부산에 고액 자산가 고객들만 따로 상대하는 PB 전용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은행은 올해 VVIP 고객들을 위한 별도의 초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미엄 공간을 따로 만들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잠실역센터다.
VVIP 전용 공간을 내세운 만큼 인테리어부터 차별화했다. 최근 부쩍 늘어난 잠실·송파 지역 신흥부자들의 취향에 맞춰 황금 사자 장식의 의자 등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화사한 LED조명의 젊은 감각도 갖췄다. 벽 곳곳에는 미술 작품을 비치해 언뜻 보면 미술관 같은 느낌도 준다. 무엇보다 기존 PB센터보다 VIP 전용 서비스를 한층 강화했다. 일반 센터에는 없는 세무사와 부동산전문가, 애널리스트를 배치하고 PB 숫자도 늘려 상담 인력 풀을 기존보다 최대 3배 많은 9명으로 꾸렸다. 센터를 찾아온 고객은 주식, 파생상품, 부동산, 세금, 증여, 상속까지 재테크 전 분야에 걸친 종합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센터 고객에게 프리미엄급 사모펀드(PEF)에 가입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고, 예치금액에 따라 최대 100만원의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상담 예약을 한 고객의 집으로 데리러가는 픽업 서비스도 운영한다. 픽업용 차로는 K9을 배치해 일반 PB센터의 K5와는 차별화했다.
잠실센터를 이용하려면 최소 3억원의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 기존 PB센터(1억원)의 세 배에 달한다.
우리은행은 잠실센터에 이어 최근 본점, 강남, 부산에도 프리미엄 PB센터를 열었다. 연말까지 대치, 압구정, 서초 등 대표적인 부촌에도 센터를 만들어 올해 안에 10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씨티은행 분당센터
글로벌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 한복판에 문을 연 씨티은행 청담센터는 지하 2층~지상 5층(전용면적 1488㎡)에 총 70명의 직원이 상주하는 국내 최대의 PB센터다.
프라이빗뱅커(PB)인 전담역(RM) 28명을 포함해 포트폴리오 카운슬러(PC) 3명, 대출·외환·보험 등 각 분야별 국내 최고의 자산관리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다.
국내 최대 자산관리센터를 표방한 만큼 씨티센터는 고액 자산가들의 취향에 맞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센터 지상 2~3층은 자산 2억~10억원을 가진 씨티골드고객용, 4~5층은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씨티프라이빗클라이언트(CPC)를 위한 전용공간이다. 앤디 워홀의 회화작품 등 각종 예술품, 다양한 책이 갖춰져 있어 은행이라기보다는 미술관이나 항공사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다. 현재 씨티은행의 WM센터는 청담을 포함해 반포, 도곡, 강북, 분당, 부산, 대구까지 7곳으로 늘었다.
KB국민은행도 빠르면 올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이 지역 부유층 고객을 위한 고급 PB센터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일식집 등으로 운영되던 지상 3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지역 특성상 국민은행 PB센터 중 자산규모가 가장 큰(30억원 이상) VVIP 전용인 ‘스타PB센터’이자 동시에 은행·증권 서비스를 한번에 받을 수 있는 복합점포로 조성될 예정이다.
▶2세 케어부터 병원 예약·상조까지, 고객 마음 잡으려 진화하는 PB서비스
은행 PB센터를 찾는 고객들은 4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입시를 앞둔 수험생 자녀가 있는 학부모들이 많다. 연령대를 더 높이면 아들이나 딸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중소기업 CEO도 일반적이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최근 은행 PB센터들은 입시 컨설팅부터 해외 연수, 2세들의 미팅까지 주선하는 전략으로 고객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12월 신한은행 남대문 본점 20층 대강당에는 전국에서 모인 학부모 250명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국내 최고 입시전문가로 꼽히는 이영덕 대성학원 학력개발연구소장의 ‘2019학년도 정시 대학입시 설명회’를 듣기 위해 나선 이 은행의 VIP고객들이다. 은행 우수 등급인 ‘프리미어’급 고객을 대상으로 선착순 모집을 통해 진행한 이 행사는 특히 지난달 ‘불수능’ 여파 덕에 순식간에 접수가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신한은행은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지난달에 이어 오는 7월에는 대학 수시, 12월에는 정시 입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입시 코디’까지는 아니지만 유명 입시학원과 제휴를 맺고 진행하다보니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PB고객이라면 꼭 들어야 할 필수 행사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우리은행은 해외 유학을 고민하는 우수 등급 ‘투 체어스’ 고객 자녀에게 유학할 때 필요한 서류와 송금절차, 현지 정보 등을 알려주는 글로벌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미국을 포함해 우리은행 해외지점이 있는 나라에 유학 계획이 있으면 나중에 현지에 갔을 때 은행 계좌를 곧바로 이용하도록 해주는 ‘사전계좌개설서비스’도 진행한다.
SC제일은행 우수 고객들의 자녀는 국내와 해외를 누비며 견문도 쌓고 경제도 배울 수 있는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오는 21~25일에는 중·고등학생 자녀들이 싱가포르를 찾아 현지 스탠다드차타드 은행과 싱가포르 국립대학 견학 등의 코스를 밟는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을 대상으로 연 3회 열리는 이 행사는 지금까지 800여 명이 참여했다.
KB국민은행은 개그우먼 박나래 등 인기 연예인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에 대해 10·20대에게 진솔하게 얘기하는 ‘희망든든 토크콘서트’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 계획이다. 콘서트 참가 대상은 PB센터나 골드&와이즈 라운지 운영점 고객의 자녀들이다. 자산가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2세들의 인맥 만들기도 은행이 도와준다.
KEB하나은행은 국내 최초로 지난 2000년부터 매년 우수고객 자녀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지금까지 40쌍의 부부가 은행 덕택에 탄생했다.
신한은행도 자사의 PWM센터에서 관리하는 고객들의 미혼 자녀들을 연결해주는 세미나와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은행 PB들은 자산가들이 극도로 노출하기 꺼리는 자신의 자산 규모와 투자 전략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PB를 가족보다 더 가깝게 생각하는 고객들도 적잖다. PB들이 꼭 자산관련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개인 집사가 할 만한 일까지 도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한 시중은행 PB는 “해외에 살고 있는 부모님이 지금 거동이 힘들 정도로 아픈데 급히 국내로 모실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긴급한 고객의 요청을 받았다. 국내에 있는 자녀가 직접 모시러 갈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수소문 끝에 이 PB는 현지에서 이런 서비스를 전담해주는 특별업체를 찾아 예약부터 실제 귀국까지 모든 과정을 주선해줬다. 초호화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의 주문에 맞춰 고객 부모 1명을 위해 항공기 좌석 5개를 한꺼번에 예매하고 전문 의료진 등을 붙인 탓에 편도에만 7000만원이 드는 서비스였다. 소요된 비용은 고객이 지불했지만, 요청에 맞춰 긴급히 업체를 알아보고 안전하게 입국할 때까지 노심초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게 이 PB의 설명이다.
자산가 고객들의 주문은 이 밖에도 다양하다. 한 시중은행 PB는 “병원 종합검진 예약 같은 것은 기본이고 일부 고객은 ‘집에 컴퓨터가 고장인데 좀 봐달라’는 요청까지 한다”고 귀띔했다. 고령층인 경우 자식보다 더 가깝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 자녀에게나 부탁할 집안 대소사를 도와달라고 하는 사례도 많다. 일부 은행은 이런 수요에 맞춰 아예 PB고객들을 위한 별도의 상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 PB센터 상담 신한은행 PWM 센터
은행별로 각 회사의 특·장점에 맞는 다양한 PB서비스를 선보이는 것도 주목된다.
KB국민은행은 PB브랜드인 ‘골드앤와이즈(GOLD&WISE)’를 내걸고 서울 13곳, 부산 2곳 등 전국 21곳의 PB센터를 운영 중이다.
KB금융그룹 내 은행, 증권, 자산운용사, 경영연구소에 있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매달 여는 ‘자산관리전략위원회’ 회의를 통해 신뢰성 있는 투자와 자산관리 전략을 알려주고 고객 투자성향에 맞는 맞춤형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은행 최초로 스위스 PB전문은행인 롬바드 오디에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고 다양한 글로벌 금융상품 라인업과 PB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국내 최초로 은행과 증권의 협업모델을 활용한 고액자산관리 서비스인 ‘신한PWM’을 선보였다. 전국 53개 PWM센터에서는 은행과 증권의 상품과 서비스를 한번에 받을 수 있다. 예적금과 펀드, 방카를 포함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자산관리를 제공하는 기존 은행의 PB서비스에 국내외 주식과 채권·파생상품 투자를 통해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증권사의 자산관리 서비스 등 신한금융그룹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뤄 최적의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수 있는 협업 프로세스를 통해 기존 은행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은행과 증권의 통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50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초고액자산가에게는 PWM프리빌리지 서비스를 해 준다. 본부 전문가와 PWM센터의 PB팀장이 함께 표준화된 자산관리가 아닌 오더메이드(Order-made)식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업승계 컨설팅, 부동산 케어, 세무 상담 등 전문가 자문 특화서비스도 우선 지원한다.
개인뿐 아니라 국내 최초의 법인 고객 PB서비스도 제공한다. 법인 고객의 니즈에 맞춰 가업승계, IPO, 자산배분, 투자상품, 리서치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법인 고객 맞춤 솔루션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 27개 PWM센터에 법인 컨설팅 역량을 보유한 CPB(Corporate Private Ban ker)를 배치해 법인의 자금관리와 세무 상담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WM센터는 모그룹인 씨티그룹이 가진 160여 개국의 글로벌 리서치 네트워크를 활용해 만든 다양한 시장분석과 전망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리서치 네트워크와 자료들을 기반으로 고객들에게 투자 성향 별로 다양한 자산군을 구분하고, 투자 성향 별 최적의 투자 배분을 제시하는 ‘씨티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이 포트폴리오는 싱가포르에 있는 씨티은행 모델포트폴리오 위원회에서 분기별로 검토 와 업데이트가 이뤄져 최근의 시장전망을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투자에 초점을 맞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 60%가 넘던 국내펀드 비중을 낮추고 해외 펀드 비중을 높여 고객 포트폴리오를 다변화시켰다. 2014년도에는 국내와 해외펀드 비중이 각각 62%, 38%였지만, 현재는 해외 48%, 국내 52%의 비중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포트폴리오에는 SC제일은행과 SC그룹의 투자상품팀이 1만여 개의 글로벌 투자상품 중에서도 엄선한 상품만을 넣고 있다. SC그룹에서 글로벌 투자전략가를 초청해 글로벌 금융시장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내셔널 웰쓰포럼’, 분야별 전문가가 시장 전망 및 투자, 세무전략 등을 제공하는 ‘웰쓰케어 세미나’ 등 각종 크고 작은 포럼과 세미나를 매해 약 500여 회 여는 것도 주목된다. 전국 230여 곳의 PB센터와, 전문 PB인력 330여 명을 보유한 KEB하나은행은 국내 부동산 투자자문 서비스에 국한하지 않고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PB자문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교포 등 해외 거주 손님의 국내 부동산 투자자문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우리은행 투체어스 잠실롯데캐슬골드점
은행들이 PB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은 수수료 수익을 통한 비이자수익확대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은행이 WM부문에서 거둔 수수료는 3490억원으로 전년보다 15% 늘었다. 절대 금액으로 보면 크지 않지만 성장속도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작년 국내 금융그룹 가운데 당기순이익 선두를 차지한 신한금융의 경우 은행과 금융투자의 WM부문을 모은 PWM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10% 뛰었다. 한 시중은행 PB센터장은 “PB센터 고객 1명당 수익은 일반 고객보다 30배, 많게는 50배 더 많다”며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나 자산 노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인터넷뱅킹을 일절 하지 않고 무조건 은행 점포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수수료 수입뿐 아니라 많게는 VIP 1인당 10억원 이상의 자금을 은행이 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중소형 빌딩 거래나 이들이 대표로 있는 중소기업 인수합병(M&A) 같은 거래까지 은행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까지 생긴다. 특히 이들의 자녀 대부분이 나중에 부모의 자산을 물려받아 또 다른 자산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2세를 관리하는 것은 곧 미래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정부 규제 등으로 기존 캐시카우인 이자수익을 예년만큼 늘리기 힘들어진 만큼 PB관리로 비이자수익을 거두려는 은행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성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2호 (2019년 3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