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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고분양가 논란…강남재건축 투자열기 어디로
입력 : 2016.08.12 13: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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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도금 대출중단’이란 칼을 빼들었는데도 강남 재건축 투자 열기는 여전하다.
7월부터 보증 건수 2건, 보증 한도 6억원(수도권과 광역시) 제한에 더해 분양가 총액이 9억원을 넘어서는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 보증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저금리 때문에 갈 곳 없는 돈’은 강남권 재건축과 수도권 인기 분양 시장에 몰리고 있다. 투자 열기가 수그러든 지방의 투자자들이 서울 부동산투자에 나서는 이른바 ‘상경 투자’도 늘고 있다. 강남 재건축을 비롯한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는 일반분양이 아닌 조합원 물건이 인기를 끌고, 서울을 이탈한 청약통장이 미사 일대로 몰리기도 한다.
상담창구에는 긴 줄이 늘어섰지만 상담사들과 예비청약자들 사이에 설전도 벌어졌다. 급작스럽게 중도금 보증 규제가 첫 적용되는 단지가 되면서 분양가와 청약 일정을 정하지 않고 서둘러 견본주택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연락처를 남기시면 청약 일정을 문자로 공지하겠다”는 분양 상담사에게 방문객인 양모 씨(62)는 “테라스형에 투자하려는데 분양가와 청약 일정은 물론이고, 중도금 대출 규제가 첫 적용되는 중도금 조건도 정해진 게 없다고 하니 답답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처럼 ‘분양가 제동·중도금 대출 규제·불법 거래 단속’으로 혼란이 일었지만 강남 개포지구 재건축 투자 열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저금리 기조에 여유자금이 강남권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고 대형 건설사들이 초호화 아파트 짓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개포주공 1단지에서 조합원 추가분담금 인하 소식까지 전해져 투자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 켠에서는 벌써부터 분양권 웃돈을 저울질 중이다. 오는 10월 이후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이 풀리는 ‘래미안 블레스티지(개포주공2단지 재건축)’는 벌써부터 분양권 웃돈이 최소 3000만원 이상일 것이라는 예상이 오간다. 올해 1월, 즉시 전매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등에 업고 분양가를 높여 나왔던 서초 ‘신반포자이(잠원동 반포한양 재건축)’는 전용 84㎡형의 분양가가 13억6000만~15억2000만원 선이었지만 현재는 14억5000만~16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잠원동 C공인 관계자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이른바 ‘상경 투자’ 수요도 붙으면서 올 초 2000만~3000만원 선이던 웃돈이 계속 올라 이제는 1억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온다”고 전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분양권 웃돈은 평균 2600만원 선이지만 강남은 8400만원 선으로 서울 전체의 3배에 달한다.
이달 이후에도 재건축 단지들은 일정을 밟는 중이다. 지난 2003년 사업추진위원회 설립 이후 10년이 넘게 지지부진하던 대치 은마 재건축 조합은 8월 설계용역비 설계 공모 신청을 받는다. 9월에는 서초구에서 ‘방배에코자이(방배3동 주택재건축·일반분양 97가구)’와 ‘아크로리버뷰(잠원동 신반포5차 재건축·일반분양 41가구)’에 이어 연말에는 잠원동 ‘신반포 18·24차 재건축(단지명 미정·일반분양 140여 가구)’도 일반분양을 앞두고 있다.
‘원조 부촌’으로 통하는 강남 청담동에 자리한 삼성진흥 아파트(1984년 입주)는 지난달 초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용역업체 선정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같은 달인 7월 강남구청은 대치동 구마을 1지구 재건축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통과시켰고, 사업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뎠던 2지구도 올 상반기 사업시행 인가를 신청해 대기 중이다. 3지구는 작년 9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현재 관리처분 인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단기 분양권 전매 투자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시장이 달아올랐지만 전문가들은 내년 이후를 내다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금리나 대출 규제 같은 정책 변수에 따라 주택시장 경기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가운데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강남 재건축은 안전 자산’이라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면서 “다만 내년에도 강남권에서 일반분양과 입주가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해서 시세 상승 여력에 대한 기대치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에이치 아너스힐 견본주택
“돈 있는 사람들이 대출 규제 눈치 볼 필요 있겠어요? 목돈 들어도 조합원 입주권은 로열 층·동을 살 수 있는 데다 총액으로 따지면 일반분양보다 싸니까 요즘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입주권을 사려는 수요에 비해 매물이 부족하니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가 오르는 겁니다” 송파구 잠실동 A공인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가 분양권 불법전매 단속과 중도금 대출 규제에 나서면서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입주권 시장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입주권은 대지 비용과 취득세 등 초기 자금이 많이 들어가지만 평면이나 위치 및 조망이 좋은 로열동과 로열층을 잡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매입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총 8109가구로 개별 재건축 단지로는 최대 규모인 서울 ‘송파 헬리오시티(가락시영 재건축)’의 전용 85㎡형 조합원 입주권 시세는 9억 2000만~9억 5000만원으로 올 초보다 1억 이상 올랐다. 지난해 재건축·재개발 단지 분양 영향으로 서울에서 입주권 거래가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성동구 일대도 한껏 달아올랐다. 금호동 B공인 관계자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로열층은 조합원 입주권 호가가 6월 말 이후 2000만원 이상 뛰었다”며 “‘e편한세상 신금호(금호15구역 재개발)’ 전용 60㎡형 입주권은 지난 4월 5억 6600만원 선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호가가 6억원을 넘었고 최근에는5억 9400만~5억 9500만원 선에 실 거래된다”고 말했다. 조합원 물건을 살지 일반분양을 할지 매수 타이밍을 두고 투자자들의 저울질은 계속된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조합원 물건은 계약금·중도금·잔금을 나눠 내는 일반 분양과 달리 매매 시점에 목돈을 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일반분양에 비해 저렴한 것이 장점”이라며 “조합원 입주권과 일반분양 가격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분양 가격보다 1억~1억5000만원 이상 저렴한 조합원 입주권을 사들이는 것이 좋기 때문에 시세 분석이 필수”라고 말했다. 조합원 입주권을 사는 시점에 대해 고준석 신한은행 PWM프리빌리지 서울센터장은 “보통 조합원 입주권은 재건축사업 진행 단계상 시세가 뛰기 전인 사업시행인가 직후 또는 취득세를 절약할 수 있는 관리처분 이전에 사들이는 것이 좋다”고 귀띔했다.
이 밖에 투자 목적으로 조합원 물건을 사들이려는 경우에는 내부 갈등과 같은 사업 진행 변수도 참고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강남 청담동 삼익아파트의 경우 일부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5월 말 조합장을 상대로 사업시행계획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개포주공 4단지 역시 분담금 문제로 조합장 해임 논의가 꾸준히 오가면서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아파트 사러 강남으로 ‘상경투자’
# “아직은 청약 경쟁률이 높게 나오고 분양권에 웃돈이 2000만원 이상 곧잘 붙지만 시장이 조정기에 들어가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가지고 있는 분양권 두 개를 처분하고 여유 자금을 보태서 서울 강남에 재건축 단지를 살지, 아니면 기존 아파트를 사서 월세를 놓을지 알아보는 중이에요” 부산에 사는 A씨(60)의 말이다.
# “부산·대구 등 작년에 분위기 좋았던 곳에서 재미를 본 지방 투자자들이 요즘 부쩍 서울 아파트 쇼핑에 나서는 중입니다. 하루에 걸려오는 10건 중 삼분의 일 정도가 지방 사람들이에요” 서울 강남구 B공인 관계자의 말이다.
수도권·지방 양극화 분위기 속에서 기준 금리가 계속 떨어지면서 ‘상경 투자’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방 투자자들이 서울의 아파트를 사들이는 현상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해 이제는 투자 양상이 분화되는 모양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소위 ‘갭(gap) 투자’ 차원에서 성북·성동구 등 전세가율이 높은 곳의 중소형 아파트나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는 식이었다”며 “올 들어선 아예 강남 일대 재건축 단지 조합원 물건을 찾거나 월세 수익 목적으로 기존 아파트를 사려는 지방 투자자들이 대폭 늘었다”고 말했다.
▶풍선효과로 뜨거운 ‘하남 미사강변도시’
“4억6000만원 대에 분양된 더샵리버포레 전용 89㎡는 프리미엄이 1억원이지만 집주인이 양도세에 다운계약서까지 요구합니다. 옵션, 이자 부담까지 모두 합치면 분양가에 1억5000만원은 더 줘야 해요”(미사 A공인 관계자)
하남 미사지구
분양권 시장도 호가가 내리지 않고 있다. 정부 단속으로 지난 한 달간 영업을 제대로 못했다는 C공인 관계자는 “잠시 영업을 중단한 동안에도 시세는 내리지 않아 분양권에 평균 3000만~1억원 가량의 웃돈이 붙어 있다”고 말했다. 미사강변 푸르지오 1차 전용 84.99㎡(분양가 4억3800만원 선)형은 웃돈이 1억원가량 올랐다. 1월에 4억8446만원에 거래되던 것이 지난달에는 웃돈만 2000만원 더 오른 5억195만원, 최근에는 5억40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C공인 관계자는 “지난 4월부터 입주하려면 8000만원 선이던 저층의 웃돈도 1억1000만원으로 호가가 워낙 올랐다”고 말했다.
미사 열기의 배경으로는 이달부터 중도금 대출보증 규제가 시행되면서 규제를 피한 단지들이 얻는 ‘풍선효과’와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분양가, 교통 호재 등이 꼽힌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미사는 원래 인기 있던 지역인 데다 3.3㎡당 분양가가 1400만원 대로 주변 시세대비 100만원 정도 저렴해 청약 수요가 붙어 있는데 앞으로도 분양가에 따라 다르지만 청약이 지속될 것”이라며 “실수요자라면 교통이 좋은 지하철 5호선 미사역(2018년 개통) 주변으로 한 분양권이나 재고주택 매입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지나친 과열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고준석 신한은행 PWM프리빌리지센터장은 “중도금 대출 규제로 일시적으로 가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일 수 있기 때문에 계약률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오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1호 (2016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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