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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엔씨 vs 넥슨 경영권 분쟁 풀 스토리
입력 : 2015.05.15 17: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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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A가 실적을 회복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EA는 소문이 무성했던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인수와 관련해 매각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결국 이들의 EA 인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협력을 약속했던 양사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했다. 양사는 2012년 N스퀘어란 조직을 만들어 협력을 구체적으로 진행했다. 마비노기2란 게임을 만드는데 공동으로 개발자를 투입해 첫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협력은 생각처럼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먼저 이들의 개발 방식이 너무 달랐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계층의 고객들을 공략하는 넥슨과 2~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무게감 있는 대작을 선보이는 엔씨소프트의 업무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또 이들은 각사가 가지고 있는 게임 철학을 바탕으로 접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게임 개발에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의 협력은 실패로 돌아갔고 지난해 3월 N스퀘어는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엔씨와 넷마블 제휴식
그렇게 해를 넘어가면서도 이어오던 양사의 갈등은 올해 1월 28일 전면에 등장한다. 넥슨이 공시를 통해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 목적으로 변경했다. 이는 투자자 입장에서 더 이상 엔씨소프트의 방만 경영을 지켜보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표시로 비춰졌다. 실제 넥슨은 보도자료를 통해 “엔씨소프트와 공동 개발을 통해 협력을 시도했지만 기존 구조로는 급변하는 IT 업계에서 한계를 느꼈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양사가 도태하지 않고 상호발전을 지속해 기업 가치가 증가되고 적극적인 투자자로서 역할을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넥슨은 모든 측면에서 가능성을 열어두고 엔씨소프트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넥슨의 전격적인 경영 참여 선언은 엔씨소프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소문만 무성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자 엔씨소프트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넥슨은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고 공시라는 방법을 통해 시너지 발생이 아닌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까 우려된다”며 “엔씨소프트 주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 저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넥슨은 경영 참여를 선언한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행동을 개시했다. 2월 3일 넥슨은 요구사항을 적시한 주주 제안 공문을 엔씨소프트에 발송했다. 넥슨은 구체적으로 △넥슨이 추천하는 이사 선임 △현재 주식을 보유한 실질 주주 열람 △전자 투표제 도입 등에 대한 엔씨소프트의 답변을 10일까지 요구 △비영업용 투자 부동산의 처분 △보유 자사주의 소각 △비등기 임원의 보수내역 및 산정 기준 공개 등을 기한 없이 요청했다. 특히 김택진 대표의 가족인 동생 김택헌 전무와 윤송이 사장의 연간 총보수액이 5억원을 넘을 경우 내역과 산정 기준을 공개하는 등 김택진 대표의 주변으로까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된 셈이었다. 넥슨은 공문을 통해 “엔씨소프트는 온라인게임이 PC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이와 더불어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시장 특히 중국시장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엔씨소프트는 충분한 인적, 재무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외부업체와의 협업 강화를 통한 수익 기회 창출, 적극적인 M&A를 통해 시장 변화 대응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단기적인 실적 변동성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주주 제안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엔씨소프트는 넥슨이 도를 넘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출했고 상황은 급속히 악화됐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비등기 임원의 보수 내역 및 산정기준 공개 요구는 현행법을 어긋난 요구”라며 “자사주 역시 투자나 인수·합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답변 기한일로 정한 10일, 엔씨소프트는 입장을 담은 답신을 내용증명 형태의 우편물로 넥슨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3일 후인 2월 13일 엔씨소프트의 답신에 대한 의견을 담은 넥슨의 공문이 한 번 더 엔씨소프트에 전달됐고 상황은 정리되는 듯했다. 넥슨 관계자는 13일 “오늘 보낸 공문은 엔씨소프트 서신에 대한 답변으로 특별히 추가된 내용이 없다”고 했다.
최대주주였던 넥슨의 경영권 참여를 방어하고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엔씨소프트의 전략이 주효했다. 하지만 지분 매입을 너무 비싸게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엔씨소프트는 넷마블 의 기업 가치를 약 4조원으로 평가해 지분 2만9214주를 인수했다. 현재 넷마블 가치의 2배가량 비싼 값으로 평가한 것에 대해 시장에사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엔씨소프트 측은 이번 제휴에 대해 넥슨과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휴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김택진 대표는 “넷마블게임즈의 우수한 모바일 게임 경쟁력과 엔씨소프트가 가진 뛰어난 개발 역량이 결합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게임즈와 함께 글로벌 게임시장 공략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엔씨소프트가 넷마블게임즈와 손잡음으로써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엔 넥슨 측에서 불쾌감을 표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대주주인 넥슨과 상의 없이 자사주를 매각하고 대규모 지분 투자를 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넥슨은 특히 먼저 협력관계를 구축했던 자사와는 지적재산권(IP) 제휴 등이 거의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넷마블과 이렇게 갑자기 협력을 강화하는 부분에 당혹감을 내비췄다.
분쟁은 마무리됐지만 갈등의 씨앗은 남아…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분쟁은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제휴 발표를 통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후 양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분쟁을 지양했다. 지난 3월 27일 엔씨소프트가 개최한 정기 주주총회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의문을 제기한 전문가도 많았지만 실제 아무일도 발생하지 않고 잘 마무리됐다. 이날 주총에 참여한 김정욱 넥슨 전무는 “엔씨소프트의 넷마블 투자 결정에 대해 협업 과정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있었는지 주주 가치와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이라며 “하지만 김택진 대표이사의 연임에 찬성하고 주주의 일원으로서 엔씨소프트가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분명 아쉬운 점도 있지만 공격을 위한 공격보단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김 전무는 “단 넷마블게임즈와 협업은 향후 기업 가치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주들에게 협업 진행 과정에 대해 적절하게 시장에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다. 넥슨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전 포인트였던 주주총회가 넥슨 측의 지지 의사 표명으로 큰 문제없이 마무리됨으로서 약 3개월간 쉴 틈 없이 몰아붙였던 양사의 다툼이 마무리됐다. 여전히 갈등의 씨앗은 잠재돼 있겠지만 당분간은 양사가 공개적인 다툼을 벌이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 양사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나오고 있다. 양사가 갈등을 극복하고 협력하는 방식은 넷마블과 엔씨소프트의 제휴로 어려울 것이란 입장이 많다. 넥슨이 추가적인 지분 매입을 통해 최대 주주로 다시 올라서는 것 역시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를 위해 1500억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굳이 넥슨 측에서 무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넥슨이 앞으로 특별한 의견 개진 없이 상황을 지켜보며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넥슨이 보유하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모두 되팔아 남남이 된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8000억원가량을 투자해 지분을 매입한 넥슨 입장에서 2000억원 가까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 섣불리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실현 가능성 자체는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현재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한 쪽은 아무래도 엔씨소프트다. 모바일로 빠르게 넘어간 게임시장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현재의 위기를 자초한 것도 엔씨소프트 자신이다. 그렇다보니 엔씨소프트 입장에서 지금부터 하는 하나하나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엔씨소프트가 이러한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넷마블게임즈와 공고한 협력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특히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조차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주주 이익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엔씨소프트의 든든한 지원자로 참여한 것만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만큼 엔씨소프트 스스로 각성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추동훈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6호(2015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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