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 줄이기’ 대책, 침체 부동산 살려낼까…미분양·급매물 투자 두드려 보라
입력 : 2013.09.03 09:13:25
-
건설사의 아파트 후분양을 유도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한다. 이날까지 사업 승인을 받은 단지가 후분양으로 전환하면 금융회사에서 연 5~6% 저리에 분양가의 50~60%까지를 건설사에 대출해 준다. 미분양 주택이나 분양예정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면 대출보증 인센티브를 제공해 분양을 줄이고 임대를 늘리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 같은 정부의 대처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장기적인 측면에선 부동산 호황기에 적체된 과잉 공급 물량을 걷어낼 수 있어 긍정적인 방향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당장 ‘거래절벽’에 빠진 매매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공존한다. 너무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한 안이한 대처라는 것이다.
세종시 첫마을 아파트
- 서울 송파구 잠실동 J공인 관계자
“취득세 영구인하 논의만 무성하고 언제부터 시행될 지 몰라 집을 알아보던 분들까지 연락이 뚝 끊겼네요.”
- 서울 강남구 G공인 관계자
8월 현재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은 때 아닌 ‘한파’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여름철 비수기인 데다 6월 말 취득세 감면 혜택이 끝나면서다.
4·1 대책 효과로 반짝 올랐던 서울 내 주요 아파트 가격은 대책 발표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원상 복귀됐다. 중개업소들은 방문객은 물론 전화 문의도 뚝 끊겼다고 아우성이다.
강남권 최대 재건축 단지인 개포주공 일대 부동산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강남구 개포동 G공인 관계자는 “4·1 대책 이후 급매물이 소진되면서 분위기가 좋았는데 이제는 매도자나 매수자 모두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며 “가을 성수기가 돌아와도 ‘거래 절벽’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개포주공1단지 전용 59㎡는 지난 5월 초 11억원에서 6월 중순 10억5000만원까지 뚝 떨어진 이후 8월 초까지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전용 42㎡도 지난 7월 6억원에 가격이 형성된 후 현재까지 보합세다.
개포주공4단지 전용 43㎡는 대책 발표 직후엔 6억3000만원까지 가격이 올랐지만, 지금은 5억9000만원으로 4000만원 가까이 떨어졌다.
개포주공3단지 전용 43㎡도 같은 기간 1000만~2000만원 내린 7억1000만원 선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는 지난달 실거래가격이 8억1750만원으로, 전달 8억9900만원보다 8150만원이나 빠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달 주택거래량은 2006년 7월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8월 1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7월 주택거래량은 3만9608건으로 전월 대비 69.5%, 전년 동월 대비 30.3% 감소했다. 최근 5년간 7월 평균 거래량과 비교해도 반 토막 수준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단의 대책 없이 장기적인 공급 줄이기에 집중한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도 많다. 취득세 영구인하 논의를 빨리 마무리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애주는 등 매수심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조치가 먼저라는 것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박근혜 정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인 4·1 대책의 약발이 취득세 감면 종료를 넘지 못하고 있다”며 “취득세 영구 인하가 구체적으로 결정될 때까지 매수심리가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위례신도시 현대 엠코타운 실내인테리어
특히 정부가 꺼내든 공급조절 카드만으로는 당장 시장을 활성화할 여력이 모자란다는 평가가 많다. 얼어붙은 매수 심리를 살릴 수 있는 호재도 마땅치 않아 시장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상반기 주택 거래량이 반짝 증가한 것도 회복의 모멘텀이 아니라 그동안 팔리지 않고 적체됐던 시장의 악성 물량이 소폭 해소되는 수준이었다”며 “하반기에도 경직된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변화시킬 요인이 없어 당분간 침체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거래시장은 6월 취득세 감면 종료의 영향으로 단기적 ‘거래 절벽’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며 “가격이 떨어지는 시장에서 거래가 증가하기 어렵다는 부동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분간 하락의 악순환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특히 민간 주택에 대해서는 인위적인 공급조절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전략사업팀장은 “필요하면 즉시 생산할 수 있는 공산품과 달리 주택은 분양에서 실제 공급까지 2~4년의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당장 공급을 죄면 나중에는 주택 부족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전세금이 폭등하는 등 임대시장에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부문 공급조절이 불가능할 것이란 목소리도 높다. 건설사 입장에서 분양도 해보지 않고 후분양·임대로 돌릴 경우 ‘망한 사업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향후 분양전환 시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공급조절 정책이 장기적으로 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단기 침체야 나타날 수 있지만 주택시장이 회복기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4·1 대책처럼 정책으로 이것저것 푼다고 시장이 확실히 살아날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단기부양 정책보다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밝혔다. 그는 “세금, 수도권 공간정책, 교통정책, 고용정책 등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며 “수도권 대량 미분양을 야기한 공급부문 문제도 공공·민간부문의 공급량 조절로 해결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연말로 오면서 조금씩 거래가 이뤄졌고, 경기 사이클상 바닥을 찍고 반등할 수 있는 계기가 상반기 중에 생길 것으로 예상했는데 4·1 대책이 촉진제 역할을 하면서 반짝 활성화 효과를 이끌어 냈다”며 “7월 들어 거래량이 줄어든 건 취득세 감면 종료와 비수기 등 단기적 요인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올 하반기는 2~3개월 침체 이후 조금씩 거래가 증가하는 양상이 전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반기 유망 투자지역은 있나 전문가들은 결국 올 하반기에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안정성을 높이는 ‘불황기의 투자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격이 오를 수 있는 호재보다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현재의 강점을 주목하고, 저렴한 급매물을 매입해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손해를 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딱히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신규·미분양, 기존 주택을 가리지 않고 안전 상품을 골라 최대한 싼 값에 매입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가격이 저렴한 보금자리주택 잔여 물량이나 강남권 재개발, 서울 뉴타운을 비롯해 광교, 위례, 고양삼송 등 인기 지역 분양가상한제 물량을 분양받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며 “단순히 분양만 볼 게 아니라 급급매, 법원경매, 부실채권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주변 시세 대비 10% 이상 저렴하게 매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공급조절을 본격화한 만큼 위례신도시, 세종시 등 인기 청약지역 물량을 매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남수 팀장은 “경기 추세나 취득세 영구인하 논의, 세제개편안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아 하반기 획기적인 반등 여력은 없어 보인다”며 “그래도 위례신도시와 세종시에서 나오는 좋은 입지 물건 등은 여전히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당장 집값 하락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크다면 추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매입 결정을 할 수 있는 분양전환 상품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이상영 교수는 “전세가 집값 하락 위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식이긴 하지만 거주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는 점이 문제”라며 “10년 이상 장기임대 후 분양전환하는 상품 등에 접근하는 것도 안정적인 전략”이라고 말했다.
[백상경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6호(2013년 09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