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리치들의 부동산에 대한 생각 | 대박? No… 안정적 수익 OK

    입력 : 2013.09.03 09:13:17

  • 일산 신도시 근처 덕이동 패션 아웃렛
    일산 신도시 근처 덕이동 패션 아웃렛
    수백억 원대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보유한 50대 남성 A씨. A씨는 경기도 남부 수도권 외곽 지역에 시세 차익을 누릴 생각으로 지난 10여 년간 자연녹지지역 토지를 보유해 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 사이 아파트와 상가가 잇달아 들어섰지만 A씨의 땅은 별달리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땅을 놀릴 수만은 없어서 주유소를 지어 운영해왔지만 수익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고속도로 입구가 근처에 있어 오가는 차량은 적지 않았는데도 저렴한 주유소가 모여 있는 탓에 가격으로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지난해 고민 끝에 주유소 부지를 정리하는 대신 다른 건물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근처에 위치한 신도시와 통행 차량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는 해외 유명 패스트패션(SPA) 대형 매장이 그것이었다. A씨는 건물을 올리기 위해 보유 토지 위에 15억원 가까이 들여 터를 닦고 매장 건물을 세웠다. 기대했던 수익은 보증금 10억원에 월 임대료 3000만원 정도였다. 부동산 경기의 극심한 불황 때문에 땅값 상승으로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직감한 A씨는 차라리 임대 수익이 낫다고 판단해 투자 방향을 돌려버렸다.

    ‘과연 수익을 거둘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생각도 적지 않았다. 해당 SPA 브랜드에 대한 국내 소비자 선호도 분명했고 입지상 제품 가격도 한층 낮출 수 있었지만 누가 찾아올지 의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지하철역이 들어서고 고속도로가 가까이 위치해 있는 등 교통이 비교적 편리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굳이 방문할 정도로 대단지와 가깝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주와 파주 등지에 생겨나 인기를 끈 아웃렛과 달리 주변에 소비자들이 추가적으로 돌아볼 만한 곳이 딱히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지만 개업 결과는 A씨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주말과 평일 할 것 없이 30여대 주차장이 들어찼다.

    시내 매장보다 제품이 다양하고 저렴하다고 소문이 나자 의외로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4일 만에 6억원 매출을 기록하고 한때 사람들의 입장을 제한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한 매장 직원은 “주말에는 차를 가지고 오셔도 100% 주차장에 댈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저가 구입 → 개발 호재 → 땅값 상승 → 시세차익’이라는 부동산 투자의 공식에서 조금 벗어나자 생각지 못한 수익이 찾아왔다고 A씨는 다행스러워 한다.

    대박보다 안정적 현금이 낫다 금융과 부동산 시장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거액 자산을 보유한 이른바 ‘슈퍼리치’들의 투자패턴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꾸준한 수익을 얻기 힘들다고 절감한 슈퍼리치들이 더 이상 ‘대박’은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면서 ‘안정적 현금창출이 최고’라는 생각이 대세가 됐다. 대표적인 패턴 변화는 A씨처럼 부동산 시장에서 시세 변화에 따른 ‘자본수익(Capital Gain)’을 포기하고 정기적인 임대료 등 ‘월세수익(Income Gain)’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다만 이미 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주택이나 오피스텔과 같은 주거용 건물에 대한 관심보다는 상가, 그중에서도 일부 업종에 특화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게 최근 특징이다. 지역적으로도 이미 포화상태인 서울권에서 벗어나 평택, 용인, 파주 등 수도권 외곽으로 넓어지고 있다.

    신영증권 고액자산가 전용서비스인 ‘APEX패밀리오피스’ 부동산 담당 윤환진 선임은 전반적인 부동산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는 데 반해 상가 시장 인기 트렌드는 확실하다는 점에서 A씨 같은 사례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서울·수도권 집값은 정체상태거나 반대로 떨어지는 곳도 적지 않다. 상가도 서울 안쪽은 수익을 내기 힘들다는 게 슈퍼리치들 사이의 분위기란 전언이다. “서울이나 수도권 대부분 부동산 시장에서 이익을 얻을 만한 데가 없고 금리도 낮기 때문에 슈퍼리치들은 차라리 꾸준하게 연 5~10%씩 버는 게 낫다고 여긴다.”

    경기도 일산 신도시 외곽에 위치한 덕이동 지역도 A씨가 투자에 나선 지역과 흡사하다. 아파트 분양에서는 참패해 미분양과 부동산 비리가 터져 나온 지역이지만 언젠가부터 중대형 의류매장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젠 의류단지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커졌다. 멀지 않은 곳에 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이 들어섰음에도 덕이동 지역을 찾는 소비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께 주말 어느 날, 덕이동엔 차들이 빼곡했다. 캠핑 열풍이 상징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약진과 저렴하되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 SPA 브랜드의 인기가 수도권 변두리 지역을 달아오르게 만든 것이다. 윤환진 선임은 “도시 외곽을 지날 때 심심치 않게 의류 매장이 밀집해 있는 걸 볼 수 있다”면서 “이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집객력과 중심상업지구보다 저렴한 투자비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합쳐져 나타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설명
    슈퍼리치들은 “그래도 부동산” 지난 6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3 한국 부자보고서’는 이 같은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국내 부자들이 여전히 부동산에 관심이 컸고 무리한 기대수익을 바라지 않았다. KB경영연구소가 10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 자산 가운데 55.4%는 부동산이었다. 특히 총자산 100억원이 넘는 슈퍼리치들은 72.5%가 부동산 자산이었다.

    향후 수익률이 좋을 투자대상으로는 32.5%가 국내 부동산을 가장 먼저 꼽았다. 두 번째 많은 응답이었던 국내 주식(12.9%)의 2배가 넘는 답변이었다. 부동산 경기 악화 영향으로 비중이 감소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부동산이 재산 증식 수단으로 나타난 것이다. 투자용 부동산 보유자 가운데 62.4%가 상가투자를 하고 있다고 답해(중복응답) 아파트(39.3%) 오피스텔(39.1%) 등을 큰 폭으로 뛰어넘었다.

    눈에 띄는 것은 미래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에 대한 생각이었다. 향후 목표자산 축적방법에 대한 질문에 40.1%가 1순위로 부동산 투자라고 답했다. 가장 많이 응답했던 사업체 운영(41.9%)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반면 금융 직·간접투자라고 응답한 부자들은 6%에 그쳤다. 현재 보유한 투자용 부동산 연평균 수익률은 6.3% 정도지만 향후 기대수익률은 평균 9.1%로 개선될 것으로 점쳤다. 10%를 넘어서는 수준의 높은 기대수익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KB경영연구소 측은 이에 대해 “수익률 전망과 실제 투자 선호도를 고려해봤을 때 국내 부자들 사이에서 고위험 상품 선호도는 수익률 전망보다 낮은 데 비해 부동산, 예적금 등에 대한 선호는 기대 수익에 비해 높았다”고 설명했다.

    금융시장에선 관망과 절세 슈퍼리치들의 부동산 보유 비중이나 기대감이 여전한 가운데 금융투자는 철저히 기다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록적인 저금리 기조와 함께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상승 동력을 찾기 힘든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리치들은 안정 성향이 크기 때문에 최근 인기를 끈 중소형주 투자엔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이선욱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금융시장 관련해서는 국내·외 투자 사이클이 한 차례 돌았다고 보기 때문에 자금을 쥐고 탐색 중인 분들이 많다”며 “특별한 방향성이 나타나지 않는 게 최근의 특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슈퍼리치들의 관심은 앞서 언급한 안정적 수익과 함께 금융시장 대세로 떠오른 ‘절세’다. 버는 게 적어진 만큼 나가는 비용이라도 줄이자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올 들어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춰지면서 슈퍼리치들의 금융투자 고민은 한층 커졌다. 이른바 ‘숨겨진 슈퍼리치’라고 할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씨가 보여준 투자법은 상징적이다. 이씨는 지난달 검찰에 30억원 규모 ‘즉시연금보험’을 검찰에 압류당했다. 보험 규모와 함께 상품의 성격에 세간의 시선이 쏠렸다. 1970년대 장군의 부인으로 강남 부동산 개발 현장을 누빈 이씨였기에 그의 노후 재테크 방법이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해 엄청난 가입 열풍을 낳은 즉시연금의 가장 큰 특징은 첫째도, 둘째도 절세라는 게 자산관리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즉시연금은 말 그대로 자금을 넣어두자마자 다달이 원금에 이자를 붙여 돌려주는 상품이다. 무엇보다 일반 예적금과 달리 이자소득에 붙는 세금 15.4%가 면제된다는 특징이 있다. 일반연금은 비과세 적용을 위해 무려 10년간 가입자격을 유지해야 하지만 즉시연금은 기간제한마저 없다. 그야말로 세금을 줄이려는 자산가에게는 최적의 상품이었다. 이씨가 즉시연금에 거액을 집어넣은 것 역시 세금을 줄이면서 안정적으로 돈을 관리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즉시연금은 ‘혜택이 지나치다’는 논란 끝에 지난 2월 2억원 이상 예치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만 55세 이후 종신형으로 가입하고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과세 면제는 유지된다. 70세를 넘긴 이씨가 당초 가입한 상품도 종신형으로 알려졌다. 대형 증권사의 한 PB팀장은 “즉시연금에 30억원을 넣는 일은 극히 드물다”면서 “사실상 절세를 넘어 탈세에 가까운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이 그렇게 컸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2월 금융업계 추산으로도 즉시연금 가입자 중 80%가량은 2억원 미만을 예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통 슈퍼리치들의 재테크는 시장을 어느 정도 앞서가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시장을 움직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윤재언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6호(2013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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