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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읽는 트렌드] ⑦ 가산동 금천 패션타운
입력 : 2011.06.10 10: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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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디지털단지 전경
모녀가 함께 주말 쇼핑에 나왔다는 직장인 송씨는 “9년 전 처음 가산디지털단지에 아울렛 몰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등학교 때 겨울코트를 사러 왔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몰 형태의 아울렛 매장은 마리오 아울렛이 전부였고, 길에서는 창고 같은 컨테이너 박스 매장에서 제품을 골랐다”고 회고했다. 송씨의 어머니는 “그때는 몰에 변변한 옷을 쇼핑한다기보다 시장에 ‘땡처리 물건’을 사러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처럼 쾌적하지도 않아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 잘 찾지 않았다. 얼마 전 지인이 아울렛에서 구매한 제품을 자랑하기에 어떻게 변했는지 구경도 할 겸 나와 봤다”고 했다. 채 10년도 안 돼 지금의 가산디지털단지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는 말도 덧붙였다. 송씨 모녀의 말대로 가산디지털단지는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아울렛 몰 사이사이에 새로 지어진 오피스텔과 반듯한 아파트형 공장들도 과거 칙칙하고 어두운 ‘가리봉동 공단’의 이미지를 벗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과거에도 가산디지털단지 역 주변은 싸고 저렴하게 옷을 구매할 수 있는 지역이긴 했다. 90년대에는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있던 많은 의류공장들이 중국이나 동남아 등 가격 경쟁력이 있는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찾아온 1997년 이런 이탈 현상은 가속화됐고, 공장의 재고 정리를 위한 할인매장들이 문을 열었기 때문. 그러나 말 그대로 재고정리를 위한 매장이니만큼 지금처럼 쾌적한 쇼핑이 가능한 ‘아울렛 메카’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10년 전부터 고급 대형 아울렛 몰 붐 이 지역에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 지역의 부지 가격이 떨어지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리오 아울렛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홍성열 마리오 회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구로공단에 패션 매장을 낸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외환위기로 건물이 헐값으로 나오고 있어 기회라고 생각했다”면서 “무엇보다 선진국에서 이미 자리잡은 아울렛 유통이 국내에서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마리오 아울렛 1층에 번듯하게 들어선 까르뜨니트 매장과 아울렛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까르뜨니트 공장 견학’ 현수막을 보며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알았겠지만 마리오 아울렛은 여성 니트 브랜드인 까르뜨니트와 뿌리가 같다. 까르뜨니트와 같은 고급 니트 브랜드를 생산만 하던 홍 회장이 아울렛 사업에 눈을 뜬 건 외환위기 동안 많은 의류회사가 도산하는 와중에 유통업이 패션사업보다 커지는 매출 구조의 변화를 읽었기 때문.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 외국 출장을 다니면서 눈여겨봤던 아울렛 사업이야말로 블루오션임을 직감하고 2001년 국내 첫 아울렛 매장인 마리오 아울렛을 열었다. 유통업에 뛰어든 이듬해 마리오 매출은 100% 이상 늘었고 이후에도 30~40%씩 매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몰을 찾는 고객들이 늘자 2004년 마리오 아울렛2, 2006년 마리오 아울렛3가 잇달아 문을 열면서 마리오 아울렛 중심의 패션 아울렛 단지가 자리를 잡았다. 현재 마리오3는 확장을 위해 새 단장에 들어간 상태. 마리오 아울렛이 성공을 거두자 2006년 패션아일랜드가, 2007년에는 마리오 아울렛1 건너편에 W몰 등 다른 대형 아울렛 몰도 차례로 문을 열었다. 또 만승 아울렛의 경우 과거 공장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몰 형태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이 지역의 변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대형 몰뿐 아니다. 마리오 사거리로 불리는 사거리에서 디지털단지 5거리까지는 개별 브랜드들의 상설 할인매장들이 늘어서 있다. 제일모직, 캠브리지, 타운젠트 등 신사복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가 눈에 많이 띈다. 금천구에서 지정한 패션 로데오거리는 총 940m로 의류 할인매장이 밀집된 가산동 60번지 2단지 사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로는 디지털산업단지 5거리에서 수출의 다리 입구까지 총 292m, 남북으로는 나래1길에서 나래2길까지 648m를 말한다. 가산동 산업 2단지에 주로 관련 업체들이 밀집돼 있어 2단지에 약 600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고, 3단지와 단지 외 지역까지 포함하면 650여개 업체가 금천 패션타운에 터를 잡고 있다.
50% 이상 할인은 기본 지역의 특성상 유동인구도 꾸준한 편이다. 대개 패션거리나 아울렛 단지가 주말 쇼핑족들로 주말에 붐비는 것과 달리 주중에는 인근 IT업체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덕에 가산디지털단지는 한가할 새가 없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오피스족의 발길을 잡아두기 위해 대형 아울렛 몰들은 주중에 이들을 위한 기획 할인행사를 하기도 한다. 금천구청 측이 추산하는 주중 유동인구는 10만명, 주말 유동인구는 이보다 두 배 많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이렇게 가산디지털단지에 끊임없이 모이는 이유는 대중적인 브랜드를 ‘착한’ 가격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할인율을 살펴보면 10~20%의 할인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기본적으로 50~70%의 할인이 주를 이루고 균일가 행사나 추가할인, ‘1+1’ 행사도 쏠쏠하다. 명품 아울렛의 경우 아무리 할인율이 높다고 해도 덥석 구매를 결정할 만큼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마리오 아울렛에는 물론 구찌, 코치, 발렌시아가 등 명품 잡화들을 모아둔 매장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다양하고 대중적인 브랜드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때문에 체감 가격이 더 낮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여성 브랜드의 비중이 높은 백화점과 달리 이곳의 대형 몰들은 스포츠, 남성 브랜드, 잡화까지 골고루 자리 잡고 있어 가족 단위의 고객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스포츠 매장에는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EXR, 스프리스부터 라푸마와 같은 등산복 전문 브랜드까지 다양하다. 남성복은 닥스, 마에스트로부터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 지오지아, TNGT 등도 입점해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남성 의류의 판매량이 늘기 시작하면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할 정도로 백화점에서는 남성 의류매장이 비교적 한산한 편이지만 이곳에서는 남성 매장이 더 분주한 모습이다.
올해 취업했다는 김모씨는 부모님과 출근용 정장을 구매하러 왔다고 했다. “면접을 앞두고 백화점에서 구매했던 정장 한 벌 값으로 이곳에서는 정장 두벌을 구매했다”는 김씨는 “비싼 양복은 한 벌이면 된다고 하시던 아버지도 가격을 보시고는 양복 한 벌을 장만하셨다”며 웃는다. 김씨의 어머니는 “유행을 많이 타는 여성복과 달리 남성복은 이월상품도 디자인에 크게 차이가 없어 사이즈가 있을 때 구매하는 것이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씨 어머니 말대로 가산디지털단지 아울렛에서 취급하는 제품은 대개 지난해 상품들이기 때문에 할인 폭이 크다. 그러나 종종 샘플로 소량만 제작했던 제품이나 눈에 띄지 않는 하자가 있는 제품, 사이즈가 잘못 나온 상품들도 있어 발품을 많이 팔수록 만족스러운 제품을 고를 수 있다.
유행보다는 실속을 챙긴다면 한섬 팩토리 아울렛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이곳은 SJSJ, 시스템, 타임, 마인 등 한섬의 여성 브랜드 제품 중 2년 이상 된 재고 상품을 판매한다. 1년 지난 재고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주변 아울렛보다 할인율이 높다. 현재 한섬 팩토리 아울렛은 2009년 봄 상품을 입고하면서 60~70%, 일부는 80%까지도 할인판매 중이다. 또 주변의 대형 아울렛과 달리 무인으로 운영되는 것도 특징이다. 고객들은 마음에 드는 제품을 자유롭게 입어보고, 가격이 궁금하면 무인 가격 조회대에서 바코드를 찍어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오고 싶은 아울렛 단지가 되려면 저렴한 가격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마리오 아울렛을 중심으로 들어선 가산디지털단지 내의 널찍한 대형 아울렛 몰들의 특징은 주차시설과 기타 편의시설이 잘 돼 있다는 점이다. 구매고객에게는 구매금액에 따라 주차비를 무료로 제공하고 몰의 지하에는 식당가가 있어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백화점처럼 매장들의 배열도 반듯해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손님들도 쇼핑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실내다 보니 춥거나 더운 날씨에도 구애받지 않고 고객들이 모일 수 있다.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나오면 바로 대형 아울렛들이 보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복합 문화거리로 변신 기대창고를 개조해 만든 아웃렛몰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대형 아울렛 단지가 있는 남쪽 방향의 반대편인 북쪽으로 뻗은 길은 휴식을 겸할 수 있는 문화거리로 꾸며질 예정이다.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설치하고 각종 문화행사들을 유치한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대형 몰에서 주로 머물던 쇼핑 인구들도 거리로 나와 개별 아울렛 매장들도 지금보다 더 활기를 띨 수 있다.
금천구청 측은 의류패션산업 집단화로 이미 상업화된 2단지는 향후 국가산업단지에서 해제 해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할 계획이다. 산업단지인 상태에서는 재경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지역특화발전특구지정이 어렵고, 산업단지에 입주하기 어려운 지원업종을 유치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 여기에 아파트형 공장의 지원시설 면적을 20%에서 40%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오피스텔, 아파트형 공장, 부동산도 쏠쏠 과거 의류공장들이 떠난 자리를 채운 것은 패션 아울렛 몰뿐이 아니었다. 신축 오피스텔과 아파트형 공장이 세워지면서 IT기업들을 중심으로 신생 기업들이 터를 잡았다. 이 지역은 구로, 가산, 가리봉동의 첫 글자인 G를 따서 ‘G밸리’라 불리는 디지털산업단지에 속한다. 서울에서 중심이 되는 지역이 아니다 보니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어 가까운 여의도에 있던 회사들이 많이 옮겨왔다. 회사들을 따라 유입 인구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 디지털단지가 처음 조성되던 시기에 아파트형 공장을 분양받아 옮겨온 기업들은 분양 및 매매 가격이 올라 부동산으로도 재미를 봤다는 게 한 IT업계 종사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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