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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읽는 트렌드] ⑤ 가로수길 개성 세로수길로
입력 : 2011.05.20 14: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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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수길은 정식 명칭이 아니다. 가로수길 역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압구정남5로’ ‘도산대로북5길’ 등으로 돼 있다. 하지만 가로수길은 버젓이 표지판과 이정표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반면 세로수길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로수길은 그저 사람들이 부르기 편하게 붙인 것이다. 가로수길의 반대로 풀이한 것. 원래 가로수길의 ‘가로(街路)’는 ‘시가지의 넓은 도로’를 의미한다. 가로를 ‘가로세로’의 개념으로 파악해 세로수길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젊은 층 특유의 재치 넘치는 패러디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새로수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로운 가로수길’이라는 의미다. 세로수길 내에 ‘새로수길’이라는 음식점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 지면에서는 ‘세로수길’로 통일한다.
젊은 층 재치 돋보이는 명칭 가로수길이 ‘대로’(?)라면 세로수길은 ‘골목’이다. 개성 있고 운치 있던 가로수길에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자본을 앞세운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또 디자인 대신 커피와 화장품이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개성과 운치가 골목으로 밀려들어간 것이다.
임대료 등이 비싸진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상업화·대형화되면 임대료가 올라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2~3년 전에 비해 보증금, 임대료, 권리금 등이 모두 4~5배 치솟았다. 소규모 숍을 운영하는 디자이너들이 견디기 힘든 수준이다. 때문에 이들은 골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세로수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가로수길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로 나와 올라가다보면 ‘J-Tower’가 보인다. 그곳 안내판에는 ‘잠원한강공원길’이라 씌어 있다. 그곳이 가로수길의 입구인 셈. 거기서 신사중학교까지 쭉 뻗어 있는 약 680m 길을 가리켜 ‘가로수길’이라 일컫는다.
‘가로수길’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1990년대 중반 화랑과 디자인 숍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가로수길은 ‘디자인 명소’가 됐다. 지금도 가로수길가에는 화랑과 디자인 숍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다. 가로수길 인근지역에서 아담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여)는 “인테리어와 패션 쪽 실력 있는 신인 디자이너들과 해외파 디자이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며 “이들이 디자인한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숍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씨 역시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보증금과 임대료 등을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쪽에 작업실을 냈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회고에 따르면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가로수길가에 인테리어나 패션과 관련된 작은 숍이 제법 많았다. 이씨는 “하지만 매스컴에 가로수길이 자주 오르내리면서 갑자기 상업화됐고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밀려났다”고 말했다.
가로수길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한일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2002년 디자인 명소로 부각되던 가로수길에 분위기 좋은 카페, 특색 있는 옷가게와 액세서리 가게 등이 들어섰다.
2004년 ‘걷고 싶은 거리’ 조성사업을 통해 마치 정동길처럼 은행나무 낙엽이 쌓인 미려한 거리가 됐다.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 옷가게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가로수길의 초기 모습은 차차 사라져갔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에 소개되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의 번화한 모습이 됐다. 2009년에는 서울시 선정 ‘단풍과 낙엽의 거리’로 지정됐다. 가로수길을 종종 찾는다는 한 시민은 “단풍과 낙엽의 거리라고 하는데 그런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며 “주로 옷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불과 2~3년 만에 큰 변화가로수길
일본인 등 관광객들이 많아진 것도 가로수·세로수길의 변화된 양상이다. 입구의 영동호텔을 비롯해 가로수길가에 작은 호텔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가로수길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여학생은 “멀지 않은 곳에 로데오거리가 있어 그 영향을 조금 받은 것 같다”면서도 “그렇지만 아주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또 “언제부턴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로수길을 찾지 않게 됐다”며 “그만큼 가로수길만의 장점과 특징이 없어졌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가로수길에서 밀려난 작은 가게와 디자이너들이 세로수길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세로수길이 잘 정돈돼 있다든가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 관련 숍들이 특정구역에 밀집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산재해 있어서일지 모른다.
세로수길은 가로수길의 유명세에 비하면 오히려 지저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전선이 마구 얽히고설켜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먹고 마시는 동네인 듯 가로수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음식점, 고깃집, 노래방 등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또 세월이 많이 지난 듯한 ‘강남시장’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디자인 거리’라는 인상을 받지 못한다.
세로수길에서 ‘디자인’의 인상을 가장 강렬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서울모드패션전문학원’ 건물이다. 띄엄띄엄 숨어 있는 작은 로드숍, 액세서리숍, 레스토랑 등이 통일돼 있지는 않지만 저마다 개성 있는 디자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이들 숍들은 겉모양이 깔끔하고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다. 가로수길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숍이나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신 분위기만큼은 최고다.
세로수길을 거닐며 보물찾기 놀이세로수길 내에 있는 발렛파킹 표지판
세로수길 내 점포들의 보증금, 월세, 권리금도 최근 대폭 올랐다. 씨티공인중개사 대표는 “33㎡ 숍 하나의 권리금이 2억을 엿볼 정도로 많이 올랐다”며 “월세 역시 최근 2배 이상 올랐다”고 전했다.
현재 강남구청은 가로수길을 ‘디자인 거리’로 조성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에 힘입은 것이다. 강남구청 측은 “서울시에 가로수길을 ‘디자인개발지정특구’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조건부 승인을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서울시가 내건 조건은 ‘대상 면적을 늘리고 거리도 더욱 정돈해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세로수길도 디자인개발지정특구에 포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디자인개발지정특구로 지정되면 세금 등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강남구청 측 말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구조와 시설이라면 세로수길이 가로수길과 묶여 디자인개발지정특구로 지정될지 의문이다. 정리정돈을 더 깔끔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자본과 유흥으로 치닫는 현실을 바로잡는 것이다. 본래 가로수길이 조성된 배경을 되돌아보고 신인 디자이너들이 꿈과 열정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과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대기업들이 점령해버린 가로수길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아직까지 개성이 남아 있는 세로수길만이라도 가로수길의 최초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를 많은 사람이 바라고 있다.
트렌드세터들이 즐겨 찾는 길세로수길에 있는 아기자기한 상점들
[임형도 기자 hdlim@mk.co.kr / 사진 =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호(2011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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