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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만기 없는 6배, 한국은 하루 2배에 브레이크 … 엇갈리는 韓·美 레버리지 규제
입력 : 2026.09.18 17: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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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에 베팅할 수 있는 칼시 플랫폼. 금값이 더 오를 것 같아 선물계약을 하나 산다고 생각해보자. 보통 선물 시장에서 거래하려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숫자 가운데 하나가 만기다. 계약이 끝나는 날짜가 다가오면 포지션을 정리하거나 다음 만기의 선물로 갈아타야 한다.
미국의 예측시장 업체 칼시(Kalshi)가 준비하는 금 퍼페추얼(Perpetual Futures)은 이 날짜가 없다. 가격 상승에 베팅했다면 원하는 만큼 포지션을 이어갈 수 있다. 대신 일정 시간마다 펀딩비라는 비용이 오가고, 금값이 예상과 반대로 움직이면 맡겨둔 증거금이 줄어든다. 손실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거래소가 포지션을 강제로 정리하기도 한다. 만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펀딩비와 증거금, 강제청산이라는 새로운 계산법이 들어선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한 종목의 하루 수익률을 두 배로 따라가는 레버리지 상품을 새로 사려면 이제 계좌에 현금 3000만원을 넣어둬야 한다. 8월 19일부터 처음 투자하는 개인은 교육을 받고 5거래일에 걸쳐 총 5시간의 모의거래까지 마쳐야 한다. 5월 말 문을 연 단일종목 레버리지 시장이 두 달여 만에 입구가 크게 좁아지는 형국이다.
도박판이라던 ‘예측시장’ 이제 금시장까지 진출
칼시를 이해하려면 먼저 예측시장이라는 조금 낯선 용어부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는 회사 주식 대신 현실에서 일어날 사건을 거래한다. “미국 중앙은행이 다음 회의에서 금리를 내릴까” “물가상승률이 일정 수준을 넘을까” 같은 질문에 ‘예(Yes)’와 ‘아니오(No)’ 계약이 붙는다. 예 계약이 70센트에 거래된다면 시장 참여자들이 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대략 70% 정도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결과가 맞으면 계약은 1달러로 정산되고 틀리면 가치가 사라진다. 미래에 대한 의견이 숫자와 가격으로 바뀌는 시장이다. 칼시는 이 방식으로 성장한 미국의 대표적인 예측시장 기업이다. 중요한 차이는 단순한 온라인 베팅 사이트가 아니라 CFTC가 감독하는 지정계약 시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올해 그 거래소의 경계가 크게 넓어졌다. CFTC가 5월 29일 칼시의 비트코인 퍼페추얼을 선물계약으로 승인하면서 미국 투자자가 국내 규제 거래소에서 만기 없는 암호화폐 선물을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칼시는 곧바로 다음 시장을 찾았다. 7월에는 금과 외환, 에너지 퍼페추얼을 규제당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고, 7월 21일에는 금·은· 백금 가격을 기초로 하는 퍼페추얼 승인을 CFTC에 신청했다. 비트코인에서 시작된 상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자산 가운데 하나인 금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용어>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
주가나 원자재 가격 대신 현실에서 특정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사고파는 시장이다. “미 연준이 다음 회의에서 금리를 내릴까” “물가상승률이 특정 수준을 넘을까” 같은 질문에 ‘예(Yes)’와 ‘아니오(No)’ 계약이 붙는다. 예 계약이 70센트에 거래된다면 시장 참여자들이 해당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대략 70%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결과가 확정되면 맞힌 계약은 정해진 금액으로 정산되고, 틀린 계약은 가치가 사라진다. 미국에서는 칼시(Kalshi)가 대표적인 규제 예측시장으로 꼽힌다.<잠깐용어> 퍼페추얼 선물(Perpetual Futures)
일반 선물과 달리 만기일이 없는 파생상품이다. 투자자는 계약을 다음 월물로 갈아타지 않고도 포지션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대신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일정 시간마다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 ‘펀딩비(Funding Rate)’가 오간다. 적은 증거금으로 더 큰 금액을 거래하는 레버리지도 사용할 수 있어 수익과 손실이 함께 커진다. 가격이 예상과 반대로 크게 움직여 증거금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포지션이 자동으로 정리되는 강제청산이 발생할 수 있다.
칼시 최고위험책임자 우데시 자는 금이 “개인투자자에게 친숙한(Retail Friendly)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칼시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플랫폼이고, 앞으로 주가지수와 개별주식까지 퍼페추얼의 기초자산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 7월 9일까지 칼시 퍼페추얼의 누적 거래대금은 161억 달러에 달했다. 예측시장 업체가 전통 거래소의 영역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만기 없는 선물, 날짜 대신 펀딩비가 붙는다퍼페추얼의 매력은 이름 그대로 계약이 끝나는 날이 없다는 데 있다. 일반 선물은 9월물, 12월물처럼 만기가 정해져 있어 계속 투자하려면 다음 계약으로 갈아타야 하지만 퍼페추얼은 그 과정이 필요 없다. 대신 현물 가격과 퍼페추얼 가격이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펀딩비(Funding Rate)’가 작동한다. 칼시는 8시간마다 롱과 숏 투자자 사이에서 펀딩비를 정산한다. 매수자가 지나치게 많아 퍼페추얼 가격이 현물보다 높아지면 대체로 롱 투자자가 숏 투자자에게 비용을 지급하는 식이다. 이 비용이 쌓이면 오래 버티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레버리지는 이 움직임을 더 크게 만든다. 칼시가 공개한 암호화폐 퍼페추얼의 최대 레버리지는 비트코인 5.9배, 이더리움 4.5배 등 최대 약 6배 수준이다. 글로벌 퍼페추얼 시장에서는 50배 수준의 높은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상품도 존재한다. 레버리지가 높을수록 작은 가격 변동으로도 계좌의 증거금이 빠르게 줄어들고, 유지증거금 아래로 내려가면 거래소가 포지션을 자동으로 청산할 수 있다. 투자자는 만기를 걱정하지 않는 대신 가격과 펀딩비, 증거금을 동시에 지켜봐야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쟁도 거세다. CME의 테리 더피 최고경영자는 미국의 퍼페추얼 도입을 두고 “재앙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셈”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높은 레버리지와 자동청산, 펀딩비의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개인에게 위험이 집중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CME는 한발 더 나아가 CFTC가 퍼페추얼을 선물이 아니라 더 엄격한 규제를 받는 스와프로 봐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새 상품 하나가 개인투자자의 매매 방식뿐 아니라 미국 파생상품 시장의 규칙을 둘러싼 싸움으로 번진 셈이다.
한국은 출시 두 달 만에 현금 3000만원 문턱한국에서는 레버리지의 문이 열린 직후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달아올랐다.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ETN은 5월 27일 처음 출시됐다. 한 회사 주가가 하루 1% 오르면 2% 안팎 오르고, 1% 내리면 2% 안팎 떨어지도록 만든 상품이다. 첫날 16개 상품의 시가총액은 4조4000억원이었지만 7월 15일에는 11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거래대금도 10조4000억원에서 13조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 종목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레버리지 상품의 거래가 기초주식의 움직임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커졌다.
금융당국은 7월 16일 신규 상품 상장을 잠정 중단하고 광고와 이벤트성 마케팅을 금지했다. 이어 7월 31일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새로 사거나 추가 매수할 때도 현금 3000만원의 기본예탁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현금과 주식·ETF·채권 등의 일부를 합쳐 1000만원을 채울 수 있었지만 이제 대용증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정책 시행 직전인 7월 30일 12조4000억원이던 관련 상품 거래대금은 8월 11일 7000억원으로 줄었다. 8월 19일부터 신규 투자자에게는 여기에 5거래일 이상, 총 5시간 이상의 모의거래가 추가된다.
같은 레버리지, 손실은 다른 방식으로 온다숫자만 보면 한국의 2배와 칼시의 약 6배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투자자가 손실을 입는 과정은 서로 다르다.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하루가 끝날 때마다 다시 2배 노출을 맞춘다. 그래서 주가가 오르내리는 횡보장이 길어지면 기초주식이 제자리로 돌아와도 투자금은 줄어들 수 있다. 금융위가 제시한 예가 쉽다. 주가가 100원에서 80원으로 20% 떨어졌다가 다시 25% 올라 100원으로 회복했다고 하자. 2배 상품은 첫날 40% 하락해 60원이 되고, 다음 날 50% 올라 90원이 된다. 주식은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레버리지 투자자는 10%를 잃는다. 이것이 ‘음의 복리효과’다.
퍼페추얼에는 이런 매일의 2배 재설정이 없다. 대신 증거금과 펀딩비, 강제청산이 손익을 좌우한다. 오래 들고 갈 수 있다는 편리함이 곧 오래 들고 있어도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가격이 빠르게 반대로 움직이면 계약 만기를 기다릴 새도 없이 포지션이 사라질 수 있다. ETF와 퍼페추얼 모두 ‘레버리지’라는 이름을 쓰지만, 전자는 하루 수익률을 반복해서 확대하고 후자는 적은 담보로 큰 포지션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위험의 모양이 다르다.
한국 금융당국이 해외에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도 현금 3000만원 규정을 적용한 배경에는 국내 상품만 누를 경우 투자 수요가 해외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제 다음 질문은 더 멀리 간다. 국내 2배 상품의 문턱이 높아졌을 때 투자자가 해외의 다른 고레버리지 파생상품을 찾아갈지, 미국에서 퍼페추얼이 금과 외환, 나아가 개주식까지 넓어질 경우 국내 투자자 보호 체계는 어느 범위까지 따라가야 할지다.
레버리지는 시장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한 통로의 문턱이 높아지면 더 단순한 상품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더 복잡한 시장으로 이동한다. 앞으로 미국에서는 CFTC가 금·외환 퍼페추얼에 어떤 조건을 붙이는지가 첫 관전 포인트다. 한국에서는 3000만원 예탁금과 모의거래 이후 거래대금이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무는지, 해외 상품으로 수요가 옮겨가는지가 중요하다. 투자자의 화면에서는 ‘2배’, ‘6배’ ‘50배’ 같은 숫자가 가장 크게 보이지만 실제 손익을 결정하는 것은 그 숫자 뒤에 붙은 일일 재설정, 펀딩비, 증거금과 청산 규칙이다. 레버리지의 다음 경쟁은 배수보다 그 위험을 어디까지 이해시키고 통제할 수 있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