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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내린 금·은 가격… 다시 상승 랠리 시작?
입력 : 2026.09.09 17: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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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 세계 모든 자산이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가 진행되며 투자자들이 뭉칫돈을 싸들고 앞다퉈 금을 사들였다. 최고의 안전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대규모 매수세가 붙었고, 올해 초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중동 전쟁 리스크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는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오히려 금의 수익률은 좋지 못한 상태다. ‘금=안전자산’이란 공식을 믿었던 투자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고, 전문가들은 금값이 전고점을 돌파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금 가격 하락 배경은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금 가격은 온스당 5300달러를 넘으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나 7월 온스당 4000달러가 붕괴되며 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했다. 금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식, 채권, 달러 등 전통자산의 변동성을 방어하기 위한 대체자산이자 인플레이션 대피처로 꼽힌다. 전체 원자재 시장에서 거래량과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 주요국 중앙은행이나 기관 투자자들이 금을 하나의 투자자산군으로 분류해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도 한다.
미국과 이란 전쟁 발발 전 골디락스 장세에선 모든 자산들이 매력적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그중 금은 다른 전통자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도가 올라갔다. 그 이유는 금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금을 보유하면 배당이나 이자소득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을 보유했던 투자자들이 채권을 팔고 금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올라간다. 반대로 금리가 높은 국면에선 채권의 가격이 더 싸지니 금 투자 수요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금 가격이 하락한다. 즉, 금 가격은 금리와 반대되는 흐름을 보이는데, 지난해 골디락스 장세에선 금리가 하향 안정화돼 금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번 금 가격 하락도 금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매파적인 인물이라 평가받는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신임 의장으로 거론되면서 시장에선 금리 인상에 대한 불씨가 지펴졌다. 또한 유가 급등으로 전반적인 물가가 오르며 미국의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다. 실질금리의 지표라고 불리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TIPS)는 올해 3월부터 가파르게 올랐다. TIPS 금리는 1.7%대에서 현재 2.4%대로 상승했다. 금리 지표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시장에선 자연스럽게 채권 수요가 올라가고, 금 수요는 떨어지게 됐다. 지난해 에브리싱 랠리를 탄 광풍이 금리 상승과 함께 소멸된 것이다.
달러인덱스는 0.2% 상승하며 달러 강세가 금값을 압박했다.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 상승도 금값을 누르는 요인이 됐다. 금은 달러로 거래되는데, 달러화 가치가 높을 때 금을 사면 시세보다 프리미엄을 더 얹어서 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달러화 가치가 강해지는 국면에선 금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달러 인덱스는 올 초 90선이었으나 금 값이 올해 저점을 찍었던 지난 7월 100선으로 올라왔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했음에도 여전히 달러 인덱스가 올랐던 건 달러 패권에 대한 전 세계적인 신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걸 의미한다.
그간 금 수요를 뒷받침해줬던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 매수세도 잠시 멈췄었다. 세계 금 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앙은행들은 총합 121톤 규모의 금을 순매도해다. 다시 4월부터 순매수로 전환됐지만 대규모 순매도 영향 때문에 당시 금값이 급락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은 화폐 가치가 모종의 이류로 훼손될 때 헤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인데 과거처럼 방만한 통화량 확대가 부재하면 금의 헤지 수요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고점 대비 반토막 은 가격
서울 강남구 한국금거래소 본점에서 관계자들이 은을 선보이고 있다. 금과 함께 원자재 투자 시장에서 주목받는 은도 급등 후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금보다 하락률이 더 컸는데 은 가격은 올해 초 온스당 120달러를 넘어섰지만 지난 7월 온스당 60달러를 하회하면서 고점 대비 반 토막이 났었다.
은은 금과 마찬가지로 전통자산의 변동성을 방어하기 위한 헤지 성향이 커질 때 주목을 받는 귀금속 자산이다. 특히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대체자산에 투자하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가 진행될 때 가치가 높아진다. 그래서 금리가 낮고 채권 가격이 높은 국면에서 은 투자 수요가 더 올라간다.
다만 투자용 수요가 많은 금과 달리 은은 산업 현장에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세계 은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은의 60%가 산업용으로 쓰였고, 16%만이 실물투자용으로 사용됐다. 사실상 구리, 알루미늄과 같은 산업금속용 성격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기에 금리가 낮고 경기가 호황인 국면에선 은의 수요가 훨씬 많아져 다른 귀금속 자산들보다 가격이 더 크게 오른다.
하지만 금리가 다시 올라가는 국면에선 그 가격이 더 가파르게 하락한다. 지난해부터 은 가격이 오를 때 투기적 수요까지 유입되면서 사상 최고치를 찍었는데,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지목 이후 투자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면서 은 가격이 하루만에 31% 넘게 하락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는 46년 만에 최대 낙폭으로 당시 시장에 큰 충격을 일으켰다.
홍성기 LS증권 연구원은 “실질금리 상승, 기준금리 전망 상향, ETF(상장지수펀드) 투자자금 약세는 가격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투기적 수요가 잦아든 상황에서 중앙은행 매입에 따른 상승 가능성이 있는 금보다 저조한 가격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귀금속 자산 가격이 하락하자 금, 은에 투자하는 금융상품들의 평가가치도 떨어졌다. 금 선물가격을 추종해 수익을 내는 ETF인 KODEX 골드선물(H)은 올 들어 지난 7월 말까지 -9.0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ACE KRX금현물(-10.08%) △TIGER 골드선물(H)(-9.22%) △ACE 골드선물 레버리지(합성 H)(-22.93%) 등도 하락했다. 은에 투자하는 상품들의 하락률은 더 심했다. KODEX 은선물(H)의 수익률은 같은 기간 -24.2%를 기록했다. 금과 은에 함께 투자하는 TIGER 금은선물(H)도 -11.22% 하락했다.
다시 상승세 시작한 금·은 가격, 왜?그러던 금과 은 가격이 8월 들어 다시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온스당 4000달러를 밑돌던 금 가격은 지난 8월 7일 장중 온스당 4400달러를 상회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지면서 연내 금리 동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부터다. 지난 7월 발표된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6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3.5% 상승에 그쳤는데, 예상치는 3.8%였다. 최근 발표된 7월 고용지표도 부진한 것으로 나오면서 시장에선 Fed가 연내 금리인상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금리 인상 예측치 통계를 내는 CME 패드워치에 따르면 지난 8월 9일 기준으로 9월 FOMC(시장공개위원회)에서 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은 55.6%로 나타났다.
금 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중국의 중앙은행도 다시 금 매입에 나섰다. 지난 7월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금 보유량은 7608만 온스로 전월 대비 64만 온스 증가했다. 2023년 10월(74만 온스) 이후 약 2년 9개월 여 만에 최대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인민은행은 2024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금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당시 금값은 온스당 2000달러 수준이었다. 이후 글로벌 금리 인하 기조가 시작되면서 금 매입량을 점차 줄여갔지만 최근 금값이 하향 안정화되자 다시 매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글로벌 불확실성, 달러에 대한 신뢰도 저하 등이 전 세계 금 수요 증가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중국은 탈달러 가속화 및 위안화 입지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금 보유를 계속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인민은행의 준비자산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8% 수준으로 글로벌 중앙은행 평균(27%)보다 한참 못 미친다. 이에 전문가들은 향후에도 중국이 금 보유량을 추가적으로 늘려갈 것이라고 분석한다.
정정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금 매입은 가격 조정이 있을 때마다 빨라졌는데, 올해도 1~2월 고점을 형성한 금 가격이 하락함과 동시에 매입 속도가 가속화됐다”며 “전략자산 비축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은 명확하다”고 했다.
그간 금 매입에 소극적이었던 한국도 13년 만에 금을 사들이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이미 지난 2분기 ETF를 통해 소규모로 금을 사들였고, 향후 금 보유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금 매입을 위해 생산업체,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과 협력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국내 금 생산업체가 해외로 수출하려는 물량과 희망 거래 시기를 한국은행에 제시하면, 한국은행이 운용계획과 시장 상황 등을 검토해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국내 금 생산은 대부분 LS MnM, 고려아연이 담당한다. 두 업체의 연간 생산량은 40~45톤인데, 이 중 수출량은 대략 4~5톤 수준으로 추정된다. LS MnM은 구리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고려아연은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금을 생산한다.
한국은행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금을 매입하면 외화를 사용하지 않고 원화로 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내에서 매입한 금을 국내에 보관하면 보관 장소를 분산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일 수도 있다. 금은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 불리하며, 과거 장기 수익률이 해외 주식보다 낮았던 기간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은 그간 금 매입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험이 상시화되면서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어서 13년 만에 금 매입을 결정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과거 실물 금을 중심으로 보유했으나 시장 상황에 따라 ETF 등 여러 수단을 활용해 안전하게 금을 확보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량을 늘리는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금 협회(WGC)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 관계자의 89%는 향후 1년 동안 중앙은행 금 보유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UBS도 최근 CIO 업데이트를 통해 내년 상반기 금 가격이 온스당 500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UBS는 “연준이 올해 금리를 동결한 후 2027년에 금리 인하를 재개할 수 있을 텐데 이는 금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며 “달러 약세와 글로벌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움직임도 중기적으로 금 가격 상승의 강력한 지지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달러화 자산 노출을 줄이려는 장기적인 목표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연간 금 매입 규모를 늘릴 것”이라며 “실물자산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라면 포트폴리오 내에서 금 비중을 한 자릿수 중반대로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홍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