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만에 부활 노리는 ‘강동 대표 부촌’ 둔촌·고덕 다음 차례는 명일동 재건축

    입력 : 2026.08.13 16:09:38

  •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단지 모습. <사진 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단지 모습. <사진 연합뉴스

    강동구는 오랫동안 서울 부동산 지도에서 ‘외곽 중저가 지역’으로 분류돼 온 곳이다. 그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 둔촌동과 고덕동이다. 둔촌동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 정비사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둔촌주공 재건축이 올림픽파크포레온이라는 1만2032가구의 초대형 단지로 완성되며 강동의 대표 주거지 자리를 꿰찼다.

    고덕동 역시 고덕그라시움과 고덕아르테온을 비롯한 신축 단지들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신흥 고급 주거지로 탈바꿈했다. 낡은 주공아파트촌이 재건축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뒤 어떻게 달라지는지, 강동구는 이미 두 차례나 목격한 셈이다.

    그리고 이제 다음 순서가 다가오고 있다. 바로 명일동이다. 한때 강동의 대표 부촌으로 불리다 조용히 잊혔던이 동네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다. 서울 동남권의 대표적 노후 주거지역인 강동구 명일동과 길동 일대 아파트들이 본격적으로 정비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명일동을 중심으로 한 명일·길동권에서는 현재 12개 단지가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빠르면 2031년부터 신축 단지가 순차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해, 최종적으로는 총 1만4000여 가구 규모의 주거 벨트가 완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일 단지 기준 서울 최대인 올림픽파크포레온을 웃도는, 사실상 ‘미니 신도시급’ 물량이다.

    선두 주자인 길동 삼익파크는 이주를 시작했고,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으로 추진되는 명일신동아와 고덕현대는 정비구역 지정을 받아내며 뒤를 쫓고 있다. 강동구 역시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협의체 운영을 본격 가동했다. 명일동 일대 재건축 단지를 시작으로 재개발과 모아타운, 리모델링까지 협의체 운영을 확대해 정비 사업 전반에 대한 행정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잊혔던 부촌, 명일동의 시간
    향후 1384가구로 탈바꿈하는 길동 삼익파크 재건축 개발사업(써밋 듀포레) 투시도. <사진 삼익파크아파트 조합>
    향후 1384가구로 탈바꿈하는 길동 삼익파크 재건축 개발사업(써밋 듀포레) 투시도. <사진 삼익파크아파트 조합>
    사진설명

    명일동의 내력을 보면 최근의 움직임이 ‘부상’이 아니라 ‘귀환’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명일동 일대는 1980년대 고덕동·상일동과 함께 택지개발로 조성된 강동구의 계획 주거지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중대형 평형 위주로 단지가 들어섰고, 생활 인프라와 학군, 녹지가 고루 갖춰지면서 강동구를 대표하는 부촌으로 자리 잡았다. 신동아·우성·현대·한양 등 일대를 대표해온 단지들에는 ‘명일동 4인방’이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다. 그러나 시간은 명일동 편이 아니었다. 단지들이 일제히 노후화되는 동안 이렇다 할 신축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19년 래미안 솔베뉴(옛 삼익그린 1차) 준공 이후 한동안 신축 공급의 맥이 끊겼다. 그사이 명일동은 대규모 신축으로 갈아입은 둔촌·고덕·상일동에 주목도를 내줬고, ‘과거의 부촌’으로 기억되는 처지가 됐다.

    반전의 실마리는 재건축이다. 최근 구축 단지들이 연이어 재건축 심의 문턱을 넘으면서 명일동의 입지 조건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첫손에 꼽히는 입지 자산은 학군이다. 명일동 일대에는 배재중·배재고, 한영중·한영고, 한영외고가 모여 있고 학원가도 밀집해 있어 강동구를 대표하는 교육 인프라로 평가받는다. 아이를 키우는 실수요자에게 학군은 유행을 타지 않는 가치다. 주거시설은 낡았어도 교육 인프라는 40여 년간 축적됐다는 점이 ‘재건축만 되면’이라는 조건부 기대를 받아온 이유다.

    여기에 지하철 5호선이 단지 앞을 지나고 올림픽대로와 중부고속도로 진입도 수월하다. 인근 고덕비즈밸리에 기업 입주가 본격화하면 단순 베드타운을 넘어 자족 기능과 배후 일자리 수요까지 더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지막 퍼즐, 강남까지 20분

    명일동의 오랜 아킬레스건은 강남 접근성이었다. 5호선이 강동 중심부를 관통하기는 하지만, 강동역에서 마천행과 하남검단산행으로 노선이 갈라지는 탓에 배차 간격이 길고, 강남권으로 가려면 환승이 불가피했다. 좋은 학군과 쾌적한 주거 환경에도 ‘강남 다니기 불편하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던 이유다.

    이 약점을 반전시킬 요소가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이다. 현재 기점인 중앙보훈병원역에서 고덕강일1지구까지, 명일동 생활권이 포함된 4.1㎞ 구간에 정거장 4개가 새로 놓인다. 공사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중이다. 연장선이 뚫리면 명일동에서 봉은사·신논현·고속터미널 등 강남권 업무지구까지 20분대에 닿는다. 급행 노선 덕에 ‘황금 노선’으로 불려온 9호선이 명일동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주는 셈이다.

    반도체 성과급, 뜻밖의 원군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2차’ 아파트가 최고 40층, 3353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재건축된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2차’ 아파트가 최고 40층, 3353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재건축된다.

    최근에는 예상 밖의 수요까지 명일동 주변을 맴돌고 있다. 반도체 머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잇따라 억대 성과급 지급을 확정하면서 두둑해진 지갑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자금이 향하는 곳은 출퇴근 셔틀버스가 닿고 지하철 접근성이 좋은 이른바 ‘셔세권’ 단지들이다. 진원지는 화성 동탄, 용인 수지 같은 경기 남부였지만, 이 흐름이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셔틀 동선을 따라 북상하면서 강동과 하남까지 수혜지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 연구원은 “강동구는 송파구와 함께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수요자들이 출퇴근으로 선호하는 지역 중 한 곳”이라며 “가격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출퇴근할 수 있는 지역 중 가장 상급지라 반도체 경기 호조가 지속된다면 이들 지역에 갈아타기 수요가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동네의 달라진 위상은 표심에서도 읽힌다. 지난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강동구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게 강남·서초·용산·송파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안겼다. 정비사업을 향한 기대가 지역 정서 깊숙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냉정하게 따져야 할 대목도 있다. 서울 집값 상승세가 강동구까지 번진 지금, 저가 매수를 노릴 국면은 이미 지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명일동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60% 안팎에 거래되는 가격이 매력으로 꼽히지만, 올림픽파크포레온과 고덕동 신축 단지들이 강동구 가격의 상단을 이미 형성해놓은 상태다. 재건축 단지 특유의 리스크도 여전하다. 사업 기간은 길고, 분담금 부담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조언은 한 방향으로 모인다. 명일·길동권 재건축의 투자 포인트는 ‘저평가 단지를 골라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동네 전체의 체급 상승에 베팅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강화된 대출 규제 환경까지 감안하면, 무리한 갭투자보다는 9호선 개통 시점과 단지별 재건축 진행 상황을 일정표 삼아 자금 계획을 세우는 접근이 요구된다.

    어디를, 언제 들어갈 것인가

    재건축 투자는 진행 단계에 따라 초기 투자금과 투자 기간, 리스크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업이 후반으로 갈수록 분담금을 비롯한 사업 윤곽이 또렷해져 불확실성은 줄어드는 대신, 그 확실성만큼 기대가 가격에 선반영돼 진입 문턱이 높아진다. 거꾸로 초기 단계는 진입가 낮지만 입주까지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하고 그 사이 변수도 많다. 명일·길동권의 대표 단지를 속도 순으로 살펴보자.

    향후 947가구로 탈바꿈하는 명일신동아아파트 전경. <사진 매경DB>
    향후 947가구로 탈바꿈하는 명일신동아아파트 전경. <사진 매경DB>

    선두는 길동 삼익파크다. 이미 이주를 시작해 지상 35층, 1384가구(임대 146가구 포함) 규모로 재탄생한다. 시공은 대우건설이 맡아 하이엔드 브랜드 ‘써밋’이 적용되며, 완공 목표는 2031년이다. 사업이 후반부에 접어든 만큼 분담금 윤곽이 잡혀 불확실성은 권역에서 가장 낮다. 대신 그만큼의 기대가 시세에 녹아 있어 진입가는 높다.

    주의할 점은 거래 요건이다. 삼익파크는 투기과열지구 안에서 관리처분인가를 마친 단지여서 원칙적으로는 조합원 지위 승계가 막혀 있다. 다만 10년 이상 보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한 조합원이 내놓은 매물에 한해 예외적으로 거래할 수 있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입주 시 전용 84㎡를 배정받는 매물(현재 전용 137㎡)의 시세는 약 18억원에 형성돼 있다. 여기에 분담금 약 3억6000만원을 더하면 실투자금은 약 21억6000만원이다.

    1㎞ 거리의 래미안솔베뉴(2019년 준공) 동일 평형이 지난 4월 21억 5000만원에 손바뀜한 것과 견주면 당장의 안전 마진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고덕동 대장인 고덕그라시움 동일 평형이 24억원 선, 올림픽파크포레온이 28억원대에 거래되는 점을 감안하면 명일·길동권 전체의 체급이 올라간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투자자에게는 검토할 만한 카드다. 중간 단계의 대표 주자는 삼익그린2차다. 1983년 준공된 2400가구 대단지로,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최고 40층 3353가구의 매머드급 단지로 거듭난다. 2021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현재 사업시행인가를 준비하는 단계이고, 시공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전용 84㎡ 기준 최근 실거래가는 21억원, 동일 평형을 배정받을 경우 분담금은 약 2억6000만원으로 추산된다. 앞서가는 삼익파크보다 투자금 자체는 크지만 현재 진행 중인 권역 재건축 가운데 사업 규모가 가장 커 준공 후 일대 대장 단지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초기 단계에서는 고덕현대와 명일신동아를 눈여겨볼 만하다. 강동구 최초로 신속통합기획이 적용된 단지들이다. 고덕현대는 기존 524가구에서 952가구로, 명일신동아는 570가구에서 947가구로 몸집을 불린다. 아직 조합설립 전 단계라 진입가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입주까지 남은 기간이 길고 사업 진행 과정의 변수도 적지 않다. 시세는 고덕현대 전용 84㎡가 최근 18억3500만원에, 명일신동아 전용 81㎡가 20억4500만원에 실거래 신고됐다.

    권역에서 가장 이례적인 사업장은 삼익맨숀이다. 1984년 준공된 최고 15층, 10개동, 768가구 규모의 이 단지는 전체 10개동 가운데 5동 한 동만 빼놓은 채 9개동만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제척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매우 드문 사례다.

    발단은 2020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불거진 갈등이었다. 대형 평형(전용 146㎡) 60가구로 구성된 5동 소유주들이 자산가치 저평가와 과도한 추정분담금을 이유로 재건축에 반대했고, 조합은 2년여의 협상 끝에 토지분할 소송으로 맞섰다. 2024년 말 법원이 토지분할을 인정하면서 5동을 제외한 재건축의 길이 열렸고, 최근 서울시 통합심의까지 통과했다. 재건축이 완료되면 지하 4층~지상 39층, 990가구 규모로 탈바꿈한다. 시공은 대우건설이 맡는다.

    이 밖에 명일한양(540가구→1087가구), 명일우성(572가구→997가구), 고덕주공9단지(1320가구→1861가구)도 재건축 대열에 서 있다. 셋 모두 최고 49층 안팎의 고층 단지로 계획돼 있다. 40년 전 계획도시로 태어난 명일동이, 이번에는 스카이라인째 다시 그려지는 중이다.

    [박재영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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