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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용적률 500%까지 허용한다고?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하자” 곳곳서 갈등
입력 : 2023.03.14 16: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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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일산 소재 강선마을 14단지는 일산에서 리모델링이 가장 빠른 단지 중 하나였다. 지난해 고양 최초로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된 이후 사업이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최근에는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며 사업에 속도를 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2월 7일 국토교통부가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주요 내용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일부 주민들이 재건축으로 선회하자며 ‘리모델링 반대 동의서’를 모으고 있어서다. 단지 인근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리모델링을 하면 층고가 낮고 설계에도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리모델링과 재건축 중 뭐가 주민들에게 더 이득일지 정확한 계산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재건축을 선호하는 주민 목소리가 나오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강남구 대치2단지에서는 리모델링 조합과 재건축을 주장하는 반대파의 갈등 구도 때문에 리모델링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시공권 입찰을 포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이촌동 한가람 아파트에서는 리모델링에 반대하는 주민이 ‘재건축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공개제안을 하기도 했다.
강동구 둔촌프라자아파트도 지난해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하고 재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2006년 리모델링 조합 설립 이후 16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성동구 응봉동 대림1차 역시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하고 최근 안전진단을 신청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신도시 일대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리모델링이냐 재건축이냐’는 정비사업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 중 하나다. 여건만 된다면 재건축이 일반적으로는 유리하다. 기존 건물을 통째로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기 때문에 최근 유행하는 혁신 설계를 담기 쉽다.
하지만 리모델링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지은 지 30년이 되기 훨씬 전인 20년 차부터 진행할 수 있다. 용적률이 200%가 넘는 구축의 경우 재건축의 길이 사실상 닫혀있지만 리모델링을 통하면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재건축이 현실적으로 힘든 많은 단지들이 당연한 수순으로 리모델링을 택하곤 했다.
규제 완화에 리모델링 vs 재건축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대폭 내려놓는 특별법을 내놓자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현실적으로 재건축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판단하에 리모델링 카드를 꺼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이제 게임의 룰이 바뀌었는데 우리도 대세에 따라야 한다’는 ‘재건축 선호’ 목소리가 커져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먼저 문제의 발단이 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자세히 살펴보자. 큰 골자는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대규모 광역교통시설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등 공공성을 확충한다는 전제하에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대거 완화하는 게 핵심이다.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재정비 요구에 따라 지난해 5월부터 ‘1기 신도시 정비 민관합동 TF’를 운영했다. 지난해 11월 ‘1기 신도시 정비기본방침 수립 및 제도화 방안’ 연구용역에 착수해 특별법 내용을 검토한 바 있다.
특별법이 적용되는 ‘노후계획도시’는 ‘택지개발촉진법’ 등 관계 법령에 따른 택지조성사업 완료 후 20년 이상 지난 100만㎡ 이상의 택지 등으로 한정된다. 이에 대한 세부 기준은 추후 시행령에서 규정된다. 택지지구를 분할해 개발한 경우 시행령을 통해 하나의 인접·연접한 2개 이상의 택지 면적의 합이 100만㎡ 이상인 경우를 포함한다. 택지지구와 동일한 생활권을 구성하는 연접 노후 구도심(시행령에서 구체화) 등도 하나의 노후계획도시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법안에 따르면 특별정비구역에는 각종 특례와 지원사항이 주어진다. 특별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되면 지정권자는 ‘도시정비법’에서 정하는 기준보다 완화된 안전진단 기준(시행령 규정 예정)을 적용할 수 있다. 자족기능 향상·대규모 기반시설 확충 등 사업 공공성이 확보되는 경우 안전진단을 면제한다. 곧바로 특별정비구역 지정·계획수립 등 사업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세부요건은 대통령령·기본방침에서 제시될 예정이다.
용적률, 용도지역 등 도시·건축규제도 완화된다. 용적률 규제는 시행령 규정을 통해 종상향 수준(2종→3종·준주거 등)으로 완화한다. 용도지역은 지역 여건에 따라 변경이 가능할 전망이다. 2종 일반주거지역을 3종 일반주거지역이나 준주거지역 수준으로 상향하면 용적률이 300%까지 높아진다. 역세권 등 일부 지역은 최대 500%를 적용해 고층 건물을 짓는 게 가능할 전망이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선호 명분 커져노후계획도시 특별정비구역을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해 고밀·복합개발이 가능해진다. 직주근접, 고밀·복합개발 등 새롭고 창의적인 공간 전략이 제시될 수 있도록 특별정비구역을 ‘국토계획법’상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 가능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1기 신도시는 재건축으로 선회할 명분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1기 신도시 용적률을 평균적으로 보면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수준이다. 용적률 300% 기준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하면 적절한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지만 500%로 용적률을 높인다면 얘기가 다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주민 입장에서는 더 이득이 되는 방법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하려는 게 당연하다”며 “앞으로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으로 갈아타려는 단지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1기 신도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1기 신도시 특별법에 만족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범재건축연합회(범재연)가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 “대선 공약보다 후퇴한 조건부 법안”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블록별 통합재건축을 추진해야만 특례 및 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주민 사유재산권 행사 선택에 대한 침해라는 입장이다. 여러 사정상 블록별 통합재건축이 어려운 단지도 있는데 이런 단지의 재정비 추진 과정에도 보편적인 특례 지원이 적용돼야 한다는 얘기다.
특별정비구역 통합 조합이 단지별 이해관계가 갈려 특정 단지가 이탈할 경우 구역 해제 없이 개별 단지로 진행 가능한 방안을 수립하는 것도 범재연 측이 정부에 요구하는 대목이다. 범재연은 경기 분당·일산·산본·평촌·중동 등 5개 1기 신도시 지역 재건축연합회가 연대해 지난해 8월 결성한 단체다.
하지만 이미 리모델링 속도가 상당히 나간 단지에서는 재건축을 고려하지 않는 단지도 많다. 군포시 소재 산본 금강9단지1차와 성남시 분당 한솔6단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단지는 리모델링 조합 설립 이전 단계라 원한다면 재건축으로 선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추진했던 리모델링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는 ‘1기 신도시 특별법’에 있는 리모델링 특혜를 노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리모델링의 경우 증가 가능한 세대 수를 현행 15% 이내에서 더 늘릴 방침이다. 증가 세대 수의 구체적 범위는 향후 시행령에서 규정될 예정이다. 현대로서는 20% 내외가 유력하다.
서울 중구 ‘남산타운’ 리모델링 탄력그래서 여전히 리모델링 탄력이 살아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초대형 리모델링 단지’ 대표주자인 ‘남산타운 아파트’가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는 게 대표 사례다. 이 단지는 리모델링 추진 주체가 두 패로 나뉘어 사업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산타운 리모델링 통합추진위원회’가 발족하며 사업에 탄력을 받게 됐다.
두 단체가 각각 걷은 리모델링 동의서를 합치면 너끈하게 주민 절반을 넘는다는 게 시장 진단이다. 남산타운은 총 5150가구에 이르는 대단지다. 2002년 사용 승인을 받아 준공 22년 차를 맞았다. 이 단지는 리모델링이 순탄하게 진행될 경우 기존 대비 467가구가 늘어나게 된다. 남산타운 단지 내에는 추진위 통합을 축하하는 대형 건설사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는 등 사업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서울 중구 남산타운 전경. <사진 연합뉴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우성2차(1080가구)·3차(855가구), 극동(1550가구), 신동아4차(912가구)는 4개 단지가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4개 단지를 합치면 전체 4397가구에 달한다. 이곳은 리모델링이 마무리되면 5000가구가 넘는 초대형 단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우성2차와 우성3차, 극동 아파트는 지난해 11월 조합 설립 동의율을 충족한 상황이다. 신동아4차는 추진위가 별도로 설립됐는데, 동의율은 6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송파구 오금동 소재 가락상아2차아파트는 2월 18일 리모델링 사업 시공사로 삼성물산을 선정했다. 가락상아2차리모델링조합은 이날 열린 조합 총회에서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가락상아2차리모델링은 서울시 송파구 오금로 407 일대에 지하 6층~지상 25층 규모 아파트 6개동 862세대와 부대복리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공사비는 약 3753억원이다.
부지 인근에는 서울 지하철 5호선 개롱역이 있다. 개롱초등학교, 보인중·고등학교와 인접해 있고, 송파도서관과 오금공원, 성내천 등도 도보권이다. 삼성물산은 ‘래미안 베일루체(ValeLuce)’를 가락상아2차리모델링의 새로운 단지명으로 제안했다. 자연 속 계곡을 의미하는 ‘Vale’과 빛나는 품격을 뜻하는 ‘Luce’를 더한 이름이다. 자연 속에서 빛나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랜드마크 단지로 조성하겠다는 시공사의 의지를 담았다.
삼성물산은 래미안 베일루체만의 특화된 디자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빛의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한 외관 디자인과 커튼월룩을 적용했다. 단지 입구에는 길이 86m의 대형 문주를 적용해 단지의 위상을 높일 계획이다. 단지 스카이 커뮤니티에는 ‘갤럭시 라운지’와 도서관,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선다. 선큰 커뮤니티에는 카페와 골프연습장, 피트니스, 사우나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삼성물산은 리모델링을 통해 단지의 조경면적 비율을 기존 16%에서 28.9%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살린 래미안만의 조경 콘셉트 ‘네이처 가든’, 옥상에는 글램핑, 피트니스 등 6가지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스카이 가든’ 등을 제안했다. 삼성물산은 2005년 래미안 방배 에버뉴, 2014년 래미안 대치 하이스턴, 래미안 청담 로이뷰 준공 등 다수의 리모델링 사업을 수행한 바 있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