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금이 돌아온다… 강달러에 맥 못 추다 안전자산 선호에 ‘반짝’

    입력 : 2023.01.10 10:36:11

  • 25만t. 지금까지 인류가 채굴한 양 20만t, 향후 인류가 채굴할 수 있는 양 5만t. 4000년 전 발견된 ‘금’은 이처럼 희귀하다. 지난 한 해에만 인류가 채굴한 ‘철’의 양이 30억t에 달했다. 그런데 4000년 동안 채굴한 금의 양이 겨우 20만t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인류가 채굴한 20만t의 금을 모두 녹이면 한 변의 길이가 21m인 정육면체를 만들 수 있다. 대략 10층 건물 크기다.

    금은 상당히 안정적인 금속이다. 다른 물질과 거의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녹슬지 않고 피부에 닿아도 큰 문제가 없다. 게다가 가공을 하면 반짝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금이 귀해진 이유는 흔치도 않은데 이처럼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과거부터 금을 화폐와 같이 ‘가치 있는’ 물건으로 대접해왔다.

    인류의 역사에서 금이 갖고 있는 의미는 따라서 고귀하다. 인류는 금을 ‘안전자산’으로 여기고 주가가 폭락하거나 경기 침체가 예상되고 전쟁이 발발했을 때 금을 사들인다. 화폐가치는 떨어져도 금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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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안전자산 ‘금’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20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했던 2022년 초에도 금은 자신의 이름을 높아진 가격으로 입증했다. 금값은 불안정한 시기에 치솟으며 이렇게 존재 가치를 드러냈다. 그런데 2022년은 달랐다.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이어지면서 금값이 오르는가 싶더니 4월 이후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그러던 금이 연말이 되어서야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한 해, 금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4년, 미국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 잡은 이후 금 1온스는 35달러로 고정하는 금본위제가 공식화됐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은 금 보유량을 넘어서는 달러를 찍어냈는데 달러 가치 하락 속에서 금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후 금은 인플레이션을 헤지할 수 있는 자산으로 분류됐다.

    특히 금은 2018년 이후 자신의 존재를 가격으로 입증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찾기 시작했고 2019년 3월, 미국의 국채 장단기 금리 차가 역전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은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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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1온스당 금 가격을 살펴보면 2008년, 2011~2012년, 2020년, 2022년 등에 정점을 찍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모두 미국과 유럽 등에서 발발한 금융위기를 비롯해 코로나19 발발, 전쟁과 같은 일들이 발발한 시기와 겹친다. 지구를 불안하게 만들 만한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금을 먼저 찾았다. 2022년도 시작은 비슷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3월 1온스당 금 가격은 2000달러를 넘으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빠르게 떨어지더니 11월 초까지 160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금 가격의 하락 원인으로는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달러 강세화가 영향을 미쳤다. 금은 일반적으로 달러로 거래된다. 그런데 미국 중앙은행이 세계에 뿌려진 달러 회수에 나서면서 ‘강달러’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과거 100달러에 살 수 있던 금이 강달러 현상에 따라 80달러에 사는 게 가능해진 만큼 금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한 것이다. 세계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 9월 27일 114를 넘어섰는데, 달러인덱스가 100을 돌파한 것은 2002년 6월 이후 처음이었다.

    2022년 금 가격 약세

    6월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는 네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았고 이에 따라 금값은 빠르게 하락했다. 6월까지 1온스당 1800달러 선에 머물던 금 선물 가격은 7월 1700달러대로 떨어졌고 9월에는 1600달러까지 떨어지며 연초 대비 20% 하락했다.

    1600달러에서 머물던 금 가격은 11월 들어서면서 조금씩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이어지고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11월 초 금 선물 가격은 1700달러를 다시 회복했고 12월 들어서면서 1800달러의 문을 두드렸다. 9월 금에 투자했다면 3개월 사이 10% 이상의 수익률을 낼 수 있었다. 코스피를 비롯한 미국 주요 증시 지수의 상승률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금리 인상 속도가 완화되면서 그동안 강했던 달러화가 누그러져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2022년 연준이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0.75% 금리 인상)을 밟는 과정에서 금은 이례적인 강(强)달러·고금리 현상으로 맥을 못 췄다. <사진 연합뉴스>
    2022년 연준이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0.75% 금리 인상)을 밟는 과정에서 금은 이례적인 강(强)달러·고금리 현상으로 맥을 못 췄다. <사진 연합뉴스>

    이에 각국 중앙은행들은 3분기부터 금 매입에 나섰다.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은 지난 3분기 약 400t에 달하는 금을 매입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약 4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또한 1967년 이후 55년만에 최대로 많은 금을 매입했다.

    김보람 KB자산운용 해외인덱스 운용본부 팀장은 “금은 실질금리, 달러화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 특징을 가진 자산으로 2022년 들어 미국 내 가파른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달러화 강세 여파로 가격이 조정됐다”며 “온스당 1600달러까지 하락했던 금 가격은 9월 이후부터는 하방 경직성이 형성되었는데, 추가적인 달러 강세와 실질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1600달러 선에서 하락이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제2의 금으로 불리던 가상화폐의 위상 하락도 금 가격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한국에서 발생한 루나 사태에 이어 기업가치가 40조원 이상으로 평가받던,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12월 11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하면서 가상화폐에 몰렸던 투자금 역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2023년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히 큰 만큼 금 가격은 당분간 상승세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가상화폐에 대한 신뢰가 과거만 못한 상황인 만큼 금 투자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온스당 200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온스당 200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12월 골드만삭스는 금이 비트코인과 달리 유용한 포트폴리오 수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그동안 향후 안전하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가격이 상승했는데, 변동성이 큰 만큼 투기적 성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탈중앙화를 위해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선호했지만 FTX 파산과 같은 이슈가 비트코인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골드만삭스는 “긴축적인 금융 시장은 금값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금은 안전자산으로서 실수요와 연관돼 있다”고 봤다. 스위스 글로벌 투자은행 UBS도 금 가격이 2023년 말까지 13%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금 가격이 오르면서 금과 관련된 펀드 수익률은 최근 한 달 7%를 기록하며 테마 펀드 부문에서 금융펀드(국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연초 이후 수익률 -5.4%, 6개월 수익률 -6.0%로 저조한 기록을 이어 가던 금 펀드는 3개월 전부터 수익률이 조금씩 오르더니 최근 한 달 주요 펀드들을 제치며 수익률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펀드 중 설정액이 211억원으로 가장 많은 ‘IBK골드마이닝증권자투자신탁’은 3개월 수익률 22%로 하락장 속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신한골드증권투자신탁과 하이월드골드증권자투자신탁 펀드 역시 3개월 수익률이 각각 10~15%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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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이 금에 투자하는 방법

    개인이 금에 투자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실물인 ‘골드바’를 사거나 은행에서 금 통장(골드뱅킹)을 발급받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 골드뱅킹에 돈을 넣으면 금 시세와 환율에 따라 예금액이 적립된다. 현금 외에 현물로도 찾을 수 있다.

    금을 주요 자산으로 하는 펀드 투자도 가능하다. 2021년 12월에는 국내 최초로 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인 ‘ACE KRX금현물’이 거래소에 상장된 만큼 개인투자자들도 손쉽게 금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한국거래소에서 금 거래도 할 수 있다. 증권사에서 금 실물 계좌를 개설한 뒤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순도 99.99%의 금 1g 가격은 지난 3월 8일 7만8360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빠르게 하락해 7월 7만1330원까지 하락했다. 이후 조금씩 회복하며 12월 들어 7만4000~7만5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다만 금이 달러와 관련이 있는 만큼 향후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2월 14일(현지시각), 연준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이는 그동안의 0.75%포인트보다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금리는 오르고 있다. 시장은 금리 인상이 종착점에 다다랐다는 기대를 했지만 연준은 2023년 상반기까지 금리 인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023년까지 금리가 오르면 4.25~ 4.50%인 연방기준금리는 5.1%까지 오를 수 있다. 만약 2023년까지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경우 달러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부동산, 증시 등 다른 시장으로 충격이 확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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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디지털ETF마케팅본부장은 “연초 이후 국제 금 가격은 달러화 초강세로 인해 약세 흐름을 보였지만 지난 11월 이후 달러화 강세가 주춤한 모습을 보이면서 달러화와 역의 상관관계에 있는 국제 금 가격은 상승 반전을 모색하는 모습”이라며 “또한 최근 가격 이점이 부각되면서 각국 주요국의 금에 대한 매수 수요도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 관련 투자는 투자 자산별로 보면 원자재 투자이고, 원자재 투자는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많다는 측면에서 주식, 채권에 비해 훨씬 난이도가 높은 투자”라며 “그럴수록 금의 가격을 예측해서 상승 예상 시 매수, 하락 예상 시 매도 등의 방법은 지양하고 본인의 총자산에서 10% 이내 범위에서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한다는 차원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원호섭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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