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감자’ 된 1기 신도시 尹정부 부동산 정책 시험대 올랐다

    입력 : 2022.10.14 11:05:10

  • 1기 신도시 재정비 정책이 윤석열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지난 8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8·16 대책)’을 통해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당시만 해도 구체적인 계획이 드러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 공급 청사진이 나왔지만 1기 신도시 재정비 정책에 대해서는 손에 잡히는 그림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중이다.

    정부의 첫 공급 대책 발표로 사실상 윤 대통령 임기 내 첫 삽을 뜨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분당과 일산, 평촌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연합 단체를 만들고 집단행동까지 불사하고 있다. 주민들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 여당이 1기 신도시를 ‘총선 인질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격앙된 시장 반응에 정부는 1기 신도시 재정비 정책과 관련한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즉시 확대 개편하고, 9월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겠다고 밝히는 등 진화에 나섰다.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전경. 올해 대통령 선거 전후로 상승세를 탔던 1기 신도시의 아파트값이 정부의 첫 주택 공급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하락 전환됐다. <사진 연합뉴스>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전경. 올해 대통령 선거 전후로 상승세를 탔던 1기 신도시의 아파트값이 정부의 첫 주택 공급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하락 전환됐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가 뒤늦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2024년으로 예정된 마스터플랜 수립 시점이 획기적으로 앞당겨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구 100만 명이 거주하는 신도시를 뜯어고치기 위해선 고려해야 할 사항이 워낙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주대책과 교통·전력 등 기반시설을 확충, 주민들 간 이해관계 조정 등 내부 요인부터 기존 신도시의 재정비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 경우 이 법을 적용할 지역을 1기 신도시만으로 한정할지, 주변 낙후지역에도 적용할지 등은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1기 신도시 재정비 논의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부터 본격화됐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올해 1월 1기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용적률을 500%까지 끌어올리는 등 과감한 규제 완화로 1기 신도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구상이었다. 특히 지난 대선에는 여야 후보 모두 1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과 규제 완화를 공약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재정비 계획에 속도가 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꽃길을 걸을 것만 같던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잡음이 났다. 지난 4월 25일 인수위는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을 중장기 사업으로 검토한다고 밝혔고 대선 공약 파기 논란이 처음 불거졌다. 당시 인수위는 “당선인의 1기 신도시 재정비 관련 공약 이행을 위한 준비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여야 공통 공약으로 제시됐고 국회에 관련 법안이 제출된 바 있어 이견이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까지 나서 “도시계획 재정비를 수립해서 신속히 진행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데 다행히 여야가 법안을 내놨다”며 “1기 신도시의 종합적인 도시 재정비 문제를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완전히 꺼지지 않은 논란의 불씨는 결국 정부의 첫 부동산 공급정책 발표 이후 재점화했다. 정부 공급 대책 발표에서 ‘2년 뒤’인 2024년 마스터플랜 수립을 하겠다는 계획이 담기면서다. 지난 8월 공급대책을 통해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는데, 여기에 1기 신도시 재정비 물량은 포함되지 않았다. 2027년까지 주택 건설 인허가를 받아 ‘첫 삽’을 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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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부랴부랴 관련 대책을 정비했다. 공급대책 발표 일주일 만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기 신도시 재정비 정책과 관련해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즉시 확대 개편하고 오는 9월에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1기 신도시 재정비 대선 공약 파기 논란이 불거지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부의 소통 부족을 질책하자 국토부가 진화에 나선 것이다.

    원 장관은 8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주 발표한 8·16대책은 주거 공급과 관련된 종합과제여서 신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가 적었다”며 “1기 신도시 주민들이 기대하고 궁금해하던 부분들에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원 장관은 이어 “1기 신도시 재정비 정책을 공약대로 신속히 추진하겠다”면서 “단 하루도 국토부로 인해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장관직을 걸고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에 운영 중이던 1기 신도시 재정비 TF를 즉각 확대·개편하겠다”면서 “5개 신도시별로 팀을 만들고 여기에 재정비 사업 권한을 다 갖고 있는 각 신도시의 시장들을 소통창구로 해서 지속적인 협의체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수억원 떨어진 실망 매물 등장 1기 신도시 공약 파기 논란 이후 분당과 일산 등에서는 실망 매물이 시장에 출회되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8·16대책 발표 이후 1개월간 분당과 일산에서는 70건의 매매 계약이 체결됐는데, 신고가 거래는 2건에 불과했다. 종전 신고가와 동일한 2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66건은 신고가보다 낮게 거래됐다.

    개별 거래 사례로는 분당구 서현동 시범단지가 대표적이다. ‘시범삼성’ 전용면적 59.9㎡는 올해 3월 13억4000만원(2층)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8월 20일 같은 층, 같은 전용 물건이 2억7000만원 떨어진 10억7000만원(2층)에 새 주인을 찾았다.

    시범우성 전용 64.8㎡도 지난 4월 12억1500만원(13층)에 신고가 거래됐지만 지난 8월 23일 신고가 대비 1억원 이상 떨어진 11억원(9층)에 거래됐다. 통합 재건축이 추진 중인 일산동구 마두동 강촌동아(전용 84.9㎡)도 3월만 해도 종전 신고가와 비슷한 7억9000만원(10층)에 거래됐지만 8월 31일에는 7억원(5층)에 계약됐다.

    1기 신도시 집값 하락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둘째 주(12일 기준) 성남 분당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11% 하락해 지난 7월 25일 이후 8주 연속 집값 하락세가 이어졌다. 일산이 포함된 고양시 아파트값도 전주보다 0.13% 하락했는데, 10주 연속 집값이 전주 대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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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기 신도시에 살고 있는 1주택 소유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 전문가는 사업성이 좋은 곳이라면 향후 재건축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보유해도 괜찮다는 반응이다. 시기가 조금 늦어진다고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 이상 장기 보유가 가능한 사람은 그냥 보유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보유 주택이 1기 신도시 내에서도 하급지에 있다면 이번 하락장을 이용해 1기 신도시 내 상급지나 서울 상급지로 갈아탈 것을 권유했다. 또한 서울 상급지로 갈아타기는 1기 신도시 상급지 주택 보유자에게도 유효한 전략이라는 조언이다. 예를 들어 분당 시범단지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송파구 급매물을 매수하는 등 전략을 말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용적률이 낮고, 중대형 평형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사업성이 좋기 때문에 계속 보유해도 무리가 없다”면서도 “소형 평수 소유자는 (이번 기회에) 평수를 늘려 갈아타기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또 “GTX 역과의 접근성과 서울 진입에 유리한 단지를 중심으로 갈아타기도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 역시 “서울 상급지로 갈아타는 경우가 아니라면 1주택자들은 그대로 보유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이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유하더라도 시장 하락기를 이용해 1기 신도시 내 상급지나 서울 상급지로 이동하는 전략도 좋다”고 밝혔다.

    1기 신도시 내 다주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금 부담이 크지 않을 경우 그대로 보유해도 좋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곳의 주택은 매각해서 몸집을 줄일 필요도 있다는 조언이 많았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1기 신도시 정비 사업의 경우 입주까지 10년 이상 소요될 수밖에 없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보유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정부 계획대로 2024년에 마스터플랜이 발표될 시기가 오면 1기 신도시 내에서도 상급지와 하급지가 나뉠 수 있다. 이때 다주택자들은 하급지 보유 주택을 매각할 필요도 있고 1주택자들도 갈아타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8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정책을 공약대로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8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정책을 공약대로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이주대책·용적률 ‘산 넘어 산’ 논란 이후 정부 계획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국토부는 9월에도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과 관련해 내년 2월까지 특별법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기반으로 국토교통부는 5개 1기 신도시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정비 가이드라인을, 각 지방자치단체는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토지이용관리계획, 기반시설 설치계획, 용적·건폐율 등 밀도계획, 이주대책 등 세부적인 사업 내용은 지자체가 수립하는 정비기본계획에 담길 예정이다. 당시 이원재 국토부 제1차관은 브리핑을 통해 “특별법에는 재정비 관련 제도에 관한 부분이, 마스터플랜에는 제도뿐 아니라 신도시별 구체적인 계획 등이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장관은 간담회 모두발언을 통해 1기 신도시 정비사업과 관련해서 ▲신속한 진행 ▲적극적인 규제 완화 ▲주거혁명 병행 등 세 가지 정책 기조를 밝혔다. 그는 “모든 절차를 국토부와 지자체 간 협력하에 최대한 앞당길 수 있도록 진행하겠다”며 “기준이 만들어지면 선도사업을 미리 출발시키겠다”고 설명했다.

    원 장관은 “사업이 지연되거나 방기되지 않을까 염려가 큰 것으로 안다”며 “미리 세심하게 계획을 전달하지 못해 심려를 끼쳐드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기존 제도와 장벽에 얽매이지 않고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어 많은 가능성을 열겠다”고 밝혔다.

    다만 1기 신도시 규모가 워낙 큰 만큼 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 장관은 “1기 신도시 30만 호는 강남 3구의 아파트와 똑같은 숫자”라며 “이주대책 문제 등을 세심히 고려하지 않으면 전세 폭등이 일어나고 계획 전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처럼 원 장관과 국토부가 재정비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1기 신도시 주민들 달래기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선 기간에도 나왔던 지적처럼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1기 신도시 재건축을 허용한다면 그보다 더 낡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다른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형평성 시비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1기 신도시 재정비 건은 주택 공급을 위해서라기보다 1기 신도시 거주 인구의 표를 끌어오기 위한 선거용 정책 느낌이 강하다”라며 “주택 공급 정책이 지나치게 정권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좌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유준호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5호 (202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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