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대차법 시행 2년… ‘월세 대란’ 스멀스멀

    입력 : 2022.08.04 10:18:49

  • “8월에 전세대란이 있었나, 없었나.”

    그동안 임대차2법 시행 2년 차를 맞아 8월 ‘전세대란’이 올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전망이 시들해지고 있다. 줄어들 것이라던 전세매물이 오히려 늘고 전세금 추이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입자 부담이 없어진 건 아니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쏠림현상이 급격히 가속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주택임대 시장 불안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세대란은 없었지만 월세대란이 왔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3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 기준 서울 전세매물은 2만8804건으로 1년 전(2만249건)에 비해 42.2%가 늘었다. 임대차2법 시행 2년 차인 8월을 기점으로 전세매물의 씨가 마르며 전세금이 가파르게 치솟을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시장은 전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줄어들 것이라던 전세매물이 늘고 전세금도 예상만큼 폭등하지 않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지난 6월 29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지난 6월 29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KB부동산 월간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6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전망지수는 93.4를 기록했다. 이 역시 전월(100.7) 대비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수는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지역 전세금이 오를지 내릴지 설문해 0~200범위 지수로 나타낸 것이다. 지수가 100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전세금이 떨어질 것으로 본 업소가 오를 것으로 본 곳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6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8월 폭발적인 전세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현재는 금리도 오르고 새 정부 임대차 정책들이 계속 발표되는 중이라 폭발적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설명했다.

    당초 시장에서 예상하던 8월 전세금 폭등 시나리오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임대차2법이 시행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번 쓴 매물들이 2년의 계약기간을 끝내고 시장에 처음 나오는 시기가 올해 8월이다. 그전에 올리지 못한 전세금을 한꺼번에 반영해 8월 전세금이 큰 폭으로 오른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난 현 시점에 상황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장 먼저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역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미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 상단은 12년 만에 6%를 넘어선 상황이다. 7월 16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주택금융공사보증·2년 만기)는 연 4.010~6.208% 수준이다. 6월 24일(3.950~5.771%)과 비교하면 20일 사이에 하단이 0.420%포인트, 상단이 0.437%포인트나 올랐다. 작년 말(3.390~4.799%)과 비교하면 하단이 1.5%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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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가 전세금 인상 제한 문제는 상단이 연 6%를 뚫은 7월 중순 기준 전세자금대출 금리에는 한은의 빅스텝은 반영되지도 않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미국 연준이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어 한은의 ‘빅스텝’에도 불구하고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조만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움직임을 볼 때 한국의 시장금리는 당분간 더 오를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만간 전세자금대출 금리 상단이 연 7%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같이 금리가 오른 현상은 전세금 상승을 막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현철 아파트사이클연구소장은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금을 올려 받고 싶지만 세입자가 대출 부담에 목돈을 마련하지 못해 차라리 ‘집을 빼 이사가겠다’고 말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 전세금 인상 제한 요인으로 작용하며 시장에 연쇄파급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생각보다 금리 상승 폭이 가파르면서 세입자가 전세금을 더 올릴 여력이 없는 상황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서울에서 전세를 연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경기도로 빠지고, 경기도에서도 역세권에서 비역세권으로 전셋집을 옮기는 등 ‘전세 갈아타기’ 현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임대차법 시행으로 시중 전세금은 한 차례 비정상적인 폭등을 한 상황이다. 한 차례 오른 전세금은 시장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으며 2년 전 대비 새로 계약하는 전세금 눈높이를 한껏 높여놓았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기존에 전세금이 5억원이었던 아파트가 새롭게 8억원에 거래가 체결된 경우라면 8억원을 기준으로 전세금 협상이 진행된다”며 “집주인 입장에서 과거 시세인 5억원으로 전세금을 내놓는 집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전세금을 싸게 계약한다고 해도 세입자들은 7억원 안팎에서 흥정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통계로 봐서는 기존 고점인 8억원 대비 1억원가량 싼 7억원을 기준으로 협상을 할 수 있어 전세금이 내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개별 세입자 입장에서는 기존 5억원 대비 2억원이나 오른 기준점으로 협상을 하는 게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가뜩이나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대출도 안 되는 마당에 2억원을 억지로 올려 재계약하느니 차라리 평수를 줄이거나 동네를 바꿔 더 싼 전세를 알아보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시세가 8억원인데 전세금을 더 올려 받지 못하고 싸게 7억원에 내놓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세입자와 집주인 간 전세금 인상을 둘러싼 견해 차이가 커서 계약을 맺는 데도 많은 논쟁이 오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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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임대차2법 시행이 2년 차 되는 시기가 올해 8월이긴 하지만 모든 계약이 8월에 몰려서 체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다. 사정이 이런데도 8월을 콕 집어 임대차법 시행 2년의 부작용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것이라 예상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오는 8월 이후 개별 가구마다 전월세 재계약 시점은 각기 다르다”며 “8월은 임대차법 시행 2년이 도래하는 첫 달일 뿐 모든 계약이 올해 8월을 기점으로 갱신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계약 시기별로 1월부터 12월까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시기가 각기 달라 청구권 사용시점부터 2년 뒤 재계약시점이 돌아오는 시기도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 중 하나로 ‘착한 임대인’ 제도를 내놓은 것도 전세금 안정에 도움을 줬다. 이 제도는 전세 보증금 상승 폭을 5% 이내로 설정한 ‘착한 임대인’에게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우지 않아도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주고 버팀목 전세 대출 한도 및 월세 세액공제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제도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번 쓰고 그 다음 계약을 준비 중인 집주인과 세입자가 한 차례 더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맺게 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 분양받은 집을 곧바로 전세를 준 집주인 A씨와 세입자 B씨를 가정해보자. 집주인 A씨는 집을 전세 주던 가운데 임대차법이 시행돼 한 차례 전세계약을 낮은 전세금에 갱신해준 상황이었다. 4년의 전세계약이 끝난 시점에 전세금을 가파르게 올려 받을 생각이었지만 착한 임대인 제도 덕분에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 2년간 한 차례 더 싸게 전세계약을 갱신해주면 굳이 실거주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면서 양도소득세 비과세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 B씨는 “정부가 ‘착한 임대인’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집주인이 ‘원한다면 좀 더 싸게 전세를 살아도 좋다’는 연락을 해왔다”며 “4년의 전세계약이 끝난 이후 무리 없이 2년은 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세 시장이 안정되고 있지만 월세 시장은 튀어오르고 있어 서민 주거 불안은 여전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세입자 입장에서 오른 전세자금대출로 돈을 빌리는 것보다 차라리 월세를 올리는 게 더 합리적인 상황이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외벽에 붙은 대출 금리 관련 안내문. <사진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외벽에 붙은 대출 금리 관련 안내문. <사진 연합뉴스>
    ▶집주인들 월세나 반전세 선호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서울 지역 전월세전환율은 4.8% 수준이다. 이는 전세금 6억원 전세를 통째로 월세로 전환할 경우 6억원의 4.8%(2880만원)를 12개월로 나눈 240만원을 월세로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월세전환율이 전세자금대출 금리보다 높다면 세입자 입장에서 월세를 내는 것보다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올리는 게 더 유리하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전세 시장이 잠잠한 것은 전세금을 올려줄 여력이 없는 세입자들이 월세와 반전세로 도망갔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며 “집주인 역시 재산세 등에 필요한 현금을 마련할 요량으로 월세나 반전세를 선호하고 있어 월세 계약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전월세 거래(40만4036건) 중에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9.5%(24만321건)를 차지해 정부가 통계를 집계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월세가 전세 비중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 비중은 한 달 만에 9.1%포인트 치솟으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1~5월 누적 거래 기준으로도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1.9%에 달해 절반이 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41.9%) 대비 10%포인트나 치솟았다. 눈에 보이는 전세대란은 없었지만 세입자 입장에서 더 불리한 월세로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세입자 주거의 질은 더 악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고 대표는 “최근 전세 시장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며 “전세보증금을 싸게 묶어놓고 이자 대신 매달 내는 월세가 늘어난다면 세입자 입장에서 부담이 훨씬 늘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국민 주거비 부담을 덜기 위해 월세 세액공제 대상 및 한도 확대를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의힘은 총 급여액이 7000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월세 세액공제 한도치를 800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고, 한도 총액도 현행 750만원에서 800만원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세액공제율도 현재 10~12%에서 12~15%로 높이는 내용도 추진하기로 했다. 한 전문가는 “8월에 온다던 전세대란이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월세대란’으로 이름을 바꾸고 온 것일 수도 있다”며 “앞으로 구조적으로 월세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 정부 차원에서 변화된 환경을 인지하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3호 (2022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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