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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임대인’ 혜택 확대, 전·월세 가격 안정 물꼬 트나
입력 : 2022.07.01 16: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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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2년 계약갱신청구권과 5%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임대차법이 오는 7월 31일 시행 2년을 맞으면서 전세가격이 급등하고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된다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제도 보완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6월 2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윤석열 정부 첫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전세가격을 5% 이내로만 올린 ‘상생임대인’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이미 사용한 임차인의 버팀목 대출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다. 상생임대인은 직전 계약 대비 임대료를 5% 이내로 인상한 신규·갱신 계약 체결 임대인이다. 상생임대인 혜택 확대는 임대인들이 임대료 인상을 자발적으로 최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 제도에서는 상생임대인이 2년 이상 임대한 주택에 대해 조정대상지역 1세대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2년 거주요건 중 1년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는 2024년 말까지는 2년 거주 요건을 아예 면제해주기로 했다. 같은 기간 동안 1세대 1주택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을 위한 거주요건도 면제된다.
다주택자도 상생임대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까지는 임대 개시 시점에 기준 시가 9억원 이하 1세대 1주택자만 상생임대인에 해당됐다. 임대 개시 시점에 다주택자라고 해도, 임대료 인상 폭을 5% 이내로 묶은 뒤 훗날 다른 주택을 모두 팔고 임대를 준 주택만 보유한 1세대 1주택 자격이 되면 거주요건 없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7월 중 개정해 상생임대인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21년 12월 20일 이후 임대분부터 관련 혜택을 준다는 방침이다.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전경.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다주택자가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보유하고 있던 주택 중 마지막 주택을 팔 때이다. A, B, C라는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가 세 주택 모두 임대료를 5% 이내로 올려 계약하는 등 상생임대 조건에 맞춰 임대를 준 뒤 주택을 판다고 할 경우 마지막 주택에 대해서만 양도세 면제가 이뤄진다.
상생임대인 혜택은 주택의 가격과는 무관하다. 현 제도에서는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만 상생임대인 혜택이 주어지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서울 강남구, 서초구 등의 고가 주택을 임대해준 주택 보유자도 상생임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임차인이 바뀌어도 신규 전세 계약을 기존 임대료에서 5% 이내 상승한 금액에 전세 계약을 체결하면 상생임대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두 계약의 임대인은 동일해야 한다.
향후 1년간 계약갱신이 만료되는 임차인에 대해서는 8월부터 버팀목 전세대출의 보증금과 대출한도가 확대된다. 수도권은 보증금이 3억원에서 4억5000만원으로 늘어난다. 대출한도도 1억2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으로 확대된다. 지방 역시 보증금은 2억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대출한도는 80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늘어난다.
흔히 ‘임대차 3법’이라고 불리는 임대차법은 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2020년 7월 29일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고, 같은 달 국무회의에서 개정안과 공포안이 심의 의결됐다. 이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는 의결 즉시 시행됐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오는 8월 임대차 3법으로 인한 후폭풍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임대차법 도입 이후 한 차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더 이상 이 같은 권리를 사용할 수 없는 세입자가 대거 임대 시장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집주인들 역시 시세를 반영하지 못한 채 계약했던 만큼 임대료를 시세로 맞춰 대폭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KB부동산 월간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020년 7월 4억9922만원에서 지난 5월 6억7709만원으로 1억7787만원 올랐다.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전세 가격이 35% 급등했다. 앞선 2년인 2018년 8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전세 가격은 4억5583만원에서 4억9922만원으로 4339만원(0.10%) 올랐다. 임대차법 시행 전후 전세가격 상승률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세 시장의 변화 역시 임대차법 시행 이후 폭등한 전셋값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마포구의 한 부동산에 월세 매물이 올라와 있다. 전국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는 등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올해 8월부터 갱신 만료된 신규계약 물건이 순차적으로 풀리는데, 주변 시세에 맞추거나 갱신계약을 포함한 4년 치 상승분을 미리 반영한 가격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세입자는 대출금리 이자 부담에, 임대인은 보유세 부담에 월세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대차 시장이 요동치면서 8월 이후 전망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뒷받침하는 국내 부동산 시장 특성상 전세가격이 급등하면 매매가격 급등 역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반기 집값 상승론의 핵심은 전세 대란과 맞닿아있다. 계약갱신청구권 소진으로 전세금 인상에 부담이 커진 실수요자들이 매매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종부세 부과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에 집을 처분하지 못한 다주택자들이 서둘러 집을 처분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매물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가격 상승론에 힘을 실어준다.
전세가격 상승이 매매가격 상승으로 직결되는 만큼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임대차 시장 안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추 부총리는 한 방송에서 “임대차 3법과 같은 인위적인 규제, 시장의 질서와 위배되는 정책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전·월세를 사용하는 분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조만간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6·21 대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미흡한 측면에 대해 지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상생임대인 양도세 특례를 다주택자에게까지 확대해도 세제 혜택이 한정돼 실질적 혜택을 체감하는 것은 제한적”이라며 “다주택자를 임대인으로 변환시키려면 세제 혜택 유인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도 “전·월세 물량 공급 확대 효과를 보려면 상생임대인 양도세 특례 대상을 실질적 다주택자로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대차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임대차 3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대책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 문제다. 추 부총리 역시 임대차 3법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이 제도는 빨리 사라져야 좋은데 한순간에 돌리면 시장에 큰 혼란이 있을 수 있어 당장 폐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임대차법 폐기는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의석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점도 정부·여당의 구상대로 추진되기 어려운 요인이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임대차법에 대해 “법안의 기조를 후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며 개편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 위의장은 “(임대차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당시 금리가 매우 낮았고 부동산 가격 상승기라 집주인들이 신규 계약으로 전·월세를 많이 인상한 문제가 있었다. (지금은) 금리가 많이 인상돼 전·월세 가격은 상대적으로 많이 안정화되는 추세”라며 “신규 계약 과정에서 임대료 상승 문제 등이 있어 이를 최대한 억제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입법이 발의됐다”고 밝혔다.
[정석환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2호 (2022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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