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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키워드로 되짚어 본 루나 사태
입력 : 2022.06.29 1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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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크립토 윈터(가상자산 겨울)와 이번 약세장 간 차이는 디파이(탈중앙화금융) 활성화다.’
지난 5월 한 달은 루나가 최고의 이슈였다. 6월은 가상화폐 시장 전체가 화두였다. 특히 디파이의 몰락이 가장 큰 이슈다. 디파이는 보통 코인을 담보로 대출받는 상품이 주를 이룬다. 장기적으로 코인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생각하고 코인을 맡겨놓은 뒤 현금과 비슷한 스테이블코인을 빌려 또 다른 코인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나와 테라도 비슷했다. 파생증권을 기반으로 돈을 굴리는 사업들로 디파이는 외형을 크게 키워왔다. 코인 관련 파생상품인 디파이 시장은 2018년 12월 4억8000만원에 불과했지만 2021년 11월에는 312조4220억원으로 65만 배나 급증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 긴축 속에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지급준비금이 부족하다는 ‘뱅크런’ 우려에 휩싸이면서 관련 대출상품이 줄줄이 청산될 위기에 처했다. 루나 사태를 고정가격·화폐·뱅크런·가치 등 4가지 키워드로 돌아보면서 디파이와 루나, 그리고 코인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자.
스테이블코인은 표시한 코인의 가격이 거의 변동하지 않고 안정된 가상화폐를 뜻한다. 말 그대로 가치가 고정된(스테이블) 코인인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을 만드는 법은 다양하다. 가장 유명한 건 오래된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다. 테더는 1달러당 1테더가 발행되는 식이다. 테더 발행사인 ‘테더리미티드’는 테더 1개를 발행하고 이를 1달러와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가격을 유지한다. 테더가 등장한 배경은 단순하다. 예컨대 해외거래소에선 한국의 원화로 코인을 구매할 수 없다. 달러를 구해서 해외거래소를 이용하는 것도 외환법 등으로 어렵다. 한국 투자자들은 보통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한국에서 구매해 이를 해외거래소에 보내서 사용한다. 그런데 코인은 가치가 시시각각 변해서 전송 중에도 가격이 오르내린다. 이때 가치가 고정된 테더를 사면 모든 게 해결된다.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최근 폭락한 루나 코인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앞선 코인들과 달리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인 테라가 인기를 끌었던 건 수요를 만족하면서도 담보물을 묶어둘 필요가 없는 스테이블코인이었기 때문이다. 테더를 발행하면 그만큼의 달러가 묶인다. 다이도 마찬가지로 이더리움이 묶인다. 하지만 테라는 그렇지 않다. 아무런 기반 자산 없이 돈을 뽑아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았다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물론 누군가는 초기부터 루나의 안정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루나는 아무 문제없이 몇 번의 위기를 넘겼다. 그렇게 신뢰는 강해졌고, 시가총액은 불어났다.
▶2. 화폐 코인 업계에서 테라 프로젝트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성을 제기한 건, 지난해 가을이다. 루나를 만든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공동창업자(CEO·31)는 지난해 10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을 시작했다. 미국 금융 시장에서 ‘슈퍼갑’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자신에게 발부한 소환장이 적법하지 않다는 이유다. 테라는 지난해 미러 프로토콜을 출시했고 여기서 합성자산을 발행했다. 미러 이용자는 이 프로토콜에 테라 생태계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코인 테라UST 등을 담보로 맡기고 넷플릭스, 테슬라, 애플 등의 주가를 추종하는 합성자산 mNFLX, mTSLA, mAAPL 등에 투자하는 식이다.
문제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빅테크들의 주가를 추종하기 때문에 증권성이 인정되는데도 SEC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때부터 SEC와 테라의 충돌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흥미로운 지점은 미국 금융당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대한 흐름과 루나의 흥망성쇠가 함께한다는 지점이다. 지난해 7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 의장은 “CBDC를 발행하면 스테이블코인이 필요 없어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해 11월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행정부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문이 나왔다. 그 사이 지난해 10월 권도형 대표는 미 SEC를 고소했다. 올해의 흐름은 더욱 숨이 가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5월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스테이블코인의 급락 사태에 대해 언급하며 규제 필요성을 역설했다. <사진 연합뉴스>
루나의 정확한 하락 단초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본래 갖고 있던 구조적 취약성 속에 누군가 강력한 힘으로 균형을 깨뜨렸고, 그대로 죽음의 나선 속에 휩싸인 루나는 멸망했다. 미국의 달러 패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화폐로 탄생하려던 루나는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졌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스테이블코인 ‘USDC’의 부상이다. USDC가 주목받은 것은 테더 등 다른 스테이블코인보다 투명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USDC는 미국의 서클이라는 회사가 발행한다. 서클은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블랙록 등 유수의 미국 금융회사에서 투자를 받은 핀테크 기업이다. 게다가 USDC는 미국 규제 준수를 최우선으로 하는 코인이다. 불안에 떠는 투자자들이 USDC로 몰린 배경이다.
업계는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몰락하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규제 속에서 이른바 ‘말 잘 듣는’ 스테이블코인이 살아남는 흐름이 생겨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USDC와 강력하게 협력하고 있는 미국 거래소 FTX의 대표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할 당시 두 번째로 많이 기부한 개인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UST의 가격을 흡수하기 위해 루나의 발행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루나는 총 발행가치를 3억달러 정도로 유지하도록 합의됐다. 하지만 루나 가격이 0에 가깝게 떨어지면서 총 발행가치를 맞추기 위해 사실상 무제한 발행됐다. 지난 5월 모든 사람들은 루나는 애초에 문제였다고 말하면서 프로젝트 자체를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이 폭락한 지금, 루나의 문제는 오로지 루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6월 들어 50% 가까이 하락한 이더리움이 바로 그 예시다. 이더리움이 최근 큰 하락세를 보인 건 이더리움 기반 탈중앙화금융(디파이)에서 판매되는 파생상품이 청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은 최근 채굴코인에서 비채굴코인으로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업그레이드가 끝나면 이더리움을 보유한 사람들이 블록체인 검증에 참여하고 이들에게 추가로 이더리움을 보상으로 나눠주는 구조가 된다. 참여에는 최소 32이더리움(현재가 기준 약 6000만원)이 필요해 소규모 개인투자자는 참여가 쉽지 않다. 이에 착안해 리도(Lido) 같은 회사가 크라우드펀딩 개념의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개인들의 이더리움을 모아서 검증작업에 참여해주고 수익을 나눠주는 시스템이다. 이더리움의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완료될 때까지 맡긴 이더리움을 찾을 수 없다. 이에 리도는 이더리움을 맡겼다는 증표인 stETH를 발행해준다. 코인 담보 대출 서비스 업체 셀시우스는 최근 다른 고객이 맡긴 이더리움을 활용해 stETH를 맡기면 이를 담보로 70% 정도 이더리움을 대출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이더리움으로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리도에 이더리움을 맡겨 받은 stETH로 이더리움을 대출해 이를 또다시 리도에 맡길 수도 있다. 이자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셈이다.
코인 업계는 최근 가상자산 시장을 엄습하고 있는 파생상품발 줄청산 위험이 2008년 전통 금융 시장에서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나타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닮았다고 분석한다. 실물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금융이 아닌 담보물과 이자, 그리고 이자 보증서를 담보로 한 또 다른 이자를 활용해 투자자를 모아왔던 금융상품들이 상품의 근본이 되는 담보물 가치가 폭락하면서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4. 가치 루나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다시금 원론적인 질문에 도달했다. 도대체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실물이 없는 건 달러도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가치가 유지되고 루나는 그렇지 못한걸까. 정답은 없겠지만, 루나 사태 당시에 코인 업계에서 제기됐던 루나의 실패 요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풀어서 소개하겠다. 루나는 진짜 화폐를 모방했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 말이다. 진짜 화폐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우리 생활 전반에 화폐가 필요하다. 하지만 테라는 그렇지 않다.
루나재단이 테라의 쓰임을 늘리기 위해 내놓은 건 연이율 20%를 준다는 ‘앵커프로토콜’ 정도였다. 쓸모없는 돈을 맡겨두면 고리를 준다고 하니 모든 돈이 몰려갈 수밖에 없다. 테라라는 화폐의 유동성이 모두 묶인 배경이다. 유동성이 묶여 있으니 공매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수익을 올리기 위한 돈이 손해를 내기 시작한다면 가치는 0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결국 루나·테라가 속절없이 무너진 건 테라가 쓸모없었기 때문이다.
[최근도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2호 (2022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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