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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이후 재건축 황금기 오나 ‘새봄맞이’ 수도권 노후 아파트 꿈틀
입력 : 2022.04.05 10: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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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선’이라고도 불린 올해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향후 전망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이후 정부의 가계 대출 규제 움직임과 금리 인상 등이 맞물리면서 시장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걸었다. 여기에 대선 이후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섣부르게 움직이기보다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관망세가 시장을 지배했다. 대선 이후 향후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한 밑그림이 제시되면서 얼어붙었던 부동산 시장도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윤 당선인의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에 대한 기대감으로 수도권 재건축 시장이 들썩이고 있는 중이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과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구, 고양시 일산구 등에서는 재건축 활성화 기대감에 눈에 띄게 매수 문의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이 공약대로 대규모 공급을 이행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안정성을 찾아갈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2년 배제 공약이 실현되면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나와 시장 안정에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그렇다고 이를 서둘러 매수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단기 시장 방향성을 뚜렷하게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에 서울을 중심으로 한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16일 서울 노원구 일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대선 결과가 나온 뒤 일주일 새 매수 문의가 확 늘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노원구는 서울에서 노후 아파트가 가장 많은 곳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다. 한 중개업소 대표는 “대선 전에는 호가를 낮춰도 나가지 않던 매물이 대선 이후 실거래됐다”며 “선거 결과가 나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수에 관심을 두는 문의가 점점 늘고, 매도자가 매물을 거둬들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실제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3월 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4만9231건으로 대선 이후 일주일 만에 900건 줄었다. 용산구(-4.4%), 강북구(-3.8%), 광진구(-3.6%)를 포함해 서울 25개 자치구 중 23개 자치구에서 매물 감소가 나타났다. 1기 신도시로 노후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성남 분당(-2.4%)과 고양 일산(-2.0%) 역시 매물 감소가 도드라졌다.
윤 당선인은 수요가 많은 서울 등 도심에 양질의 주택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등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정밀안전진단 면제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노원구처럼 재건축 추진 초기단계인 지역에는 정밀안전진단 면제가 가장 큰 호재 요인이 된다”며 “규제 완화 요인이 본격적으로 집값에 반영되기 전에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예비 안전진단과 민간 용역 업체가 진행하는 1차 정밀안전진단,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국토안전연구원이 진행하는 2차 정밀안전진단으로 단계가 나뉜다. 2차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업무를 맡기 때문에 정부 정책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가 구조안정성의 가중치를 기존 20%에서 50%로 올리면서 이후 2차 정밀안전진단을 받은 서울 11개 단지 중 7곳이 안전진단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차 안전진단까지 마친 노후 재건축 단지들이 2차 정밀안전진단 신청을 주저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노원구에서는 최근 3개월 동안 5개 단지가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했다. 하계 미성(685가구)과 중계 무지개(2433가구), 중계 주공4단지(690가구), 중계 건영2차(742가구), 태릉 우성(432가구) 등이다. 또 영등포구 신길 우성3차가 최근 구청에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는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소유주들에게 예비안전진단 동의서를 받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하안주공 5·7·12단지가 광명시에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하며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새 정부가 재건축 규제 완화를 시도한다면 가장 먼저 꺼내들 수 있는 카드라는 평가가 나온다. 안전진단 평가 항목은 국토교통부 고시에 규정돼 있고, 별도의 입법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조안전성 가중치는 정권에 따라 변화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50%이던 것이 이명박 정부에선 40%, 박근혜 정부에선 20%까지 낮아졌고,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50%까지 높아졌다.
윤 당선인은 재건축 추진의 걸림돌로 지적돼 온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도 완화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재건축 사업의 사업성을 좌우하는 용적률의 경우 법정 상한을 현재 300%에서 500%까지 높여주고, 이를 통해 늘어난 물량은 청년·신혼부부에게 반값 주택으로 분양한다는 구상도 공개했다.
재건축 사업을 옥죈 규제가 일시에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자 압구정, 대치, 청담, 잠실, 여의도, 목동 등 서울 주요 재건축 지역 또한 들썩일 조짐을 보인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차 전용면적 196.21㎡는 지난 1월 18일 80억원(9층)에 거래돼 직전 최고가인 지난해 3월 64억원(11층) 기록을 갈아치웠다. 작년 말부터 고강도 대출 규제와 기준금리 인상 압박으로 매매량이 급감한 가운데서도 이 단지는 재건축 추진 기대감 등으로 가격 하방 압력보다 상승 압력이 더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역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목동 또한 새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에 기대가 큰 모습이다. 목동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준공 30년 이상 된 아파트 단지의 안전진단 면제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에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라며 “그동안 안전진단 규제로 멈춰있던 목동 재건축 시장이 활력을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 주요 재건축 추진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다. 당장 실입주해 2년 이상 거주할 사람만 주택을 매수할 수 있다. 고가 전세 등 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등이 원천 금지된다는 얘기다.
안전진단의 경우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 정밀안전진단 면제와 구조안정성 가중치 하향이 꼽힌다. 구조안전성은 국토교통부 자체 기준으로 정부의 의지만으로 추진할 수 있지만 안전진단 면제는 법 개정 사항이다. 다만 정밀안전진단이 현행대로 진행되더라도, 구조안전 비중이 축소될 경우 안전진단 통과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 완화 역시 사안별로 온도차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당장 가능한 것은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의 비율로 올해 기준으로 재산세는 60%, 종합부동산세는 100%다. 이를 각각 20%포인트씩 낮추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세율은 법 개정 사항이고, 공동주택 공시가격 역시 3월 22일 발표됐기 때문에 수정이 어렵다. 강남 재건축 단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역시 법 개정사항이다.
라진성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규제 완화 공약은 대출 규제 완화, 세금 규제 완화,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로 꼽힌다”며 “다만 총 300석의 국회 의석수 중 더불어민주당이 172석을 확보(국민의힘 110석)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를 거쳐야 하는 법률 개정이 아닌 정부의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한 규제부터 완화해나갈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한 대표적인 규제 완화책은 LTV 상향, 양도세 중과 2년 배제,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이며, 주요 세금 규제는 법 개정사항이 대부분으로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며 “여전히 남아있는 총부채원리금비율상환비율(DSR) 규제와 취득세·종부세가 부담으로 작용하겠지만, 양도세 중과 2년 배제와 LTV 상향 등에 힘입어 기존에 억눌려 있던 매물이 거래되는 역할은 분명히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공급 측면에서 민간 위주의 재건축·재개발,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 촉진 대책,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기준 조정 등의 윤 당선인 공약은 중장기적으로 가격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조금 오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굉장히 안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원 리치고(데이터노우즈) 대표는 “잠깐 반등은 나올 수 있지만 큰 방향성은 하락 쪽으로 기울 것”이라며 “다주택자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 유예를 차치해도 대세하락기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찾으며 집값이 다소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기원 대표는 “적게 떨어지는 지역은 5%, 많이 하락하는 곳은 15%, 평균적으로 10%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락 폭이 10% 이상일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김경민 교수는 “기준금리가 1.5%까지 오르면 서울 기준 작년 고점(2021년 6월) 대비 10~17%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정도 떨어져도 2019년도 수준의 가격”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려운데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건 기준금리 0%의 효과 때문이었다. 이게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이 실제 이행되면 부동산 시장이 다시금 상승 궤도를 탈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윤 당선인의 공약에는 하락보다는 상승 요인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재건축·재개발이 활성화돼 집값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 원장은 “용적률 완화, 정밀안전진단 기준 조정, 분양가상한제 완화 등은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을 급등시킬 요인”이라며 “소유자들은 팔려고 하지 않겠으나 한두 개의 소수 거래만으로도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건축이 활성화되면 입주자의 60~70%에 해당하는 세입자들로 인해 전세대란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전세가격이 오르며 매매가격을 또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원장은 그러면서 올해 역시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 원장은 “집값이 내려가긴 어렵다. 서울만 놓고 보면 올 한 해 3~5% 정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부동산 시장이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섣부른 추격 매수는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세하락기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한 김기원 대표는 내 집 장만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양도세 중과가 유예되면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많이 나올 것”이라며 “그러나 대세하락기의 초입에 들어선 현 상황에서 이를 덥석 사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김 대표는 “평택과 이천 등 서울과 사이클을 전혀 달리하는 수도권 외곽지역들은 여전히 저평가돼있어 꾸준히 오를 것”이라며 “이런 지역들의 급매물을 노려보는 게 좋은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부동산 시장 상승을 점친 고 원장 역시 “무주택자는 무리하지 말고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나 도심 역세권 복합개발 공약을 통해 나오는 청년·신혼부부 공급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주택자들에 대해선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준다고는 하나 이는 국회 입법 사항”이라며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에서 세제 완화는 예상보다 오래 걸릴 수 있으니 다주택자들은 가급적 다운사이징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유준호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9호 (2022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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