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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한파에도 봄볕 든 제주 부동산
입력 : 2022.03.11 14: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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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금리 인상 우려, 전세 가격 하락, 거래량 급감 및 매수자 관망세 지속 등 다양한 집값 하방 압력으로 전국 집값에 비상등이 켜졌다. 호가를 유지하던 서울 강남권 인기 단지도 신고가 대비 낮은 금액으로 거래되며 아파트값 하락세가 진행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도 ‘어디가 이번에 또 떨어졌다더라’ 하는 걱정스런 대화가 주로 오간다. 집값의 ‘대세 하락’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가 우세하지만 예년 같은 상승장은 이제 끝났다는 관측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몇 안 된다.
“그럼 집값이 다 떨어지고 있는 것이냐.”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다. 제주가 대표적이다. 제주의 반전은 드라마틱하다. 2016년 이후 줄곧 연간 기준 마이너스 흐름을 보였던 제주는 지난해 아파트값이 24% 뛰며 반전의 서막을 알렸다. 시장이 숨죽인 올해 연초에도 되레 집값 상승폭을 키워가며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집값 턴어라운드’를 기점으로 올해 1군 건설사들도 제주에 대단지 아파트 분양을 준비 중이다. 제주는 전국적인 시장 한파에 따뜻한 봄볕이 유지되는 희소 지역이다.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 20.18% 대비 4%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특히 제주는 2017년(-0.23%)부터 2018년(-0.65%), 2019년(-2.12%), 2020년(-0.6%)까지 아파트값이 줄곧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다 5년 만에 반등했다.
단기간 수억원이 오르며 신고가를 경신하는 단지도 등장했다. 재건축 호재가 있는 제주시 이동의 ‘이동주공2차’ 전용 46.74㎡는 지난해 10월 8억원에 팔렸다. 이 주택형은 같은 해 3월 5억9000만원에 거래됐으며 7개월 만에 2억원 넘게 오르면서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다. 제주시 노형동 ‘노형2차아이파크’ 전용 115.16㎡ 또한 2020년 11월 10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처음으로 10억원을 넘긴 데 이어 지난해 10월 최고가 14억원에 거래됐다.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강정유승한내들퍼스트오션’ 전용 84.99㎡ 역시 지난해 11월 6억45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제주 집값이 상승하는 분위기에 신규분양 단지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 10월 서귀포시 중문동 일대에서 분양한 ‘포레나 제주중문’은 1순위 청약에서 169가구 모집에 731명이 접수해 평균 4.33 대 1, 최고 23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전 주택형이 마감됐다. 지난해 4월 제주시 연동에서 공급된 ‘e편한세상 연동 센트럴파크’ 역시 1순위 청약에서 204가구 모집에 2802명이 몰리며 13.7 대 1, 최고 4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수도권과 지방 광역시를 중심으로 집값에 대한 고점 우려가 불거진 연초 이후에도 제주 지역은 선방하고 있다. KB부동산이 발표하는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간 제주도 아파트값은 0.52% 상승해 전국 평균 아파트값 상승률 0.32%를 웃돌았다.
2월 7일을 기준으로도 제주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 대비 0.27% 올랐다. 전국의 집값 상승률 0.04%의 6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지난해 집값 상승세가 가팔랐던 지역과 비교해보면 제주도의 차별점이 도드라진다. 지난해 전국 시·도 중 집값 상승률(KB시세 기준)이 가장 높았던 인천(32.9%)과 2위 경기(29.3%)는 연초 이후 집값 상승세가 진정됐다. 경기는 2월 7일 기준 전주 대비 집값 상승률이 0.01%에 머물렀고, 인천 역시 0.08%로 줄었다. 반면 제주도 아파트값은 1월 셋째 주 0.06%, 1월 넷째 주 0.13%에 2월 첫째 주 0.27%까지 3주 연속 집값 상승세가 확대됐다.
실제 지난 1월 서귀포시 동홍동 삼아아파트 전용 84㎡ 경매에는 무려 25명의 응찰자가 몰렸다. 감정가 2억3100만원이었던 이 물건은 2억2850만원을 써낸 최고가 응찰자가 낙찰을 받았다. 매매 시장에서 같은 단지 동일 전용 물건은 지난 1월 2억5500만원에 거래됐고, 지난해 11월에는 2억8000만원에 실거래됐다. 낙찰자는 경매를 통해 시세 대비 수천만원 이상 낮은 가격에 물건을 취득한 것으로 평가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제주 지역 집값 상승 원인으로 비규제지역 이점과 관광 수요 회복, 상대적 저평가 등을 꼽았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지방의 집값 상승은 결국 외지인이 이끄는 것”이라며 “각종 규제와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다른 지역 수요가 줄어든 데 반해 제주가 비규제지역 이점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전국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관광과 교육, 세컨드 주택 등에 대한 수요가 남아 있어 제주 지역의 집값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값이 급등한 제주시 노형2차 아이파크 단지 전경
제주도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증가한 데에는 외지인 거래량이 크게 늘어난 점이 주효했다. 지난해 4465건의 전체 거래량 중 1052건, 약 23.56%가 외지인 거래분으로 나타났다. 앞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제주 외지인 거래량은 15~17%에 머물렀으나, 외지인 유입이 많아지면서 전체 거래량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자본을 바탕으로 호황기를 맞았던 제주 부동산 시장은 2016년 7월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중국인 관광객과 투자 수요가 줄며 거래량이 감소하고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는 등 2017년부터 침체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12월 부동산 규제지역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비규제지역으로 남아 있는 제주도에 광역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최대 70%까지 적용받을 수 있고, 청약 자격, 전매제한 등 각종 규제 문턱도 낮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부동산투자이민제도를 통해 중국인 투자자가 몰렸던 제주도는 사드 배치 논란으로 그 수요가 대거 빠지면서 한층 잠잠해졌다”며 “그러나 전국 곳곳이 규제지역으로 지정되자 비규제지역인 제주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물론, 제주 국제학교 수요까지 늘어나면서 시장 분위기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해외 유학 대신 제주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수요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 따르면 2021~2022학년도 제주 국제학교의 학생 충원율은 88.9%, 입학 경쟁률은 2.6 대 1로 충원율과 경쟁률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주에서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제주 영어교육도시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은 지역이다.
영국 명문 사립학교 ‘노스 런던컬리지 에잇스쿨(NLCS Jeju)’과 국내 첫 미국 기숙 사립학교인 ‘한국국제학교(KIS Jeju)’, 캐나다 명문 사립학교 브랭섬홀의 자매학교인 ‘브랭섬홀 아시아(BHA)’, 179년 역사의 미국 ‘세인트 존스베리 아카데미(SJA Jeju)’ 등 4개의 국제학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총 46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배우 김희애와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 전 대표 부부, ‘알파고(Alphago)’와 세기의 대결을 펼친 이세돌 9단 등 국내 유명 인사들이 자녀들의 교육 장소로 제주도를 선택했다.
제주도 국제학교는 졸업생 90% 이상이 세계 100대 대학에 진학하고, 학생들은 학업뿐 아니라 다이빙, 스노클링, 승마와 같은 특별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부모는 유학 대신 제주를 택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엘리트 교육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 제주도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제주도가 올해 예산에 제주 제2공항 관련 기본 및 설계예산을 반영하면서 제주신공항 개발사업도 본격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2공항 사업은 2025년까지 성산읍 일대 496만㎡ 부지에 길이 3200m, 폭 60m의 활주로 등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연간 25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일부 도민들이 제주2공항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의 지역 공약도 쏟아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제주 국가항만 인프라 확충 ▲상급종합병원 지정 및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 ▲워케이션(Worcation·업무+휴식) 성지 구축 ▲바이오헬스·우주데이터 산업 육성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 후보는 앞서 ‘해저터널(제주~서울 고속철도)’을 신설하는 공약도 발표했지만 제주도민들의 여론을 좀 더 수렴하겠다는 의견을 보이며 최종 공약에서는 제외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관광청을 신설해 제주도에 배치하겠다고 공약했다. 해양경제자유도시로의 발전에 발맞춰 해양레저관광을 특화하고, 천혜의 자연자원을 활용한 체험·체류 중심의 6차 산업을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초대형 크루즈선 접안 가능한 제주 신항만도 건설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이 외에도 ▲미래모빌리티 전후방 생태계 조성 등 제주형 미래산업 집중 육성 ▲쓰레기 처리 걱정 없는 섬 제주 구현 ▲상급종합병원 및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 ▲해녀문화의 전당, 제주 세계지질공원센터 설립 공약을 발표했다.
▶브랜드 아파트 분양 러시 올해 대형 건설사들도 제주도 부동산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각 사 브랜드 단지들을 앞세워 분양을 준비 중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제주도에서는 총 10개 단지, 2599가구가 분양된다.
특히 더샵, e편한세상, 포레나 등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단지들이 대거 분양을 앞두고 있어 수요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분양 포문은 포스코건설이 먼저 열었다. 2월 더샵 연동포레(40가구)와 더샵 노형포레(80가구)가 동시 분양돼 주택 수요자를 찾았다.
제주시 연동 1342번지 일원에 들어서는 이 단지들은 각종 인프라가 잘 갖춰진 제주도 도심 생활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풍부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쾌적한 주거여건을 갖춘다.
포스코건설이 시공하는 제주도 첫 더샵 브랜드 단지로 지복층 구조, 다락복층 구조 등 차별화된 평면설계가 적용될 예정이다.
3월에는 서귀포시 중문동 일대에 조성되는 ‘제주 중문 신일해피트리’가 분양할 예정이다. 또한 올해 상반기 제주시 조천읍에서는 대우조선해양건설이 134가구의 엘크루 단지를 공급할 예정이며 한화건설은 올여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503가구의 ‘한화 포레나 제주대정’을 분양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연내 신규 단지들이 분양을 앞두고 있다. DL이앤씨는 제주시 연동에서 e편한세상 2개 단지 총 201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며, 제일건설㈜은 제주시 건입동에 중부근린공원 민간특례사업으로 조성되는 제일풍경채 796가구를, 호반건설은 제주시 용담이동 일대에 213가구를 선보일 예정이다.
[유준호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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