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새 아파트도 미계약… 부동산 변곡점 맞았나

    입력 : 2021.12.03 15:24:55

  • 서울 아파트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미계약 물량이 나오고 있다. 청약통장을 써서 당첨이 되었는데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상승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다만 아직까지 미계약 물량은 입지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나 홀로 아파트에 국한되고 있어, 수도권 부동산 전반으로 파급효과가 나오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의 대출 규제가 촘촘해지고 매수심리도 식어가면서 조만간 수도권 부동산 시세가 한 번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우장산 한울에이치밸리움’ 아파트가 미계약이 나온 대표 아파트로 꼽힌다. 지난 9월 1순위 청약 37가구 모집에 2288명이 몰렸다. 서울 서부권을 대표하는 업무지구인 마곡지구가 지척이고 분양가도 7억원대로 최근 크게 오른 집값을 감안하면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사람 중 절반에 가까운 18명이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물론 18가구 미계약 물량을 놓고 벌인 무순위 청약에도 2035명이 몰리긴 했지만 대규모 미계약이 나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런데 미계약이 나온 아파트가 우장산 한울에이치밸리움 하나가 아니다. 8월 분양한 서울 관악구 ‘신림스카이아파트’는 43가구를 모집하는 1순위 청약에 994명이 몰려 흥행했지만 막상 계약을 진행하니 27가구나 계약서를 쓰길 거부했다. 지난 7월 분양한 종로구 ‘에비뉴청계2’, 동대문구 ‘브이티스타일’도 청약에 당첨된 사람들이 대거 계약을 포기한 전례가 있다.

    물론 대거 미계약이 나온 아파트들은 대다수 한두 동 규모 ‘나 홀로 아파트’라는 특성이 있다. 최근 신축아파트가 각광받는 이유는 대형 커뮤니티 시설 등 차별화된 시설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홀로 아파트는 규모상 이런 시설을 갖추기가 어려운 한계가 있다.

    또 가구 수가 적다보니 입주 이후 거래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어지고, 이에 따라 시세가 잘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형 아파트에 비해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계약 아파트가 나오는 것에 대해 ‘변곡점이 임박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왜냐면 지난 3월 분양한 광진구 ‘자양하늘채베르(165가구)’, 4월 분양한 관악구 ‘중앙하이츠포레(82가구)’도 미니 단지였지만 여기서는 미계약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조세로 접어들면서 ‘약한 고리’인 나 홀로부터 미계약이 나오는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받는 이유다.

    동대문구 ‘브이티스타일’ 아파트
    동대문구 ‘브이티스타일’ 아파트
    ▶실거래가지수 하락 등 시장 추세 변화 감지 실제 10월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가 18개월 만에 하락 전환하는 등 부동산 시장 추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11월 18일 한국부동산원이 내놓은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에 따르면 서울 10월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 잠정치는 -0.46으로 나타났다. 직전 달인 9월 기록한 1.52에서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서울 실거래가격지수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2020년 4월(-0.06) 이후 처음이다.

    5대 권역별로 볼 때 도심권(1.50)을 제외한 나머지 네 권역이 전부 하락 전환했다. 동남권(-1.41)과 서북권(-1.13)의 하락세가 강했고 동북권(-0.18)과 서남권(-0.06)도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실거래가지수는 실제로 신고된 거래만 계약일 기준으로 집계해 추출하는 구조다. 통상 거래가 이뤄진 후 한 달 안에 실거래 등록이 되기 때문에 11월 18일 부동산원이 내놓은 수치는 10월 거래 전부가 반영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잠정치만으로도 시장이 변화되는 조짐이 나오고 있다는 게 부동산원 설명이다.

    11월 10일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10월 하락 거래 비중이 31.8%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23.6%에 그쳤던 전달보다 8.2%포인트나 수치가 올라갔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의 분석 결과도 비슷하다. 10월 17일과 11월 17일 수치를 비교할 경우 서울 25개 모든 구에서 비수기인데도 매물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강남구는 10월 3481건에서 4008건으로 15.1%가 늘었고, 강북구는 692건에서 765건으로 10.5% 증가했다. 성북구(9.7%), 강서구(8.6%), 송파구(8.5%), 마포구(8.4%), 강동구(8.1%) 등도 매물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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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시세가 급등해 시종일관 공격받았던 정부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며 연일 통계 수치를 들이밀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월 17일 “설문조사 결과 중개사의 80%가 3개월 후 소재지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9월 이후 주택시장은 가격 상승세 둔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날 열린 33차 부동산시장점검회의를 통해서다.

    홍 부총리는 “매물은 늘어나고 매수심리는 둔화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인식에도 본격 반영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부총리가 인용한 데이터는 국토연구원이 전국 2338명(서울 434명)의 중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3개월 후 소재지 주택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비중이 약 80%였고 하락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9월에 비해 10월에 약 4배 이상 증가(4.6→20.5%)했다.

    KB국민은행부동산리브온에 따르면 11월 둘째 주(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68.6으로 전주(74.0) 대비 하락했다. 지난해 5월 둘째 주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왔다. 매수우위지수는 기준점이 100인데 수치가 이보다 밑이라는 것은 매수자의 관심이 줄고 매도자 비율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 매도우위지수는 6주 연속 매도자 우위의 상황을 기록 중이다.

    특히 서울 강북권(14개구)은 매수우위지수가 61.4로 나와 지난 2019년 6월 둘째 주(10일 기준) 59.7 이후 2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찍었다.

    이같은 배경에는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일정이 속속 나오는 것도 한몫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2월 1일부터 과천 주암, 하남 교산 등 3기 신도시를 포함한 수도권 공공택지 3차 사전청약이 본격 시작된다. 과천 주암(1535가구), 하남 교산(1056가구), 시흥 하중(751가구), 양주 회천(825가구) 등 총 4167가구 규모다. 특히 과천 주암, 하남 교산은 수도권 예비청약자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던 알짜 입지로 평가된다.

    전체 물량 중 1955가구(47%)가 일반분양인데, 과천 주암의 경우 전용 84㎡(114가구)만 일반분양이다. 나머지는 전용 46~55㎡ 규모의 신혼희망타운 물량이다. 시흥 하중도 전체 물량이 신혼희망타운 물량이다. 하남 교산, 양주 회천은 전용 55~59㎡ 규모의 소형 평수만 이번에 물량이 나온다.

    하남 교산 59㎡ 분양가는 4억8695만원, 과천 주암 전용 84㎡는 8억8460만원으로 분양가가 책정됐다.

    나머지 신혼희망타운 분양가는 4억9000만~5억9000만원 선이다. 그런데 신혼희망타운의 분양가가 3억7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신혼희망타운 전용 주택담보 장기대출상품(수익공유형 모기지)’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 추후 집을 팔 때 차익의 절반을 정부와 공유해야 하는 구조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3차 사전청약 물량의 62%에 달하는 과천 주암, 하남 교산의 경우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천 주암 C1블럭 전용 84㎡는 신혼희망타운이 아니고 면적 유형도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면적이라 뜨거운 청약열기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종로구 ‘에비뉴청계아파트’ 공사 현장
    종로구 ‘에비뉴청계아파트’ 공사 현장
    ▶상승 자체가 잡힌 것은 아냐 하지만 이 모든 변수에도 집값 상승 움직임 자체가 잡힌 것은 아니다. 11월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서울 주택 가격은 여전히 0.71% 상승했다. 다만 9월(0.72%)보다 상승 폭이 소폭 낮아졌을 뿐이다. 지난 4월(0.35%) 이후 커지던 오름폭이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축소된 것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재건축 및 리모델링 추진 단지의 강세에 힘입어 지난달 0.83% 상승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출 규제 등이 힘을 발휘하며 상승 폭은 9월(0.90%)보다 작아졌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지난 8월 0.92%로 연중 최대로 상승했다. 이후 두 달 연속 상승 폭이 줄었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서울 아파트 누적 상승률은 7.12%로 지난해 상승률(2.60%)의 무려 2.7배를 찍었다.

    서울 단독주택은 9월 0.42%에서 10월 0.38%로 오름폭이 줄었지만 빌라를 포함한 연립주택의 매매 가격은 0.55% 오르면서 지난 4월(0.20%) 이후 6개월 연속 상승 폭을 키워가는 모양새다. 올해 누적 상승률은 3.38%로 지난해 전체 상승률(1.11%)의 3배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빌라가 오르는 것은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 대신 빌라라도 사두려는 심리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재개발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투자목적의 매수세도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으로 시선을 넓혀 봐도 10월 아파트 가격은 1.43%가 올라 여전한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다만 지난 8월 1.79% 이후 9월(1.57%)에 이어 두 달 연속 상승 폭을 줄였을 뿐이다. 올해 수도권 아파트 누적 상승률 역시 16.53%로 지난해(7.35%)의 2.2배에 이른다.

    게다가 매매가격을 끌어올릴 변수가 되는 전셋값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10월 기준 전국 주택 전셋값은 0.62% 올라 전월(0.59%)에 비해 오름폭이 확대됐다.

    서울(0.48%)과 인천(0.815), 경기(0.91%) 등 수도권의 전셋값 상승률은 0.75%로 전월(0.80%)보다 상승 폭이 소폭 줄었다. 하지만 5대 광역시(0.53%)를 포함한 지방의 전셋값이 0.50% 오르며 9월(0.40%)보다 오름폭이 확대된 것이다.

    또한 10월 전국 주택 월세가격은 0.32% 올라 전월(0.29%)보다 상승 폭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의 경우 전셋값은 0.48% 올라 전월(0.54%)보다 상승 폭이 둔화됐지만 월세는 0.25% 상승하면서 전월(0.22%)보다 오름폭이 확대됐다.

    이는 전세 물량 일부가 월세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전세대출을 높은 강도로 규제하고 있어 월세수요가 증가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집주인이 감당해야 하는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 물량 일부를 월세로 돌리고 세입자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월세 부담이 커진 세입자들이 참다못해 저가 아파트 매수에 나서면, 수도권 저가 아파트 가격 상승 랠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요약하자면 부동산 시장이 한차례 쉬어가는 흐름이긴 하지만 대세 하락을 논하기는 아직 이른 시점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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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전문가들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수도권 부동산이 고평가됐다고 주장하는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최근 나 홀로 아파트 미계약이 나오는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고 평가한다. 김 대표는 “전설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썰물이 빠져나가고 나서야 누가 발가벗은 채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며 “그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이 끝없이 오를 거란 생각에 입지가 떨어지는 나 홀로 아파트도 완판됐지만 이제 상승세가 꺾일 거란 예상이 나오자 미계약분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아직까지 수도권 아파트 상승랠리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상당하다. 실제 10월 서울 실거래가격지수가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이 지수가 지난 2020년 4월 -0.06으로 마이너스를 찍은 이후에도 서울 아파트는 지속적인 상승 흐름을 보였다. 정부의 대출 규제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매수세가 주춤해졌을 뿐 아직까지는 아파트 가격이 대세 하락 흐름을 탈 만한 요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서울 대단지 신축 아파트에 대대적인 미분양이 나와야 집값이 잡힐 수 있다”며 “최근 몇 년간 서울 내 정비사업이 주춤해 공급이 부족한 데다 3기 신도시가 입주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집값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이번 상승장의 끝에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같은 대형 이벤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거시경제에서 엄청난 충격이 발생하지 않고 현 상황이 유지된다면 집값을 크게 하락시킬 변수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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