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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거래소 ‘운명의 9월’…내 코인은 안전?
입력 : 2021.08.30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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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명운이 걸린 날이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금융 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 접수하지 못할 경우 ‘자격 미달’의 거래소로 분류돼 시장에서 퇴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문을 닫거나 폐업하면 투자자가 입금한 돈이나 암호화폐를 돌려받지 못할 수 있어 혼란이 예상된다.
시작은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특금법 개정안의 통과다. 특금법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국제 기준에 따라 불법자금 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을 방지하고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래는 금융기관 사이의 금융거래에만 적용됐지만,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된 개정안이 암호화폐 거래까지 포괄하며 사태가 커진 것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이러한 규제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과 스페인 등 해외 금융 당국도 미등록 암호화폐 거래소에서의 투자 피해를 구제해줄 수 없다고 밝히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스페인 증권시장위원회는 당국에 등록되지 않은 업체들과의 코인 거래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스페인 내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 훠비와 바이빗을 포함한 12개 업체가 당국에 등록되지 않은 업체로 분류된다. 중국은 지난 8월 17일 인민은행 선전지점에서 불법 암호화폐 거래를 지원한 11개 기업에 대해 즉각 시정조치를 내릴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법을 제정하며 6개월이라는 신고 유예기간을 둔 마감시한이 바로 9월 24일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신고 요건을 갖추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먼저 거래소는 영업을 지속하기 위해 ISMS(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정보자산 보호를 위한 관리체계가 적합한지 심사를 요청한 뒤 여러 인증을 거쳐야 한다. 신청에서 인증서 발급까지 통상 4~6개월이 소요되며 정보보호조직 구성과 보안체계 구축을 위해 많게는 수억원의 비용이 든다. 영세한 사업자의 경우 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은행을 통한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가 필요하다. 기존 가상계좌 발급을 통한 방식이 아닌 은행의 실명확인을 거친 입출금계좌를 이용해 자금 세탁 등의 범죄를 막기 위한 조치다.
거래소가 영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정작 은행들의 반응은 소극적이다. 특금법 제5조2항에 따르면 은행이 계좌를 발급해준 거래소의 안정성을 보증해야 하는 ‘연대 책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은행이 주체적으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여부와 고객의 예치금과 거래소의 자기재산을 분리해 관리하고 있는지 여부와, ISMS 인증을 획득하였는지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은행이 계좌를 내준 거래소의 안정성이 미비하거나 해당 거래소가 자금세탁 등에 연루될 경우 은행에도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이 실명계좌 발급에 보수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다.
이러한 규제는 해외 거래소라도 내국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경우 마찬가지로 법 적용을 받는다. 내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한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한국어 서비스 지원 여부’ ‘내국인 대상 마케팅·홍보 여부’ ‘원화거래 또는 결제 지원 여부’ 등이다. FIU는 9월 25일 이후에도 외국 가상자산사업자가 신고하지 않고 계속 영업을 하는 경우 위법사실에 대하여 외국 가상자산사업자들에게 통보하고 불법 영업을 할 수 없도록 사이트 접속 차단 등의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측은 “지난 7월 21일 기준 신고 요건 중 하나인 ISMS 인증을 획득한 외국 가상자산사업자는 없다”며 “이 경우 이용자들은 본인 소유의 금전, 가상자산 등을 원활하게 인출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시 본인 소유의 가상자산 등을 신속히 인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라고 경고했다.
대형 거래소들이 어렵게 신고 요건을 갖춰 접수를 마친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가 지난 6월 국내 거래소 25곳을 조사한 결과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 요건을 충족한 사업자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가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금융위원회 심사를 거쳐 등록해야 하는 시한이 다음 달 24일로 다가왔지만 제대로 요건을 갖춘 거래소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16일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무부 경찰청 등 12개 관계부처 합동하여 진행한 가상자산사업자(암호화폐 거래소) 현장 컨설팅 결과를 발표했다. 금융위의 현장 컨설팅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25곳을 대상으로 지난 6월부터 한 달간 시행됐으며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금융결제원 등이 참여했다. 이들 25곳은 모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부여하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했거나 심사 중인 곳으로 전체 국내 거래소 80여 곳 중 상위 30%에 불과하다는 것이 금융위의 평가다. 금융위 관계자는 “컨설팅 결과 드러난 미비점은 신고 시까지 보완할 수 있도록 각 사업자에 전달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기한 내 신고가 가능한 사업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여 상당수 미등록 거래소가 갑작스럽게 폐업하거나 횡령 등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이 제시한 등록 요건은 ▲인터넷진흥원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운영 ▲사업자(대표·임원 포함)에 대한 벌금형 이상 형벌의 집행이 끝난 지 5년 초과 ▲등록 말소 후 5년 초과 등 네 가지다. 여기에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은 비록 직접적인 신고 요건은 아니지만 어차피 등록 이후 관련 의무를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 당국의 사전 심사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코인 거래의 안정적인 유지 관리를 위한 내부통제 수준도 낙제점을 면치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측은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자체 내규는 갖추고 있으나 아직 자금세탁방지 전담인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며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추출·분석하고 이를 FIU에 보고하는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고 가상자산거래에 내재된 자금세탁위험을 식별·분석하여 위험도에 따라 관리수준을 차등화하는 체계도 미흡하여 자금세탁범죄 등 위법행위 탐지능력이 불충분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증권시장과 비교할 때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일반 증권사 등으로 분화돼 있는 기능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있어 시장질서의 공정성, 고객 자산의 안전성, 시스템 안정 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체적인 사항으로는 코인의 신규 상장 및 폐지 기준이 존재하지 않거나 공개돼 있지 않은 거래소나 공시도 상장 때 백서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수준에 그치는 곳이 태반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고객 예치금과 코인을 회사 자체 보유 자산과 구분하지 않고 혼합 관리하는가 하면 고객의 암호화폐 지갑(콜드월렛)에 접근할 때 필요한 별도의 보안체계도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가상자산이 주식과 달리 24시간, 365일 거래되는데도 시스템 운영 인력 등이 크게 부족해 신속한 장애 처리와 암호화폐 탈취 및 해킹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정이 이렇게 되어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지자 금융 당국도 등록 요건을 일부 완화해 거래소의 무더기 폐쇄를 최소화하여 혼란을 막고 거래소들의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은 당장 충분치 않더라도 향후 개선 가능성이 보이면 가급적 등록을 허용해 폐업보다 계속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던 은행 실명계좌 연계를 하지 못하더라도 원화 거래가 아닌 코인 간 거래만 중개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아 일단 신고를 받아줄 계획이다. 즉 암호화폐를 원화가 아닌 다른 코인으로만 사고팔도록 할 경우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만 이럴 경우 투자자들은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다른 거래소로 암호화폐를 옮기면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등 불편함이 있어 거래소의 사업성은 떨어진다. 금융정보분석원(FIU) 관계자는 “일단 ISMS 인증 요건만 갖춰서 신고서를 제출하면 심사 기간 중에라도 보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할 생각”이라며 “그럼에도 상당수 거래소가 다음 달 이후 폐업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에 투자자 스스로 거래소의 신고 수리 현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투자금 인출 지연, 해킹 및 횡령 사고, 영업 중단 등 문제가 발생하면 FIU, 금감원, 경찰 등에 즉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업비트가 신고 절차를 공식적으로 진행하면서 여타 다른 거래소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8월 이내에 1~2개 암호화폐(가상자산) 거래소가 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대형 거래소인 빗썸·코인원·코빗 중 한 곳이 유력한 후보군이다. 여타 다른 중소 거래소는 신고조건을 갖추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정치권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코인민심에 주의를 기울여 특금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거래소들의 신고 기간을 6개월 연장해 투자자 피해를 줄이자는 것이 골자다. 최근 한 달간 특금법 신고 유예기간을 6개월 연장하는 원포인트 법안만 국민의힘에서 3건이 발의됐다. 대표적으로 조명희 의원은 지난 8월 4일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 수리 요건에서 실명 계좌를 제외하고 신고 유예기간은 6개월 연장하자는 내용의 특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이러한 의원들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대표는 19일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정상화를 위한 특금법 원포인트 개정 방안 포럼’에 참석해 “최악의 경우 가상자산사업자 줄폐업과 660만여 명에 이르는 투자자들의 금전적 피해가 우려된다”면서 “하지만 금융 당국은 사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면서 투자자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보완 조치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업계의 목소리를 내는 한국블록체인협회 역시 최근 성명을 통해 “특금법 신고 마감 기한이 임박했는데도 대부분 가상자산(코인) 거래소들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받지 못해 존폐 위기에 있다”며 “정부, 금융 당국과 은행, 국회는 각자 책임을 다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만약 돈을 예치한 거래소가 돌연 폐쇄를 선언하고 예치금 등을 무작정 반환하지 않아도 피해를 본 투자자는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 외에는 보상 받을 방법이 없다. 예금자보호법이 자본시장법이 거래소에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금이나 투자상품처럼 암호화폐를 보호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거래소가 합법적으로 파산을 선언하더라도 투자자가 암호화폐와 예치금을 회수하기는 쉽지 않다. 거래소 자산 매각 대금을 채무자와 채권자가 나누는 과정에서 선순위 채권자(국세, 지방세, 담보권을 설정한 채권자)에게 돈을 돌려받을 권리가 먼저 돌아가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는 ‘일반 채권자’로서 후순위 권리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중소 거래소 폐업 우려에 대형 거래소들도 심사를 앞두고 잡코인의 상장 폐지가 이어지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비중을 축소하고 현금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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